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여정

[나의이야기]

여행과 여정의 차이

부제: 아라비아 민둥산

두 달전부터

온통 백일홍,능소화, 수국(Hydrangeas)이 만발하는

습하고 후덥지근한 찜통 조지아를 벗어나

대륙의 북서부의 강과 산과 계곡과 해안선들을 따라 돌았다.

루이지아나 뉴올린즈에서 미시시피, 알라바마를 관통하는

하이웨이 65를 타고 아틀란타까지  6시간  정도 걸린다.

간 밤 자정에야 다시 아틀란타 교외의 집으로 돌아 오니

드라이브 웨이에는 도토리가 온통 뒤덮고 있고

한가위 보름달이 휘어청 키 높은 도토리 나무들 사이에 걸려 있다.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수많은 여행(Trip)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 여행이 길고 험할 수록 막 돌아온 집에서 단발마처럼 외치는 소리는

"역시 집이 최고다! Home Sweet Home!"이다.

여행(Trip)이 떠나 온 곳으로 되돌아 가는 의미가 있다면,

여정(Journey)은 되돌아 가는 여행보다 더 폭이 넓고 함축적이어서

흔히들 인생을 긴 항해 같은 여정(Journey)에 비유하기도 한다.

당연히 우리 네 인생 여정은 결코 되돌아 가는 길을 제공하지 않는다.

해서 섹스피어는 한술 더 떠서

인생은 돌격 앞으로!만 있다고,

“It’s not a journey. It’s an assault!”라고 외친다.

And No Traveler Returns!!!

해가 중천에 떨 때까지 늦잠을 자고 일어나

드라브 웨이와 앞 뒤 뜰 잔디를 깍고 나니 하루 해가 진다.

저녁 식사 후 산보 중에 몇 분 거리의 수도원 오솔길에는

야생 포도(Muscadine) 향내가 진동하고,

밤 나무들은 이미 알밤들이 다 떨어진 것 같고,

여기 저기 갈대 꽃들이 요염한 치장을 시작하는 모습이다.

“긴 인생 여정중 이번 여행에서는 무엇을 얻었는가?”라고

누군가가  한마디로 말해 보라고 한다면

여행의 축적되는 가치를 따져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촛불을 든 것처럼 조심스레 세상을 휘이 돌아 보면서

이를 자신의 무의식의 세계에 반조해 보는 것’이라고 말해 본다.

시간의 제약을 받는 여행의 경험들이 무한한 무의식의 대해 속으로

축적되고 재해석되고 반조되는 곳,

무의식(Unconsciousness)! -  What a fascinating idea.

Actually, it includes just everything about us.

모든 의식을 포함하는 무의식의 세계!!!

집에서 10여분거리의  아라비아 민둥산에는

온통 노란 색이 뒤덮고 있다.

9월의 마지막 날 아침에 본 아라비아  바위산은 

두겹 데이지처럼 보이는 노란꽃이   산을  온통 점령한다.

그대는 노란 색을 좋아하시는가?

빨강(정열과 사랑과 욕망) 의 봄날들이 지나고

청색(믿음과 신임과 지혜)과 더불어  온 무더운 여름이 지나면

노랑(행복과 환희와 지식)의 강력한 원색이 주는 가을이 온다.

해서 강력한 삼원색들은

어떤 심오한  이끌림과 매력적인 이유가 있나 보다…

봄이 오는 아라비아 민둥산에는 빨간 융단으로 깔려진다.

바로 희귀종 다이어 모르빠(엘프 알파인)란 꽃의 조화 때문이다.

겨우내 붉은 갑옷으로 단단히 중무장을 하고 있던

봉우리가 터져나와 순백의 작은 별꽂이 되는 시기이다.

하지만 더위가 오면 견디지 못하고 빼빼말라 비틀어져

육안으로 볼 수도 없을 정도로 숨어 사라져버린다.

긴 겨울 추위와 자외선에 맞서

빨간 핏덩이 줄기로 중무장하고 있다가

사월이 되면

드디어  순백의  꽃으로 전이되는 모습이 장관이다.

이 꽃은 멸종 위기꽃으로

부활절에   흰꽃으로 만개한다.

이 앙징스럽고도 신비한 꽃은 길고 무더운 여름날에는

곧 육안으로 볼 수 없을만큼 숨어버린다.

무더운 여름을 싫어하는 꽃처럼 보인다.

해서 나는 이 꽃을 ‘사순과 부활의 꽃”이라고 부른다.

빨간 피빛에서 순백의 하얀 작은 꽃!

The Flower of Rent and Easter!

이제 입추가 지나고 9월 마지막 날 아침 아라비아 민둥산엔

보통 빈대 씨앗처럼 보여서 ‘빈대씨(Tickseed)’로 속칭되는

데이지과에 속하는 ‘Coreopsis’란 노란꽃이

아라비아 산을 들어서자 주위를 온통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마치 사열 예식을 치뤄주는 착각을 일으킨다.

싸하게 진한 향기과 함께….

벌들과 나비들은 꿀을  새들은 씨를 좋아하는 인기높은

이른 여름부터 시작한 이 꽃이 이른 가을에 무성하게  만개를 한다.

여름이 가는 소식이 눈 부신 노란색으로

긴 여름과의 이별을 장식하는 어떤 차분함이 있다.

따지고 보면

지금 이 순간이 그저 찰라의 한 순간이든

영겁의 한 일부이든 해석하기 나름이고

마음먹기 나름이고 기분나기 나름인 데…

우린 그저 아직 여생이 있기에 충분한 것이고

때때로 오늘같은 날에는

삶이 이걸로 충분하다는 것을 확신하는 날 같아 너무 좋다.

“축하해!

난 네가 나를 단숨에 알아줄 것 같아서

그래서 얼마나 행복한 지 몰라!

그걸로 가슴이 터이고 메아리가 되어

반향되어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겠지!

나와 당신은

일순 이는 바람의 여인이 낳은 자식들이고,

무의식의 광대한 바다의 거품과  바람이 만나 잉태된

같은 형제 자매가 아닌가!

다만 기억과 망각의 조화로 애써 모른 체 하는 게지!

나이가 들면서

두뇌 세포들이 하나둘 비늘처럼 떨어져 죽어가면서

가장 최근의 일부터 잊어버리기 시작하는

조기 치매 현상이 나타난다.

그와 더불어 찾아오는 것이 심오한 망각에 대한 두려움이다.

일명 석양증, Sun-Downing Syndrome!

죽음이란 예측할 수 도 이해도 불가한 불가지한 세계에 대한

아직은 괜찮다면서도 아련한  두려움이 뒷목 깊은 곳에서

두근 두근 소리가 커진다.

두려움과 허무감 뒤에 텅빈(Emptiness) 북소리가 크레센도 된다.

종교적 신심과 의지란 것도 언젠가는 모두 사라지고 잊혀질 것같아

사후의 형벌이나 포상은 의미가 없다

다만 나의 근원의 부재가 두려울 뿐…

이럴 때

가끔 길을 나서 산을 오르면서 만나는

꽃들과 나무와 호수와 심지어 이 민둥바위 산에 앉아

누군가가 쌓아올린  둥그런 자갈 울타리안에 앉는다.

그냥 털썩 주저 앉아 주변을 살펴보면

그저 아무 생각없이 행복해 진다.

있는그대로  참 편안하다….

이런 곳에서 가만히 눈을 감고 큰 숨을 내쉬어 보면

그저 아무 소망도 바램도 아쉬움도 없어지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

아무런 아우성도 질문도 아쉬움도 호소하지 않는

외롭지도 허전하지도 않고

주위의 모든 것이 참으로 너무나 고즈넉하고

모든 것이 제 자리에서 당당하다

이 아라비아 민둥산은 인근의 파놀라와 스톤 마운틴처럼

땅속의 용암이 지구 표면 가까이 올라 왔다가 식어 버린 후에

오랜 세월 겉 표면의 땅들이 침식되어 딻아지고 난 후에 노출된

바위산(Monadnocks)으로 독일어로 Inselberg (섬 산, Island mountain) 로

민둥 바위사이의  그 작은 틈새로 노란 꽃들이 피기까지

4억년 (400 Million Years)이란 세월이 걸렸다고 한다.

그래서 어느 계절이든

봄 날의 빨간 꽃이든 가을 날의 싸한 노란 꽃들이든

모두가 지극히 적당한 것 같고,

편안히 민둥산에 앉아 내려다 보이는

호수도 그저 고즈넉하고 그저 아름답기만 하다…

살아가는 동안에 시간의 조화와 계절의 변화와 춥고 더움에

어리둥절 하다가도 이 작은 한순간에 느끼는

이 작은 희열과 이 작은 아름다움에 대한 체험만으로도

이 세상은 참으로 살만한 곳이기에

그저 그저  감사하다.

그래서

2023년 긴 여행에서 돌아 와서 다시 보는

지금 쯤은 붉은 꽃들이 모두 시들어 버려

황량하리라 짐작했던 민둥 바위산엔

야생 데이지가 왕성한 노랑 단장을 하고 있다.

해서 이 가을 오늘 아침은

당연히

It’s

Glorious!

Grateful!!

And also, Gleeful!!!

긴 여행에 동참해 주신 여러 회원님께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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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속의산책]

글을 읽으면서 사진을 보면서
군데군데 보이는 노란 꽃들들의 무리를 보며
찰나의 한순간, 영겁의 일부....
이 표현과 너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드네요

좋은 글과 사진 고맙습니다

[나의이야기]

감사합니다.
추석 연휴 좋은 시간되시길...
건강하시고요

[옥이이모]

‘촛불을 든 것처럼 조심스레 세상을 휘이 돌아 보면서

이를 자신의 무의식의 세계에 반조해 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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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참 의미를 되새김합니다.

[나의이야기]

여행의 의미가 시원하게 딱 떨어지는 게 아니군요^^
사람마다 또 색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지요?

댓글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