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국민학교 4학년일때 어머니 따라 성당에 자주 갔었습니다.
그 무렵에는 미국 신부님이 아니고 한국 신부님이신 구 신부님이 본당 신부님이셨습니다.
구 신부님은 어린이들을 좋아하여 주일에는 어린이들에게
"학교가 끝나면 성당이 가까운 곳에 사는 아이들은 성당에 와서 나에게 교리를 배워라"
고 하십니다.
나는 수동에 살다가 좀 먼 우암동으로 이사를 갔는데
신부님의 이야기 들으려고 학교 끝나면 거의매일 성당으로 달려갑니다.
그러면 구 신부님은 우리를 너무 사랑하시어 우리에게 먹을 것도 주시고
교리도 가르쳐 주시고 노래를 가르쳐 주시는데
그 노래가 세계 명곡인 이딸리아의
싼타루치아
오 솔레미오
등을 가르쳐 주시는데
우리들은 학교에서 `학교종이 땡땡 땡` 같은 동요나 배우는데
혀가 돌아가지도 않는 세계 명곡을 가르치다니 !
그래도 갈 적마다 가르쳐 주시는 바람에 점점 익숙해 지고
또한 미국 민요인
켄터끼 옛집
오 수산나
올드블랙 죠
옛날의 금잔디동산도 가르쳐 주십니다.
나는 그때이 기억을 더듬어 작은 형을 따라 청주시 북문로 3가에 있는 성당으로 갑니다.
성당은 양철집인데 너무 작아서 아주 납작해 보입니다.
옆에는 붉은 벽돌집인 사제관이 2층으로 지어져 있고
마당에는 버드나무가 3그루나 있고, 느티나무도 2그루가 있습니다.우리가 붉은벽돌집 사무실로 들어가자
사무장이 이층으로 올라가 노 신부님에게 우리가 왔다고 알립니다.
그러자 노 신부님은
`천신이 보하매 제2위 강생
오주의 겸덕을 본 받읍시다
아베 아베 아베마리아
아베 아베 아베마리아`
성가를 콧노래로 부르면서 층계를 내려 오시는데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미국인들은 키가 큰데, 노 신부님은 키가 너무 작아 내 키만하고 몸집이 얼마나 뚱뚱한지 고무 풍선같습니다.
노 신부님이 우리를 보시더니 나 보고
"안녕하세요? 저는 노요셉 본당 신부입니다"
라고 하시며 손을 내 밉니다
나도 신부님과 악수하면서
"저는 정세근 임마누엘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형에게서 이야기 다 들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잘 될 것입니다."
라고 하시는데 신부님의 두 눈이 나의 속 까지 들여다 보시는 것 같습니다.
이때 이층에서 보좌 신부님이신 한국인 지학순 신부님이 내려 오십니다.
"우리 본당의 보좌 신부인 지 다니엘신부님 이십니다"
라고 노신부님이 소개하자 지학순 신부님이 고개를 끄덕이시고 밖으로 나가십니다.
노신부님과 지신부님은 북한 원산에서 사목을 하시던 분들인데
6.25 전쟁으로 남하하신 분들입니다.
노 신부님은 나를 보고
"나를 따라오시오"
라고 하시며 밖으로 나가 성당 뒷동네로 들어가십니다.
그곳에는 남편을 잃은 부인이 하숙을 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남자 중학생 3명을 노신부님이 돌보고 있는데
나도 함께 여기에 있으라고 하십니다.
(계속)
첫댓글 형광님 어린시절이 같은 충북지역이라 저의 어린 시절과
공감되는 부분이 많이 있네요.
저 위에 언급되는 노래들
저는 제위의 누나가 국민학교 시절
도에 뽑혀나갈 정도로 잘해서, 흥얼거리며 많이듣고 따라 불렀지요.
지학순주교님과도 교류가 있으셨네요.
어서오세요 소라와돌게님 감사합니다.
충북이라니 반가워요.
예 지학순 신부님 잘 알아요
명동성당이 한국전쟁때 불타지 않은 이유는
북한군이 와서 성모마리아상에 총을 쐈는데
마리아님 총맞은 자리에서 피가 났대요.
그후부터 성당을 피했다고 했어요.
지금은 마리아상이 그자리에 없다고 하던데
예전에는 성당입구에 있었습니다.
어서오세요ㅗ 소소님 감사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지하성당의 성모님상으로 알고 있는데요
명동성당 올라가는 곳에는 성모님상이 항상 있어요
제가 천주교 신자가 아니지만 종교를 존중합니다.
성직자분들을 존경합니다.
좋으신 신부님을 만나셨네요.
어서오세요 참프로님 감사합니다.
신앙인이 아니어도 참프로 님의 모습은
신앙인 모습 못지 않습니다.
언제난 좋은 모습으로 울곁에 머물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