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 시정명령 및 409억원 과징금 부과
담합을 통해 수년간 총 7000억원 규모의 정부 예산이 투입되는 예방접종백신 공급사업을 낙찰받은 백신 관련 업체 32곳이 시정명령 및 과징금 400억여원 철퇴를 맞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정부의 백신구매 입찰을 위해 6년 이상 답합을 한 백신제조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 등 총 32개 백신관련 사업자에게 시정명령 및 과징금 409억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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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합 참여사는 백신제조사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 백신총판 6곳(광동제약, 녹십자, 보령바이오파마, 에스케이디스커버리, 유한양행, 한국백신판매), 의약품도매상 25명이다. 이들은 2013년 2월부터 2019년 10월까지 조직적인 담합을 통해 조달청이 발주한 170개 백신 입찰에 참여해 147건을 낙찰받았다. 이는 총 7000억원 규모의 사업이다.
이들이 담합한 품목은 모두 정부예산으로 실시되는 국가예방접종사업 대상 백신이다. 인플루엔자 백신, 간염 백신, 결핵 백신, 파상풍 백신, 그리고 자궁경부암 백신, 폐렴구균 백신 등 모두 24개 품목에 이른다.
이들은 낙찰예정자를 미리 정해놓고 여러 들러리를 세우는 방식으로 원하는 가격에 정부 사업을 낙찰받았다. 예를 들면 낙찰예정자는 최대한 높은 금액으로 낙찰받기 위해 ‘기초가격’(조달청이 시장가 등을 검토해 도출한 상한 가격)의 100%에 가깝게 투찰하고, 들러리들은 이보다 더 높게 투찰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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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합참여자들은 정부조달방식의 변화에 유동적으로 입찰 방식을 수정해 담합을 이어갔다. 2016년 정부는 독점적 성격이 강한 글로벌 제약사 백신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일부 국가예방접종사업에서 정부가 전체 백신 물량의 5∼10%를 구매하는 ‘제3자단가계약방식‘에서연간 전체 물량을 구매하는 ‘정부총량구매방식‘으로 조달방식을 변경했다. 그러자 글로벌 제약사와 백신총판이 백신입찰담합에 참여해 글로벌 제약사가 직접 들러리를 섭외하고 기존에 낙찰예정자 역할을 하던 의약품도매상 대신 백신총판이 나서는 방식으로 담합을 이어갔다.
특히 녹십자, 보령바이오파마, 에스케이디스커버리 등 3개사는 2011년 백신 담합으로 제재를 받은 전과가 있는 ‘재범자’이다. 하지만 오동욱 공정위 입찰담합조사과 과장은 “공정위 기준 최근 5년간의 범죄만을 재범으로 취급하므로 이번 담합으로 가중 대상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번 담합으로 낙찰받은 147건 중 80%가량인 117건의 경우 낙찰 가격이 일종의 상한 가격인 기초금액의 100% 이상으로 나타났다. 이는 통상적인 최저가 입찰에서 100% 미만으로 낙찰받는 것에 비추어 봤을 때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이 20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조달청이 발주한 170개 백신 입찰에서 1개 백신제조사와 6개 백신총판, 25개 의약품도매상 등 총 32개 백신 관련 사업자들이 사전에 낙찰예정자를 정하고 들러리를 섭외해 투찰할 가격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담합한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과징금 409억 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며 세부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러한 담합이 가능한 이유 중 하나로 2009년 도입된 ‘공급확약서 제도’가 거론된다. 의약품 도매상 등이 조달사업을 낙찰받는다 하더라도 ‘공급확약서’ 발급 권한이 있는 백신제조사가 확약서 발급을 거부할 경우 낙찰이 무효 처리되기 때문이다. 백신제조사의 의도에 따라 낙찰자가 결정될 소지가 있어 담합에 악용될 수 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오 과장은 “백신제조사가 공급확약서를 이용해 의약품도매상에 대해 거래상 지위를 남용하는 경우가 상당히 있는 것으로 확인하고 있다”면서도 “이 제도를 없애고 할 생각은 아직 없다”라고 답했다.
한편 글락소스미스클라인과 6개 백신총판은 사업자 지위 남용 행위에 대해 검찰에 고발돼 하나는 1심, 다른 하나는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아울러 의약품 도매상의 경우 입찰방해죄 등으로 유죄 선고를 받고 이미 형이 확정된 상태다.
채명준 기자 MIJustic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