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하십니까 ?
지난 5월10일날에 우리 원종욱친구의 아버님께서 출판기념 및 九旬宴을 가졌습니다.
이날 구순연에는 그동안 함께 지내셨던 도 지방행정동우회,시 지방행정동우회,
춘농동창회,종친회,송암회,교회 장로님 내외분 등 아흔 분 가까이 자리하여 축하를
해주었습니다.
또한 이날 발표한 수상문집인 '돈그리마'의 내용은 비록 우리와 세대차이는 있지만
당시의 생활상이나 같은 지역인 강원도에서 근무하셨던 경험을 토대로 썼기 때문에
많은 공감이 된다고 생각하여 이를 발췌하여 우리 동기들에게 아래와 같이 널리
알리고자 하여 이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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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그리마 ;
이 책의 제목을 돈그리마라고 한것은 종욱친구의 아버님께서 지방 출장시 하숙집에 가셔서
주무실때에 당시 방바닥은 시멘트 포대로 사용했고, 벽은 어느집 족보를 뜯어 바른것을 잠이
안와서 벽을 보고 있노라니 그중 글자 하나가 별안간 움직이기 시작하여 이상하여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것은 글자가 아니라 돈그리마(돈벌레) 였다고 한다.
그래서 종욱 부친께서 이러한 글을 지방행정 편집부에 올렸더니 그 글이 『 지방행정 』에
실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종욱 부친께서 돈그리마를 금번 발표한 책자의 이름으로 한것이라고 합니다.
돈그리마란?
우리 어렸을적에 방바닥에 자주 나타났던 돈벌레를 아십니까? 돈만 아는 사람을 비하하는
말이 아닙니다. 15쌍의 다리로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지네처럼 징그럽게 생긴 그리마를
우리 어르신들은 돈벌레라고 불렀습니다. 이 그리마는 난방이 잘돼 따뜻하고 수입 과자
따위의 먹을 것이 풍족한 집에서 주로 번식했기 때문에 돈 많은 부잣집에서만 산다고 해서
돈벌레라고 불렸습니다. 이 혐오스러운 벌레가 집 안에 들어오면 곧 부자가 될 길조라며
반기기까지 했답니다.
제1부 ; 공직을 천직으로 알고
강원도 임산과에 취직
1944년 12월 22 춘천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한 나는 그달 31일 강원도 임산과에 취직을 했다.
직명은 도고원(道雇員)이고 월급은 45원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청장년은 징병 또는 징용으로 동원되어 각 기관 단체에는 결원이 많았다.
그런 관계로 취직이 용이하여 우리는 취직 시험도 없이 본인의 희망과 학교장의 추천만으로 도청과
도 소속사업소, 군청, 기타 기관단체에 거의 취직이 되었는데, 나는 몇몇 동기생들과 같이 도청에
취직이 되었던 것이다.
산림과에 취직한 나는 임도계(林道係)에 배치되었다.
당시 과장은 일본인 오타니 쇼고(大谷鍾五)였고 임도계 주임(현 계장) 역시 일본인 미야사키 마사오
(宮崎正夫) 였으며, 직원은 5~6명 정도였다. 그 중에는 후에 춘천시 부시장을 지낸 김용주 씨와 강원도
교육위원회 재무과장이던 이종기 씨도 있었다.
임도계는 임도(林道), 즉 산림도로 개설을 다루는 부서이다. 목재반출을 위해 산림자원이 풍부한
오지의 산지를 찾아가서 측량하고 귀청 후 설계를 한 다음 공사를 직영으로 실시했었다.
그때 공무원의 복장은 군대식이었다. 국민복이라는 제복을 착용했는데 색깔이나 모양이 군복과
똑 같았으며, 까까머리에는 일본 군모를 쓰고 발에는 각반(脚絆)을 감았다.
가죽이 귀한 때여서 구두는 구하기가 어려워 지카다비(地下足袋)를 신었다.
지카다비란 운동화 비슷한 신인데 엄지발가락만 따로 들어가도록 갈라놓고 끈으로 졸라 매는 대신
뒤꿈치를 호크로 잠그게 되어 있다.
당시 일본인을 폄하해서 <쪽발이>라고 불렀는데 이 엄지발가락만 따로 들어가는 지카다비를 신은
데에서 유래한다.
상의의 왼쪽 가슴 부위에는 명찰을 패용하고 깃에는 배지를 달았다. 배지는 조선총독부의 상징 마크인
오동나무 문양이다. 하나 재미있는 것은 직급에 따라 배지 밑받침의 색깔을 달리한 것이다.
즉 말단직원은 흰색이고 판임관(사무관급)은 노란색, 고등관(서기관급)은 보라색 등으로 하는
따위이다.
도고원으로 취직을 해서 주어진 첫 일은 고요리(지노)를 꼬는 일이다.
지금은 공문서를 철할 때 호치키스를 이용하지만 그때는 못 쓰는 미농지를 좁게 잘라서 고요리를
꼬아 썼던 것이다. 고요리를 다 꼰 다음 끝을 쥐고 세우면 빳빳하게 고추서야 되는데 나는 그게
잘 되지 않았다.
다음은 결재 난 문서를 정서해서 시행하는 일이다. 수신처가 여러 곳일 때에는 등사원지를 줄판에
대고 철필로 써서 등사판에다 놓고 등사를 한다. 조금이라도 주의를 게을리 하면 손이고 옷이고
온통 등사잉크로 시커멓게 된다.
임도계에서 계원들과 측량차 여러 군으로 출장을 다녀, 취직 전까지 여행을 좀처름 해보지 못한
나로서는 각지로 다니며 낯설은 풍물을 구경하고, 새로운 견문을 넓힐 수 있어서 취직 초에는
매우 즐겁고도 유익한 일이었다. (강원행우)
첫댓글 저희 아버님 九旬宴 기념 수상집 <돈그리마>내용을 소개하여 주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건강하시게 사무실 출근.컴퓨터.책.글 쓰시는 아버님.고마움을 느낌니다.
더 잘 모시지 못하는 불효를 채찍질 하며...춘천에서
*케익 커-팅 사진 설명 : 왼편부터
박건주 전 시장님.이상용 전 장관님.아버님.김면수 인성병원 이사장님.한석용 전 지사님.
이돈섭 행정동우회 회장님.권혁희 강원여성인권지원공동체 이사장님.
겨우 60 중반에 자신의 건강을 걱정하는 처지로 종욱형 아버님께서 이리도 정정하시니 부럽기 짝이 없습니다.
아버님께서 막 사회에 나오셔서 겪은 경험을 써 주신 글이 내가 살아 보지 못했던 시기를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친구 홍준 !
예쁘고 멋진 공방.아드님과의 사업 소식.듣고만 있습니다.
반가운 만남 기회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