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노래 외 1편
임 성 용
엄마는 상여꽃을 잘 접었다
초상이 나면 동네 부인들이 전부 우리집으로 모였다
엄마는 색색이 꽃지가 담긴 석작을 꺼내고 상여꽃을 접었다
솜씨가 서툰 부인들에게 꽃 접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밤을 새워 가위질하고 접은 꽃들이 방안 가득 쌓였다
치맛자락 수술이 달린 하얗고 커다란 꽃은 긴 대나무에 달고
빨강 노랑 갖은 꽃들은 아래층 윗층 상여를 수놓았다
깐치네댁, 박씨부인 노래 좀 해보소
엄마는 상여꽃을 접으며 유충렬전 이야기도 하고
흥얼흥얼 박씨부인 타령도 불렀다
어린 나는 유충렬전 이야기는 재밌었지만
슬픈 메나리 곡조의 박씨부인 노래는 듣기 싫었다
엄마는 열서넛 왜정 때, 사랑에서 가실을 살다간 떠돌이한테
간간히 박씨부인 노래를 배웠다고 했다
소리도 본래 조선에선 열두 마당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다섯 마당 밖에 남아있지 않은지라, 옳아!
그렇다면 엄마가 상여꽃 접으며 부른 박씨부인 타령은
아주 오래 전에 사라진 노래가 아니었던가
누구에게도 전하지 않고 이젠 아무도 모르는 노래를
엄마는 어찌 혼자 알고 혼자 불렀을까
일찍이 엄마가 죽고 노래가 죽었다
누님의 겨울
십오 년 만에 작은 누님 만나 눈물진 이야기를 들으며 가슴이 먹먹 막혀 와서 작은 누님은 오팔년 개띠로 숱한 고생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네 살 위 큰누님 못된 짓 믿기지가 않아서
나, 열네 살에 엄니가 날이면 날마다 머리채를 쥐뜯고 하도 때려서 그날도 엄니한테 쫓기다 셋째 정덕이랑 같이 신발도 없이 맨발로 도둑 기차 타고 서울로 갔지야 동광모사 방직공장 다니면서 열넷 열다섯 시간 일해 번 돈을 언니한테 죄다 뺏겼지야 돈봉투를 들고 언니한테 가면서 이 돈을 전부 뺏긴단 걸 생각하면 눈물 나서 봉투를 열어보고 울고 또 열어보고 울고
열여덟 살 추석 날 고향집에 처음으로 내려올 때까지 4년 동안 한 푼도 남김없이 뺏겼어야 명절이면 집엘 그렇게나 가고 싶어도 고향 올 차비조차 없어서
막내 누이가 남 이야기하듯 말했다 말도 말어 큰오빠 양말공장 다닐 땐 큰언니가 적금 들어준다고 회사로 직접 와서 큰오빠 월급 다 받아갔어 그래놓고 십 원도 안 줘서 내가 큰오빠랑 같이 큰언니네 찾아가서 따졌더니 시장바구니로 우릴 얼마나 뚜들겨 패던지 말도 마
작은 누님이 머리를 감싸며 말했다 나를 빨래 방망이로 한 시간을 때려서 머리 맞으면 죽겠다 싶어 머리만 두 손으로 우둠고 있었어야
내가 군대 제대하고 큰누님을 아주 발로 지근지근 밟고 반 죽게 패버렸더니 그 담부턴 내 눈치를 보고 미친 행패를 함부로 못하드만
워따메 참말로 잘했다 콱 죽여불지 그걸 살려뒀냐
뭔 깡패새끼들 데려와서 나를 죽인다고 광명 철산교 다리 밑으로 끌고 가서 아이고, 사당동 삼촌한테도 뜬금없이 나를 팔아서 내가 크게 다쳐 급히 수술비가 필요하다고 돈 빌려가서는 안 갚고 가리봉 우리 형제들 살던 집도 주인한테 자기집으로 동생들 옮긴다고 사기쳐서 전세금 빼낼라고
그걸 다 경마장에 날리고 노름해서 날리고 춤바람에 날리고 술처먹고 날린 게 더 분하지 죽지도 않어 썩을년 아직도 기운이 장사여 어디 산다니 알아서 뭐해
몇 년 전에 광주 이모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장 왔다던디 맥주병 깨고 상 뒤집고 난리가 났다드라 세상에 그 한겨울에 월남치마 두르고 양말도 안 신고 슬리퍼를 신고 왔다드만 그래도 어디서 얼어 죽지도 않어 썩을 년
그런 겨울이 또 오고 우리 죽기 전에 큰누님 만나면 따뜻한 옷이라도 한 벌 사서 입혀주자, 그러자
임성용 전남 보성 출생. 2000년 전태일문학상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흐린 저 녁의 말들』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