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주사는 우리가 보던 사찰 양식과는 다른 점이 많은 사찰이었지요.
그 이유는 순례기를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그냥 가르쳐 드릴까요? 사진만 보시게요. ^^
정조 대왕이 불탄 절을 다시 세우며 원찰로 삼아서 그렇습니다.
정조대왕이라면 사도세자의 아드님 되시지요.
아비를 그리는 정조의 효심이 담겨진 사찰이기도 합니다.
이번 사진은 유난히 고운 모습들이 눈에 띕니다.
때는 2014년 5월 넷째주 일요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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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심과 효심이 다르지 않아, 수원 용주사 /제41차 인드라망 사찰순례기① 용주사 편
제41차 인드라망 사찰순례는 같은 공지가 두 달에 걸쳐 나갔지요.
지난달에 가기로 했던 수원의 용주사와 봉녕사 순례가 세월호 참사로 인해 한 달 연기 됐었습니다.
하여 조계사, 길상사, 봉은사 순례 이후 두 달 만인 5월 넷째 주 일요일, 인드라망 순례단은 수원으로 떠났습니다.
-오뚜기님
가정의 달을 맞아 모두 행사가 많으셨는지, 이번 달은 순례객이 단촐했습니다.
나름의 장점을 살려 시종 화기애애하게 진행된 41차 순례길,
지금부터 순례단이 움직인 동선을 따라 그대로 중계해 보겠습니다. ^^*
지현향 총무님의 불참으로 이번 달은 오뚜기 총무님이 버스법당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았습니다.
아침예불을 올리고 모처럼 차례대로 본인 소개 시간을 가졌었지요.
아무래도 처음 오시는 분들이 조명을 받기 마련이지만,
이 분은 아주 독특하게 본인 소개를 하셨습니다.
-보현행(인디안날개)님
나르샤님의 소개로 꼭 가보고 싶었던 용주사와 봉녕사를 함께 가게 됐다는 보현행(인디안날개)님 이신데요,
인사 끝에 서정주님의 '석굴암 관세음의 노래'를 낭송해 주셨지요.
짧지 않은 시인데 멋진 가락에 실어 낭랑한 음성으로 감동적으로 낭송해
우리 님들께 확실히 본인을 각인시키셨습니다. 많은 박수도 받으셨고요. ^^*
이번 순례는 대구에서 수원까지의 긴 이동거리라 가는 길에는 '금강경' 전편을 함께 합송했습니다.
7시에 대구를 출발한 순례단은 10시 40분 께에 용주사에 도착했습니다.
수도권 님들이 미리 와 계시네요.
정행심님, 날마다님, 내삶의선물님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용주사 진입로를 따라 룰루랄라, 부처님 뵈러 갑니다.
조계종 제2교구본사이며 효찰대본산으로 불리는 용주사(龍珠寺)는 본래 신라 문성왕 16년(854년)에 창건된 갈양사로써 청정하고 이름 높은 도량이었으나 병자호란 때 소실된후 폐사되었다가, 조선시대 제22대 임금인 정조(正祖)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화산으로 옮기면서 절을 다시 일으켜 원찰로 삼았습니다.
불교가 정치적 사회적으로 억압을 당하고 있던 당시에 국가적 관심을 기울여 세웠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낙성식날 저녁에 정조가 꿈을 꾸었는데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했다 하여 절 이름을 용주사(龍珠寺)라 불렀고 그리하여 용주사는 효심의 본찰로서 불심과 효심이 한데 어우러지게 되었습니다.
-용주사 홈페이지에서 옮김
진입로 양쪽으로 돌기둥이 서 있지요?
석가모니 팔상성도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노란 조끼를 입은 우리 님들이 삼삼오오 홍살문을 지나 용주사로 들어 갑니다.
사찰순례를 다니다 보면 홍살문이 서 있는 곳을 어쩌다 마주치는데요,
홍살문은 왕실의 능, 원, 묘, 궁전 관아 등의 입구에 붉은 칠을 한 두 개의 기둥을 세우고, 기둥을 연결한 보에 붉은 살을 박은 형태로 세워 경의를 표하는 곳이라는 의미를 지닌 문이지요.
용주사에 홍살문이 세워진 연유는 사도세자와 정조대왕의 위패를 모셨기 때문입니다.
진입로 좌우엔 이처럼 아름다운 정원이 있습니다.
정원 속에는 효행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는데, 나오는 길에 둘러보기로 합니다.
-용주사 삼문
이 곳은 홍살문도 특이하지만 삼문이란 독특한 문이 있습니다.
문이 가운데와 좌우 하나씩, 셋이 확실하군요. ^^*
언뜻 보면 대가집 대문과 그에 딸린 행랑채처럼 보입니다.
역시, 사도세자의 능을 지키는 재궁(齋宮)으로서의 역할 탓에 이런 건축양식이 지어진 것이라 설명되어 있습니다.
아래는 삼문 앞을 지키는 해태상.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36호인 천보루와 세존사리탑
아무래도 우리가 평소 다니던 사찰의 구조와는 가람 배치며 이름들이 생소합니다.
삼문과 천보루 사이에도 아담하고 예쁜 탑이 한 기 서 있습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 2과가 모셔진 사리탑이랍니다.
누각의 기둥이 대개는 나무인데 이 곳 천보루는 돌기둥입니다.
이 역시도 궁궐 건축양식을 따랐다고 하는군요.
천보루는 사찰 창건 당시에 지어진 누각입니다.
-천보루 아래에서 바라본 대웅보전 영역
-대웅보전에서 바라본 천보루
-용주사 대웅보전, 정면 3칸 측면 3칸
대웅보전과 천보루에서는 사시예불이 한창 올려지고 있습니다.
이 곳에서 주어진 시간이 한 시간이라 송구스럽지만 사시예불은 버스법당에서 올린 것으로 대신하고,
전각마다 돌며 삼배씩 올리며, 저는 사진을 담기로 합니다.
대웅보전의 현판은 영조대왕의 친필입니다.
-용주사 대웅보전 삼세불
삼세불은 가운데 석가모니불, 좌 약사여래불, 우 아미타 부처님이시며,
전국에서 발탁된 각각 다른 불모에 의해 조성된 불상입니다.
그런가 하면, 삼세여래 후불탱화는 조선 중기 최고의 화가였던 단원 김홍도의 작품으로 설명돼 있습니다.
-측면 3칸의 대웅전 옆 모습
-오른쪽 법고각, 왼쪽 노주석, 가운데 부모은중경탑
이 곳은 호성전과 부모은중경탑.
호성전 안에는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 정조대왕과 효의왕후의 위패를 모셨습니다.
지금은 세월호 참사 희생영가의 분향소가 차려져 있어
향을 사루며 희생영가의 극락왕생을 발원했습니다.
천장에 달린 하얀등 꼬리표 중 행모***라는 이름표가 눈에 띄어 더욱 가슴이 아팠습니다.
효행대본산이라 불리는 이유는 곳곳에서 발견되지만,
용주사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부모은중경탑이 호성전 앞에 서 있습니다.
부모은중경 경문이 탑신에 새겨져 있고,
그 아래엔 부모은중경 내용을 조각으로 새겨놨습니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애통한 삶을 불심으로 녹이는 정조대왕의 맘이 고스란히 스며있는 탑입니다.
호성전 곁에는 지장전과 관음전이 있습니다.
관음전으로 가 볼까요?
하얀 영가등에 숙연했던 맘이 화려한 연꽃등을 보니 생기가 돕니다.
후불 탱화엔 우리 눈에도 이젠 익숙한 고려불화풍의 관세음이 모셔져 있군요.
-전강대종사 사리탑
지장전 뒷편으로 돌아가자 전강대선사의 사리탑입니다.
용주사를 오고싶었던 이유 중의 하나가 스님의 행적이 궁금해서였습니다.
박물관에 스님 관련 자료들이 더러 있었지만, 사진촬영이 금지돼 있어 눈으로만 뵈었습니다.
전강대종사(1898~1975)는 현대 한국의 대표적 고승이자 용주사의 정신적 지주이기도 합니다.
스님의 속성은 정(鄭)씨이며 전남 곡성 출신으로 부친은 해룡(海龍), 모친은 황계수(黃桂秀)로 1914년 해인사에서 인공화상(印空和尙)을 득도사(得度師)로, 제산화상(霽山和尙)을 은사로, 응해화상(應海和尙)을 계사(戒師)로 출가하였으며 영신(永信)이라는 법명을 받았습니다. 1918년 해인사 강원에서 대교과(大敎科)를 수료한 뒤, 도반의 죽음을 보고 무상함을 느껴 김천 직지사(直指寺) 천불선원(千佛禪院)으로 들어가 제산화상의 가르침을 받으며 불철주야 정진하고, 이후 예산 보덕사(報德寺), 정혜사(定慧寺) 등에서도 수행에 전념하였습니다.
이 기간 동안의 수행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여 덩어리 같은 피가 코와 입으로 흘러 나오거나 머리가 터져 삭발조차 할 수 없었다고 하며, 특히 100일 동안 자지않고 수행한 일화는 유명합니다. 스님은 23세가 되던 1921년 드디어 크게 깨달은 후 오도송(悟道頌)을 남겼으며,
이후 당대의 선백들을 찾아가 인가(印可)를 받았는데, 1923년 금강산 지장암의 한암(漢巖)스님을 찾아가자 한암스님이 묻기를 "육조스님께서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 일렀지만, 나는 본래무일불이라 하여도 인가를 못하겠으니 그대는 어떻게 하여 인가를 받겠는가?" 하였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손뼉을 세 번 치고 물러나왔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계속해서 용성(龍城)·혜월(慧月)스님으로부터 인가를 받은 스님은 만공(滿空)스님으로부터 전법게를 받게 됩니다.
-용주사 홈페이지에서 옮김
스님께선 용화선원 송담 스님의 스승이시지요.
베일 것만 같은 날선 선기를 짐작하고 찾은 사리탑 주변은 온통 꽃밭이었습니다.
푸른 솔숲이 병풍처럼 둘러섰고, 그 앞은 예쁜 꽃이 피어 벌, 나비, 사람들까지 모여들고 있습니다.
스님 가사가 일으키는 시원한 바람이 느껴지는 듯한 곳에서, 우리는 편히 쉬었다 일어 섭니다.
분홍 연꽃등이 예쁜 이 곳은 시방칠등각(十方七燈閣) 이라는 독특한 이름을 달았습니다.
산신, 칠성, 독성을 한 자리에 모신 전각이지요.
칠등은 물론 칠성을 뜻합니다.
시방은 동·서·남·북, 동북·동남·서남·서북, 그리고 상·하의 열 곳을 지칭하며
불교에서는 무수한 부처님의 세계를 의미하지요.
외에도 나유타료, 만수리실 등 독특한 이름을 단 곳이 많은데요, 스님들의 승당, 선방으로 쓰입니다.
-국보 120호 용주사 범종과 범종각
고려초기의 범종으로 한 눈에도 비천상이 아름답지요?
용뉴엔 용의 발톱이 날카롭고, 돌기는 또 얼마나 도도록 한지요.
이 곳의 범종은 평소엔 치지 않습니다.
따로 불음전이 있어 범종이 하나 더 있는 거지요.
-정면으로 보이는 법고각
아, 천불전이 남아 있었네요.
규모가 좀 되는 사찰에는 천불을 모시는 곳이 많지요.
그 속뜻은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법화경 사상을 담고 있다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참 희망적인 소식입니다.
이렇게 해서 전각 참배는 마무리 됩니다.
마침 예불을 마치고 나오시는 스님을 모시고, 절 마당에 남아 있는 님들,
이미 박물관 쪽으로 내려가는 님들을 모아 기념사진을 담았습니다.
그래도 빠진 님들이 제법 되지요?
▲▼ 용주사 대웅보전 아래에서, 사진: 범심님
지금부터는 훨씬 여유가 있지만, 시계를 보니 시간이 빠듯하군요.
삼삼오오 도량 구경을 하는 님들을 눈에 띄는 대로 담아 봅니다.
마법사님 머리에 하얀 것이 뭔가 했었는데, 이 사진을 보니 수국 꽃잎을 이고 다니신 거였네요? ^^*
바람이 불자 눈송이처럼 파르르~~ 날리는 모습이 참 예뻤었는데
날리던 꽃은 간 곳 없고 사람꽃만 담겼습니다.
교구본사라면 남성적인 이미지가 강한데도 불구하고, 이 곳은 아기자기 예쁘기까지 했습니다.
진입로 주변부터 해서 도량 곳곳에 꽃들을 심고 가꿔 참배객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있습니다.
어? 만수리실 현판이 여기에서 나오는군요.
아래의 건물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만수리실은 건너편에 있고 선방이거든요.
우리님들이 앉은 곳은 요사인 나유타료입니다.
다시 천보루 아래를 지나 왔던 길을 되밟아 갑니다.
이렇게 보니 5층석탑이 잘 보이는군요.
부처님 진신사리 2과를 모신 탑이라고 설명을 드렸었지요?
그 발치께에 토끼풀꽃이 소복이 피어 있습니다.
숲그늘이 참 짙지요?
모델로 나선 꽃지기님과 천수향님,
언제봐도 참 예쁜 짝꿍이죠.
삼문 밖에는 용주사 효행박물관이 있습니다.
그 주변이 또 하늘정원 같았지요.
꽃피고, 새 노래하고, 벌 나비 날아다녔습니다.
우리도 천인인양 좀 노닐었지요. ^^*
박물관에는 정조대왕이 기증한 부모은중경, 대왕의 친필, 김홍도의 사곡병풍,
전강 스님 관련 자료 등이 전시돼 있었습니다.
목각 동자승이 이채로웠는데, 예전에 지장전에 봉안돼 있던 것이랍니다.
지는 꽃, 피는 꽃이 한 자리로군요.
아래 사자인지 해태인지는 두 손 들고 벌 서는 것은 아닐테고,
받들어야 할 무엇을 놓친 걸까요?
깜놀하는 표정이 귀엽습니다. ^^*
끝에서야 기와불사 하는 곳을 발견하고는
정성 한 장씩을 올립니다.
그러고 보니 용주사는 불사 벌여놓은 곳이 없어 도량이 더욱 잘 장엄된듯 보였나 봅니다.
효찰대본산으로서의 용주사와 전강대종사의 기틀을 이어받아 오늘도 치열히 정진하고 있는
참선도량으로서의 용주사 순례는 이렇게 또 마무리 됩니다.
늘 짧게만 느껴지는 참배 시간이 아쉽지만, 그러기에 다시 올 여지도 남게 되는 거겠지요.
그럼 저는 봉녕사 순례기로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제41차 인드라망 사찰순례기① 용주사 편
늦은 출석이네요~
출석부 올려주신
연보리님 감사합니다 ~
맛깔스런 순례 출석부
여전히 보기 좋으네요
중구 근대골목 3.1절 길 걷고 왔네요
편안한 저녁시간 되이소예 ~♡♡♡
여유로움 좋아요
굿밤되셔요 상은님
아, 청라언덕 만세골목 쪽인가요.
대구 중구는 볼거리 체험거리가 많아요~~
늦게 오셨군요..
마무리 잘 하세요..
맛저하셨나요
작은넘한테갔다오는길입니다
집이 추워서 식물들 걱정된다고 울집으로
이사시켰습니다~
조무래기들 내가잘돌볼수있을지요~ㅎ
아들이 화초를 정이 많은가봅니다
겨울에도 푸릇푸릇하네요.
좋아요~~^^
차고 넘 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