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
골로새서 1 : 9 – 12
골로새 교회가 있었던 곳은 오늘의 터키입니다. 터키의 이스탄불은 아시아에서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오가는 길이 16km인 보스포러스 대교가 있어서 교통이 발달 된 곳입니다.
당시는 육로로 가는 교량이 없었고 배를 타고 유럽으로 오가는 항구가 에베소에 있었습니다. 지금도 지중해를 건너 아데네(고린도)와 로마를 비롯한 유럽으로 가는 항구가 에베소에 있습니다.
에베소에서 내륙으로 약 160km 정도 떨어진 곳에 골로새가 있습니다. 골로새는 에베소보다 작지만, 동서양의 다양한 사상과 이단과 각종 우상을 섬기며 미신 숭배가 성행했습니다.
골로새 교회는 바울이 세운 교회가 아니고, 에베소에 있는 두란노 서원에서 바울의 가르침을 받은 에베브라가 세운 교회로 추정합니다.(7) 골로새 교회는 불건전한 이단 사상과 부단히 싸워야 했으며, 분열되는 심각한 위기도 있었습니다.
에바브라는 교회에 일어난 일들을 바울에게 알렸습니다.(8)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소식을 듣는 날부터 기도하며 편지를 쓴 것이 ‘골로새서’입니다.
본문은 바울이 골로새 교회를 위해 기도한 것입니다.(9-12) 제일 먼저 교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을 채우게 해 달라’(9)고 기도했습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된 것도 ‘하나님의 뜻’으로 되었다고 말했습니다.(1) 그와 같이 골로새 교회 교인들도 하나님의 뜻으로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뜻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을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께서 세운 계획(작정)에 따라 진행하는 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크게 두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인류의 창조에서부터 종말의 최후 심판과 영생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뜻은 구속사적으로 교회를 세우고 택한 백성을 불러 구원하시는 영생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자를 불러모아 교회를 세우는 것에서부터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믿지 않은 자들의 심판도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이 구원받고 영생하는 것도 창세 전에 택하신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는 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을 말했습니다. 바울은 에바브라로부터 골로새 교회에 일어난 일을 듣고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채우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골로새 교회뿐 아니라 모든 교회의 성도들에게도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사람들은 세상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우연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들은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계획에 따라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서 참새보다 더 귀한 너희가 당하는 고난을 철저히 지켜보시며 보살펴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눅12:6,7)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교회라고 해서 악한 일은 없고 형통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성도에게도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어려운 일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일들을 당했을 때 ‘하나님의 뜻’으로 아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요셉이 형들에게 팔려 애굽으로 끌려가서 종이 된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아버지 야곱은 하나님의 뜻으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언제부터인지는 기록이 없어서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서 충성하고 있을 때 여호와께서 함께 하심으로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다는 말씀을 보면 이미 요셉은 자신이 당하는 일을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창39:3)
보디발의 아내의 거짓 고발로 옥에 갇혔을 때도 여호와께서 함께 하심으로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창39:23)
그래서 요셉은 형들에게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창45:5)라고 말했습니다.
요셉은 자신이 형들에게 팔려 애굽에서 종이 되고, 옥에 갇힌 죄수가 된 그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이 애굽에 총리가 된 것을 보고 돌아와서 아버지에게 알려 주었음에도 야곱은 그들의 말을 믿지 못하고 어리둥절했습니다.(창45:26)
그러나 하나님께서 밤중에 나타나셔서 야곱에게 ‘애굽으로 내려가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창46:3,4)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요셉이 당한 일을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알고 하나님께 경배하며 감사하였습니다.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간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기까지 야곱은 약 15년을 거짓말에 속아서 요셉이 짐승에게 찢겨 죽은 줄로만 알고 슬픔과 괴로운 삶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우리도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하나님의 뜻으로 알지 못하면 누군가를 원망하고 슬퍼하며 불행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알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감사하며 참고 이겨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 니이까? 그의 부모 니이까?’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9:2,3)고 말씀하셨습니다.
맹인으로 난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알기까지 누구의 죄냐고 하며 서로 원망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맹인되게 하셨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들은 그 모든 불행에서 벗어나고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전천성 장애자로 태어난 것을 보고 하나님의 뜻이라고 아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서로 정죄하며, 하물며 죽은 조상까지도 정죄하는 것은 큰 불행입니다.
잘못한 일도 없음에도 어떤 불행을 당한 것을 보고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기 위해서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을 말했습니다. ‘신령한 지혜와 총명’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9)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을 공동번역에는 ‘성령께서 주신 지혜와 판단력’으로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은 성령의 도움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은 인간의 상식으로나 지식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도와주심으로 알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이 성령의 도움으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기를 기도했습니다.
우리도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신령한 지혜와 총명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내 뜻대로 삽니다. 형통하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며 감사합니다. 일이 꼬이고 속고 억울하게 손해를 보고 어려울 때를 하나님의 뜻이라고 알지 못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 중에 욥이 당한 고난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욥1:1)
그런데 욥은 많은 재산을 다 잃었습니다. 아들 일곱과 딸 셋이 큰 바람이 집을 쳐서 다 죽었습니다. 욥의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이가 나서 질그릇 조각으로 몸을 긁고 있을 때 아내가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욥은 아내에게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 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욥2:10)고 말하며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했습니다.
욥은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1:21)고 말했습니다. 욥은 그가 당하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형통함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해할 수 없는 어려움과 이겨내기 어려운 고난도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 하나님께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39)라고 기도했습니다.
예수님도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39)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죄인들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죽는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알았습니다. 우리에게도 내가 감당하기 싫은 것을 져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워주신 십자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고려신학교를 설립하고 초대 교수님 가운데 H박사님은 신학적으로 훌륭한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사모님이 재건파 교리에 심취되어 신사참배한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을 모두 사탄 마귀의 종이라고 했습니다.
하물며 신학생은 물론이고, 교수들까지도 외면하기 때문에 사모님을 보신 분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H박사님은 하나님께서 짝지어주신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그 아내와 끝까지 참고 살았습니다.
부부가 이혼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부부가 된 것은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좋든 굳든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서로 이해하며 감사하며 살면 복이 됩니다.
양과 염소가 한 우리 안에서 목자의 돌봄을 받는 것처럼, 지상교회는 택한 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택함을 받지 못한자들도 함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오시는 그날에 심판주가 되신 주님께서 양과 염소를 구분하듯 의인과 악인을 구분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 오시는 날까지 모든 일들을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어떤 고난도 믿음으로 이겨냅시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은 ‘빛 가운데서 기업을 얻는 것’입니다.
지금도 바울은 우리 교회와 저와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시기를 원하노라”(12)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