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태어나 끊임없는 고뇌와 번민속에 놓이게 되는 존재인 모양입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테지만 고민하고 번뇌속에 빠지고 슬퍼하면서 그속에서 간혹 희망과 환희와 달콤한 순간을 맛보면서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문득 문득 어떤 경우에 가장 큰 슬픔과 비애를 느낄까 하는 질문에 맞딱뜨리게 됩니다. 물론 정신적인 부분과 육체적인 부분으로 나눠서 생각할 수 있겠지만 어떤 상황에 놓이면 인간으로서 가장 큰 좌절과 비애를 경험하는가 깊게 생각해보게 됩니다. 특히 나이가 들고 이제 살아온 날보다 날아갈 날이 터무니없게 적은 경우에 특히 그런 생각을 하게 되나 봅니다. 요즘 많이 나오는 요양시설에서의 비참한 삶이나 고령화 초고령화 사회속에 나이들수록 환영받지 못하는 그런 분위기속에 나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일수도 있습니다.
나이가 상당히 든 노년들을 직접 만나거나 그들의 생활을 담은 유튜브 등을 통해 가장 힘들고 비애를 느끼는 순간들을 파악해 보는데 이런 저런 상황이 많더군요. 늙어 가족이 모두 해체되고 연락도 할 수 없는 상황이 가장 슬프다고 표현한 사람도 있고 병들어 혼자 고통속에 놓일 때 가장 힘들다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사랑했던 사람이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나버렸을 때라고 말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물론 평상시 같은 생활이 아닌 조금이라고 비정상적이거나 평상시와 다른 삶이 시작되면 모두가 외롭거나 감내할 수 없는 고통을 겪을 것입니다. 수많은 상황을 놓고 판단해 보건데 가장 힘들고 비애를 느낄 때는 자기의 용변을 스스로 처리하지 못할 때가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사람이 스스로 움직이고 자신의 의도에 따라 의사결정을 하는 것만큼 감사한 일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치매에 걸리거나 큰 부상을 당해 스스로 판단에 따라 행동하지 못할 때 가장 큰 문제점에 도달하게 되겠죠. 일단 거동이 힘들어지면 스스로 자신의 용변을 처리하지 못합니다. 일어나서 움직이지 못하는데 어떻게 화장실을 가며 그후 뒷처리를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평생 스스로 움직이며 당연히 혼자서 해결했던 바로 그 뒷처리를 할 수 없게 될 때 느끼는 비애는 너무도 엄청나다고 합니다. 남성보다 여성들이 느끼는 정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입니다. 간병인이 아무리 배우자라고 해도 그렇습니다.
제가 평소 존경하고 따랐던 선배가 있습니다. 젊을때부터 산을 좋아했던 분인데 늙어 어느날 고관절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너무 산을 많이 올랐던 것일까요. 병원진단 결과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약 3달동안 병원신세를 졌는데 그때 느낀 일들을 나에게 말해주었습니다. 화장실을 가지 못하니 스스로 음식의 양을 줄였다고 합니다. 부인과 간병인에게 폐를 덜 끼치기 위해서지요. 하지만 며칠후 변비가 왔답니다. 그래서 더욱 힘든 시간을 보내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결국 더한 고통을 겪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평생 스스로 혼자 화장실에 가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밝히더군요.
고령사회 나아가 초고령사회로 접어드는 한국의 상황속에 요즘 이런 생각이 많이 들고 방법은 없는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치매와 함께 거동이 힘들어지면 요양병원 등 요양시설에 보내진다고 하지요. 가족들이 간병인 역할을 하기가 정말 힘들 것입니다. 배우자라도 매일 수차례 화장실 도우미역할을 한다는 것이 너무 고통스럽겠지요. 그런 환경에 당사자는 얼마나 더 힘들겠습니까. 그래서 대부분 요양병원 그리고 요양원을 찾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요양병원과 요양원의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물론 비싼 가격을 지불하면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본인과 가족들의 경제적 상황을 고려하면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럴 경우 상황은 매우 달라집니다. 고용된 간병인도 사람인지라 환자들에게 혹사당하면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기가 힘들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 뉴스에 자주 나오는 잔혹행위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앞으로 더욱 그런 현상이 많이 발생할 것인데 정말 우려스럽습니다.
초고령화사회에서 스스로 용변을 해결못하는 경우가 점점 더 많아질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대부분 사람들에게 곧 닥칠 현실적인 문제이기도 하지요. 스스로 나름 품격있게 화장실도 다닐 수 있도록 각자 스스로 몸 관리를 잘 할 수밖에 없을 듯 합니다. 하지만 아프고 싶어 아픈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초고령사회를 앞두고 인간으로서 너무 큰 비애를 느끼지 않도록 하기위한 대책 마련도 준비해야 하는 시점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불편한 이야기지만 곧 닥칠 현실이니까요.
2024년 2월 1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