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엔 구름기둥, 밤은 불기둥
출애굽기13장 17-22절/김병덕 목사
출애굽기13장 17-22절] “파라오가 백성을 가게 하였을 때에 블레셋 사람들의 땅에 있는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혹시 이 백성이 전쟁을 보면 뜻을 돌이키고 이집트로 되돌아갈까 염려하노라, 하셨기 때문이라. 그러나 [하나님]께서 홍해의 광야 길을 통해 백성을 인도하시니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 땅에서 나와 무장을 하고 올라가니라. 모세가 요셉의 뼈를 취하니라.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엄히 맹세하게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께서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리니 너희는 여기에서 내 뼈를 가지고 올라갈지니라. 하였더라. 그들이 숙곳에서 떠나 광야 끝에 있는 에담에 진을 치니라. {주}께서 그들 앞에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빛을 주사 밤낮으로 가게 하셨으며 낮에는 구름 기둥을 밤에는 불기둥을 백성 앞에서 치우지 아니하셨더라.”
성경의 모든 말씀은 영혼 구원입니다. 그것에서 벗어나는 해석을 하고 있다면 그들은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영혼 구원이 얼마나 귀한가를 깨닫지 못하고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면 도리어 이단이라고 까지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그리스도편지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모 이단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아마 그곳에 다니는 사람들이 본다면 그리스도편지 역시 이단이라고 공격할 것이 너무도 분명합니다. 제가 구원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씀을 전하고 있고 또 구원에 방해가 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거의 모든 설교가 다 구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보아도 맞습니다.
영혼 구원입니다. 모든 성경은 다 이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성경에서 보화인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해서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 안에서 구원을 방해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냉정하게 살펴보고 그것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 두 가지를 성경을 통해서 평생 알아가도 우리는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두 가지를 모르는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말하면서 교회 안에서 악을 즐겨 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구원을 받은 성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치 육적인 이스라엘이 자기들만이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구원은 물론 단회적인 사건이라는 것은 저 역시도 백번 인정을 합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은 성도와 그렇지 않은 교회 안에 교인들은 차이가 있습니다. 구원을 받은 성도는 자기가 구원을 받은 것을 확신하면서 자기 구원에 대해서 성경에서 계속해서 확증해 나가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을 드린 두 가지를 계속해서 알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인들은 어떻습니까? 이제 자기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말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교회 안에서 온갖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으면서 주여! 주여! 하고 있는 자신을 보면 누구라도 그렇게 인정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것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 자기들이 행하고 있는 그 행위가 무엇인가를 모르고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성도는 구원에 대해서 계속해서 알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인들은 이제 구원을 받았으니까 신앙생활을 잘해야 한다고 하면서 그것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율법을 잘 지켜야 하고 또 하나님의 성도로서 성화가 되어야 하고 또 성령께서 주신 은사를 더욱 잘 나타내서 그것으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너무도 옳습니다. 그러다보니까 그 말에 거의 다 넘어가고 있습니다. 아직 구원도 받지 않고 그저 종교인으로 열심을 내고 있는 그들이 마치 구원을 받은 것 같이 주여! 주여! 하면서 내가 주님 앞에서 먹었고 주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했고 주의 이름으로 율법을 지켰고 주의 이름으로 이제 막 교회에 들어온 소자들에게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야 하는 가를 가르쳤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 모든 일이 악이라는 것을 모르다 보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신 마태복음7장의 그 일들을 그대로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되는 가를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게 된다는 것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구원이 없습니다. 하지만 자기들이 교회 안에 있는 것을 보면서 구원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얼마나 많은 예표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버림을 받았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저 자기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성경을 아무리 많이 보아도 그런 것이 안 보이면 소경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만 소경입니까? 그들만 음녀였습니까? 그들만 하나님의 사랑을 몰랐습니까? 이것이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서 그대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설경은 이스라엘이 왜 구원을 받지 못했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 성경을 보면서도 자기들은 잘하고 있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안 믿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소경입니다. 그리고 음녀입니다. 이것이 이 시대 교회의 모습입니다. 이스라엘을 통해서 예표로 이 시대도 역시 그렇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지만 그것을 이스라엘의 일로 치부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지 못했으면서도 자기들이 마치 구원을 받은 성도처럼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자랑하던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구원 받았습니까? 그것을 알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 무엇입니까? 율법의 한 모양이라고 취하고 있다면 그는 아직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성경을 그저 사람의 이성을 가지고 문자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서로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은 정당하다고 하고 있고 남이 지키는 율법은 율법주의에 빠져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육적인 싸움이 아닙니다. 영의 싸움과 육의 싸움을 잘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육의 싸움은 내가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모든 행위들을 잘하려고 하는 것이 육의 싸움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그것을 영의 싸움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싸우고 있는 싸움부터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성경을 왜 우리에게 주셨습니까?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해서 주셨습니다. 성경은 곧 영생에 대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면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가 왜 성경을 보는지 조차 모르고 그저 교회 안에서 다 구원을 받은 성도라고 부르니까 마치 그런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계속 읽어야 합니다. 죽을 때 까지 나에게 영생이 있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읽어야 합니다. 어느 정도 읽었다고 해서 성경을 다 아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어느 정도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영의 일을 너무 모르고 있고 또 구원을 방해하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17절) “파라오가 백성을 가게 하였을 때에 블레셋 사람들의 땅에 있는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혹시 이 백성이 전쟁을 보면 뜻을 돌이키고 이집트로 되돌아갈까 염려하노라, 하셨기 때문이라.”
새 번역] “파라오는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냈다. 그러나 그들이 블레셋 사람의 땅을 거쳐서 가는 것이 가장 가까운데도, 하나님은 백성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않으셨다. 그것은 하나님이,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바꾸어서 이집트로 되돌아가지나 않을까, 하고 염려하셨기 때문이다.”
모세 오경은 창세기부터 이집트 탈출기(출애굽)의 여정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어떻게 창설하셨고 또 그 자손들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고 있고 세상이 얼마나 쉽게 죄악으로 빠져 들어가는 가를 보여 주셨고 아브라함을 통해서 믿음이 무엇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셨고 그 자손들을 이제 천국의 모형 가나안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모세를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이적과 기사를 보이심으로 말미암아 이집트의 왕 파라오도 어쩔 수 없이 이스라엘을 내 보내고 말았습니다. 끝까지 이스라엘을 포로로 잡아 두고 싶었지만 사람이 하나님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집트의 노예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 노예가 되어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제 천국의 모형 가나안에 들어가기 까지 광야라는 교회에서 이스라엘은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집트에서 가나안 까지는 그리 먼 길이 아닙니다. 아무리 아이들이 있다 해도 넉넉잡고 30일 정도면 갈 수 있는 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40년간을 광야에서 보냈습니다.
그 중간에 블레셋 땅이 있었습니다. 그 길로 그냥 가면 반드시 블레셋과 전쟁을 해야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제 광야에 나온 이스라엘은 전쟁을 두려워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무기도 없고 또 군대도 없기 때문에 사실 싸운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합니다.
전쟁입니다. 이 백성이 전쟁을 보면 뜻을 돌이키고 다시 이집트로 돌아갈 것이 너무도 뻔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일단 전쟁이 없는 곳으로 그들을 인도 하셨습니다. 물론 블레셋과의 전쟁은 피했지만 불과 얼마 되지 않아서 아말렉과 전쟁을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아말렉을 이 세상에서 영영히 그 씨를 제하여 버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 12절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며 영원한 생명을 붙들라. 그것을 위하여 너 역시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들 앞에서 선한 고백을 고백하였도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까지 많은 싸움을 했습니다. 물론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역시 그들을 진멸하기 위해서 수많은 종족들과 싸움을 했습니다. 그 모든 여정의 싸움은 모두가 하나님께서 역사를 해 주심으로 이길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육체적으로 싸웠지만 그 싸움은 너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내게 있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육적인 싸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이집트에서 나와서 블레셋으로 가서 싸우면 뜻을 돌이키고 이집트로 다시 돌아갈 것을 염려 하셨습니다. 그러나 출애굽기 17장에서 보면 아말렉과 싸움을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육적인 전쟁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의 영적인 전쟁이라는 것을 바로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도 전쟁을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다시 세상 이집트로 돌아갈 것을 하나님께서 염려를 하셨습니다. 이 시대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집트로 돌아가는 일은 없겠지만 전쟁을 싫어하고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치열하게 자기 육체의 것을 가지고 전쟁을 하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육적인 전쟁이 아닙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입니다. 하지만 이 믿음의 선한 싸움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그저 자기 육체를 가지고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내 안에 믿음을 든든히 세우기 위해서 싸움을 해야 하는데 종교인으로서 신앙생활을 잘하기 위해서 자기 육체를 가지고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 육체의 그 싸움을 보면서 영의 싸움이라고 어리석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잘 지키기 위해서 싸움입니까? 그리고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일을 잘하기 위해서 육체로 하는 일을 가지고 싸우고 있습니까? 그것은 믿음의 선한 싸움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그저 자기들의 육적인 싸움입니다. 평생을 그 싸움을 하다가 나중에는 자기가 무슨 싸움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입니다.
교회는 광야입니다. 그것에서는 싸움이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같이 실제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알기 위해서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믿음을 방해하고 있는 것들이 교회 안에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그 선한 싸움을 해서 영생을 취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우리가 왜 교회 안에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해야 하는가 하면 영생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시대는 육체의 싸움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믿음의 선한 싸움인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싸움과 영의 싸움을 도무지 분별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육체의 싸움이지 믿음의 선한 싸움이 아닙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은 오히려 그 율법을 안 지키기 위해서 싸우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율법을 지키는 것이 너무도 바르지만 성령은 우리에게 율법을 폐하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실 이 싸움을 하지도 않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이고 그 싸움을 하라고 하면 이상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영생을 얻기 위해서 싸우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 그 싸움은 아무리 잘 해도 영생을 얻는 일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양생을 얻기 위해서는 내 안에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 믿음을 갖는 것의 시작은 율법을 버리는데서 부터 출발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육적으로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치열하게 싸움을 하다가 결국에는 사망에 이르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6장12절] “우리는 살과 피와 맞붙어 싸우지 아니하고 정사들과 권능들과 이 세상 어둠의 치리자들과 높은 처소들에 있는 영적 사악함과 맞붙어 싸우느니라.”
처음에는 싸움을 못 합니다. 교회에 나와서 아마 처음부터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을 하지 말라고 하면 아마도 그는 교회에서 나가 버리고 말 것입니다. 다시 세상으로 돌아갈 것이 분명합니다. 저 교회는 혈과 육에 대해서 싸우지 말라고 한다고 하면서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할 것입니다.
혈과 육이 무엇입니까? 바로 율법을 지키고 또 성화가 되고 지적으로 모양을 내고 하는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처음 교회에 나온 사람들에게 율법을 안 지켜도 된다 그리고 성화가 되지 말라 또 은사를 나타내지 말라고 하면 뭐 이상한 것도 다 있네 하면서 나가고 말 것입니다. 다시 이집트로 돌아갈 것이 너무도 분명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직 복음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국기독교에 있는 사람들이 이 설교를 보면 아마도 다 이단이라고 주장을 할 것입니다. 자기들이 힘겹게 싸우고 있는 그리고 선하고 의로운 그것을 하지 말라고 하면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하면서 시비를 걸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단이라고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닙니다. 혈과 육이라고 하니까 이 세상과의 싸움으로 알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혈과 육의 싸움입니다. 이것은 이 세상 사람들도 다 알고 있는 초등학문입니다. 이 세상에 어느 종교가 그리고 어느 조직이 이 싸움을 하지 않고 있습니까?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세상과 무엇이 다릅니까? 똑같은 일을 교회 안에서 하고 있으면서도 그저 자기들이 교회 안에서 주여! 주여 하는 것으로 마치 구원을 받은 성도가 되고 그 싸움을 잘하는 것을 보면서 대단한 믿음을 가진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을 하면서 그것을 영의 싸움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쟁을 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교회에 나온 지 오래 되었으면 우리는 전쟁을 해야 합니다. 이집트를 나온 지가 얼마나 되었습니까? 그런데도 아직까지 어린아이와 같이 그저 하나님을 믿는다고 앵무새처럼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도 광야에서 싸웠고 또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많은 싸움을 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천국에 가기 까지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악한 영들과 그렇게 싸워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미 주님께서 이기신 싸움입니다. 주님께서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싸움에서 이긴 것을 믿기만 하면 나도 이긴 자가 된다는 것을 성경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육체로 이기려고 기를 쓰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겼습니다. 다시 싸우고 말 것이 없습니다. 이미 주님께서 이긴 싸움을 우리가 믿으면 반드시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는 이스라엘과 같이 육체의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믿음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입니다. 성경을 알아야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할 수 있는데 성경을 모르다 보니까 육체의 싸움을 하면서 힘을 빼고 있습니다.
교회에 처음 나왔습니다. 그들은 이 싸움을 하지 못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을 블레셋이 있는 것으로 인도하시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에 나와서 복음을 들으면 이 싸움을 해야 하는데 처음부터 이 싸움을 하라고 하면 도무지 이해가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처음에는 복음에 대해서 들어야 합니다. 이 복음을 알기 까지는 성경을 통해서 배워야 합니다, 그렇게 배운 성도만이 어두움의 세상 권세자들과 악한 영들과 싸울 수 있습니다. 어두움의 세상 권세자들이 누군가 하면 율법의 의를 가지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악한 영들은 사단과 귀신들입니다.
성경 바로 알아야 합니다. 어두움의 세상 권세자라고 하니까 저 북한의 김정은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율법주의에 빠져 모든 권세를 누리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도 그랬고 이 시대 교회도 역시 율법주의가 되어서 교회 안에서 권세를 잡을 수 있습니다. 악한 영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전쟁입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영의 싸움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너희가 초등학문 아래 있다가 이제는 복음으로 들어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들어오면 모두가 다 초등학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때가 오래 되었으면 영의 싸움이 무엇인가를 알고 그 싸움을 해야 합니다.
(18절) “그러나 [하나님]께서 홍해의 광야 길을 통해 백성을 인도하시니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 땅에서 나와 무장을 하고 올라 가니라.”
새 번역] “그래서 하나님은 이 백성을 홍해로 가는 광야 길로 돌아가게 하셨다. 이스라엘 자손은 대열을 지어 이집트 땅에서 올라왔다.”
광야에 나왔습니다. 사실 이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세상에 살던 사람이 교회에 나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역사를 하시면 천국 잔치에 참여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모두가 천국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장정만 60만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믿지는 못 했습니다 만약에 이스라엘을 그것을 믿고 있었다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시기 전에 스스로 나오려고 했고 하나님께 간구를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집트에서 노예가 되어서 나오지를 못하니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보내셔서 인도하셨습니다.
광야입니다. 그것은 이 시대 교회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교회가 구원의 방주가 되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도 하나님의 모든 능력을 자기들의 눈으로 보면서 당당하게 광야로 나왔지만 그들의 결말이 어떠했는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광야 길을 돌리셨습니다. 그들은 대오를 지면서 나왔지만 아직까지는 전쟁을 할 그런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눈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지만 그것이 표적이 되어서 하나님을 믿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광야에서 모두가 죽었습니다.
교회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지금 내가 다기고 있는 교회는 방주가 아닙니다, 그것은 이제 광야에 나온 것입니다 이제 광야라는 교회에 나왔으면 먼저 아말렉과 싸워야 합니다. 이집트 탈출기의 모든 사건들은 이 시대 우리가 어떻게 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가를 가르쳐 주는 모형들입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사건 정도로만 알고 있습니다.
(19절) “모세가 요셉의 뼈를 취하니라.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엄히 맹세하게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께서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리니 너희는 여기에서 내 뼈를 가지고 올라갈지니라. 하였더라.”
새 번역] “모세는 요셉의 유골을 가지고 나왔다.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엄숙히 맹세까지 하게하며 "하나님이 틀림없이 너희를 찾아오실 터이니, 그 때에 너희는 여기에서 나의 유골을 가지고 나가거라." 하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창세기50장 25절]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께서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리니 너희는 여기에서 내 뼈를 가지고 올라갈지니라. 하였더라.”
요셉의 유언입니다. 요셉은 형제들에 의해서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 와서 이집트의 총리까지 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혜를 주셔서 그 당시 모든 나라가 칠년간의 흉년으로 거의 다 망하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해서 미리 가르쳐 주심으로 해서 그가 이집트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일로 요셉은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고 야곱의 가족이 다 이집트로 이주를 하게 되었습니다.
가나안입니다. 그것은 천국의 모형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가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얼마나 원했으면 자기가 죽고 세월이 흐른 후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너희를 권고 하시리니 그때에 내 유골을 가지고 가나안으로 들어가라고 유언을 했습니다.
약속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을 요셉은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것을 믿지 못 했습니다, 그저 야굽에서 사는 것으로 만족을 누렸습니다. 광야로 나가서 가나안에 들어가야 하는데 그들에게는 가나안이 그렇게 마음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자기가 죽으면 유골이라도 가져가서 가나안에 묻어 달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하지만 요셉을 통해서 그가 얼마나 천국을 사모하고 있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비록 죽어서 뼈만 남아 있지만 그 뼈라도 가나안에 들어가고 싶었던 것이 요셉입니다. 자기들이 조상이 묻혀 있는 그 땅에서 안식을 누리고 싶었습니다.
천국을 바라보는 성도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천국을 별로 사모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말로만 천국을 간다고 하지 그들의 예배나 기도나 찬송을 들어보면 다 바알에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에 그들이 천국을 사모한다면 그것부터 버려야 하는데 오히려 이 세상의 것을 탐하고 있습니다.
(20-21절) “{주}께서 그들 앞에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빛을 주사 밤낮으로 가게 하셨으며 낮에는 구름 기둥을 밤에는 불기둥을 백성 앞에서 치우지 아니하셨더라.”
이스라엘이 숙곳에서 발행하여 광야 끝 에담에서 장막을 쳤습니다. 굳이 지명에 대해서 일일이 거론할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그 지명이 다 뜻이 있지만 그것보다는 우리가 성경을 보는 이유는 바로 구원을 위해서입니다. 정말 성경을 보면서 다른 것이 마음을 빼앗기지 마시기 오직 내 영혼의 구원을 취하기 위해서 보아야 합니다.
쓸모 없는 것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특히 성경을 연구를 하는 신학자들을 보면 너무 안타깝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해서 기록된 말씀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서 이 구원에 초점을 맞추어서 보는 것이 아니라 단어에 집착을 하고 있고 또 사람의 이성으로 따지면서 그것을 증명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연구를 해서 이 세상의 이성으로 무엇인가를 알면 대단한 신학자나 되는 것으로 요란을 떨고 있습니다.
그런 것에 마음 빼앗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직 영생입니다. 이 영생이 없다면 여러분이 성경에서 아무도 모르는 것을 알았다 해도 그것은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도는 그런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오직 내 영혼의 생명에 대해서만 생각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에 대해서는 많은 설교들이 올라와 있습니다. 서로 각각의 주장들이 많고 다양한 해석들이 있는 것이 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름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7장14절]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그 길이 좁아 그것을 찾는 자가 적으니라.”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구름기둥은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는 구름기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구름기둥을 보여 주셨습니다. 아니 구름기둥을 통래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셨습니다.
구름기둥이 인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동을 할 때는 반드시 구름기둥을 보고 인도함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까지는 늘 이 구름기둥이 성막에서부터 올라왔습니다. 이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것이고 주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구름기둥이 있어야 이스라엘이 어디로 가야 할 줄을 알았습니다.
반드시 입니다. 구름기둥이 떠오르지 않으면 이스라엘은 그 자리에서 몇 년이고 있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구름기둥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에서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가운데로 인도를 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보이는 구름기둥을 보고 인도함을 받았지만 이 시대는 진리의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7장 17절] “왕좌의 한가운데 계시는 [어린양]께서 그들을 먹이시고 생수의 샘들로 그들을 인도하시며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리라. 하더라.”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바로 구름기둥은 우리를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는 표징과도 같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갈 때 까지 구름기둥을 따라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생명수 샘으로 인도함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시대도 구름기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성령의 오셔서 우리를 모든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셔서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 생명수 샘을 마시게 됩니다.
성령이 인도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십니까? 바로 천국입니다. 그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 이스라엘은 보이는 구름기둥을 보고 따라 갔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육적인 시대가 아닙니다. 이제 영의 인도함을 받으려면 반드시 진리의 성령이 우리에게 오셔야 합니다.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빛을 주사 밤낮으로 가게 하셨으며” 낮에는 구름기둥입니다, 그러나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에 가나안에 들어가기 까지 주야로 진행을 할 수 있게 하신 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눈에 보이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이었습니다.
고린도후서4장 6절] “빛에게 명령하사 어둠 속에서 빛을 비추게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빛을 비추사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주셨느니라.”
무엇을 비취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에게 비춰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하늘로 올라가셔서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어두움이 있습니다. 이스라엘도 그렇고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에게는 불기둥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에게 비춰 주시고 있습니다. 구약의 모든 육의 일은 이 시대 우리에게 영의 일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불기둥이 왜 이스라엘에게 밤에 비춰주셨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어두움에 있었습니다. 이제 막 광야에서 나와서 하나님의 영광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 빛을 비춰주시기 위해서 이스라엘에게 성막을 짓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그 성막에서 제사를 드리면서도 자기들의 눈으로 보이는 것만 보았지 영의 일은 전혀 깨닫지를 못 했습니다.
“낮에는 구름 기둥을 밤에는 불기둥을 백성 앞에서 치우지 아니하셨더라.”
낮에는 구름기둥이 그리고 밤에는 불기둥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영의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에 떠나지 않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자기들의 눈으로는 보고 있었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줄을 몰랐지 때문에 그저 육적으로만 보고 따라 가기만 했습니다.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구름기둥이 이 시대도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불기둥이 우리 마음에 비춰져야 합니다. 하지만 역시 성경을 육적으로 보다보니까 구름기둥이 자기를 인도하는 줄도 모르고 있고 또 불기둥이 자기를 비춰주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있습니다. 구약의 그림자를 통해서 신약의 영의 일을 알아야 하는데 그저 육적으로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있습니다. 구름기둥이 우리 마음에 있습니다. 그리고 불기둥이 우리 마음에 비춰주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구름기둥을 보고 인도함을 받고 있고 불기둥을 통해서 우리 마음에 어두운 곳에 비춰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빛이 비춰지게 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성경의 답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구약을 보면서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아야 합니다. 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고 영광의 빛입니다. 구름기둥의 인도함을 받고 또 불기둥의 비췸을 받아서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천국에서 모든 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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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갑천뉴스타트 자연치유원 원문보기 글쓴이: 엘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