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E: 2016-01-20 |
DISCOVERY ㅣ부산 을숙도 일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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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와 낙동강이 함께 빚은 갈대와 철새 천국
을숙도는 바다와 강의 조화경이다.
1300리 낙동강 물줄기에 느릿느릿 섞여온 토사가 바다를
눈앞에 두고 털썩 주저앉아 만들어진 모래섬이다.
철새도래지로도 유명하며, 이제는 우아하고 분위기 있는 생태공원으로 거듭났다.
을숙도를 일주하는 자전거길은 10㎞에 불과하지만
눈과 가슴에는 100㎞를 달린 듯 충만으로 넘쳐난다
Writer 김병훈(본지 발행인)
강과 바다가 가장 장황하게 만나는 곳은 단연 낙동강 하구다.
거대한 삼각 주는 둘의 거창한 만남을 증명하는 기념비다.
산이 많은 한반도에서 강은 대체로 급류로 흘러서 삼각주는 고사하고
모래톱 하나 만들 여유가 없어 어느 순간 강에서 바다로 돌연 스며들고 만다. 그
래서 강과 바다의 경계가 확연한데, 길이 20㎞, 폭 5㎞의 대형 삼각주를 가진 낙동강은 돌연변이다.
하구에서 400㎞나 상류에 있는 안동도 해발 80m 밖에 되지 않으니 이 완만 하고
천하태평의 물줄기는 홍수가 아니면 흐르는 건지 멈춘건지조차 구분이 안된다.
그렇게 느릿느릿 산과 들을 적셔온 물줄기는 종내 바다를 만나
거대한 모래톱을 만들면서 해후의 기쁨을 표현한다.
물끼리의 만남이니 눈물은 아니고, 단단한 모래 결정을 쏟아내 기어이 섬을 이룬 것일까.
낙동강 삼각주는 강과 바다의 합궁 현장이면서 그 결과로 태어난 적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삼각주 말단에 자리한 을숙도에 서면 때로 혼란스럽다.
여기는 강인가, 바다인가
을숙도의 변천
‘새가 많고 물이 맑다’는 뜻의 을숙도(乙淑島)는 한반도 에서 가장 따뜻한
남동단에 자리해서 옛날부터 추위를 피해 남으로 내려온 겨울철새들의 보금자리다.
크기는 남북 4.5㎞, 폭 1㎞ 정도로 서울 여의도와 비슷하다.
일찍이 1966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지만 대도시
부산을 곁에 둔 입지는 한가로운 세월을 허락하지 않았다.
가장 먼저 닥친 급변의 서곡은 1987년 건설된 낙동강하구둑이다.
바닷물의 역류를 막고 용수를 확보해 비옥한 김해평야와
인근 공업단지에 공급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길이 2.4㎞의 하구둑은 을숙 도를 상하로 갈라놓은 것 같지만,
실은 북쪽의 일웅도 와 남쪽의 을숙도 두 개로 나뉜 섬을 하나로 연결하는 결과도 낳았다.
하구둑은 을숙도에 운명적 전환점이었다.
이전까지 을숙도 앞에는 ‘전국최고, 동양최대 철새도래지’라는
수식어가 항상 붙었는데 그 자리를 내놓게 된 것이다.
둑으로 가로막히고 차들이 다니는 을숙도 대신 철새 들은
가까운 주남저수지와 우포늪, 멀리는 천수만으로 옮겨갔다.
그렇다고 아예 철새가 오지 않는 것은 아니 지만 개채수가 크게 준 것은 사실이다.
하구의 지형도 단시간에 바뀌어 갔다. 하구둑이 건설되기 전인
1980년대 중반의 지도와 지금의 위성사진을 비교하면 겨우 30년만에
을숙도 근처의 지형이 많이 변한 것을 알 수 있다.
을숙도 남쪽으로 길게 뻗어나왔던 사주가 사라졌고,
모래섬인 백합등 아래 도요등이 새로 생겨났다.
마치 자연 방파제처럼 길이 3 ㎞, 폭 100m의 장대한 섬이 고작 몇십년만에 만들어진 것이다.
식물로 치면 대나무 같은 초고속 성장이다.
자연지형은 수백만년이라는 장구한 ‘지질시대’ 기준으로 변화하지만
낙동강 하구는 수십년 단위, 거의 인간세대 기준으로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옛기록을 보면 가야시대까지만 해도 김해평야를 이루는
거대한 삼각주도 완전히 형성되지 않아서 김해시내까지 배가 닿았다고 하니
세계에서 가장 빠른 지형변화의 현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지형변화라기보다 자연이, 낙동강이 알아서 우리에게 새로운 땅을 만들어 준다고나 할까.
그 가늘고 작은 토사 입자가 도대체 얼마나 많이 모여야 섬이 될까.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는’ 정도로 아득해 보이는 시간을 게으름 부리듯 아무 일도 않아 보이는 낙동강은 그 기나긴 침묵 속에서 대역사를 일궈온 것이다.
2009년에는 을숙도를 횡단하는 길이 3.6㎞의 을숙 도대교까지 들어선다.
낙동강 서쪽에 조성된 녹산공단과 부산신항을 부산시내와 연결하자면 이 역시 필연적인 건설이었다. 을숙도대교를 마지막으로 개발은 마무리되고,
을숙도 전체를 생태공원으로 가꾸는 사업이 본격화되었다.
이렇게 해서 2013년 봄에 을숙도는 자연친화적인 공원으로 개방되었다.
섬을 일주하는 산책로와 자전거길이 생겼고,
하구언으로 남북이 가로막혔던 것도 생태통로 겸 육교로 연결했다.
그러는 사이 하구둑과 을숙도대교도 흉물이 아니라 을숙도를 구성하는
하나의 자연처럼 풍경의 일부로 녹아들었다.
비현실적, 몽환적 혹은 낭만적
을숙도 일주는 그 감흥이 너무나 특별하고 넘쳐나서
결론을 먼저 말하지 않으면 감상마저 방향을 잃을 것만 같다.
한마디로 비현실적인 몽환경으로 빠져드는 길목에서 몸은 나른해지고
마음은 붕 뜨는 듯 가벼워지는 독특한 경험이다.
2013년 완전 개장전까지는 하구둑 북쪽의 일웅도 일부만 개방되었지만
지금은 을숙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남쪽 갈대습지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출발은 하구둑 북쪽의 낙동강통합물관리센터나
남쪽의 낙동강하구에코센터 둘 중 하나로 잡으면 된다.
물관리센터 옆에서는 자전거를 무료로 빌릴 수 있지만 다소 붐비고 어수선하다면,
에코센터 주변은 조용하고 자연스럽다.
두 포인트를 중심으로 ‘8’자 형태로 남북을 일주하는 형태가 된다.
어디서 출발하건 주행거리는 10㎞ 정도다. 여기서는 에코센터 앞에서
출발해 남쪽을 거쳐 북쪽을 돌아오는 여정을 소개한다.
비포장도 있지만 노면이 좋고 평탄해서 초보자도 쉽게 완주할 수 있다.
가족, 친구, 연인, 지인과 함께 가벼운마음 으로 돌아보기에 정말 좋은 코스다.
겨울에도 기온이 높아 웬만한 한파가 아니면 라이딩이 가능하다.
먼저 강변을 따라 남쪽으로 향한다.
강건너에는 하단과 신평 지역의 공업지대가 보이지만
강폭이 800m 를 넘어 동떨어진 별개의 풍경으로 느껴질 뿐,
청정생 태 분위기를 그다지 해치지 않는다.
을숙도의 상징은 아무래도 철새와 갈대다.
을숙도는 거의 연중 철새를 볼 수 있는데,
봄 가을에는 도요새, 물떼새류를, 겨울에는 재두루미,
저어새, 넓적부리도요 같은 희귀종이 날아든다.
새가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은 남단탐조대 근처.
바다를 향해 아련히 뻗어난 갈대밭 옆으로 온갖 철새가 사이좋게 물위에 떠 있다
. 20여m 거리에서 보는 새들의 생동감은 마치 아프리카 사파리 여행에서
야생동물을 보는 것처럼 놀라운 실감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또 있다.
남단탐조대 옆의 탐 방체험장은 한때 대규모 분뇨처리장이었다.
당시의 시 설을 일부러 남겨서 폐허 느낌의 설치예술처럼 격조 있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서울 선유도공원에 상수도정류장 흔적을 남긴 것과 같은데,
여긴 깨끗한 상수도가 아니라 가장 꺼리는 분뇨를 처리한 것이 결정적으로 다르다.
그런데도 남은 잔해는 둘다 똑 같이 맑고 우아한 느낌을 주다니….
상수도가 사람의 몸을 통과하면 분뇨로 변하니 인간이 빠지면 결국 그게 그것인가.
섬 안쪽으로 들어서서 북향하면 이번에는 을숙도의 또 다른 상징인 갈대숲이 광대무변이다.
갈대도 그냥 갈대가 아니다.
바다와 강이 만나는 모래섬에, 그것도 작은 물줄기가 중구난방으로 드나들어
지형은 불규칙 하지만 일정한 크기와 색깔의 갈대가 대군의 운집처럼 도열해 있다.
갈대 자체만을 보면 전국의 갈대 명소 중 가장 단아하고 멋지다.
갈대는 그냥 물가의 식물이 아니다. 햇살은 치하고 가녀린 수술에 보석처럼 바스라지고,
바람은 시원의 생명력을 담아 서걱이는 소리로 심금을 흔든다.
여자의 마음과도 닮은 이 식물은 미인의 섬섬옥수 사이를 부드럽게 애무할 때 가장 고혹적이다.
갈대밭 옆 산책로에는 동백꽃이 기나긴 담을 이룬다.
과연, 이 따뜻한 남쪽에서 겨울은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한다.
사라진 이름, 일웅도
낙동강하구에코센터로 되돌아와 생태통로 겸 육교를 통해 하구둑을 넘어가면
옛날 일웅도(日雄島)로 들어선다.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을숙도와는 별도의 섬이었지만
지금은 하나로 연결되어 일웅도라는 이름은 사라지고 말았다.
하구둑 안쪽에 있는 일웅도는 바다가 아니라 낙동강이라는 것이 확연하다.
강변을 따라 외곽을 도는 길 은 갈빛과 닮은 비포장이다.
한때는 이 땅에 지천이었던 이런 흙길이 요즘은 불편이 아니라
향수를 일으키는 복고풍으로 다가온다.
안쪽에는 정원처럼 잘 꾸며진 호수가 들어섰고,
풍경과 어우러져 저절로 그림이 된 벤치는 휴식이 아니라 사진을 재촉한다.
남쪽보다 일웅도쪽에 사람이 훨씬 많은 것은 낙동강 통합물관리센터와 낙동강문화관,
을숙도문화회관, 축구장, 자동차극장 같은 시설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서울~부산을 연결하는 국토종주자전거길도 이곳이 종 점이면서 기점이다.
을숙도는 자전거에도 친절해서 아예 무료로 자전거를 빌려준다.
모든 산책로는 자전거와 보행자 겸용이고, 중요 포인트마다 자전거 보관대가 마련되어 있다.
한 바퀴에 고작 10㎞. 초보자와 어린이도 힘들이지 않고 완주할 수 있지만
이 특별한 섬에서 경험하는 감흥은 달린 거리 혹은 머문 시간의 제곱으로 확장된다.
극적인 만남은 인간이든, 자연이든 최고의 감동이다. 그것이 바다와 강의 만남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