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대륙(大陸)의 혼(魂)
1
격동(激動)의 계절(季節).
중원(中原)은 물론이거니와 변황무림계(邊荒武林界) 또한 대준동의 파란에 휘말리기 시작하는 가운데 다시 눈이 내렸다.
대설(大雪), 모든 것을 파묻어 버릴 듯한 폭설이 구만 리에 걸쳐 퍼부어졌다.
하나, 대륙은 광활하다. 무림군상(武林群像)들이 일으킨 야망의 행로가 피의 폭풍을 일으켜도 산(山)은 말하지 않았다.
강물은 그대로 흘러갈 뿐이고, 폭설이 퍼붓는 가운데에도 봄의 기운은 다가서고 있었다.
"…!"
차디차게 반짝이는 악마의 눈빛은 일대를 침묵시킨다.
벌써 세 시진째다.
혈전포(血戰袍)로 몸을 휘감고 태사의(太獅橋)에 앉아 있는 그는 백팔(百八) 원로(元老)들을 침묵시키는 악마의 눈빛만 대리석 바닥에 쏟아 냈다.
거대한 석전, 일천 명이 들어차도 좁아 보이지 않는 거대한 석전이다.
마왕대전(魔王大殿)!
군마(群魔)가 복종하는 대혈마성의 종주(宗主)가 거처하는 취의청이다.
십오야(十五夜)의 달빛이 창문을 통해 마왕대전의 매끄러운 대리석 바닥으로 흘러들고 있었다. 그리고 달빛은 그의 눈동자에 떨어지며 핏물이 흐르는 듯한 이글거리는 혈파(血波)를 폭사케 했다.
붉은 태양(太陽)이 가라앉은 듯한 악마의 눈, 그 눈은 세 시진 동안 껌벅여지지 않았다.
왜…?
마검향 검비룡, 그는 악마폐관(惡魔廢關)에 들어 대혈마성에 비장된 백팔(百八) 마경(魔經)의 최후 경지에 들어섰다.
그는 자신의 마공을 속성시키기 위해 세 가지 마법을 사용했다.
첫 번째 방법, 만독역근세수(萬毒易筋洗修).
만독이 가라앉은 악마독지(惡魔毒池)에 몸을 담그고, 마혼불사령공(魔魂不死靈功)을 외우며 진기를 일천주천(一千週天) 운용하며 만독을 모공(毛孔)을 통해 골수로 빨아들이는 방법이다.
두 번째 방법, 잔시환혼개벽(殘屍還魂開闢).
천 명의 임산부를 마독(魔毒)에 중독케 한 다음, 그들의 몸 안 순음진기(純陰眞氣)를 쌍장(雙掌)을 통해 모조리 빨아들여 단전혈(丹田穴)에 악마의 강기를 만드는 방법이다.
그것은 너무나도 참혹한 수련법인지라, 전대의 성주 천검성마저도 익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었다. 하나 검비룡은 절대마경(絶代魔境)에 들기 위해 마도의 금기조차 깨어 버린 것이다.
끝없는 야망(野望)을 가진 청년, 그는 이미 마도의 전설이며 우상이었다.
파천마라혈령대법(破天魔羅血靈大法).
피부를 강옥(鋼玉)처럼 매끄럽고 단단하게 하고, 인체의 모든 잠재력(潛在力)을 격발케 하는 죽음의 속성대법이다.
검비룡은 폐관에 들어 세 가지 수법을 터득했고, 그가 절대마경에 드는 사이 대혈마성의 원로회(元老會)에서는 피의 제거극이 벌어졌다. 검비룡을 추대하는 자들은 천검성의 구신(舊臣)들을 가차없이 제거했다.
그리고 지금은 가히 검비룡의 마도계(魔道界) 일인천하(一人天下)가 완전히 짜여진 상태였다.
늘어선 마도인들은 마도계에서도 패도(覇道)를 추종하고 있는 자들이었다. 이 자리에는 팔검(八劍) 서열(序列) 이상의 인물들만이 모여 있다.
한데, 장내에는 지극히 미묘한 정적과 질식할 듯한 압박감이 팽배하여 있었다.
자욱이 흐르는 혈무(血霧).
그것은 검비룡의 팔만사천(八萬四千) 모공(毛孔)에서부터 끝없이 피어 올랐다.
천년혈갑룡(千年血甲龍)의 가죽으로 만든 마갑(魔甲)과 전포(戰袍)를 걸친 검비룡의 눈빛은 백 수십 년 간 대혈마성을 지배해 왔던 천검성의 악마안(惡魔眼)을 능가하고 있었다.
그의 눈을 바라볼 사람은 감히 없다. 그의 눈을 바라본다면 눈알이 타는 듯한 고통을 느껴야 하고, 가공할 마기(魔氣)를 느끼며 피가 역류하는 순간을 경험해야 한다.
지금 검비룡의 눈길은 한 마리 철익신응(鐵翼神鷹)에 집중되고 있었다.
세 시진 전에 날아든 거조의 등은 텅 비어 있었다.
본시 거조의 등에는 검비룡이 대혈마성의 주모(主母)로 지목을 한 악금예가 타고 있어야 한다.
한데 새는 사람을 태우지 않고 대혈마성으로 날아들었다. 그리고 새 등에는 하나의 갑(匣)이 얹혀 있었다.
갑의 뚜껑은 활짝 열린 상태였다. 그 안에는 몇 가지 마물(魔物)이 들어 있었다.
첫 번째 물건, 그것은 한 자루 아주 예리(銳利)한 도(刀)였다.
무게 일(一) 근(斤).
그러나 너무나도 얇고 정교하게 다듬질이 되어져서 무게에 비해 도신(刀身)은 꽤나 긴 편이었다.
가공할 연철술(鍊鐵術)에 의해 담금질이 되어 극대의 예리함을 날(刃)에 갖게 된 핏빛의 소도(小刀)의 표면에는 아련한 혈화문(血花文)이 떠오르고 있다.
강호일랑(江湖一郞)이란 동영제일연검사(東瀛第一鍊劍士)가 혼(魂)으로 만들어 냈다는 절대마병(絶代魔兵).
잔화장도(殘花長刀).
그 모든 것을 파멸시키고, 어떠한 기운 아래서도 부러지거나 휘어지지 않는다는 잔화장도는 묘하게 훼손되어 있었다.
잔화장도의 마인(魔刃)을 따라 미세한 흔적이 있다. 누군가 날카로운 날을 무디게 만들었으며, 가공할 마기마저 잠재워 버린 것이다.
금강옥(金剛玉)을 두부처럼 베어 버린다는 잔화장도의 날. 그 악마의 날을 무디게 한 것은 바로 누군가의 손가락(指)이었다.
"놈은 손가락으로 날을 지그시 눌렀다. 잔화장도의 날은 그놈의 손가락에 의해 무디어진 것이다. 빠드드득! 결국 잔화영(殘花影)은 실패한 것이다. 옥린(玉鱗), 그놈에게…"
두 번째 물건은 큼지막한 주머니였다.
금빛 주머니는 풀린 상태였고, 그 안에 들어 있던 쇠붙이들은 모조리 밖으로 나타난 상태였다.
크고 작은 철패(鐵牌)와 동패(銅牌), 옥패(玉牌)… 어떤 것은 핏빛이고, 어떤 것은 은색(銀色)이다. 수술의 빛도 각기 다르고, 장식도 각기 다르다.
표면에 새겨진 글씨 또한 각기 달랐다.
<팔검(八劍) 서열(序列) 십(十) 위(位)>
<외단(外壇) 수석검대주(首席劍隊主) 겁몽(劫夢)>
<칠검(七劍) 제일검사(第一劍士) 화화마혼(花花魔魂)>
<척살검대령부(擲殺劍隊令符)>
무수한 영부들, 주인의 품에서 나와 주머니 안에 차곡차곡 들어간 영부는 하나하나 천 인을 부릴 권위를 지니고 있었다.
"칠검(七劍) 서열(序列) 이상의 고수가 지니고 있던 영부는 모조리 돌아왔다. 사람은 하나도 오지 않고 영부만 돌아왔다! 대중원(大中原)에 간 수십만 고수 가운데… 단 하나도 돌아오지 못했다!"
세 번째 물건은 가장 특이한 물건이었다.
하나의 옥배(玉杯).
크기가 활짝 핀 연화(蓮花)만한 자색의 옥배인데… 그것은 황궁비고(皇宮秘庫)에만 있다는 자옥천추신배(紫玉千秋神杯)라는 희대의 보물이었다.
한데 놀라운 것은, 자옥천추신배 자체가 아니었다.
중인을 침묵시킨 것은 자옥천추신배의 안쪽에 새기어진 지인(指印)이었다. 우선 바닥에 여섯 자 글씨가 있다.
<검즉겁(劍卽劫), 출즉사(出卽死).>
검은 바로 겁이고, 나온다면 죽는다는 글이다.
그 글을 중심으로 수레바퀴마냥 연판이 되어 있다.
<혈검금군단(血劍禁軍團) 수석검사(首席劍士) 야수검(野獸劍) 천소기(天少奇),
소림제자(少林第子) 허무(虛無) 진무웅(陳武雄),
무당(武當) 장문인(掌門人) 함옥진인(涵玉眞人),
개방(蓋幇) 장문인(掌門人) 풍진유개(風塵儒蓋) 방자통(方子通),
강남무림(江南武林) 총표파자(總標把子) 검판추해(劍判錘海) 철하무(鐵何武),
칠십이도관(七十二道關) 대도통(大道統) 십절상인(十絶上人)…>
오십사(五十四) 인(人)의 서명(書名)이다.
오십사라는 숫자는 그리 많은 숫자가 아니다. 그러나 자옥천추신배에 이름을 남긴 오십사 인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그 어떤 사람이든 휘하에 무사들을 거느리고 있다는 것이다. 적으면 칠천(七千), 가장 많이 거느리고 있는 사람은 이십만(二十萬).
가히 하늘 아래의 백도계 거두(巨頭)들이 모조리 서명을 했다고 할 수 있었다.
"하나의 이름이 빠져 있다. 모든 것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는 그놈의 이름만이 올라 있지 않다. 뇌옥린(雷玉鱗)… 그놈의 이름이 없다!"
검비룡의 손이 천천히 뻗쳐졌다.
혈수(血手)가 스물거리는 안개를 가르며 나아가더니, 자옥천추신배는 저절로 떠올라 그의 손아귀에 쥐어졌다.
"감히… 감히 내가 청춘을 다 바쳐 이룩한 대아성(大牙城)에 도전(挑戰)을 하다니… 감히…!"
손아귀는 불끈 쥐어졌고, 자옥천추신배는 거대한 도끼에 세게 맞는다 하더라도 깨어지지 않는다는 전설도 허망하게 그의 핏빛 손바닥 안에서 산산이 바수어졌다.
보라! 검비룡의 몸에 걸치어진 혈포 사이에서 핏빛 안개가 끝없이 뿜어지며 그의 발이 곤두서는 것을.
"뇌옥린! 너는… 나의 대지를 거머쥐었고, 거기 머물고 있던 나의 계집마저 얻었다. 네놈은 결국… 내게 도전했다! 으드득!"
검비룡은 두 눈에서 핏빛 번개를 토했다. 그리고 대전에 모인 일백팔마는 숨도 크게 쉬지 못했다.
검비룡은 성격이 지극히 포악하고 변화막측하다. 자칫하다가는 그의 일 장에 두개골이 으스러져 죽을 것이다.
마왕대전 안은 침묵으로 가라앉았다.
검비룡의 이글거리는 눈빛과 습기를 흘리는 듯 죽음의 호흡이 만인을 압도하는 가운데 조용한 파문이 벌어졌다.
슷- 슷- 슷-!
유복(儒服)을 걸친 다섯 사람, 이들은 조심스러운 눈빛을 던지며 마왕대전 안으로 들어섰다.
이들은 죽은 천검성이 기른 자들로 변황오뇌(邊荒五腦)라고 불리고 있었다.
천마제갈(天魔諸葛) 만사뇌(萬邪腦),
만겁혜공(萬劫慧公) 공야달(公冶達),
천축마유(天竺魔儒) 아란고(阿蘭古),
백두마사(百頭魔士) 음곡(陰曲),
유계제일지(幽界第一智) 마마휘(魔魔輝).
다섯 사람은 일반 마도계 인물들과는 다른 느낌을 주고 있다.
이들의 몸에서는 묵향(墨香)이 흘러 나온다. 이들은 마공을 연마하지 않았으며, 대신 마병책을 연구하며 일생을 보낸 사람들이다.
조심스럽게 다가서는 다섯 사람은 마검향도 제거하지 않은 대혈마성의 오랜 구신들이었다.
천검성도 존중해 주었던 악마의 지혜를 가진 이들은 대혈마성의 군사(軍師)이고, 대내순찰부(對內巡察府)의 수좌(首座)들이었다.
"뇌옥린(雷玉鱗)이라는 자는 무림사(武林史)가 지닌 천 년 간 배출해 낸 인물 가운데 가장 많은 휘하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그자가 명령을 할 경우, 전 강호인이 움직입니다! 결국 본성(本城)의 중원정복(中原征服)은 십 년 이후로 미루는 것이 현명합니다! 지금은 승산(勝算)이 적습니다!"
천마제갈은 지극히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는 대내순찰부주(對內巡察府主) 지위에 있었다.
그는 대혈마성의 세력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대혈마성에 투신한 사람들의 숫자와 신분 내력, 그들이 지니고 있는 병기의 종류와 위력…
어디 그뿐이랴? 그들은 늘 백도계의 정황에 대해서도 수집을 하고 있다. 그들은 대혈마성의 추밀(樞密)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었다.
"불가란 말인가? 나의 대업(大業) 수행이?"
검비룡의 눈꼬리가 지그시 치켜뜨여진다.
"현… 현재로서는…!"
"왜?"
"뇌옥린이란 자의 정체가 너무나도 신비스럽기 때문이고, 무림백도계가 일통되었기 때문에…!"
"그럼… 그가 나보다 가공할 존재란 말인가?"
"그것은 아닙니다!"
"그럼…?"
"일단 참고 관망하시는 것이…!"
천마제갈이 조심스레 말할 때.
"후후… 그는… 나를 알고 있다. 아주 자세히!"
검비룡은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는 여전히 십오야의 만월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초생달 아래에서 그의 사부를 죽였다. 그리고 지금 보름달 아래에서는 대혈마성이 배출한 어떠한 마도고수보다도 강한 자가 되어 군림의 자세를 보여 주는 것이다.
"나도 그놈을 잘 알고 있지. 아주 자세히!"
그의 목소리는 만인을 침묵시켰다. 검비룡은 찡그리지 않고 야릇하게 미소짓고 있었다.
"놈이 천하 백도계의 거물이 되었다는 것은 만천하의 행운이 아니라, 불행이다! 그놈은 작은 지위마저 부담스럽게 여기는 놈이다. 그런 놈은 체질적으로 맹주(盟主)가 될 수 없다. 그리고 내게는… 놈을 죽일 천 가지의 방법이 있다!"
"…!"
"그래도 불가(不可)인가?"
순간.
"그렇습니다!"
"기다려 보심이…!"
다섯 사람이 일제히 허리 숙일 때.
"좋아, 아직 나의 진면목을 모르는군? 내게 죽은 늙은이와 내가 같다고 여기는군? 그 늙은 겁쟁이와 나를 같다고 보다니… 훗훗… 좋아, 나의 손을 알게 되게 하겠다!"
검비룡은 야릇한 표정 가운데 손바닥을 쳐들었다.
"절대혈옥수(絶代血玉手)를 아는가?"
보라! 그의 손이 투명한 핏빛으로 물드는 가운데 자욱한 혈하(血霞)가 번져 나가는 것을.
혈무가 일순 오 장 안을 휘어감는 가운데, 다섯 명의 마도계 학자들은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그들은 찰나적으로 녹아 버리고 만 것이다.
검비룡은 죽은 천검성을 초월하는 진정한 악마의 절대자 경지에 이른 것이다.
웃다니?
검비룡이 이글거리는 혈광을 두 눈에서 뿜어 내다가 웃다니?
"큿큿… 사실 옥린, 네놈은 군림하고도 남을 놈이었다. 만에 하나, 네놈에게 나만한 야망이 있었더라면… 벌써 천하를 거머쥐었을 것이다. 하나, 네놈에게는 나 같은 야망이 없었다!"
검비룡의 웃음은 사악한 웃음이었다. 그는 광기에 빠지는 듯 아주 극악한 웃음을 흘리며 눈길을 허공에 던졌다.
"네놈이 천하 백도계의 버러지들의 우상으로 등용(登龍)했다는 것은… 비극이다."
검비룡은 볼을 실룩거렸다.
"좋아, 알게 하겠다. 중원에 알게 하겠다. 뇌옥린을 선택한 것이 피비로 옷을 적시는 일의 시작이었음을… 백도의 대종말이었음을 알게 하겠다!"
검비룡의 무릎 사이에는 마병 한 자루가 끼워져 있었다.
혈마거병(血魔巨兵).
대혈마성의 성주 지위를 뜻하는 신표이고, 천하(天下) 마병(魔兵) 서열(序列) 제일위에 오른 전설적인 병기이다.
부르르르…!
혈마거병은 진동을 하기 시작했고, 검비룡은 천처히 검자루를 거머쥐었다.
"사흘 안에 옥관(玉關)을 넘고…!"
그의 목소리로 인해 일대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마왕대전이 무너질 듯 흔들리는 가운데.
"어이쿠우! 고막이 찢어지는 듯하다!"
"크으으… 가공할 진기다. 역시 검비룡 신성주(新城主)는 천검성 그분보다 강하다!"
일백팔마는 휘청였고, 검비룡에게 대한 신뢰의 눈빛을 더욱 깊게 했다.
"닷새 후에 진령(秦嶺)을 갈아 부수어라. 그 다음날 낙양(洛陽) 일대의 백도를 초토화시키고, 그 다음날에 숭산(嵩山)의 돌중들을 모조리 흙으로 만들어라! 그리고… 그리고… 뇌왕천을 짓밟아라!"
콰르르르- 콰앙-!
대전이 뒤흔들리고 천장에서 돌 조각이 떨어져 내린다.
아아, 벽력(霹靂)!
대혈마성의 모든 마도무사들이 중원을 향하여 움직이라는 악마의 명령이 드디어 떨어진 것이다.
2
등격리(騰格里)의 열사(熱沙)는 무수한 마도고수들의 행렬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를 쉬지 않고 달리는 무리들.
천리마 수만 마리가 동시에 치달리기 시작하고, 수만 마리의 거조(巨鳥)가 마도의 자객(刺客)들을 태운 채 장천(長天)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기다려라, 중원!"
"우리들이… 드디어 간다. 중원, 너를 안기 위해!"
"피로… 이룩하리라. 마도의 천하를!"
쓰으으… 쓰으으…!
핏빛 화살이 되어 퍼져 나가는 혈의신마단(血衣神魔團).
이들은 명단(名單)을 열 개씩 지니고 있고, 열 자루의 비수(匕首)를 가슴에 품고 있다.
이들은 중원 무림계의 명숙들을 찾아다니며 암살하는 일을 맡고 있다. 그 수는 삼천오백(三千五百).
그렇다면 대혈마성이 지목한 암살당할 백도 명숙의 수는 삼만오천에 달하는 것이 아닌가?
축융화마(祝融火魔)가 이끄는 구천벽력군(九天霹靂軍).
이들은 소림(少林)과 개방(蓋幇), 무당(武當)을 무림계에서 제명(除名)하라는 밀명을 받고 유황 내음을 뿌리며 가로지르기 시작했고…
혈천유성군(血天流星軍).
이들은 강남무림계(江南武林界)를 초토화하라는 피의 명령에 따라 대오를 정비하며 대막을 건너기 시작했다.
악마의 무리들, 이들은 드디어 날개를 떨치고 중원을 향해 웅비(雄飛)하기 시작했다.
검비룡은 허공을 우러르며 웃고 있었다. 그는 팔짱을 낀 채 히죽이 웃고 있었다.
"세월은 나를 만들지 말았어야만 했다. 그리고… 금예, 너는 나의 품에 웃으며 안기었어야만 했다. 훗훗… 나를 고독한 초인(超人)으로 만든 세월이여! 내가 이제 너를 죽이겠다! 그리고… 나를 배척하려 하는 중원(中原)! 내 이제 너를 목잘라 버리겠다! 천하 대세는 극소수 초거두(超巨頭)들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그들만 제거된다면… 중원은 내게 안긴다. 훗훗… 그날은 칠야(漆夜:그믐) 이전에 이룩이 되리라! 프핫핫…!"
유성(流星)의 비가 떨어져 내린다.
용권풍(龍捲風)이 불어닥치는 등격리사막 가운데 악마의 성은 백 년 만에 처음으로 진세를 열고 무수한 마도인들을 쉬지 않고 토해 내기 시작했다.
밤(夜), 이 밤은 고금 무림계에서 가장 깊은 밤이었다.
등격리사막을 뒤덮으며 악마의 무리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독심을 가득 품은 채 품안에는 가공할 화탄을 품은 채.
노도가 되어 열사의 사막을 건너기 시작하는 자들, 구로(九路)에서 악마의 행렬은 시작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고금 무림 사상 가장 가공스러운 하나의 병진은 서서히 발동이 되기 시작하였다.
"문제는 하늘이다. 하늘이 내 예상대로 거풍(巨風)을 일으켜 준다면, 선혈을 덜 흘리고 마무리지을 수가 있다!"
열사의 구릉지대 위로 무수한 인영들이 보였다.
언제 나타난 것일까?
백설처럼 흰 무복을 걸친 무사들이 이십여 리에 걸친 인간의 능선을 이룩하고 있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인간산맥(人間山脈).
손에 한 자루씩의 철검(鐵劍)을 든 사람들, 이들은 바로 구천십지에서 모여든 강호의 영웅들이었다.
이제까지의 모든 파벌을 떠나 하나로 뭉친 사람들. 이들의 주축은 구파일방(九派一幇) 가운데서 소림(少林)과 무당(武當), 그리고 개방(蓋幇)이었다.
이십(二十) 보(步)마다 한 사람씩이 서 있는 데에도 행렬은 이십여 리에 걸쳐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승려 하나, 그는 합장을 한 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옥린, 그는 이미 거악(巨嶽)이 되었다. 그는 바람 중의 바람이 되었고, 그의 눈빛은 더욱 심해졌다. 녀석은 아마도 다시는 자신이 검을 쥐게 되지 않기를 바라며 저곳으로 갔으리라. 좋아, 네녀석을 위해 마지막 지혜를 발휘하겠다. 훗훗… 이 일이 마무리지어진다면 진짜 중다운 중이 되어 보겠다."
허무승 진무웅, 그는 십방천불과 더불어 진세의 한 부위를 지키고 있었다.
그가 시전하고 있는 진세는 십방천무대진도(十方天武大陣圖)로, 기둥은 뇌옥린의 지혜에서 나왔고 세세한 것은 진무웅의 머리에서 나왔다.
삼산오악에서 모은 무사들은 진무웅의 손에 들린 영기(令旗)에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어느 한순간, 진무웅의 눈에서 혜광(慧光)이 번쩍 일어났다.
"들… 들린다. 드디어… 기다리던 순간이다!"
그의 눈빛이 아스라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휘리리리링- 휘리리링-!
열사의 사막지대가 돌연 지진을 만난 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보라! 고공장천(高空長天)이 돌연 시꺼매지며 전 먼 곳에서 거대한 기둥이 하나 나타나는 것을.
아아, 그것은 바로 용권대선풍(龍捲大旋風)이 아닌가?
"하늘이 마지막 허점을 메워 주는구나. 용권선풍이 일어나기만 한다면 천기가 혼돈이 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십방천무대진도(十方天武大陣圖)는 완벽해진다!"
허무승은 조용히 합장을 했다.
'미안하다, 옥린. 너는 마도무사들이 최후의 순간에는 도주를 할 수 있게끔 사문(死門)이 조금은 허술한 진세를 만들어 내게 알려 주었다. 하나, 하늘은 그자들을 완벽히 참하려는 듯 바람을 보내 주는구나. 아아, 나는 아직도 꼭지가 덜 떨어진 사미승인 듯하다. 악마들은… 죽어야 한다고 믿고 있으니까!'
그의 시선은 머나먼 열사지대에 머물고 있다.
자욱이 일어나는 모래 바람 가운데, 사막을 시뻘겋게 뒤덮으며 무수한 무사들이 질주해 오고 있었다.
그 수는 십수만 명이고, 들이닥치는 기세는 뇌왕천을 함몰시켰던 기세보다도 오히려 가공스러웠다.
"우우…!"
"봐라! 저기 벌레들이 있다!"
"카카… 일단 저놈들의 피로 일 배를 들자. 카카… 그 사이, 너무나도 인간의 피에 굶주렸다.!"
벌판을 메우며 달려든 자들, 그들의 신형은 백도인들을 발견하는 순간부터 빨라지기 시작했고… 자연히 진세가 흐트러졌다.
그리고 용권선풍은 더욱 강하게 일어났고, 일대는 지진을 만난 듯 뒤흔들리는 가운데 허무승 진무웅은 소기(小旗)를 가볍게 흔들기 시작했다.
순간, 거익(巨翼)이 펼치어지듯이 인간의 능선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동서남북으로 묘하게 흐트러지는 백도인들, 멀리서 보면 겁을 집어먹고 패주(敗走)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들은 완전무결하게 진세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건곤(乾坤)이 감추어지고, 혼돈(混沌) 가운데 조화(造花)가 숨기어져 있다. 이합집산(離合集散) 하나하나가 가공할 치밀성을 품고 있고, 십방천무대진의 변화는 서서히 오십 리 방원을 휘어감기 시작했다.
바람은 극강해졌고, 일대는 자욱한 사무(沙霧)에 뒤덮였다.
치리리릿- 치리리릿-!
치솟아 오르는 모래 바람, 그 사이를 뚫고 치달리던 마도인들은 차츰차츰 주위가 이상해짐을 느끼게 되었다.
"어엇? 모… 모두 어디로 사라졌느냐?"
"바… 바다(海)라니? 어떻게 사막이 사라지고, 바다가 앞을 가로막는단 말이냐?"
"우라질! 무조건 나아가라. 후퇴는 없다. 뒤로 돌아가는 자는 대성주의 친위무사들에게 맞아 죽는다. 지옥이건, 극락이건, 가리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우우우…!"
수만 발의 화살이 쏘아지듯이 몸을 날리는 자들, 이들은 이미 대열을 흩트린 상태였다.
무조건 앞으로 나아가는 자들과, 멀리서부터 신기막측한 진세를 구축하며 포위를 좁히는 사람들, 그리고 거대한 바람.
세 가지는 하나로 모이기 시작했고, 그러한 가운데 하나의 신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콰앙-!
돌연 검게 물든 하늘은 북이 되어 소리를 질러 댔으며, 너무나도 어처구니없이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장대비가 퍼부어지는 가운데 일대는 우무(雨霧)에 휘어감긴다. 등격리사막에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일대는 소리도, 빛도 차단이 된 혼돈 세계로 변화했다.
"으음, 이게 무슨 조화냐?"
"중토(中土)가 머나먼데, 여기서 가로막히다니!"
"쳐라! 무조건!"
치창- 창- 창-!
잇따라 검이 뽑히는 가운데 수천 군데에서 검 무지개가 일어났다. 마도인들은 이미 시계(視界)를 상실했다.
그리고 가공할 진세는 그들의 마성(魔性)을 격발시켰고, 그들은 참아 내지 못하고 검을 뽑아 휘둘러 대는 것이다.
쩌어어억-!
"케에에에엑…!"
"우… 우라질! 네놈은 사부도 모르느냐?"
수십 리가 일시에 혈풍우(血風雨)에 휘어감기는 가운데, 신비하게 다가서던 백도인들의 휘파람 소리가 가까운 곳에서 들려 왔다.
휘이이익- 휘이이익-!
"우우우…!"
하늘과 땅과 바람과 비.
모든 것은 십방천무대진도에 따라 하나의 가공할 힘을 발하고 있었다. 마도인들은 저희들끼리 베고 자르며, 광란을 시작했고, 진세의 저변에서부터는 정(正) 대(對) 마(魔)의 대접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열사 대지에 내리는 비(雨), 그리고 수십만의 몸뚱이에서 쏟아져 내리는 혈우(血雨)…
그리고 허무승 진무웅은 눈물을 주루루 흘리고 있었다.
"마도인들이여! 숭산에 돌아가는 대로 그대들의 영령의 극락왕생을 비는 불공을 드리리라. 하나, 지금 그대들을 풀어 줄 수는 없다."
그는 진심으로 합장하고 있었다.
진무웅이 대혈마성의 마병들을 잡아 가둘 그 무렵, 옥관(玉關)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좋아, 와라!"
천소기는 두 손으로 검을 불끈 쥐고 있었다.
그가 지니고 있는 검은 바로 무정검(無情劍)이었다. 그것은 뇌옥린이 천소기를 혈검금군단의 우두머리로 삼아 옥문관으로 떠나 보내며 그에게 쥐어 준 것이었다.
천소기의 뒤쪽에는 천하의 어떤 방파 무사들보다도 완벽하게 내외공(內外功)을 단련시킨 혈검금군단이 학익대진(鶴翼大陣)으로 도열해 있었다.
하나같이 자신 있는 표정들이고, 꽤 가까운 곳으로 자신들의 수를 십 배 능가하는 혈마병이 다가서는 데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내가 혈로(血路)를 뚫고 들어가겠다. 최초의 비명 소리가 난 후, 세 시진 안에 모든 것을 마무리지어야 한다. 그래야 예약을 해 둔 대로 음식을 먹게 된다."
스르르릉-!
무정검은 천소기의 손에서 장홍(長虹)으로 화하고 있었다.
삶과 죽음을 가르는 야수의 검, 생사류(生死流).
천소기는 절대예검(絶代銳劍)을 발휘하며 몰려들고 있는 혈마병들 속으로 날아들고 있었다.
십 장 길이로 늘어나는 검강(劍剛).
천소기의 몸은 검광 속에 가려졌으며, 그가 빛과 함께 혈마병 속으로 뛰어드는 순간 칠십여 명이 검하고혼으로 나뒹굴었다.
"크으으윽…!"
"저… 저자가 뇌옥린이냐? 으으, 그는 미남자라던데… 저자는 인상이 사납다!"
"웨에에엑…!"
처절한 비명 소리가 옥관의 하늘을 들썩이는 가운데, 혈금금군단 전원은 일제히 발검(拔劍)해 검광으로 옥관의 하늘을 밝히며 일제히 장소성을 터뜨렸다.
"우우우…!"
"이제 밥값을 해 보자!"
"자아, 시작하자!"
번개처럼 신형을 폭사시키는 혈검금군단, 이들은 일정한 진세에 따라 움직이지 않았다. 이들은 느끼어지는 대로 몸을 날렸고, 익숙한 대결의 감각에 따라 눈에 띄이는 자를 골라 검(劍) 대(對) 검(劍)의 비무를 시작했다.
옥관 일대는 순간적으로 풍운에 휘말렸고, 거의 일각도 되지 않아 마도세력의 예봉은 철저하게 꺾이고 말았다.
십수년 간 형극의 길을 걸었고, 뇌옥린의 휘하에 든 후 오대살검(五大殺劍)을 철저하게 익힌 무사들. 이들은 싸우는 데에서는 모두 천재들이었다.
베고, 후리고, 가르고…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피보라가 뿜어졌고, 피 묻은 전포가 바람에 펄럭거릴 때마다 단말마의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수적으로는 대혈마성의 우세이나, 실전에서는 달랐다.
혈검금군단은 정예 중의 정예로, 모두 일당십(一當十)의 무위를 지니고 있었다. 더욱이 그들은 뇌옥린의 제자들이라는 긍지가 있었기에, 성난 사자들이 되어 마병들을 무참하게 도륙내는 것이다.
폭풍천하(暴風天下)!
변황과 중원에서는 가혹한 피의 폭풍이 쉬지 않고 일어났다. 수천 군데에서 동시에 혈겁이 벌어졌고, 너무나도 놀랍게도 대혈마성 쪽은 전 장소에서 철저하게 패하고 말았다.
그 일에 관련이 된 사람들은 뇌천강이 바로 이날을 위해 안배해 둔 이만(二萬) 밀군단(密軍團)이었다.
파천무후 천검우가 이끄는 세력, 이들은 대부분 배신자란 오명을 뒤집어쓰고 대혈마성에 가담한 팔황무가 출신들이다.
이들은 팔황검제 뇌천강의 패도를 혐오했으나, 그의 진실된 마음을 알고는 자청해서 악마의 소굴에 몸을 던진 진정한 뇌왕천의 기둥들이었다.
혈의신마단주.
뇌왕천의 발호로 인해 북해의 빙지에서 한을 새기고 있다가 마검향의 휘하로 들어선 전대의 거마이다.
그는 북서무림을 초토화시키라는 마검향의 명을 수행하러 떠났으며, 중원에 한 발을 내딛는 순간 천검우의 파천검강(破天劍剛)에 심장을 꿰뚫리고 말았다.
어디 그뿐이랴?
등격리를 떠난 마도의 거두들은 정체를 드러낸 제이밀군단의 무사들에 의해 하나둘씩 제거되었다.
그들로 인해 대혈마성의 모든 세력 판도는 확연히 드러났고… 그들이 요소 요소를 끊어 버리는 결과, 대혈마성은 작은 초가집 하나도 점거하지 못한 채 어처구니없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첫댓글 즐감했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