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력 2023년 9월 10일은 음력으로 7월 26일이어서 아버님의 73주기 기일이다. 기일 제사를 묘제로 지냄은 3년전 부터이다. 이는 코로나로 인해 장조카 집에 모일 수 없어 이곳 야외에서 지내기로 했다. 오늘은 마침 일요일어서 제사를 모신 후에 벌초하기로 장조카와 합의를 했다. .
나는 작년 년말 새해 달력을 받은 후 체크해 놓았고, 9월달 달력을 열고는 매일 같이 부모님을 만나러 간다는 기분에 마치 설날이나 생일날을 기다리는 어린애와 같은 심정이었다. 묘소에 간다는 것은 고향을 방문하는 길이기도 하여 마냥 즐겁기만 하다.
아버님을 여윈 것이 73년이니 내 나이 8살 때이다. 새벽에 잠에서 깨어나 아버지와의 추억을 더듬어 보니 대여섯가지가 생각나지만 그 중 3가지를 든다면 아버지 손을 잡고 국민학교 입학을 준비한 일과 1학년 겨울 방학 때에 은산에 있는 병원에 가서 손가락 수술을 하고 허벅지 살을 떼어 손가락에 붙이고 온 일,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병환으로 마지막 투병을 지켜보던 아련한 기억을 들 수 있다.
아버지는 언제나 말수가 적었고, 진중하셨으며 성품이 느긋하셨고, 모든 만사를 낙관적으로 보시는 분이었다.
아버지 묘소에 간다는 것에 만감이 교차했다. 다음 카페를 통해 매일 아침 고향 산소와 부모님의 영정을 들러보지만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 산소를 찾아간다는 기뿜이 큰 것은 여전하다. 이 곳은 머지 않아 나도 갈 곳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10일 날 아침 4시 30분에 일어나 떠날 준비를 하고 큰 아들 차를 타고 5시에 춟발하여 7시에 산소 옆에 지은 재실 사효당에 7시에 도착했다. 제사를 마치고 벌초를 한 다음 귀경길에 낙자리를 들려 적곡리 소사천 이종매부집을 들려 오는 길은 교통체증으로 겨우 7시에 집에 도착했다.
이날 읽은 축문은 다음과 같다.
부모님 기일 축문
오늘은 음력 7월 26일로 아버님이 이 세상을 뜨신 날입니다. 이 날을 맞이하여 아버님과 어머님의 제사를 함께 묘 앞에서 올립니다. 두 분이 고히 잠드신 이곳은 칠갑산이 서쪽으로 내려와 망월산을 거쳐 뭉친 분향리 광명리 서남쪽 산등성이 자락이고 저 앞에는 금강천이 휘돌아 동쪽으로 가서 부여의 백마강으로 합쳐지며, 넓은 장수평 들에는 누런 벼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지극히 평화스럽습니다. 축문은 장손인 형순이를 대신하여 아들 구복이가 지어 올립니다.
이 자리에는 막내 아들 구철과 막내 딸 명옥, 사위 김용상이 참석했고, 장손자인 형순 내외, 손자인 운순, 창백, 기영, 증손자인 국진, 조카 구범과 그 아들 수영, 등이 참석했습니다.
하루의 밤낮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사철이 돌고 돌아 한 해가 지나 아버님 기일을 다시 맞이하니 저의들 가슴에 만감이 교차합니다.
아버님 어머님 영전에 고해야 할 일은 금년 초에 할아버지 할머니 유골을 이곳 바로 옆에 있는 납골당으로 모신 것입니다. 그 밖에 저희들 각 가정은 3년 간 전국에 유행했던 전염병을 잘 이겨 냈습니다. 이처럼 각 가정이 큰 일이 없이 한 해를 지낸 것은 두 분의 영령께서 항상 보살펴주시는 음덕으로 생각합니다.
저희들이 이 밝은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낳아서 지극 정성으로 길러주신 부모님의 공덕은 무슨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크고 값진 것입니다. 부모님의 따뜻한 마음과 올바른 정신은 저희들이 이제껏 살아온 큰 밑천이었습니다.
돌이켜보건대 아버님은 73년 전 40세의 젊은 나이로 돌아가셨고, 어머님은 그 후 50년이란 긴긴 세월을 어린 자식들을 키우시냐고 혼신의 노력을 하시다가 지금으로부터 23년 전인 2000년에 92세로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님의 49재를 막내 여동생과 매부의 주선으로 전주 금선암에서 지내면서 마지막 재에서 아버님의 영가를 천도해 드린 것이 두 분의 영적인 만남을 한 차원 높여 드린 것으로 생각하니 한량없이 기쁩니다. 이에 두 분의 영전에 꽃 한 송이를 올리는 마음으로 여러 자손들의 뜻을 모아 두 분의 영전에 조촐한 음식을 차려놓고 제사를 올리오니 많이 흠향하여 주시옵소서.
부모님의 후손들이 오늘 제사를 올린 후 벌초를 말끔하게 해 드릴 것입니다. 부모님을 위해서 장손인 형순 내외와 막내아들 구철이가 정성껏 묘소를 아름답게 가꾸어 백일홍이 아름답게 피어 있음을 알려드리며 이제 작별을 고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23년 9월 10일)
추기: 돌아와 핸드폰을 조작하다가 찍은 사진이 모두 날라가 버린 바람에 사진 한 장을 올리지 못함을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첫댓글 낙암선생님의 모든 글, 그 가운데서도 특히 축문은 매우 훌륭한 윤리서인 동시에 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한 두 번이 아니라 정기적으로 자주 카페에 올려주셔서 모든 회원의 귀감이 되고
잠든 효심을 일깨워주시니 참으로 훌륭하시고 놀랍기도 합니다.
낙암선생의 모든 글 속에는 우리를 감동케하는 정성과 진실과 인정이 있고 윤리가 있어서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감사합니다. <청계산 - 고림>
저의 글을 너무 극찬해주시니 한편 감사하오나 다른 한편 두려습니다. 고향에 가는 길은 마치 산을 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목적지에 도달하면 돌아와야하기 때문입니다. 형님들이 돌아가시니 이제 제가 소종중을 이끌어야 하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젊은 세대를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를 생각하곤 합니다. 선생님이지켜보아 주심이 저에게는 큰 대들보와 같이 생각합니다.. 건강하십시오.
낙암 교수님 묘제 축문은 매년 보아도 매년 또 다른 내용의 감동입니다.
돌아가신 아버님 성품까지 묘사하신 대목은 독자에게도 많은 것을 느끼게 합니다.
특히 "아버지는 언제나 말수가 적었고, 진중하셨으며 성품이 느긋하셨고,
만사를 낙관적으로 보시는 분이었다."는 대목은 생시의 특징적인 풍모와 더불어
내면이 어떠신 분이었는지 그 훌륭한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저도 매년 한글 축문을 읽게 되는데, 참고가 될 대목이 많습니다.
귀한 축문 옥고 읽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