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지 180 :(마지막회)한고조 列傳 32, 악마의 화신 여 태후
한편, 惠帝(혜제)가 새벽에 사냥 을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와 보니, 如意(여의)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惠帝는 깜짝 놀라 시종에게, "趙王(조왕)이 보이지 않으니 웬일이냐? 趙王은 어디 가셨느냐?" "趙王께서는 아무 말씀도 없이 어떤 사람과 함께 나가셨사옵니다. 짐작하옵건데 趙王께서는 未央宮(미앙궁)으로 太后마마를 뵈러 가신 것이 아닌가 싶사옵니다."
惠帝는 기절초풍할 듯이 놀랐다. "무어라? 趙王이 未央宮으로 太后를 뵈러 갔다고? 그게 틀림없는 사실이냐?" "자세히는 알 수 없사오나, 趙王께서는 太后를 모시고 술을 마시고 계셨다고 하옵니다." "무어라? 趙王이 太后와 함께 술을 마셔?" 惠帝는 불길한 예감이 떠올라, 如意를 찾아 부리나케 미앙궁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未央宮에는 趙王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太后는 惠帝가 나타난 것을 보고 천연덕스럽게 묻는다. "主上은 무슨 일로 오셨소?"
惠帝는 問安(문안)도 생략한 채 다그치듯 물었다. "趙王이 이곳에 왔다고 들었는데, 趙王은 어디에 있사옵니까? 저는 趙王을 데려가고자 왔사옵니다." 惠帝가 노골적으로 불쾌한 얼굴로 태후를 쏘아보며 물었다. 그러자 太后는 갑자기 怒氣(노기)를 띠며 皇帝에게, "趙王을 데려가려고 왔다고요....? 흥! 趙王은 主上의 원수요. 그런 놈을 데려가 어찌하겠다는 거요?"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착한 惠帝도 화를 내지 않을 수 없었다. "趙王이 나의 원수라니요? 太后 께서는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시옵니까? 趙王은 사랑하는 나의 아우입니다. 피를 나눈 兄弟가 어떻게 원수가 될 수 있습니까?" 그 말을 들은 呂 太后도 화가 나는지 더 거친 말을 쏟아낸다. "主上은 내 말을 똑똑히 들으시오. 先帝(선제)가 생존해 계실 때, 先帝는 如意 母子를 편애 한 나머지 太子를 廢位(폐위)하고 그놈을 태자로 책봉하려고 하였소. 그때 張良 선생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놈이 天子가 되고, 主上과 나는 지금쯤은 죽었거나 궐에서 쫓겨나 거지 신세가 되었을 거요. 그와 같은 과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主上은 그 원수 놈을 마치 愛妾(애첩)처럼 끼고 돌기에, 나는 그 꼴을 보다 못해 오늘은 그놈을 꾀어 다가 술에 毒藥(독약)을 타 먹여 죽여 버렸소."
"뭐라구요? 趙王을 毒殺(독살) 시켰다고요?" 惠帝는 까무러칠 듯이 놀라다가, 이내 미친 사람처럼 太后 에게 마구 대들었다. "如意를 毒殺하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오?
如意와 나는 한 핏줄을 이어받은 형제지간이오! 형제간에 누가 천자가 되든 그것이 무슨 상관이라는 말이오. 어마마마는 자식을 죽였으니, 이것은 天理(천리)에도 벗어나고 人道 에도 벗어나는 罪惡(죄악)한 짓이란 말이오."
평소 조용하던 惠帝가 이처럼
狂氣(광기)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며 덤벼들자 呂 太后는 아무런 대꾸도 못하고 옆방으로 피해버 린다. 그러나 親 아들인 惠帝로부터 그런 공격을 받고 보니, <척비 모자> 에 대한 앙심이 더 끓어 올랐다. (내 남편을 빼앗 아간 원수의 자식을 죽인 것이 무엇이 나쁘단 말이 냐! 오냐, 두고 보아라. 황제가 무슨 소리를 하던 나는 <그년>까지 내 손으 로 죽여 버리고야 말테니....)
천하의 名將 韓信(명장 한신) 까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죽여 버린 惡毒(악독)하기 그지없는 呂 太后인지라, 가슴속에 쌓인 원한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惠帝가 난동을 부리고 돌아간 그 다음날, 여 태후는 심복 부하이자 조카뻘 되는 呂수를 불러 묻는다. "永巷(영항)에 감금해 둔 <그년>은 아직도 살아 있느냐?" "예, 아직도 감금해 두고 있사옵니다." "음.... 이제는 그년을 죽여 없앨 차례다." 太后는 그렇게 말하며 새삼스러이 이를 바드득 간다. 呂수는 머리를 조아리며 아뢴다. "마마께서 분부만 내리시면 언제든지 죽여 버리겠사옵니다." 태후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말한다. "그년을 쉽게 죽여서는 안 된다. 그년이 죽는 꼴을 내 눈으로 똑똑히 볼 것이니, 내일 아침에 그년을 이리로 끌어내오너라." "분부, 받잡겠사옵니다."
呂수는 戚妃(척비)를 데려오려 고 永巷으로 달려갔다. 永巷에 갇혀있는 戚妃의 몰골은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지난 날 유방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을 때는 시녀들이 300여 명이나 되었고 몸에는 언제나 비단옷을 입고, 꽃 피는 봄날과 달뜨는 가을 저녁이면 많은 시녀들을 거느리고 은은한 풍악 소리를 들으며 御苑(어원)을 거닐면서 인생을 즐기던 그녀였었다.
그러나 유방이 죽고 난 지금, 그녀는 움막 같은 永巷에 그날로 감금되어 햇빛조차 보지 못하고, 주먹밥으로 간신히 목숨 을 이어가는 신세가 되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한 밤중에 심복으로 있던 시녀 한 명이 비밀리에 그녀를 찾아와 다음과 같은 끔찍스러운 일을 귀띔해 주었다. "趙王께서 그제 未央宮으로 끌려오신 이후로 소식이 없사옵 니다." 그 말을 들은 戚妃 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 내렸다. (그렇다면 내 아들 如意는 필시 太后의 손에 죽었단 말이구나. 내, 이 원수를 살아서는 갚을 수 없겠지만 죽어서라도 반드시 갚고야 말겠다.)
呂수가 태후의 명으로 戚妃를 데리러 온 것은 바로 그 다음날 아침이었다. 여수는 척비를 未央宮으로 끌고 가기는 하면서도, 내심으로는 그녀를 은근히 동정하였다. 그리하여, "부인께서는 지금 太后의 命으로 未央宮으로 끌려 가는 중이옵니다. 지금이라도 살고 싶으시면 태후 에게 용서를 빌도록 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오늘로서 죽음을 면하기가 어려울 것이오."
弱者(약자)에 대한 일종의 感想的(감상적)인 동정이었는지 모른 다. 그러나 아들 如意가 죽었다고 확신한 戚妃는 그 같은 동정에는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이윽고, 戚妃가 未央宮 뜰아래 꿇어 앉혀지자, 太后는 대청마루를 천천히 걸어 나오더니 아무 말도 없이 戚妃를 조소의 눈으로 노려보기만 하였다.
呂 太后(여 태후)는 强者요 戚妃(척비)는 弱者인지라, 두 사람의 시선이 정면으로 마주쳤을 때는 弱者가 視線(시선)을 피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戚妃는 결코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비록 뜰아래 꿇어앉혀 있기는 했지만, 얼굴을 똑바로 치켜들고 太后를 무섭게 쏘아보고 있었다.
太后는 그 모습에 화가 치밀어 오르는 동시에, 일종의 전율까지 느껴오자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른다. "네 이년! 네년은 先帝의 총애를 독점해 오는 동안 皇后(황후)인 나를 원수로 알았을 뿐만 아니라, 내 아들을 밀어내고 네 아들을 太子로 삼으려고 했지? 네년은 그런 죄로 지금 그 꼴이 되었지만, 아직도 반성하는 빛이 전혀 없구나!"
그러자 戚妃는 殺氣(살기) 등등 하게 맞받아친다. "질투로 환장해 버린 이 魔鬼(마귀) 같은 늙은 년아! 네년은 내 아들을 죽인 철천지한의 원수다. 내 비록 살아서 원수를 갚을 수는 없겠지만, 저승에 가서 귀신이 되어서라도 이 원수는 잊지 않고 천배 만배로 갚아주고야 말 것이다. 이년아!"
太后는 戚妃가 무섭게 대들자 한 편으로는 무서 웠지만 또 다른 한 편으로는 毒氣(독기)가 치솟아 올랐다. "이년아! 네가 발악을 한다고 네 년을 빨리 죽여 줄 줄 아느냐! 죽이기는 죽이겠지만 두고두고 천천히 죽여줄 테니 그리 알아라." 그리고 그 자리에 서 刑吏(형리)를 불러, 다음과 같이 끔찍스러운 명을 내린다. "여봐라! 저년의 손목과 발목을 죽지 않을 정도로 차례로 잘라서 두루뭉술하게 만들어 버리도록 하여라. 귀도 베고, 눈알도 뽑아내고 厠間(측간)에다 처넣어 똥을 먹게 하라. 그래서 이제부 터는 저년을 <人猪(사람 돼지) >라 부르도록 하라!"
人猪(인저)란 <사람 돼지>라는 뜻이다. 여자의 질투심과 증오심이 이정도로 잔혹한 것이었던가?
戚妃는 손과 발이 차례로 모두 잘려버린 채 돼지가 아닌
<人猪>의 신세가 되어 측간에 갇히는 신세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목숨이 원수라고나 할까? 戚妃는 죽고 싶어도 죽을 수도 없는 비참한 신세가 되어버리고 만 것이었다.
한편, 측은지심이 남달리 많은 惠帝는 趙王 如意가 親母(친모)인 呂 太后로부터 살해되었음을 알고부터는 政治(정치)에 환멸을 느껴 날마다 술과 여자로 자신을 달래고 있었다. (내가 나라를 아무리 잘 다스려 보고 싶어도, 어머니가 아들을 죽이는 이 판국에, 어떻게 나라를 다스려 갈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생각이 들자 惠帝(혜제)는 마침내 자포자기의 생활 을 계속해 왔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惠帝는 마음을 달래보고자 사냥을 하고 돌아오다가 우연히도 戚妃가 갇혀있는 측간에 들르게 되었다. 그리하여 소변을 보려고 무심코 바지를 내리다가, 사람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괴물이 측간 아래에 갇혀 있는 것을 보고 기절초풍을 할 듯 놀라며 측간을 뛰쳐 나왔다.
그리하여 수행하던 侍從(시종) 들에게 다급하게 물었다. "측간 속에 사람 같기도 하고 귀신같기도 한 괴물 이 갇혀 있는데 도대체 그것이 무엇이냐?" 侍從 들은 모두가 거북한 표정을 지으며,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그것은
人猪(인저) 라고 부르는 것이옵니다." "人猪라니 인저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
"....."
시종들은 대답하기가 거북하여 약속이라도 한 듯이 모두 입을 다물고 대답을 못 하는 것이었다. 惠帝는 그럴수록 수상하여 마침내 추상같은 호령을 내렸다. "人猪가 무엇 인지 사실대로 말하라.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지위 고하를 불문하고 斬刑(참형)에 처할 것이다!" 이에 侍從들은 몸을 떨며, "사람 같기도 하고 귀신 같기도 한 그 괴물은 선제께서 총애하시던 戚妃의 變身(변신)이옵니다."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 대답에 惠帝는 기절초풍할 듯 놀라며 다시 묻는다. "戚妃께서 사람도 아니고 귀신도 아닌 괴물 로 변신을 하다니,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냐? 왜 그렇게 되었는지 그 연유 를 분명하게 말하라." 시종 들은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어, <戚妃는 太后에 의해 손과 발이 모두 잘리고 人猪가 되었다>는 사실을 사실대로 稟告(품고)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惠帝는 그 사실을 모두 듣고 나자 大聲痛哭(대성통곡)을 하다가 太后에게 달려가 무섭게 대들었다.
"어마마마는 先帝를 도와 천하를 통일하셨거늘, 모름지기 人德(인덕)을 萬人에 게 베풀었어야 옳을 일이오. 그런데 어마마마는 戚妃에게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잔인무도한 형벌을 내렸으니, 이게 무슨 짓이오? 사람에게 어떻게 이런 잔혹한 짓을 했단 말이오. 나는 어머니의 자식임이 부끄러워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단 말이오!" 惠帝가 미친 사람처럼 날뛰며 대드는 바람에 太后는 변명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戚妃에 대한 증오심은 자꾸만 더해 갔다. 惠帝는 生母인 呂 太后를 한바탕 몰아세우고 대궐로 돌아오자, 그날부터는 모든 政事(정사)를 丞相(승상)에게 맡겨버리고, 자신은 술과 여자에만 빠져 세상만사를 잊고자 하였다.
呂 太后는 시간이 지나도 惠帝가 政事를 돌보지 않고 酒色(주색)에만 빠져 지내자 마침내는 제 자신이 政權을 빼앗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오냐! 네가 에미 를 배반하고 <그년>을 그렇게 두둔한다면, 이제는 너에게서 정권을 빼앗아 와야 하겠다.)
太后는 아들조차 원수로 간주하고, 그때부터는 呂氏 일족을 主要(주요) 벼슬자리에 등용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丞相 簫何(승상 소하)는 前代(전대)
부터의 宰相(재상)인지라, 태후의 일가친척들을 좀 체로 중용하려 하지 않았다. "이 나라에는 先代로부터 有能(유능)한 功臣들이 많사온데, 어떻게 그들을 제쳐두고 아무런 功勞(공로)도 없는 呂氏들을 重用(중용)하시려 하옵니까? 옛 부터 外戚(외척)이 조정에서 득세를 하게 되면 나라가 망하는 법이옵니다." 簫何가 呂씨 일족을 등용하지 않으려는 대의명분은 이처럼 뚜렸했다.
그러나 惠帝가 즉위한 지 2년 후, 戊申年(무신년) 가을에 승상 소하가 죽고 나자 사정은 크게 달라졌다. 太后는 惠帝가 정치에 무관심한 것을 기화로, 실질적인 황제의 大權(대권)을 직접 행사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呂氏 일가인 呂臺, 呂産, 呂祿, 呂澤 等 을 무조건 고위직에 등용 하고 兵權(병권)까지 그들에게 맡겨 버렸다.
그로부터 5년 후, 惠帝가 酒色(주색)에 지쳐 孫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 버리자, 呂 太后는 惠帝와 아무 관련도 없는 어린아 이를 天子의 자리에 올려 앉히고, 자신이 <聽政,청정,>이라는 이름으로 전권을 완전히 장악한다.
이렇게 유방이 천신만고 끝에 이루어놓은 통일천하는 10년을 채 못가서 劉氏(유씨)의 손에서 呂氏(여씨)의 손으로 넘어가게 된다. 呂 太后는 천하를 장악하고 나자, 여씨 일족을 불러 놓고, "이제는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처리해야 할 일이 하나 더 남아있다. 그것은 <人猪>를 죽여 없애버리는 일이다. 지금부터 人猪(인저)를 이 자리에 끌어내 四肢(사지)를 수레(車)에 매달아, 그년의 四枝를 네 조각으로 찢어 죽이도록 하여라. 그래야 나의 恨이 완전히 풀릴 것이다."
이리하여 <人猪>가 된 戚妃는 마침내 太后가 보는 앞에서 四枝가 넷 으로 찢어지는 車裂刑(거열형)을 당한다.
呂 太后는 戚妃를 죽이고 나서도 마음이 시원치 않았던지 원한의 눈물을 흘리며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씨부려댄다.
"네년을 죽였지만, 네년에게 빼앗겼던 내 청춘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그것이 슬프구나." (유방이 조금만 생각이 깊은 者였더라면 呂太后에게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주 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 ...."
"남자가 세 가지 중 한 가지라도 잘못 쓰게 되면 패가망신한다고 한다. 알고는 있었겠지만 실천하기가 어려웠겠지.
장장 7개월에 걸쳐 각색 해 올린 列國誌(楚漢誌, 漢高祖 列傳 포함)가 오늘로 대단원의 幕을 내립니다.
그동안 열국지를 열독해주신 모든분들께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