맛을 찾아가는 것은 현생 인류의 또 다른 로망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맛집, 그것은 호모 서치엔스(Homo- searchience)들의 표적이기도 하다.
맛...
그것은 무엇일까...
언어의 형태와 색깔이 무척 많이 닮은 "멋"은 또 무엇일까.
맛과 멋.
우리말의 다채로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어휘이다.
단지 모음 하나로 색깔과 의미를 확연히 달리 하는 단어,
맛은 무엇이며 멋은 과연 무엇일까. 그들은 서로 얼마나 다른 말일까.
세계적으로 우수한 우리 말에는 "단어 파생"이라는 규칙이 있다.
쉽게 표현하면 모음이나 자음을 슬며시 바꿔서 유사성을 갖지만 다른 의미로 사용하는,
이른바 "자모음 비틀기"
사물의 오래된 '낡음'이라는 어휘가 사람이 오래된 '늙음"으로,
"머리"가 하나이면 한개의 개체로 보는 개념에서 동물의 개체수를 세는 "마리"가 만들어 지고.
이렇게 비틀기 문법으로 파생된 우리말 어휘는 수없이 많다.
그렇다면 ,
미각적인 어휘인 "맛"이 모음 비틀기로 만들어진
시각적인 어휘인 "멋"과는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지 알아 볼 일이다.
지난 여름의 열기를 차마 떨치지 못하고 인디언 섬머의 나머지 열기를 토하고 있을 무렵,
가까운 곳, 의왕시를 찾아갔다.
그곳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호반, 백운호수...
의왕 백운호수 옆엔 수많은 음식점들이 있다.
저마다 화려한 외경과 달콤한 메뉴로 이곳을 찾은 이들을 유혹하는데...
과연 어떤 음식이고
어떤 맛이길래....
확인을 원하신다면 일단 한 번 꾸욱!
잔혀 예정에도 없었고 예약 같은 것도 일찌기 없었다보니,
점심 무렵에야 도착했지만 어느 식당에서 허기를 채워야 할 지도 속수무책.
그렇게 한 끼의 허기를 위해 호반 주변을 헤매고 헤매다
어렵사리 발견한 집,
길 옆으로 살짝 빠져 한적한 시골길로 올라가다 눈에 띈 집이었다.
접근성이 그다지 훌륭해 보이지도 않는 외딴 곳의 집,
사실은 어느 골목길로 들어가다 더 이상의 진입로가 없어서
지친 끝에 차를 돌리다가 우연히 발견한 집이었다.
무엇보다 "산나물" 이라는 세 글자에 꽂힌다.
이런 교외에 나오면 육류와 생선보다 산나물이 훨씬 섹시한 법!
비록 산나물과 잘 어울리는 한옥집은 아니지만
간판 아래에 열거되어 있는 나물들이 진한 유혹을 보낸다.
무엇보다 울릉도에서 먹고 그 맛을 잊지 못하고 있는 명이나물(산마늘)과
강원도 명물 곰취가 곁들여진다니 그야말로 일석 삼조!!
우리는 그렇게 이 식당을 찾아가는 명분을 쌓으며 절반 이상의 호기심을 갖고 들어 갔다.
오후 두시, 이미 점심시간을 훌쩍 넘겨버린 그 무렵에 실내에 손님이라고는 없었다.
밀려오는 불안감....
어느 식당이건 손님이 없다는 것은 맛이 없다는 반증.
어쩌겠는가, 일수불퇴, 낙장불입,
어차피 돌고 돌아 도박하는 심정으로 들어 온게 아닌가...
패잔병처럼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런데 넓은 창에 푸른 하늘과 푸르른 산과 들이 펼쳐져 있다.
전망 하나는 굿!!
밑반찬이 하나 둘 놓이는데
자태가 범상치 않다. 의외로 우아함이 보인다.
원재료 본연의 맛과 향을 살린 양념으로
맛이 자극적이지 않아 모든 반찬에 골고루 젓가락이 간다.
그 중엔 "이건 뭐지?" 싶은 게 하나 있었는데,
물어보니 "돼지감자" 란다.
일명 뚱딴지 초절임!!
역시 초절임한 울릉도 명이나물!
울릉도에서는 직접 채취하여 생채상태로 칡소구이와 더불어 포식을 했었는데...
그 시절의 명이나물을 오래도록 못 잊고 있었는데...
아~
이 녀석은 깻잎인 줄 알고 먹었는데
알고보니 강원도 곰취라고 한다.
세상에~ 곰취와 깻잎을 구분 못하다니...
맛은 깻잎과 비슷했지만 식감은 깻잎보다 훨씬 부드러웠다.
더불어 등장한 황태구이....
이녀석은 밥의 옆자리에 좌정하면 반찬이지만 술잔 옆에 자리 잡으면 당연히 안주.
이 황태구이만으로도 밥 한 공기는 뚝딱 할 수 있을 듯!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이 나물들!
이 나물들로 말하자면
부지깽이
다래순
미역취
고사리
참취
민들레,
버섯,
가시오가피순
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물 본연의 향을 그대로 함축하고 있어
입안으로 감고 도는 맛과 향이 그야말로 고향생각 나게 만든다.
나물을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뭐니뭐니해도 비빔밥!
동행한 친구는 비빔밥 하나는 정말 잘 비빈다고 큰 소리 친다.
그래서 주인장을 큰 소리로 불렀다.
"여기 큰 대접 하나에 별도로 고추장 더하기 참기름 왕창이요~"
명불허전~
비빔밥 쉐프로 친구를 선택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어 비볐더니
그 맛은....
"캬~"
아삭아삭하는 밑반찬을 하나 얹어 먹어도 예술~!
그냥 비빔밥 자체만 흡입을 해도 환상~!
때를 조금 지나 섭취하는 이 시간의 비빔밥은 한결같이 감탄 그 자체였다.
고마우이, 친구야~
앞으로는 어디서든 비빔밥이라는 어휘를 보면 너를 생각할께~
울릉도 명이나물을 얹어 먹으면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맛이다.
그렇다고 앞에 앉아있는 친구가 죽어서는 아니될 일.
그만큼 맛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김밥 싸듯 명이나물을 아래에 깔고 재료를 조금씩 올려놓는다.
식탁에서 하는 연출,
정말 아름답고 흥미로운 나그네들만의 호사다.
갖가지 재료를 넣은 후 돌돌말았더니
그럴듯한 명이나물 쌈이 탄생했다.
이 쌈을 입에 넣으니
입안에선 한바탕 파티가 열리는데,
10가지 나물과 명이나물이 어우러져 마치 춤이라도 추는 듯하다.
내가 좋아하는 월남쌈과는 그 풍미에 있어서 견줄 바가 못된다.
내가 겪어 본 월남쌈에는 최소한 발효의 맛은 없었으니...
시원한 물김치를 한모금 곁들이면
소화 걱정도 없고 입안도 개운해진다.
생채와 시간을 담보로 하는 발효가 적당한 간격으로 손을 잡았다.
뒤늦게 밝히지만 시골정취 물씬 느껴지는 이 식사에
동동주가 빠졌을 리 없다.
두 명이서 밥 세 공기, 막걸리 한 됫박, 나물 종류 10종, 그리고 기타등등의 밑반찬,
우리는 그 날 식사를 겸한 설거지를 했다.
과식은 일상이지만 이 날 만큼은 과식을 넘어서서 포식을 했다.
식사가 끝난 후....
겨우 일어섰다....
신발끈도 묶을 수 없었다.
고개를 조금만 숙여도 이 날 섭취한 소중한 내용물들이
바깥 들이를 할 것만 같아서...ㅜㅜ
숭늉도 너무나 구수했으나,
명이나물 보쌈과
곰취 보쌈을 너무나 많이 먹은 탓에
그만 숟가락을 놓고 항복해야 했다.
디저트로 나온 단호박 식혜 또한
오감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다.
식탁 위에 놓였던 음식들은 하나같이 남기기가 너무나 아까운 것들이었다.
그래서 잔반 제로에 도~전~!
너무 말끔히 먹어치웠더니
그릇을 치우러 오신 주인 아저씨가 흠칫 놀라는 기세!
석달 열흘을 굶고 월남한 북녘 동포를 바라보는 시선.
맛과 재료, 그 정성이 일급이었기에
감히 나에게 주어진 음식을 "음식물쓰레기"로 만들 수 없었다.
음식은 몸 뿐만 아니라 생각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했는데,
신토불이의 음식을 먹고 나서 느껴지는 즐거움이 바로 그것인가 보다.
우리는 이 날, 너무나 맛있게,
그리고 너무나 멋있게
문화시민의 긍지를 살려 주어진 접시들을 완벽히 비웠다.
모처럼 다이어트라는 어휘를 잊었다.
이런데서 그런 발칙한 어휘를 입에 올리는 것은
죄악에 가까운 일이기에...
첫댓글 드디어 도를 넘으셨습니다.
음식에 대한 학대의 수준...
댁에 있는 체중계는 먼지만 쌓이고...ㅎ
체중계?? 그게 머예요?? (@.@)
우와~!!!!!!! 강원도 비빔밥 넘 맛있지 않나요? 곤두레비빔밥인가??고거가 진짜 맛있는데!!!그맛이 넘 그립네요. 닭갈비도 먹고 싶고, 막국수도 먹고 싶구낭~~~
이번 주말 춘천으로 한번 뜨셔야할듯??
아침은 곤드레비빔밥, 점심은 막국수, 저녁은 닭갈비!
하루가 빠듯할 것 같아요. ^^
김작가님표. 돌돌말이 쌈
알죠 그거 ㅋ
혹시 쭈꾸미?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