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원합의체가 2013년 12월 18일 통상임금에 대한 시끌벅적한 판결을 하였다. 이날 선고된 판결은 두 건이었다. 하나는 갑을오토텍 주식회사에 근무하였던 관리직 김모씨가 퇴직 이후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이 포함된다고 하면서 미사용 연월차수당과 퇴직금 차액분의 지급을 구한 사건이고 (2012다89399 판결) 다른 하나는 생산직 근로자 295명이 설·추석상여금, 하기휴가비, 김장보너스, 선물비, 생일자지원금, 개인연금지원금, 단체보험료가 통상임금 항목에 속함으로 통상임금에 따라 연동이 연장근로수당, 야간근로수당, 휴일수당, 주휴수당, 연월차수당의 차액분 지급을 구한 것이다. (2012다94643 판결) 결론은 노동자들의 완패였다. 단 한 푼도 가져 갈 수가 없다고 판결한 것이다.
한 푼도 받지 못하게 된 노동자, 엄살피우는 기업그런데 희한하게 언론은 호들갑을 떨면서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항목에 들어가게 되었음으로 임금 상승률이 얼마가 되고 기업하기 어려워 졌다고 난리 법석이다. 더 나아가 노동계 일각에서는 이 판결의 심각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노동계의 판정승 운운하는 경우를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 판결은 그 동안 대법원이 견지하여 왔던 통상임금 항목조차 통상임금이 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 그 오류를 바로잡고자 한다.
사실 통상임금 이론은 노동법 이론 중 매우 어려운 영역에 속했다. 숱한 강의를 해왔지만 노동자들에게 이를 쉽게 설명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뿐만 노동법 전공자들 역시 그다지 자신 있게 이 부분을 말할 수가 없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대법원의 판례 때문이다. 대법원은 1995. 12. 21. 선고 94다26721 전원합의체 판결로 이른바 ‘임금 2분설’을 폐기한 이후 통상임금의 범위를 점차로 확대하여왔다. 임금2분설은 노동자 지위만 가지고 있어도 일을 하던 하지 않던 보장되는 생활보장적 임금과 노동의 대가로 받는 노동임금이 있다는 가정 하에 임금을 구분하여 왔던 방식이다. 그러나 위 전원합의체 판결로 그러한 구분은 있을 수 없다고 하면서 쟁의행위 시 모든 임금 항목에 대해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하여 가족수당, 주택수당 등 대표적으로 생활보장적 임금으로 인정했던 항목에 대해서도 지급하지 않아야 한다고 판결했다.
양승태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법정에서 열린 통상임금 관련 전원합의체 선고에 참석하고 있다.ⓒ뉴시스
자, 이렇게 판결해 버리고 나니 대법원은 그 동안 통상임금으로 보지 않았던 것을 통상임금으로 볼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나 통상임금의 정기성, 일률성, 고정성은 그리 쉽게 판단될 문제가 아니었다. 근속수당이 근무 성적에 좌우된다고 하면서 통상임금으로 보지 않았다가 나중에는 통상임금으로 판결해 버리는 난맥상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 1년에 한번 또는 2번 주는 체력단련비, 하계휴가비, 귀향비, 선물비, 김장보너스는 물론이고, 회사가 매달 지원해 주는 개인연금보험료, 단체보험료, 미혼자들에게도 주는 가족수당, 집배원들에게 주었던 효도제례비, 연말특별소통장려금, 출퇴근보조여비 등도 모두 통상임금으로 보았다.
그런데 정기 상여금은 통상임금으로 보지 않다가 위 임금항목들과 지급조건이 다르지 않음에도 이를 통상임금으로 보지 않을 근거가 미약해지자 드디어 2012. 3. 29. 이른바 금아리무진 판결 사건에서 일정한 조건하에 이를 통상임금으로 인정해 버리는 파란이 일어난 것이다. 이로 인해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성은 노동계의 초미의 관심사가 되어 버렸던 것이고 박근혜 조차 여기에 가세하게 되어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오게 된 것이다.
대법원이 이번 판결에서 아주 명확하게 정리한 것이 하나 있다. 퇴직자들에게도 일할 계산하여 주지 않으면 통상임금이 아예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재직자에게만 주는 모든 임금 항목은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판결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게 단체협약 등에 일률적․정기적으로 지급되는 것으로 정해져 있다는 것만을 판단하여 통상임금이라고 판결한 ‘기존의 모든 판례’를 변경해 버렸다. 이것은 매우 획기적인 사태다. 통상임금 이론의 커다란 줄기를 변경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러한 법리에 대법관 전원이 찬성했다. 이는 노동자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는 매우 퇴보한 판결이다.
예를 들어 하계휴가비나 체력단련비를 매년 7월에 주는 사업장이 있다. 그런데 어떤 노동자가 6월에 퇴직을 하였다. 이 퇴직하는 노동자에게 다음 달에 지급될 하계휴가비나 체력단련비를 일할 계산하여 주지 않고 한 푼도 주지 않으면 위 임금항목은 종전 판례에서는 통상임금이었으나 지금은 통상임금이 아니게 된다는 것이다. 정기 상여금도 마찬가지다 짝수 달에 정기 상여금을 주는 사업장에서 홀수 달에 퇴직하는 노동자에게 다음 달에 지급될 상여금을 일할 계산하여 주지 않으면 통상임금이 아니게 된다는 것이다. 정기 상여금이 통상임금으로 포함될 수가 있게 한 것은 진일보한 것처럼 보이나 실상을 따져 놓고 보면 퇴직자에게 모든 임금을 일할계산해 주는 착한 사업장 또는 그런 단체협약이 있는 사업장에서만 통상임금이 늘어날 뿐이고, 그 이외 사업장은 통상임금이 오히려 대폭 축소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만든 것이다.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하계휴가비 등을 지급할 시기 이전에 퇴직한 노동자에게 그 금액을 일할 계산을 해 주었다는 사업장을 들어본 적이 없다. 이 사건에서도 생산직 노동자들이 청구한 모든 임금항목은 (설․추석상여금, 하기휴가비, 김장보너스, 선물비, 생일자지원금, 개인연금지원금, 단체보험료) 퇴직자들에게 일할 계산하여 주지 않았다. 결국 이 사건 생산직 노동자들은 종전 판례에 따르면 통상임금으로 인정되어야 할 항목이 이제는 통상임금이 아니게 되어 단 한 푼도 더 가져갈 수가 없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정기 상여금 역시 퇴직자에게 일할 계산하여 주는 사업장 보다는 상여금 지급당시 재직자에게만 지급하는 사업장이 훨씬 많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다. 결국 정기 상여금이 통상임금이 되는 사업장은 생각보다 많지 않을 것인데 무슨 저런 호들갑을 떨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더구나 상여금을 퇴직자에게 일할 계산해 주는 사업장이 있다하더라도 그것을 통상임금 항목에 포함시켜 차액분을 지급청구하기 위해서는 험난한 산을 하나 넘으라면서 대법원이 던져 준 것이 있다. “신의칙” 이라는 어마어마한 장벽이다.
이 사건의 관리직 김모씨는 금속노동조합의 조합원이 아니다. 이 사업장에는 생산직 노동자들만 전국금속노동조합에 가입해 있고 관리직은 흔히 보는 대로 비조합원이었다. 김모씨는 퇴직 직전 1년간 매달 정기상여금을 기본급에 포함시켜 지급받았고, 사용자는 이 1년 기간 동안 퇴직한 노동자들에게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여 계산한 연월차 수당과 퇴직금을 지급하였고, 나아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여 계산한 고용유지지원금을 관계기관에 신청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대법원은 조합원도 아닌 이 사건에서 생산직 노동조합의 단체협약을 들먹이며 신의칙은 운운하였던 것이다. 그런 이유가 있다. 생산직 노동자들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이라 하면서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기에 이후 벌어진 그들의 소송 자체를 아예 이 사건에서 봉쇄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 유탄을 비조합원인 김모씨가 엉뚱하게 맞아버린 것이다.
금속노조는 통상임금에 대한 확정 판결을 하루 앞둔 17일 오전 11시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이 통상임금 범위 확대 판결을 촉구했다.ⓒ전국금속노조 제공
대법원 역할이 경제적 우려 최소화인가여하튼 이 사건에서 대법원의 다수의견은 황당한 논리를 전개한다. 요점은 이렇다. “단체협약으로 통상임금의 범위를 정한 것은 근로기준법의 강행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원칙적으로 무효이어서 퇴직자에게도 일할 계산되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이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야 하는 것이 맞지만 단체협약에 통상임금의 범위에서 상여금을 배제하는 규정을 두고 있는 이상 노사가 합의한 임금 수준을 훨씬 초과하는
예상 외의 이익을 추구하고 그로 말미암아 사용자에게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재정적 부담을 지워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면 정의와 형평의 관념에 비추어 신의에 현저히 반하고 도저히 용인될 수 없음이 분명하여 근로자측의 추가 법정 수당 청구는 신의칙에 위배되어 받아들일 수 없다.”
이게 자기들이 말하는 신성한 대법원에서 말할 소리인가. 근로기준법의 강행규정을 위반하였으면 무효인 것이지, 되지도 않는 자본가 관점의 신의칙을 내세워 추가청구를 할 수가 없다고!! 필자가 이 판결문을 읽고 느낀 충동이 있다. 이런 대법원에 '도시락 폭탄'을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의 발바닥이나 빨고, 노동자의 권익에 대해 적대적으로 대처하는 저 대법원은 존재할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대법관 3인의 반대의견도 나와 같은 심정이었는지 매우 격앙된 어조로 다수의견을 비난했다. “비조합원이 이의를 하지 아니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신의칙 위반의 근거로 삼는 것은 일반 민사법 영역에서도 유례를 찾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부당하게 신의칙의 적용범위를 확장하는 것이다. 사용자인 피고는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여 고용유지 지원금을 신청하여도 무방하고, 똑같은 상황에서 근로자인 원고가 그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여 산정한 초과수당을 청구하면 신의칙 위반이 될 수 있다는, 이 모순된 이중 잣대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대법원은 최고의 법해석 기관으로서 통상임금에 관한 법리를 법에 따라 선언해야 한다. 그에 따른 경제적 우려를 최소화는 것은 정부와 기업의 역할이다. 대법원은 통상임금의 법원칙을 바로 세우고, 정부는 대법원 판결의 결론이 연착륙할 수 있도록 다양한 노동정책을 펼치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대법원이 앞으로 시행될 노동정책까지지 고려하여 현행 법률의 해석을 거기에 맞추려 한다면, 이는 법 해석의 왜곡이다.”다시 말해 대법관 3인은 이 사건 다수의견의 본질을 '정치행위'로 본 것이다. 아주 정확한 지적이었다. 이러한 반대의견조차 없었다면 필자의 글은 욕으로 점철되었을지도 모른다. 통상임금이라는 노동법의 어려운 단어가 전 국민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은 박근혜가 5월에 GM 회장을 만나 “통상임금을 해결할 테니 투자해 달라” 고 한 뒤였다. 대법원은 이 문제는 훌륭하게 해결해 주었다. 기존에 통상임금으로 인정되었던 것조차 조건을 엄격하게 하여 통상임금이 되기 어렵도록 하였고, 통상임금이 되더라도 “신의칙”이라는 거대한 산을 넘어야 하기 때문에 기업의 노동자 임금 착취를 통한 존립은 늘 안녕하게 만들었다. 니들끼리 잘 안녕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