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알프스종주
연석산 오름길에(파)
호남알프스란
전북 완주군과 진안군에 걸친 산줄기로 주로
전북 완주군 소양면 송광사를 들머리로 하여
종남산~서방산~위봉산~원등산~연석산~운장산~구봉산 등을 거쳐 오며
높고 낮은 수많은 봉우리들의 마루금을 차례로 이어면서
진안군 725번 지방도인 절연재나 양명주차장, 양명마을을 날머리로 하는
100리 길이 조금 넘는 중장거리 산행코스이다.
들머리인 유서 깊은 고찰 송광사를 감싸고 있는 종남산~서방산 구간의
서편으로 만경평야의 광활한 모습이 펼쳐지고,
연석산~운장산~구봉산 구간은 호남알프스의 백미라 할 수 있는데,
구름이 항시 길게 드리워져 자신의 모습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는
금남정맥의 최고봉이며 호남의 조망대라 일컫는 雲長山에서 바라본 조망은
상봉이라 일컫는 중봉을 중심으로 서쪽으로 맑은 물과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연석산,
동쪽으로 9개의 암봉을 거느리고 있는 구봉산을 이으면서
육산의 장쾌함과 바위산의 힘찬 역동적인 氣를 동시에 느끼게 한다.
게다가 무진장으로 불리는 무주 진안 장수 일대의 수많은 봉우리뿐만 아니라
남으로는 지리산 주능선과 동으로 덕유산 주능선, 그리고 전주를 지나 서해의
산하까지 조망할 수 있다고 한다. (펀글)
1. 일 시 : 2011.3.12~13
2. 위 치 : 전북 완주군, 진안군
3. 산행코스 및 구간거리
송광사→1.80→종남산→1.17→553봉→1.05→서방산→1.65→오도재→1.32→702봉
→0.45→630봉→1.28→되실봉→1.0→558봉→1.32→위봉재→1.61→496봉→1.78→송곳재
→1.92→원등산(청량산)→1.05→579봉→1.37→율치→1.93→436봉→1.67→675.4봉
→1.06→황조치→1.97→655봉→1.95→연석산→0.6→만항치→2.15→운장산→2.21→갈크미재
→1.21→1,084봉→2.24→복두봉→2.28→구봉산→2.0→양명
4. 산행거리 : 도상 약 42km
5. 산행시간 및 경로 : 27시간03분
* 12일 송광사~황조치 23.43km (13시간34분)
*06:36 송광사
*07:53 종남산*08:50 서방산
*09:27 오도치
*10:23 서래봉(도상 702봉)
*11:06 되실봉
*11:48 위봉재(~12:15)
*13:05 귀뚤봉(도상 496봉)
*14:20 송곳재
*15:37 원등산
*16:48 율치
*18:33 막은대미재
*19:17 694봉(정맥합류)
*20:10 황조치 (비박)
* 13일 황조치~양명주차장 17.07km (13시간29분)
*04:10 황조치
*06:48 일출(664봉)
*07:26 연석산
*07:45 만항치
*09:05 서봉(칠성대)
*09:37 중봉(운장대)
*10;05 동봉(삼장봉)
*11:00 칼크미재(각우목재)
*12:11 1084봉
*13:10 복두봉
*14:39 구봉산
*17:39 양명
구봉산 암릉과 용담호
유난히 춥고 길었던 지난겨울도 세월의 흐름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듯
입춘, 경칩을 지나 어느 듯 계절의 문턱을 넘어선다.
며칠 전 전국적으로 봄을 재촉하는 단비가 제법 많이 왔건만 다시
꽃샘추위가 앙탈을 부리고 있듯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도 고유가
고금리시대를 살아가야하고 국외적으로도 리비아 사태와 이웃 일본의
대지진이 몰고 온 재앙으로 연일 비보가 전해지고 있다.
어쩌면 2011년 봄은
우리에게 春來不似春이 될지도...
지난달 지리산남북종주에 이어 이번에는 호남알프스 종주 길에 오른다.
산행거리로 보면 비슷하지만 지난 종주가 무박이었다면 이번은
비박산행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비박을 택한 이유는 아무래도
장거리 산행이다 보니 무박을 한다면 어쩔 수 없이 야간산행을 피할 수는
없게 되고 그렇다면 들머리 쪽이나 날머리 쪽 어느 곳이든 풍광을 놓칠 수밖에 없다.
지리산이야 자주 찾는 곳이고 앞으로도 자주 접할 수가 있겠지만 지역적으로
접근이 어려운 이곳은 언제 다시 찾을 기약도 없기 때문에 가급적 이번 기회에
호남알프스의 속살까지 모두 탐해보려고 한다.
무박산행은 수마의 괴롭힘이 적이라면 비박산행은 아무래도 배낭 무게가 큰 짐이 된다.
짧은 거리라면 모를까 먼 길을 비박장비를 메고 출렁대는 마루금을 오르내리려면
체력적인 부담은 늘어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무박이던 비박이던 산행을 준비하는
시간은 늘 행복하고 특히 미답지 일 때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궁금증으로 가벼운
흥분감 마저 느끼게 된다. 우리의 생이 늘 도전의 연속이듯 산행도 새로운 경험에
부딪히며 쓴맛 매운맛을 보아야 진정 산을 이해하리라고 본다.
장수-익산간 고속국도
요즘은 거의 주5일 근무가 대중화 되다보니 금요일이 주말이 된 기분이다.
직장인들이야 정시 출 퇴근하겠지만 자영업자들이야 시간이 자유로운 반면
하루하루가 늘 근무의 연장선에 있다 보니 금요일 늦게 서야 일이 마무리 된다.
잠시 눈을 붙일 틈도 없이 새벽 3시 배낭을 챙겨 집을 나선다.
전국이 일일 생활권으로 된지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특히 근래 들어
크고 작은 고속도로가 개통이 되면서 전국의 교통망이 거미줄을 쳐 놓은 듯
경부,88,대전-통영,장수-익산 4개의 고속도로를 갈아타고 소양TG로 내려선다.
어느새 날은 밝아오고 진안-전주간 국도변의 긴 벚꽃나무 터널을 벗어나자
바로 들머리인 송광사가 시야에 들어온다.
옅은 운무에 잠긴 촌락들과 경내 굴뚝에는 길게 연기가 피어오르고
가야할 종남산은 저만치서 손짓을 하고 있다.
송광사 좌측 담장을 따라 시멘트포장도로를 잠시 오르면
전북보이스카웃연맹 훈련장 입구에서 우측 산길로 들어선다.
며칠 수은주를 끌어내렸던 꽃샘추위도 누그러진 듯 능선을 잡기도 전에
벌써 등줄기가 축축하게 젖고 만다.
서서히 고도를 높여가면 서쪽으로 보이는 전주시가지의 불빛도
점차 빛을 잃어 가고 잿빛 장막이 드리워진 호남알프스에도 어김없이 아침이 찾아든다.
산불감시 시설물이 있는 첫 봉우리를 지나 오성저수지 갈림길을 지나면 종남산 정상이다.
종남산은 중국에서 수행을 마치고 돌아온 도의선사가 절터를 구하기 위해
아래로 내려오다 이곳에서 맑고 풍부한 영천수가 샘솟는 것을 발견하고
큰 절을 세울 적지라 판단 더 이상 남으로 내려갈 것을 포기했다고 해서
종남산(終南山)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송광사 주차장에서 본 송광사와 종남산
보이스카웃 전북연맹야영장 입구... 이곳에서 3시 방향 산길로 들어서야
종남산 오름길에 짙은 잿빛 장막을 헤치고 희미한 일출과 함께 또 하루가 시작이 된다.
돌아본 소양면쪽 전경
시설물이 있는 첫 봉우리
종남산
짙은 가스로 조망이 가린 것을 아쉬워하며 서방산을 향해 발길을 다잡는다.
종남산에서 서방산 가는 길은 북사면으로 아직 녹지 않은 잔설이 얼어붙어 있고
봉서사 갈림길을 지나면 유순한 능선이 서방산까지 이어진다.
넓은 공터와 잘 정비된 헬기장이 있는 서방산도 종남산과 마찬가지로
불교와 인연이 있는 서방정토 즉 극락을 의미한다고 한다.
종남산과 서방산 사이에 있는 봉서사도 신라때 창건한 고찰로
석가의 화신이라 불리는 진목대사가 입산에서 열반까지
평생을 수도한 절로 이름이 높다고 한다.
조망도 거칠 것이 없어 김제의 만경평야와 서해까지 볼 수 있다고 하나
짙은 가스로 아쉬움을 남긴 채 발길을 돌린다.
이제까지 북으로 치닫던 등로가 서방산부터 동으로 방향을 틀며
오도재로 떨어진다.
기껏 벌어 놓은 고도는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다시 삿갓 모양을 한 서래봉 오름이 시작된다.
아직 무게에 적응이 덜 된 탓인지 배낭은 어깨를 짓누르고
거친 숨소리는 호남알프스종주가 호락호락한 곳이 아님을 말해 주려는 듯한데
30여분 빡신 비알을 올라서자 잘생긴 소나무 한 그루가 산객을 맞지만 진작 서래봉은
암봉 저 뒤편에서 뒷짐을 지고 냉소를 보내고 있다.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는 말이 있듯 지나온 산줄기를 짚어보며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돌탑이 있는 암봉을 지나 안수산 갈림길을 비켜 오르면 도상 702봉 서래봉이다.
고산휴양림 갈림길이 있고 잡목에 가려 조망은 없다.
서방산
서방산에서 본 용진평야 쪽 전경...가스로 시야가 답답하다
오도재 가는 길에 본 서래봉(702봉)...좌측 안부가 오도재
오도재 가는 길에 돌아본 서방산 ...북사면은 아직까지 잔설이 남아 있다
오도재 ... 등산안내판 뒤로 누군가가 나무가지에다 솟대를 만들어 놓았다
서래봉을 오르며 돌아본 지나온 능선
서래봉을 오르며 돌아본 지나온 능선...좌측이 종남산 우측이 서방산
서래봉 가는길
돌탑 뒤로 보이는 것이 서래봉
서래봉(도상702봉)
그런데 정상엔 고도만 703m,704m로 다르게 표시했을 뿐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이정목이 2개가 눈길을 잡는데
관할관청에서 이렇게 까지 해가며 국고를 축낼 이유는 무엇인지...
서래봉부터는 지나온 능선을 우측에 두고 남진을 한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능선 좌측을 아주 까까머리를 한 벌목지대를 지나는데
지난 정맥을 하면서 들은 바로는 무진장지역(무주,진안,장수)에도
특용작물(인삼,장뇌삼)재배 붐이 일면서 벌목 허가 남발로
산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이곳도 그런 연유 인지는 모르나 돌투성이인 이곳은
문외한이 보더라도 작물 재배지로 보이지는 않는다.
무너지고 흐트러진 산성의 흔적이 흘러간 세월을 대변해주는 되실봉 정상이지만
소박한 정상석이 정감이 간다. 대간 정맥 할 것 없이 이름 있는 산줄기마다
경쟁을 하듯 집채만한 입석들을 올리는 지자체들에 비하면
그야말로 자연친화적이 아닐 수 없다.
말로는 자연보호를 외치면서 케이블카를 설치하고 지들 호주머니나
챙기는 그런 부류들은 이런 광경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 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부터는 위봉산성을 따라 역사의 발자취를 더듬어 가면된다.
주말을 맞아 가족 나들이 객도 심심찮게 보이고 바위 전망대에서
신라 진평왕때 세웠다는 위봉사도 내려다본다.
들머리 송광사를 시작으로 오늘 등로 주위에는 유난히 절이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되실봉에서 위봉재까지는 위봉산 갈림길만 조심하면
성곽만 따르면 별 어려움이 없다.
되실봉가는 길의 벌목지대
벌목지엔 하트 모양을 한 소나무 둥치도 보인다.
되실봉
위봉산성에서 바라본 가야할 길...중앙 잘록한 곳이 위봉재
위봉산성에서 당겨본 위봉사...위봉사(威鳳寺)는 고려말에 창건된 사찰로
1900년대 초반까지도 이 일대 50여 개의 말사를 거느린 대찰이었는데,
한국전쟁 때 큰 피해를 입어 거의 폐사 직전까지 갔다고 한다.
1980년대부터 중창이 시작되어 현 재 건물들은 모두 최근에 지어진 것들이다.
현재는 보물 제608호로 지정된 큰 법당 보광명전과 관음전, 나한전, 극락전, 위봉선원 등의 건물이 있다.(발췌)
거의다 허물어져 가는 성문
위봉산성 서문지
위봉산성[威鳳山城]
조선시대에 축조된 석축 산성으로 둘레가 약 16km에 이른다고 한다.
1675년(숙종 1)에 7년에 걸쳐 이웃 7개 군민을 동원하여 쌓았다고 한다.
숙종대에 이르러 이곳에 성을 쌓은 것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외침을 겪으면서 전주 경기전에 모신 태조 영정와 조경묘의 시조 위패,
그리고 왕조실록을 피난시키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므로 전주에서 가까운
험한 지형을 골라 유사시 봉안하기 위함이었다.
실제로 1894년 동학혁명 당시 전주부성이 동학군에 의해 함락되자
태조 영정과 시조 위패를 이곳에 피난시킨 일이 있다.
성 안에는 위봉사가 남아 있고 북방 수구처에는 위봉폭포가 있어
전주팔경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발췌)
위봉재 서문지 건너편 포차에는 촌로 세분이 취기 오른 얼굴로
담소를 나누고 있다. 포차 쥔이 직접 채취했다는 고로쇠 수액을 팔고 있고
먹거리는 안주류 몇 가지뿐이다. 맛보라며 권하는 수액을 마신 죄로
수액 한 병을 사서 배낭에 넣고 위봉마을로 내려선다.
이번 종주길에 유일하게 식수를 구할 수 있는 이곳,
마을회관에서 식수를 보충하고 행동식으로 허기를 달래며 다시 능선에 올라선다.
심심찮게 나타나는 산죽지대를 지나 도상 496봉에 올라서는데
산벗꽃나무 둥치에 귀뚤봉이란 명찰을 달고 있다.
위봉재
귀뚤봉가는 길에 내려다 본 인간세
귀뚤봉
들머리부터 위봉재까지는 위봉산성 둘레길이라 이름하여 등로가 확실한데 비해
위봉재 이후는 이전과는 다르게 흔적이 미미한 등로가 이어진다.
지겨운 시간이 흘러가고 송곳재를 지나는데 좌측 아래는 깊은 골짜기가
이어지고 있어 갈수기만 아니면 식수를 구할 수 있을 듯하다.
다시 원등산 오름길이 시작되는데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속담처럼
잦은 오르내림이 이어지면서 육신은 점차 지쳐만 간다.
원등산을 지나면 55번국도가 지나가는 율치다.
보통 종주자들이 이곳에서 구간을 나누는 곳이기도 하며
완주군 동상면과 소양면의 지경고개인데 고갯마루를 넘는 교통량도 많은 편이다.
오늘도 행동식으로 하루를 버텼고 어둠이 내리기 전 저녁을 해결하려
이곳에서 버너에 불을 지핀다.
운장산을 자주 찾는다는 어느 블님의 말씀에 의하면 주위 어딘가에
유명한 옻닭집이 있다는 정보를 얻었지만 지금 상태로는 언감생심이랄 수밖에 없고
초라하게 느껴졌던 이 라면 한 봉지가 이번 종주길 통틀어
마지막 만찬이 될 줄은 꿈엔들 몰랐었으니...
원등산...등로에서 살짝 비켜서 있으나 배낭을 내려두고 눈도장을 찍는다.
삼각점 뒤로 내려서면 대부산과 동상저수지쪽 능선이다
율치 내림전에 본 다시 올라가야 할 건너편 산줄기
율치(밤티재)
저녁 만찬?
어쨌거나 따끈한 국물로 배를 채우고 나니 피로가 한결 풀린다.
짐을 챙기면 다시 436봉 빡센 오름길이 기다리고 해는 어느새 서산으로 기울고 있다.
어느새 헤드랜턴 불빛에 의지한 채 어둠을 더듬어 나가는데
눈에 익은 시그널들이 반기는 금남과 합류점 694봉에 올라선다.
3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이미 지났던 곳이라 눈에 익은 산길이 무척이나 반갑다.
비박지를 황조치로 택한 이유도 지난 정맥 종주때 고갯마루 주위를 개간하여
사과 과수원을 일구고 독가도 있어 급하면 물이라도 구할 수 있고
비가 온다면 처마 밑에라도 피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쳐가는 다리 빈자리만 보면 쉬고 싶은데 갈길은 멀고...
종일 같이해 온 햇님도 이제 서산으로 기운다
436봉에서 본 진안-전주간 국도와 건너편에 보이는 산이 금남정맥 입봉(삿갓봉)이다
금남과 합류하는 694봉
오늘 비박지 황조치...3년전 금남정맥 종주때 찍은 사진임
풍찬노숙에 비단금침이라...ㅎ
옛날에는 황새들이 많이 날아들어 황새목이로 불렸다는 황조치
과수 민가에는 환히 불이 밝혀져 있고 개짓는 소리가 고요한 산속의
정적을 무너뜨린다. 능선 가장자리에는 굴삭기 흔적들이 어지럽고
연석산 오름길을 따라 원형철조망 공사가 진행중이다.
조수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면 촘촘한 철망을 쳤을 것인데 아무래도
이곳도 등산객들의 등살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니 산을 즐겨 찾는
한 사람으로서 씁씁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철망과 굴삭기로 헤집어 놓아 겨우 누울 자리를 찾아 고된 몸을 눕힌다.
하늘에서는 별이 쏟아지고 달빛은 산천초목을 희롱하는 멋진 밤이다.
*** 3월13일(일) 대체로 맑고 연무
전날 잠을 못잔데다 13시간 넘게 산행을 한 탓인지 간밤엔 눕자 말자
깊은 잠에 빠져든 모양이다. 그런데 새벽 눈을 뜨자 들리는 소문은
어젯밤 짖다 지친 견공이 비박하는 곳까지 올라와 으르렁 거렸는데
코고는 소리에 주눅이 들었는지 줄행랑을 쳤다는 소식이 들린다.
새벽 3시반, 달은 지고 별빛은 여전하다.
산속이란 말이 무색할 만큼 너무나 포근한 밤이다.
아직 잔설이 남아 있는 산중이라 침낭커버까지 씌웠는데 날씨 탓인지
결로 현상으로 침낭이 축축하게 다 젖어 버렸다.
어둠속에 대충 짐을 챙겨 황조치를 떠난다.
밤새 짖다 목이 쉰 것인지 아니면 코고는 소리에 놀라 내공에
깊은 상처를 입은 것인지 손님이 떠난다는데 유별나던 견공은 인사도 없다.
초반부터 빡신 오름이 시작된다. 그런데다 키 큰 산죽들도 배낭을 잡아채고...
그러나 지리산 남부능선 산죽지대에 비한다면 애교로 봐줄만하다.
그것보다 어제 율치에서 436봉 오름길에 허벅지에 통증이 와서 주물러 풀었는데
그놈이 다시 말썽을 부린다.
통증을 참고 걸음을 옮기지만 식은땀만 삐질삐질 베어 나오고
가다 쉬다를 반복하며 정말 황새모가지처럼 길고 긴 연석산 오름 길을 이어간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일출1
일출2
일출3... 운장산을 덮고 있는 운무
운장산 서봉
일출4
일출5
연석산 오름길 바위 전망대에서 돌아본 지나온 산줄기...좌로 궁항마을과 궁항저수지도 보인다.
어둠을 조금씩 벗어 던진 산록들이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내며
멋진 산 너울이 펼쳐진다.
허리에 운해를 두른 채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운장산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자연의 조화 앞에 탄성과 디카질 밖에 더 할 것이 없다.
이런 광경 때문에 그 많은 산님들이 어둠을 뚫고 산에 오를 것이다.
직접 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짧은 글로는 표현할 재주도 없지만
어떤 글로 표현을 하더라도 자체가 무의미할 것이다.
자연의 경이로움에 마취가 된 것인지 다리의 통증은 많이 사라졌다.
묵은 헬기장이 있는 연석산 정상에는
아침 햇살을 받은 산죽 잎이 유난히 빛을 발한다.
마루금과 정맥길은 3시 방향으로 꺾이며 고도를 낮추고
북으로 향하는 능선은 울퉁불퉁 암봉들을 곧추세운 채 늘어서서
바쁜 발걸음을 잡고 있다. 구미가 당기는 산길이다.
산길은 다시 만항치를 지나 호남알프스 최고봉 운장산 오름길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어제 위봉마을에서 보충한 4리터의 물도 어느새 바닥을 드러내고
날머리까지 물을 보충할 곳도 없다.
차라리 한 겨울이라면 눈이라도 있지만 지금은 그럴 처지도 아니다.
그런데 다행히 서봉 오름길에는 눈이 녹으면서 바위에 결빙이 된 고드름이 있어
그나마 갈증 해소가 된다.
연석산
연석산 정상에서 본 운장산 서봉
서봉에서 이어지는 금남의 산줄기 중앙 좌측으로 이어지는 산이 장군봉
연석산에서 북으로 뻩어내린 산줄기...올망졸망한 암봉들이 발길을 유혹하고 있다
만항치 내림길의 암릉
서봉 오름길에...간혹 자료에 식수를 구할 수 있다는 곳이 이곳인지???
서봉 오름길에 돌아본 연석산
거친 호흡을 토해내며 서봉에 올라서지만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암봉 정수리에 박혀 있던 칠성대 정상석도 사라지고 바닥에 흔적만 남아 있는데
무슨 연유인지는 알 수가 없다. 호남알프스 최고의 조망터라고 하는 서봉
그러나 산정을 가득 메운 운무 때문에 아쉬움을 달래고
암봉을 내려와 벤치에서 잠시 지친 다리를 쉬며 바닥이 난 열량도 보충한다.
서봉...칠성대에 올라보지만 산허리를 두른 운무때문에 조망은 꽝이다
빈의자에 앉아 쵸코바로 열량을 채우며 잠시 망중한을 즐긴다.
서봉에서 운장대 가는 철계단 길...좌측으로 사람이 앉은 곳이 칠성대다
상여바위 ... 서봉이나 운장대에서 보았을땐 이해를 못했는데 동봉가는 능선에서 보면
우측에 있는 바위가 앞 상여고 좌측 큰바위가 뒷상여 모습을 하고 있다.
운장대에서 같이 한 길가는 사람
운장산(1,126m)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정천면,부귀면과 완주군 동상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남과 북으로 떨어지는 빗물은 모두 금강으로 유입되고 서쪽으로 흘러드는 물은
만경강과 만난다. 금남정맥 최고봉으로 북두칠성 전설이 담겨있는 칠성대는
최고의 조망터며
오성대는 조선 중종때 성리학자 송익필이 은거하던 곳으로 전해진다.
운장산의 원래 이름도 주출산이었는데 송익필의 자를 따서 운장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서쪽은 칠성대, 동쪽은 삼장봉을 거느린 맏형인 중봉엔 운장대란 정상석이 서있고
예전엔 잡목에 가려 조망이 시원찮았는데 정상주위가 깨끗이 정리 되어있다.
서봉 오름길에 비하면 중봉이나 동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유순하다.
운장대 내림길 ...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동봉(삼장봉)
산죽지대가 이어지지만 보다시피 등로는 좋다
동봉 오름길
동봉에서 본 운장대(좌)와 칠성대(우)...착시 형상인지 모르지만 우측의 서봉이 더 높아 보인다
동봉(삼장봉)
삼장봉에서 첫 등산객을 만나 증거 사진을 한 장 남기고 칼크미재 내림
길로 들어서는데 이쪽은 급경사 북사면이라 등로가 빙판이 되어 있다.
들머리에 들어서기 전 배낭무게 때문에 챙겨온 아이젠을 차에 두고 왔는데...
어쩔 수없이 팔뚝만한 동아줄에 매달리고 스틱에 의지한 채 칼크미재로 내려선다.
각우목재라고도 불리는 칼크미재는 진안군 정천면과 주천면 내처사동을 연결하는
도로로 운일암 반일암 등과 연계해 자전거 동호인들도 많이 넘는 고개라고 한다.
칼크미재에서 1084봉 오름길은 초반부터 빡시게 시작되지만 등로는 양호한 편이다.
날씨가 많이 풀린 탓이지 시간이 지날수록 몸으로 느끼는 체감 온도가 올라가다 보니
갈증은 더 심해지고 상장봉 내림 길에 따온 고드름을 아예 입에 달고 걷고 또 걷는다.
어느 정도 고도가 회복된 듯 우측으로 고개를 돌리면 칼크미재로 올라오는 도로 마저도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힌다.
동봉 내림길인 북사면도 꽁꽁 얼어 있다
고드름 덕분에 식수 부족은 어느 정도 해결이 된다.
칼크미재(각우목재)
1084봉 오름길에 돌아본 동봉(삼장봉과) 칼크미재로 오르는 임도
1084봉
모진 겨울을 견디며 빛이 바랠 대로 바랜 키 작은 억새들만 무성할 뿐
조망을 간섭할 장애물은 없다. 정상엔 허물어진 돌무더기들이 흩어져 있어
옛 성터가 아니었을까 짐작이 가고 억새가 무성한 묵은 무덤이 산정을 지키고 있다.
풍수상 어떤 명당이기에 천고지가 넘는 산정에 조상을 모셨는지는 모르지만
상여를 메고 온 상두꾼들의 고생은 불문가지고 날이 갈수록 퇴색되어가는 유교사상에
이곳을 찾을 후손은 또 얼마나 될지도 모를 일이다.
당장 묘지를 보더라도 관리가 되지 않는 것 같다.
명당에 눕는 기분은 어떨지 이름 모를 고인의 옆자리에 누워 지친 다리를
잠시 쉬어본다. 내일 전국에 비가 온다는 말이 무색할 만큼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이다.
일 년 삼백육십오일 늘 하늘이 열려 있지만 바쁜 세사에 쫓겨
이처럼 한가롭게 하늘을 쳐다볼 수 있는 날이 과연 며칠이나 될지...
자식들이 커가고 나이가 들어 갈수록 인생사 별게 아니라는 생각은 들지만
질긴 생의 굴레를 벗어던지지 못함은
나 또한 어쩔 수 없는 나약한 인간 속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복두봉 가는 길은 굴곡이 거의 없는 부드러운 능선으로 이어진다.
키 큰 산죽지대가 능선과 같이하는데 등로 정비를 한 듯 별 저항이 없고
지금까지 지나온 길에 비하면 그야말로 신작로 같은 산길이다.
휴양림 가는 임도를 건너 바위 길을 잠시 오르면 복두봉 정상이다.
홀로 온 산님이 점심을 먹고 있는데 인사를 건네도 무표정한 얼굴로 젓가락질만
하고 있다. 행색을 보고는 먹던 밥까지 뺏길까봐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아무리 잠깐 스쳐가는 인연이지만 그렇게 인색할 것까지야...
1084봉에서 본 복두봉(좌)와 구봉산(우)
정상에 있는 무명묘지에 억새만 무성하다
운장산자연휴양림 가는길에서 본 복두봉
복두봉 가는 길에 돌아본 1084봉과 중앙에 빼꼼히 머리는 내미는 것이 동봉,우측 끝이 서봉
복두봉에서 서울님께 부탁 호남알프스 인증샷도 한방...
복두산에서 본 구봉산(중)과 좌로 연봉들의 모습까지 시야에 잡힌다
복두봉
구봉산 천왕봉을 향해 엎드려 머리를 조아린 형태라 伏頭峰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하고 암봉으로 이루어진 이곳의 조망도 일망무제다.
서쪽으로는 지나온 1084봉과 운장산 그리고 금남의 산줄기들이
북으로 고개를 돌리면 운일암 반일암 협곡을 감싸고 있는 명도봉이 조망되고
동으로는 가야할 구봉산 천왕봉과 이어지는 암봉들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서울에서 오셨다는 산님과 잠시 담소를 나누고 복두봉을 내려와 구봉산으로 향한다.
능선 우측으로 드넓은 억새지대가 펼쳐지는데 옛 화전민들이 농장을 일구었다는 민듬분지고
임도를 따라 내려서는 갈거계곡은 골이 깊고 숲이 울창해
여름철 피서지로도 손색이 없다고 한다.
호남알프스 들머리 종남산과 서방산 서쪽으로 펼쳐졌던 평야지대와
평균고도 2~300m대의 진안고원 주위로는 높은 산이 없기 때문에
연석,운장,복두,구봉산으로 이어지는 천 미터대의 산줄기가
호남의 산야를 한눈에 굽어 볼 수 있고 그 자락에는 명소들이 많아
가히 호남알프스라 불릴 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순하게 남동진 하던 능선이 984봉 직전에서 급히 9시 방향으로 꺾이며 떨어지는데
마루금이 아니라 계곡으로 잘못 들어선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마루금의 흔적이 미미하다.
그러나 눈이 녹아 흘러내린 물이 곳곳에 고여 있는 것으로 보아 갈수기만 아니면
식수를 구할 수 있을 것 같고 이정목이 서 있는 능선 안부에서 잠시 호흡을 고른 뒤
마지막 구봉산 오름을 이어간다.
30여분 빡센 오름길이 이어지더니 드디어 구봉산 정상에 선다.
구봉산 가는 길
구봉산 오름 전 안부 계곡...식수로 하기엔???
구봉산 천왕봉
구봉능선
구봉능선과 용담호
용담댐...전뷱 진안군 용담면에 있는 다목점댐으로 2001년 완공되어 전주,진안,익산의 식수원과 농업용수가
되어왔는데 금산에 식수를 끌어다 쓰면서 수자원을 둘러산 지자체간의 물분쟁이 전라도와 충청도까지
확산되고 있다는 진안택시기사의 설명을 산행후 듣게 된다.
철계단을 오르 내리는 8봉 우회길
구봉산
키 큰 잡목에 가려 복두봉에 비하면 조망은 시원찮지만 동쪽으로 트인
조망터에서 내려다 보는 암봉들과 용담호의 풍경은 가히 압권이다.
덕유산까지 시야에 잡힌다는 이곳이지만 연무로 가시거리가 짧은 게 아쉽지만
지금 그런 것을 논 할 처지는 아니다.
몇몇 등산객들이 거친 호흡을 토해내며 구봉능선 쪽에서 올라오는데
발통마다 아이젠이 채워져 있다.
등로 상태를 묻자 아이젠 없이는 위험하니 내려가지 말라는데
없는 아이젠이 하늘에서 떨어질 리도 만무하고
그렇다고 날개 달린 짐승도 아니니 날아 갈수도 없는 노릇이다.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몸으로 때울 수밖에...
구봉능선 내림 길은 그야말로 급경사에다 협곡이라 바위틈에서
사시사철 물이 흘러내린다고 하는데 그 것이 결빙이 되어 빙판이 되어 있다.
이곳도 팔뚝만한 로프가 설치되어 있지만 배낭 무게와 내림 길이다보니
중심이 위로 쏠려 오름길 보다 더 진땀을 뺀다.
빼어난 암봉이 다 그러하듯 우회로와 철계단을 오르내리는 횟수도
봉우리 수만큼 늘어가고 결국 몸을 빙판에 몇 번을 패댕이 친 뒤에야
마지막 봉우리인 1봉에 다다른다.
1봉 아래는 직벽의 가마득한 낭떠러지다.
오던 길을 되돌아가 우측 사면으로 양명주차장으로 내려서며
호남알프스종주도 마침내 마침표를 찍는다.
이어지는 암봉으로 내림길도 만만치가 않다.
5봉
6봉을 내려서며... 앞이 5봉
1봉에서 내려다 본 양명주차장
구봉산을 내려서며
어느새 구봉산도 역광의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가는 산객을 배웅을 한다.
양명주차장 관광 안내도 뒤로 보이는 1봉의 모습
양명교를 건너며 이틀간 찌든 땀을 대충 씻어내고 주차장에 도착을 하니
호출한 진안택시가 도착해 있다. 진안군 주천면인 이곳도 대중교통편은 좋지 않다.
하루 4회 전주로 가는 차편이 있다고 하는데 차시간은 알아보지 못했고
택시는 송광사까지 30여분 거리에 4만원을 요구한다.
할증요금을 적용했는지는 몰라도 미터기에 찍힌 요금을 보니 얼추 비슷하다.
호남알프스 종주는 송광사에서 양명까지 도상 약 42km정도의 산길이다.
종주를 나서기 전 자료를 검색하다보니 근래에 절연재를 지나 고남재까지
거리를 연장한 산길도 볼 수 있다.
나 역시 종주 준비를 하면서 고남재까지가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으나 지도를
구입하고 나서야 고남재로 그어진 마루금이 구봉능선을 벗어나 있음을 알게 된다.
호남알프스라 명명된 이 산길은 수 십 개의 유무명의 봉우리들을 거쳐 오면서
보았듯이 구봉능선이 호남알프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는 것을
직접 체험을 하며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처음엔 구봉능선으로 되어 있던 코스를 고남재로 돌린 이유를
명확하게 알 수는 없다. 단지 거리를 늘리기 위해 구봉능선을 배제하고
고남재를 택했는지 산줄기의 맥을 쫓아갔는지도 모른다.
혹 맥을 쫓았다면 고남재를 지나서 용담호에 산줄기가 소멸되는 입수처까지
이어지는 것이 당연한데 그런 것도 아니다.
거두절미하고 호남알프스종주가 아름다운 호남알프스를 가장 효과적으로
둘러보는 것이 목적이지 대간이나 정맥처럼 맥을 이어가는 산길은 아니기 때문에
호남알프스 최고의 풍광을 자랑하는 구봉능선을 외면하면서까지
등로를 돌릴 이유는 없다는 객관적인 생각이다.
호남알프스 산정에서 조망된다던 마이산 그러나 가스 때문에 눈에 담질 못했는데
귀울하면서 들런 진안휴게소에 멋진 모습을 보여준다.
이번 호남알프스 종주를 통해 지난 정맥 종주를 하면서 둘러보지 못했던
호남의 산줄기를 조금이나마 눈에 담을 시간이 되어 행복했다.
이틀이란 짧은 시간에 호남알프스의 진면목을 다 본다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명의 송광사와 서방산에서 굽어보던 용진평야,
역사의 흔적을 더듬어 본 위봉산성 길,
보석처럼 빛났던 황조치의 밤하늘과 연석산 오름길에 본 해오름,
시시각각 색다른 풍광을 선사하던 운장산의 운무,
빙판이 된 내림 길에 혼줄이 났지만 기암괴석과 분재 전시장 같았던
구봉산의 모습들이 후기를 쓰는 이 순간에도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쥔을 잘못 만나 늘 천덕꾸러기 같이 고생하는 내 두 다리
잠시 말썽을 부렸지만 마지막까지 잘 견뎌줘 고마울 따름이고 발걸음을
같이한 산 벗 도인에게도 함께한 시간 즐거웠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언제 다시 찾을지 모를 호남알프스지만 연석산에서 북으로 뻗쳐간 멋진 능선과
이번 걸음에도 연이 닿지 않았던 운일암 반일암등은 다시 후일을 기약하면서
호남알프스 종주 뒷이야기를 마칠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