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석동호회 단톡방에서]
[장영봉대표님제공]
양녕대군 이야기
우리가 알고있는 양녕대군은 아버지와의 불화로
세자 자리에서 쫓겨나는 비운의 왕자로 그려집니다.
그런데 세자 교체에는 양녕의 "부적절한 연애"도
한 몫 단단히 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도대체 이 남자 양녕대군,
연애를 어떻게 했기에 왕위까지 놓쳤을까요.
양녕대군은 조선 3대 임금인 태종 이방원과
원경왕후의 장남이었습니다.
"유교국가" 조선에서 왕위는 "적장자(嫡長子),"
즉 왕비의 맏아들이 물려받는 것이 원칙입니다.
양녕은 1404년 11살의 나이에 세자가 되면서
다음 임금으로 낙점 받았습니다.
이제 후계자 수업만 열심히 받으면 세자 양녕이
보위에 오르게 됩니다.
그러나 세자는 사춘기에 접어들며 삐뚤어지더니
희대의 스캔들을 일으키고 낙마합니다.
"태종실록" 1417년 2월 15일 기사에 처음 등장한
이 스캔들은 조선을 뒤흔들었습니다.
세자가 원로대신 곽선의 첩 어리를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첩은 정식 혼인을 하지는 않았지만 통념상 한
집안에 속합니다.
즉,임자 있는 여자라는 말입니다.
"어리"의 용모가 빼어나고 재주도 뛰어나다는 걸
세자에게 귀띔한 이는 악공 이오방이었습니다.
양녕은 사람을 시켜 한번 만나자는 전갈을 넣었습니다.
어리는 어리둥절했을 것입니다.
세자가 왜 나를? 그녀는 이미 원로대신의 첩이었습니다.
대갓집 소실(小室)로 편안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어리가 난색을 표했지만 양녕은 집요했습니다.
환심을 사려고 수놓은 비단 주머니까지 선물로
보냈습니다.
어리는 곽선의 양자인 판관 이승에게 찾아가
이 사실을 알리고 신변보호를 요청합니다.
그러나 세자는 막무가내였습니다.
젊은 환관들을 거느리고 그 집에
단체로 쳐들어간 것입니다.
결국 이승은 어리를 내놓았습니다.
일국의 왕세자가 나타나 눈알을
부라리는데 어쩌겠습니까
양녕은 그녀를 데리고 의기양양하게
세자궁으로 돌아갑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이 일을
"납치(納置)"라고 적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철컹철컹" 쇠고랑 찰 사건입니다.
아무튼 세자는 어리를 감춰놓고
"몰래연애"를 즐겼습니다.
세자궁은 임금이나 왕비의 거처와 멀리 떨어져 있었고,
내관과 궁녀들도 양녕에게 충성하는 사람들이라
비밀이 새나갈 가능성이 적었습니다.
관부에 신고하려던 곽선의 양자도 협박으로
입단속을 시켰습니다.
파국의 시작은 궁중에서 일어난 작은 해프닝이었습니다.
별감 소근동이 무수리와 연애하다가 적발되었는데
아 글쎄 이 자가 심문받다가 엉뚱하게 세자의
비행을 털어놓은 것입니다.
소근동은 원래 세자의 장인 김한로의 종이었는데,
무수리와의 연애를 고발한 사람이 바로 김한로였습니다.
이 고변은 전직 종이 옛 주인에게 앙심을 품고
엿 먹인 것입니다.
소근동의 폭로로 드디어 세자의 납치극과
몰래연애가 드러났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이런 말초적인 소식이 대박뉴스입니다.
이 스캔들은 빛의 속도로 방방곡곡 퍼져나갔습니다.
태종 이방원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습니다.
구종수, 이오방 등 세자와 어리의 스캔들에 관련된
자들을 모조리 잡아들이라는 어명이 떨어졌습니다.
의금부 도사에게 사건 내막을 보고받은
태종은 불호령을 내렸습니다.
세자의 연애 및 유흥 도우미였던 구종수 형제와
이오방은 참수해서 저자에 목을 매달았습니다.
한량 패거리와 세자궁 내관들도 곤장을 치고
유배를 보냈습니다.
국기를 문란하게 만드는 일이므로 엄중한
예방조치를 취한 것입니다.
달리 보면 아들을 타락의 길로 인도한 나쁜
친구들에게 책임을 물은 꼴이기도 했습니다.
정작 이 못된 연애의 당사자인 양녕은
별일 없었습니다.
처가로 쫓겨났다가 며칠 후 구구절절한
반성문을 쓰고 궁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심지어 그 반성문조차 세자의 스승 변계량이
대필했다고 합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더니
그야말로 솜방망이 처분이었습니다.
자 그럼 세자 양녕은 어쩌다가
부왕 태종에게 내쳐졌을까요?
모든 것은 세자의 상사병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어리가 궁에서 쫓겨나자 양녕은
침식을 거른 채 앓아누웠습니다.
보다 못해 장인 김한로가 나섰습니다.
그는 태종이 아닌 세자의 신하였습니다.
가문의 미래가 다음 임금이 될
사위에게 달렸기 때문입니다.
"귀한 사위 얼굴이 반쪽인데 내가 가만있을 수 없지"
김한로는 어리를 자기 딸, 곧 세자빈의 여종으로
꾸며 몰래 궁에 들였습니다.
세자와 어리의 연애는 다시 불붙었습니다.
처음에는 납치였지만 이즈음에는 서로를 절실히
사랑했던 것 같습니다.
그 결실로 아이까지 생겼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은 비밀에 부쳐졌습니다.
하지만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 게
궁궐입니다.
어리와 아이의 존재가 들통 난 것은
1418년 3월의 일이었습니다.
어느 날 세자의 누이들이 궁궐에 들어와 어머니
원경왕후를 보는데 마침 태종도 함께 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경정공주가 눈치 없는 얘기를 꺼냈습니다. 세자궁에서 유모를 구하여 어쩔 수 없이 보냈다는 것.
그 아이가 누구냐고 물으니 공주는 사실대로 고했습니다.
태종이 더욱 열 받은 것은 그 무렵 넷째 왕자
성녕대군의 병이 깊어져 오늘내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국왕 부부는 1405년 늦둥이로 태어난
성녕을 무척 예뻐했습니다.
그 막내 왕자가 14살의 나이로 죽게 생겼으니
왕실의 슬픔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런데 세자라는 놈이 몰래 아이까지 낳고
시름에 잠긴 부모를 속이다니..
얼마 후 성녕대군은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아버지의 상실감은 맏이에 대한 서슬 퍼런
분노로 이어졌습니다.
태종 이방원은 세자의 장인 김한로를
유배 보내고 세자빈도 사가로 쫓아냈습니다.
양녕은 격렬하게 반발했습니다.
부왕에게 원망을 가득 담아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
"태종실록" 1418년 5월 30일 기사에 나오는
편지를 요약해보면 대충 이런 내용입니다.
“아버지 여자는 다 궁중에 들이는데 저는 왜 안 됩니까?
어리를 금하면 잃는 것만 많고 얻는 것은
적을지도 모릅니다.
잘 생각해보고 처분하십시오"
어찌 보면 간청이었고, 어찌 보면 협박이었습니다.
기왕에 들킨 거 양녕은 어리와의 관계를
인정받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방원이 누구입니까.
27명의 조선왕 가운데 가장 냉혹한 인물 아닙니까.
장남이 정면도전 하자 그는
미뤄오던 결단을 내렸습니다.
1418년 6월 3일 태종은 세자를 폐하고
셋째 왕자를 그 자리에 앉혔습니다.
출중한 학문으로 인정받고 있던 충녕대군이었습니다.
8월 8일에는 문물과 제도로 나라를 다스릴
적임자라면서 임금 자리까지 물려줬습니다.
그이가 바로 세종대왕 이도(李祹)입니다.
양녕대군은 세자 자리에서 쫓겨나면서
유배를 떠나야 했습니다.
새 임금 세종은 형님을 깍듯하게 예우하고
귀양살이의 편의를 봐주었습니다.
물론 그런다고 고마워할 양녕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사냥이다 뭐다 마음대로 쏘다니더니
1419년 초에 돌연 유배지에서 사라져버렸습니다.
폐세자의 돌발행동에 궁궐이 발칵 뒤집혔고
그 화살은 애꿎은 여인에게 날아갔습니다.
장인 김한로의 첩과 폐세자빈의 유모가
어리를 찾아가 원망하고 구타한 것입니다.
"나쁜 남자"를 사랑한 죄밖에 없었던 어리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다가 스스로 목을 맸습니다.
나중에 제 발로 돌아온 양녕대군은 이 소식을 듣고
말없이 비파를 켰다고 합니다.
조선 건국 초기에 떠들썩한
연애스캔들을 일으킨 양녕대군과 어리!
이 사건은 양녕에겐 임금 자리와 맞바꾼 "상사병"이,
어리에겐 여자라서 서러운 "불상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양녕이 충녕에게 세자자리를 물려주기 위해
일부러 방탕한척 했다고 하는 것은 순전히
후손들이 꾸며낸 가짜 뉴스입니다.
세종이 이어받은 것은 다행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양녕을 찬양할 일은 아닙니다.
그 모든 과정은 "태종실록"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가 이 글을 올린 이유는
전주 이씨 양녕대군파의 후손이라는
아는 지인이
잘못된 역사 이야기를 거품을 물고
열변을 토하기에
바르게 잡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들어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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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파는 사람⚘
어떤 강의실에서 행복에 대해 한참 열변을 토하던 강사가 청중들에게
물었습니다.
"행복은 얻는 게 더 행복할까요? 아니면 주는 게 더 행복할까요?"
그러자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그때 한 사람이 소리쳤습니다.
"행복을 파는 사람요!" 그렇습니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서
다른 사람에게도 그 행복을 파는 사람입니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성공을 거머쥔 민족은 유대인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무엇을 팔고 무엇을 나타내기에 성공을 했을까요?
그것은 자신이 좋아하고 행복해 했던 것을 다른 사람에게 팔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 '던킨'은
맛있는 도너츠로 다른 사람의 입맛을 행복하게 했고,
유대인 '허쉬'는
밀크를 넣은 초콜릿을 만들어 다른 사람들의 혀를 달콤하게 했고,
유대인 '스필버그'는
자신이 만든 영화로 보는 사람들을 행복의 세계로 빠트렸습니다.
특히 유대인 '비달사순'은
천편일률적인 여자들 헤어스타일의 자유를 구사하게 해
머리의 혁명을 가져올 만큼 여자들의 마음을 멋지고 행복하게 만들었으니,
그들은 많은 부분에 편리함을 넘어서 행복하게 만든 것입니다.
백신도 그들이 만들어 사람들을 질병으로부터 극복하게 해 행복한 삶을
구사하게 만든 것 입니다.
한국인 '권영효'라는 사장은 신대구 고속도로가 막 준공될 무렵,
그 고속도로에서 벗어난 외진 국도에 어느 날 뜬금없이 주유소를 세우겠다고 했습니다.
그곳은 평소 한적한 도로라서 주유소 영업이 전혀 되지 않는 곳으로
인근 주민들은 장사가 안 될 거라며 모두들 만류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제한속도 110km인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량을 고속도로가
아닌 외진 시골 도로에 있는 주유소로 끌어 들이겠다는 말에 모두들
'미친놈'이라고 했습니다.
더욱이 그 도로에서 경쟁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는 인근 이장은 필경 얼마
못가서 망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동종 주유소에서 받아야할 동의서에
서슴없이 도장까지 찍어주었습니다.
하지만 '만포 주유소' 라는 간판을 내건 그는 기름을 결코 너무 싸게 팔지도
않았고, 그 흔한 휴지도 선물하지 않았습니다.
서울에서 제일 장사가 잘 되는 주유소가 한 달에 약 1,000드럼의 기름을
파는 것에 비해,
주유소의 생명인 입지가 삼랑진 IC에서 700미터나 후방으로 떨어진
한적한 외진 도로에서 무려 한 달에 기름을 1,300드럼이나 팔았습니다.
그가 고속도로를 달리던 차를 끌어내려 자기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게
만든 것은 단순히 허튼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단순히 기름만 판 것이 아니라 그가 주목한 것은 바로 화물차였습니다.
화물차는 낮에는 짐을 싣고 도로비가 저렴한 야간을 이용하여 달린다는 점에 착안하여 주유소 지붕을 높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1,000평이나 되는 넓은 부지에 화물 기사를 위한 정비 설비와 엔진오일 교환 설비, 그리고 기사들의 편의를 위해 샤워실, 식당, 수면실, 탁구대, 당구대, 심지어는 골프 연습장,
퍼팅 연습장, 노래방, 가족을 위한 낚시터, 바베큐 시설 까지 설치했습니다.
더욱이 주유소 인근 주변 나무에 화물 기사들의 이름을 붙여 놓고 나무에
열매가 맺히면 따가도록 했습니다.
또한 바로 옆에 유기농 밭을 만들어 싱싱하고 좋은 유기농 채소를 기사들에게 선물했습니다.
그러자 이를 이용하는 화물 기사들은 너무도 편안한 휴식과 감동으로 인해
밤마다 무거운 화물차를 몰아야 하는 긴장감에서 도리어 긴장을 풀어주고
행복감을 만끽하는 장소로 바뀌었던 것입니다.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이곳을 ‘만포 나이트’라고 부릅니다.
행복은 가지려다 보면 자칫 욕심으로 치닫게 될 수도 있고,
행복을 나누는 것도 무조건적 나눔은 어떤 때는 고통을 수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행복도 나누고 자신도 더 부유한 행복을 누린다면 이에 더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권 사장은 자신이 행복하게 여겼던 것을 화물 기사들에게 그대로 행복을
팔았던 것입니다.
어쩌면 행복은 팔 수도 살 수도 없는 것인데,
어떻게 행복을 팔 수 있을까요?
설사 행복을 판다고 해도 자신에게 충분히 여유가 있는 행복의 재고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행복을 무한히 생산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마음과 생각은 그 어떤 것 보다 가장 큰 행복의 창고와 공장이 될 수가
있습니다.
디즈니의 성공 비결은 돈을 벌려고 노력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디즈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파는 것은 행복이다." 라고.
권영효 사장!
그가 팔았던 것도 바로 행복이었습니다.
기업이 고객들에게 노리는 최고의 가치는 고객 감동입니다.
그러나 감동은 한 순간이 될 수 있지만, 행복감은 지속적입니다.
인생에서 최고의 세일은 바로 행복을 파는 것입니다.
행복을 파십시오.
행복을 팔려면 자신이 먼저 충분히 행복해 할 줄 알고,
지금 그 행복을 누리고 있는 일을 하고 있어야 하며,
남에게 행복을 전염시킬 줄 알아야 합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행복을 파는 사람들입니다.
행복을 팔려면 행복을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플라톤의 행복론
첫째 : 먹고, 입고,
살고 싶은 수준에서
조금 부족한 듯한
"재산(財産)"
둘째 :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에 약간
부족한 "용모(容貌)"
셋째 : 자신이 자만
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절반 정도 밖에 알아주지 않는 "명예(名譽)"
넷째 : 겨루어서 한
사람에게 이기고,
두사람에게 질 정도의
"체력(體力)"
다섯째 : 연설을 듣고
서, 청중의 절반은
손뼉을 치지 않는
"말 솜씨."가 행복입니다.
조금은 부족하고,
모자란 상태에서,
그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노력
하는 나날의 삶속에
행복이 있다는 플라톤!
과유불급(過猶不及) :
지나침은 부족함과 마찬가지!
조금은 비워둬야 채울
수 있다는 것이 플라톤
의 행복론 입니다.
🍒행복한 사람
m.blog.daum.net/jme538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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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은 '그냥'이다 ♥
류시화 시인의 '새는 날아가면서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에 소개된 일화입니다.
"행복"이란 뭘까, 아주 보통의 행복?
류시화 시인이 배우 김혜자씨와 네팔로 여행을 갔다가 수도 카트만두 외곽에 있는 유적지를 방문했을 때 겪은 일이다.
김혜자가 한 노점상 앞에 걸음을 멈추더니 옆에 가 앉았다.
장신구를 펼쳐놓고 파는 여자였다.
유명한 관광지라 노점상이 많았다.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나 했더니 아니었다.
장신구를 파는 여자는 고개를 숙이고 울고 있었다.
눈물은 그가 파는 싸구려 장신구들 위에 뚝뚝 떨어졌다.
놀랍게도 김혜자는 그 여자 옆에 앉아 손을 잡더니 함께 울기 시작했다.
노점상 여인은 울면서 김혜자를 바라봤다.
얼마 뒤 그 눈물은 웃음 섞인 울음으로 바뀌었고 이내 미소로 변했다.
김혜자는 팔찌 하나를 고른 뒤 노점상 여자의 손에 300달러를 쥐어주고 일어났다.
300달러는 그에게 한달 동안 일해도 만져보기 힘든 큰 돈이었을 것이다.
장신구를 팔던 여자는 깜짝 놀라 김혜자를 쳐다봤다.
이 글을 읽으며 마음이 따뜻해졌다.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가 지은 '아주 보통의 행복'을 읽고 이 감정이 "행복"임을 알았다.
김혜자씨의 일화 속에 담긴 행복의 의미를 최교수의 책으로 풀어 정리해 봤다.
첫째, 행복은 '그냥'이다.
류시화가 김혜자에게 왜 노점상 여인에게 그런 큰 돈을 줬냐고 물었다.
김혜자씨는 "누구나 한번쯤은 횡재를 하고 싶지 않겠어요? 인생은 누구에게나 힘들잖아요"라고 말했다.
최교수에 따르면 "인간은 우연히 일어나는 좋은 일에서 행복을 느낀다."
행복(幸福)이란 단어의 한자 풀이 자체가 '우연히 일어나는 좋은 일'이다.
따라서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려면 아무 날도 아닐 때,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선물을 하면 된다.
노점상 여인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몹시 힘들어 울었겠지만...
김혜자가 사실상 '그냥' 준 300달러에 행복했을 것이다.
그럼 김혜자는 행복했을까? 행복했을 것이다. 이유없이 그냥 줄 때, 그래서 상대방이 행복해 할 때 그 행복은 준 사람에게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둘째, 행복은 관심을 갖되 간섭하지 않는 것이다.
김혜자는 여인의 눈물에 관심을 갖고 함께 울었다. 하지만 왜 우느냐고 묻지 않았다.
처음 보는 여자에게 그런 질문은 실례가 될 수 있다. 관심을 갖고 함께 울어주는 것까지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경계"다.
최교수는 행복한 사람은 남의 평가나 비교에 간섭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타인을 간섭하지도 않는다고 지적한다.
조언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의 기를 꺾는 쓴소리를 하지 않고 어른으로서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타인의 행복을 적극적으로 응원하되 "경계를 지킨다."
셋째, 행복은 남도 나와 다르지 않음을
아는 것이다.
류시화가 훗날 네팔에서 일화를 꺼냈을 때 김혜자는 말했다.
"그 여자와 나는 아무 차이가 없어요. 그녀도 나처럼 행복하기를 원하고 작은 기적들을 원하고, 잠시라도 위안받기를 원하잖아요. 우리는 다 같아요."
최교수는 이를 "타인의 정신세계도 깊다"는 말로 표현한다.
최교수에 따르면 사람들은 "타인을 자신에 비해 정신적인 동기가 약한 존재로 보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게을러 보이는 자녀에게 "생각이란 것을 하고 사냐"고 말하는 것, 월급만 많이 주면 직원들이 열심히 일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노숙자는 먹을 것과 잘 곳만 해결해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이런 생각이 타인은 나보다 심미적 욕구, 자존적 욕구, 자기실현 욕구가 적을 것이라 착각하는 것이다.
타인을 나와 다른 존재, 더 나아가 나보다 못한 존재로 여기는 이런 생각이 타인의 행복을 망가뜨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내가 다른 사람과 맺는 관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결국 나의 행복도 무너지게 만듭니다.
"나도 너와 다르지 않아"라는 이해와 공감이 나와 너, 모두를 행복하게 해줍니다.
가을은 대자연이 인간들에게
'보라, 놓아버리는 것이 얼마나 쉽고 아름다운가' 일러주는 시간입니다.
맑고 청명한 햇살만큼 즐겁고
행복한 시월 보내십시오.
[ 좋은 글 중에서 ]
~~~~~~~~~~~~~
◇ 짐
얼마 전 방송인 이경규씨가
"인생의 짐을 함부로 내려놓지 마라"는
강연을 해 큰 반응을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지고 가는 배낭이 너무 무거워 벗어버리고 싶었지만 참고 정상까지 올라가 배낭을 열어 보니 먹을 것이 가득했다”
인생도 이와 다를 바 없습니다.
짐 없이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나서 저마다 힘든 짐을 감당하다가 저 세상으로 갑니다.
인생 자체가 짐입니다.
가난도 짐이고,
부유도 짐입니다.
질병도 짐이고,
건강도 짐입니다.
책임도 짐이고,
권세도 짐입니다.
이별도 짐이고
만남도 짐이고
미움도 짐이고
사랑도 짐입니다.
살면서 부닥치는 일 중에서 짐 아닌 게 하나도 없습니다.
이럴 바엔 기꺼이 짐을 짊어지세요.
언젠가 짐을 풀 때 짐의 무게만큼 보람과 행복을 얻게 됩니다.
아프리카의 어느 원주민들은 강을 건널 때 큰 돌덩이를 진다고 합니다.
급류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 랍니다.
무거운 짐이 자신을 살린다는 것을 깨우친 것입니다.
헛바퀴가 도는 차에는 일부러 짐을 싣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짐이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손쉽게 들거나 주머니에 넣을 수 있다면 그건 짐이 아닙니다.
짐을 한 번 져 보세요.
자연스럽게 걸음걸이가
조심스러워 집니다.
절로 고개가 수그러지고 허리가 굽어집니다.
자꾸 시선이 아래로 향합니다.
한 번 실행해보십시요
누군가 나를 기억해 주는 이가 있다는 건 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
누구가 나를 걱정해 주는 이가 있다는 건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
괜찮은 거지?
별일 없지 ?
아프지마!
나도 누군가에게 고맙고 행복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행복은 멀리있는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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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깨달음
학문은 배우고 익히면 될 것이나
연륜은 반드시 밥그릇을 비워내야 한다
그러기에 나이는 거저 먹는 것이 아니지요.
노년의 아름다움은 성숙이다
성숙은 깨달음이요
깨달음엔 지혜를 만나는 길이다.
손이 커도 베풀 줄 모른다면 미덕의 수치요.
발이 넓어도 머무를 곳 없다면 부덕의 소치라는 것을ᆢ
지식이 겸손을 모르면 무식만 못하고
높음이 낮춤을 모르면 존경을 받기 어렵다는 것을ᆢ
세상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로 하여 무거운 것임을ᆢ
세월이 나를 쓸쓸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로 하여 외로운 것임을ᆢ
사람의 멋이란
인생의 맛이란
깨닫지 않고는 느낄 수 없는 것.
보라 평생을 먹고 사는 저 숟가락이 음식 맛을 알더냐ᆢ
※영구 보관하세요
💯건강 정보 종합(84)
http://me2.do/FtVOE1L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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