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7일 불날 날씨 : 꽃샘추위로 텃밭이 꽁꽁 얼었다. 걸음을 걸을 때마다 손가락 끝이 시리다.
아침 걷기를 가기 앞서 아이들을 부르려 교사실을 나서는데 ○○이가 본준이에게 엄청 크게 화를 내며 클리코를 한 줌 집어 던진다. 피해서 다행히 본준이도 둘레에 있는 아이들도 맞지는 않았지만 자칫 누구라도 맞으면 다칠 수 있었다. 잘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먼저 ○○이에게 던진 행동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큰소리로 혼냈다. 본준이에게 물어보니 본준이가 ○○이 귀에 대고 입으로 ‘똑’하는 소리를 내서 ○○이가 화가 났단다. ○○이에게 물으니 형이 한 번 했는데 싫다는 표현을 그렇게 했다고 한다. 본준이에게는 동생이 싫어하는 행동을 했으니 사과하라고 하곤 사과를 하고 온 뒤 다시 또 이야기를 나눴다. 동생이 던진 클리코에 화들짝 놀라 도망가는 본준이 모습에 내 마음이 상했나보다. “형님으로 먼저 잘 못된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먼저야! 하지만 누구나 실수하고 잘못 할 순 있어. 그럴 땐 피하지 말고 제대로 사과하고, 동생들이 잘못된 행동을 하면 단호하게 이야기를 하고! 동생이 뭘 던지는데 그대로 꽁지를 빼고 도망가니? 다가가 미안하다고 이야기하고 하지만 던진 행동에 대해선 네가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도록 주의로 줘야지!” 말해 놓고 나니 참 무리한 요구다. 무서워 도망친 아이에게... 지난 해 훌쩍 자라 형님 노릇을 대체로 잘하는 본준이에게 자꾸 더 클 것을 요구하는 나에게서 지나친 욕심을 본다.
올 해 깊은샘은 날마다 아침 걷기를 하고 규칙 있는 흐름으로 한주를 보낸다. 불날 아침은 텃밭으로 아침 걷기를 한다. 이틀 전만 해도 봄기운 살랑살랑 볼을 흔들더니 어제 오늘은 꽃샘추위로 귓불이 얼얼하다. 동사무소 앞 텃밭에 가서 땅을 밟고 기운을 느껴본다. 아직은 단단한 땅, 그 위로 봄나물들이 튼튼하게 올라오고 있다. 놀라운 생명들이다. 닭장에 닭들을 궁금해 하던 아이들 눈엔 한 구석에 죽어있는 닭이 한 마리 들어온다. 아직은 땅이 얼어 묻어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텃밭과 인사하고 열리는 옆 텃밭으로 걸음을 옮긴다. 동사무소에서 텃밭으로 가는 길은 그늘지고 바람부니 손끝과 귀가 떨어질 듯 시리다. 통통, 쫑알쫑알 걷던 현서와 지안이가 “우앙~ 악독한 선생님, 이렇게 추운 날 우리를 밖으로 나오게 하다니” 비명을 지른다. “추운 날이라고 안에만 있으면 더 몸이 약해줘. 이런 날 걷게 해준 나에게 고마움을 갖도록~~~” 말로는 투덜거려도 추운날도 바깥을 좋아하는 깊은샘 녀석들, 황량한 텃밭에 들어선 아이들 돋보기와 신문을 들고 텃밭 가운데로 자리한다. 얼마 전 어른들 없는 곳에서 불을 피우다 크게 이야기를 들은 한주와 본준이를 위해 조금 늦기는 했지만 텃밭 해충을 잡는다는 구실로 밭둑 태우기를 한다. 아니 밭가운데 마른 풀 태우기^^ 햇볕이 불이 되는 과정을 이야기 하고 신문에 돋보기로 햇볕을 모으고 화르륵 불은 오른다. 돋보기로 불붙이는 건 지긋한 엉덩이와 볼록렌즈와 햇볕의 각을 절묘하게 맞추는 예리한 팔의 힘이다.
안전한 불, 쓰기 나름인 불 이야기로 텃밭 아침 열기를 마치고 다음 수업을 하러 아이들은 후다닥 뛰어가고 불씨 깨끗이 재우고 학교로 들어가니 지환이가 묻는다.
"선생님 담배 폈어요?"
어제 마을 청소를 하며 담배 꽁초를 너무 많이 주웠나보다 ㅠㅠ 동네 어른들 담배꽁초는 아주 꺼서 쓰레기봉지에 버려주세요. 사무실마다 알림글 써서 한 장씩 보내고픈 마음이다.
오늘은 학교 식구들이 저마다 집에 있는 물건들은 내어놓고 졸업한 9기 아이들이 2년 동안 정리하고 줄곧 고물상에 가서 모은 돈으로(다른 학년들도 때때로 함께 하고) 빗물저금통을 만들어 세웠다. 핸즈 정해원 선생님의 도움으로 햇빛저금통 원리와 쓰임새도 배우고 빗물 저금통 구조 원리를 아주 재미나게 배웠다. 아무리 좋은 공부도 아이들에게 재미가 없으면 좋은 공부가 될 수 없는데 오늘 빗물저금통 공부는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이야기와 재미로 아이들이 쏙 빠져들었다. 모둠을 나누어 받침대, 옆에 붙이는 관, 빗물통을 공구를 써서 스스로 만드니 아이들 자부심까지 높아진다. 졸업한 형님들 덕에 남은 동생들 공부가 즐겁다. 선생들도 덩달아 신난 공부다. 이제 잘 쓰는 것이 우리 몫, 비가 많이 오는 때 빗물을 받아 전기 없이 빨래하고, 텃밭에 물도 주고 쓰련다. 빗물 하나도 아껴 쓰려 애쓴다. 후쿠시마6주기를 맞아 뜻깊은 공부다. 먹는 것, 입는 것, 타는 것, 모든 면에서 예전보다 더 잘 먹고 잘 입고 잘 자면서 우리는 세계 곳곳의 자원을 가져다 쓰며 지구을 소비하고 있다. 우리는 지구 곳곳을 파해치는 삶을 살고 있다. 우리가 장에 가서 새 물건을 지나치게 사서 쓸 때마다 우리는 지구 환경의 희생을 딛고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세상에서 작지만 새롭게 자연을 바라보고 지구 자원을 바라보고 자연을 모아 쓸모 있게 쓰려는 애씀은 참 중요하다. 오늘 움직임이 아이들 삶의 바탕이 될 터이니...
마침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본준이에게 “오늘 선생님이 너무 크게 혼내서 속상했지?”하고 머리를 만지니 “아뇨, 제가 잘못했고 혼날 일은 혼나야죠.” 그 말에 가슴이 아프다. 뭐 그리 혼날 일이라고... 5학년 내내 큰 소리 안 듣다 들어서 더 마음 졸였을 본준이에게 미안하다. 지금까지 자란 모습만으로도 감동인데 아이가 자라니 선생은 더 큰 욕심을 부린다. 욕심을 내려 놓자. 아이는 선생 욕심으로 자라는 것이 아니다. 아이는 본디 제 기질대로 잘 자라게 되어있는 것을....
첫댓글 크 마치 같이 수업 듣는 아이마냥 동화되어 잘 읽었습니다. 좌충우돌 아이들과 다사다난하시네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