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일시: 2007년 7월 18일~7월21일
조사지역: 중국 운남성 르스완 나시족 마을
주요내용: 주거환경
조 사 자: 양 향 진
7월18일 (수)
새벽에 일찍 일어나 뒤척거리는데 미리 기다리고 있었던 방문 노크소리가 정겹게 들렸다.
이것저것들을 정리하고 아침식사는 우유, 빵, 국수, 쌀죽, 땅콩볶음 찐 계란에 차 한 잔을
마신 후 출발이다.
차마고도를 찝차를 타고 달린다. 구절양장의 구불구불한 가파른 길들이 아스라히 열리고 탁류의 장강 줄기는 깊은 계곡을 감돈다. 능선 야트막한 언덕배기들엔 봄꽃의 무리들이 즐비하고 고갯마루엔 물물교환의 작은 시장이 형성되곤 한다. 도로변으로 펼쳐지는 가지런한 이랑들엔 파릇한 기운들 감돌고 키 작은 고산의 나무들과 붉은빛갈의 황토는 군데군데 자리하고 있는 황토벽돌로 지은 이층집들의 군락과 조화롭게 자리해 주거환경이 마치 자연과 하나 되게 조성된 듯 느껴진다.
좁은 도로에 운전이 과격한지라 도로 옆 군데군데엔 멈춰 있는 사고차량들이 눈에 많이 뛴다. 가옥 근처엔 봉긋이 솟아있는 두엄자리들이 많고 야트막한 산비탈엔 돌비석의 무덤들이 즐비하다. 호도협을 흘러내린 장강은 탁류로 꿈틀거린다. 강둑에는 늘어진 버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가옥들 근처엔 대나무들의 군락도 보인다.
해발 3700미터의 호도협을 통과하고 고봉준령을 돌아가니 군데군데엔 굴러 떨어진 토사무더기들이 도로를 막고 있다. 드디어 동파촌으로 들어선다. 고산지대의 말들과 소들은 한가로이 방목된 채로 풀을 뜯고 꼭 한우 닮은 시앙치 들도 눈에 띈다. 도로를 가로질러 어슬렁거리는 닭들과 돼지들이 마치 사파리를 지나는 듯한 분위기를 느끼게 해준다. 언덕배기들엔 황토로 빚은 옹구막들과 가마들이 눈에 띄고 돌 부스러기들을 갈아서 뭔가를 채취 하는듯한 기계장치들과 작은 토굴들이 산재한다. 곳곳엔 과일 망태기들을 가지고 행상을 하는 원주민들이 간혹 눈에 띈다.
점심은 버섯요리와 오골계, 닭, 두부 계란 등등.. 밥알은 후 하고 불면 날아갈 것 같다.
현재 동파촌은 조성 중에 있다. 내년 2월경에 큰 축제를 벌일 예정이다.
백석대에 오르는데 말 잔등에 타고 오르는 이들도 있고 가마꾼들을 이용하는 이들도 있었는데 그냥 훌쩍 뛰어서 단숨에 올라보니 정상에 꼬마아이들이 놀고 있다. 고추불알을 드러낸 채로 석회질의 물웅덩이에 바로 뛰어드는 아이들이 있으며 부끄러운 듯 손으로 가리며 얼른 피하는 아이들도 있다. 어떤 아이는 나신의 허리주변으로 노끈에 PET음료수 병들을 묶어서 튜브를 대신한듯한 장치를 한 채 헤엄을 치는 모습도 보인다. 석회수들이 흐르면서 생성된 물결처럼 이랑진 회색(백색)빛의 물이랑들이 가지런하다. 백석대 앞의 버스정류장 옆 숙소에 짐을 풀고는 곰팡이 , 해충들이 들끓는 습한 목조건물에 여장을 푼다. 숙소에서 나와 현재 조성되고 잇는 동파촌에서 저녁식사를 하면서 동파들이 마시는 술 한 잔을 청 했는데 청주 같기도 하고 진도 홍주나 밀양소주 같기도 한 약 35~40도의 도수쯤 되는 술이다.
저녁식사를 마치고는 동파촌의 동파 집에서 모닥불 피워놓고 인터뷰에 들어간다. 동파촌의 사무실에서 모닥불을 둘러앉아 인터뷰를 마치고 기념 촬영을 하고 밖으로 나오니 칠흑의 밤이다. 랜턴불로 길을 더듬어 숙소인 백석대 산장에 도착 샤워를 하는데 샤워기 꼭지에 석회질들이 녹아내려 구멍이 막혀 있는지라 샤워가 되지 않는다. 목조건물에 답답한 실내공기와 해충들이 습한 밤을 뒤척이게 한다. 새벽 두시쯤 잠자리에 든다.
7월19일 (목)
미리 잠에서 깨어 산책길을 나선다. 습한 아침공기에 산책을 하는데 백석대 위 옥룡설산 자락으로 운무가 자리한다. 석산을 타고 내려오는 물소리가 정겹고 상쾌하다. 고산지대에 자리한 마을의 비온 뒤 개인 아침정서이다. 간단한 아침을 마치고 백치현에 있는 시장에 들른다. 아직도 길거리 노상의 나무탁자위에 생고기를 내어놓고 파는 모습들이 보인다. 공용화장실 밖에 까지 꿈틀거리며 기어 나온 하얗거나 누런 굼벵이 벌레들이 걸음을 옮기지 못하게 길을 막아선다. 덕분에 휘 돌아서 급한 볼일을 해결할 수밖에 없었음은 감추지 못할 진실이 되고 만다.
르스완 마을로 향한다. 마을 역사 3000년이라는 미개의 마을이다. 예전엔 부모가 정해준 짝을 만나 결혼을 해야했지만 요즘은 부모들 말을 잘 듣지 않아 서로들 마음에 드는 외지의 짝들을 찾아 결혼한다고 한다.
집 앞 해치꼬랑에는 아직도 삘건 실거시랭이들이 우글거리고 우기에 들어 질척거리는 바닥은 온통 습한 기운들이다. 기르는 염소는 머리에서 목까지만 검은 털이고 목부터 꼬리까지는 온통 하얀색의 긴 털로 덮였다. 돼지 , 닭, 소 등은 염소와 더불어 놓아먹이기도 하고 가두어 먹이기도 한다. 건물의 이층에 건조된 옥수수, 벼, 보리, 밀 등은 탈곡되면서 아래층에 있는 가축사육장으로 알곡만 제외하고는 쭉정이 및 부스러기들이 나무틈새로 흘러내려 가축의 먹이가 되도록 설계되어있다. 마당에서 건조하면 잦은 비로 알곡이 젖을 수 있으나 이층에서는 지붕을 받침삼아 비를 피할 수 있고 통풍성이 좋으면 풀어놓아 키우는 가축이나 다른 야생 짐승들로부터 피해를 보지 않는다.
집안의 내부구조는 맨 아랫바닥에서 선채로 걸린 솟에 요리를 하는데 솟 위로는 가로지르는 통나무 선반이 있다. 솟을 가운데 두고 한쪽은 마루침상, 다른 한쪽은 입식주방이 있다.
침상에서 통나무 벽을 등지고 우축에는 가택신을 모시고 향을 사른다. 좌측에는 벽을 만들어 외부 출입구와 구분을 하였다. 마루 침상위에는 통나무를 길게 걸어 옷가지며 여러 생활용품들을 걸어서 보관한다.
입식주방은 벽난로처럼 아래서 불을 지피고 위에는 가마솟을 얹어놓았으며 지붕을 통해 굴뚝이 연결되어 있다. 침상을 등지고 좌측 솟단지를 넘어 벽으로 선반을 길게 만들어 물품들을 수납하고 침상 반대편도 벽에다 생활도구들을 걸어 놓을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옆쪽에 다른 방을 두어 활용하고 있다. 설거지는 주로 물이 있는 외부 마당에서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솟에 물을 끓여서 솟에서 바로 해결하기도 한다.
불을 피우는 솟 위의 지붕은 통풍구를 두었으며 연기가 빠져나가고 채광의 효과도 있다. 요즘은 일부러 지붕 몇 곳을 투명하게 하기도 한다. 가옥의 측면이나 후면 혹은 외부에 크고 튼튼한 통나무나 널빤지를 모아 두었는데 이는 집을 수리하거나 새로운 집을 짓기 위해 보관하는 방식이다. 혹은 다른 건물 한 채에 지붕을 덮고 기둥을 세워 한꺼번에 보관하기도 한다.
바깥쪽 벽 나무 틈 사이로는 연장을 걸어 놓고 쟁기 등 의 농기구들을 보관한다.
지붕위엔 돌들을 얹어 바람에 날리는 것에 대비 하였고 울타리들은 얇고 좁은 널빤지들을 엮어서 가지런히 세운 것이다. 장작더미도 처마 밑에 두었는데 처마는 널빤지를 앞으로 쭈욱 늘어내어 짧게도 혹은 길게도 만든다. 외부에서 집으로 들어오는 대문의 문턱이나 마당에서 방으로 들어가는 문턱은 대체로 높으며 큰 통나무를 놓아 만든 것인데 오랜 세월 드나듦에 닳고 닳아 움푹하게 깍여 있는 모습이다.
돼지는 놓아먹이기도 하고 축사를 따로 만들어 문을 굳게 닫고 깜깜하게 하여 키우기도 하며 밥을 줄때만 여닫고 다른 때는 아예 폐쇄시킨다.
건물의 수평은 돌들을 쌓아서 맞췄으며 축사는 주로 낮고 습한 곳에 두었다. 상대적으로 사람이 기거하는 집은 높은 곳에 자리하거나 돌을 쌓아 높이 다진 후에 지었다.
새끼돼지에게는 옥수수 알갱이를 주기도 하고 돼지 밥은 주로 풀을 건조시켜 잘게 부수거나 곡식의 부스러기, 곡식을 털어낸 줄기, 곡식껍질, 곡식을 빻아낸 속 비늘 등을 물에 타서 나무로 된 여물통(구시)에 넣어주었다. 새끼돼지들과 암컷어미돼지는 방목하기도 하나 크고 사나운 수컷돼지들은 주로 어두운 곳에 가둬서 키운다. 길거리에 널려진 가축의 배설물들은 비가 오면서 분해되어 버린다.
르스완 마을의 전기는 약 8~9년 전쯤 들어왔으며 지금은 시간제로 밤에 들어와 아침에 차단된다.
입구의 대문은 주로 위에 지붕을 덮었으며 문턱도 자주 왕래하고 오래된 집일수록 많이 닳아있다. 건물 외부의 벽 (주로 골목 밖)에 틈이 많을 경우에는 흙이나 시멘트로 메꾼 흔적도 발견된다.
집안에 화장실은 따로 두지 않는다. 하지만 통나무 벽 사이에 문을 달지 않고 활용하고 있는 화장실 비슷한 공간을 확인하였다. 바닥에 큰 돌들을 놓고 널빤지를 가로질러 발판을 만들었다. 그 위로는 양쪽 건물의 지붕이 겹쳐 낙수가 되고 그 낙수된 물이 개방된 화장실의 돌 위로 떨어져 자연적으로 흘러가는데 윗지붕이 아랫지붕과 겹쳐 있어 직접 비를 맞지 않고 두 지붕의 물이 합해져서 수량이 늘어나 용변분해가 용이게 배치되어 있다. 그런 화장실은 주로 축사나 창고 옆에 있어 낮고 습하며 분해된 용변은 축사로 흘러들기도 한다.
혹은 화장실이 없는 경우에는 큰 나무 밑이나 노지에 그냥 일을 보는게 습관화 되어있다. 용변과 축사의 퇴적물들은 작게 만든 이랑 같은 수로로 유도해 옆 공터로 흘러들게 하며 그 공터에는 온갖 종류의 땅벌레들이 서식하며 유기물들을 분해하고 쌓여진 퇴적물들은 자연적으로 분해 발효되어 토양을 기름지게 한다.
건물 내부로 들어가면 일정한 공간을 비워두고 다시 댓돌을 놓은 높은 문턱이 나오는데 밖에서 안으로 들어갈수록 조금씩 높게 설계되어 있다.
나무 벽을 쌓을 때 가로와 세로가 서로 교차되는 지점을 서로 홈을 파서 엮어 놓았다. 지붕은 처마를 앞으로 내어 놓은 덕분에 빗물이 가지런하게 떨어져 바람이 세차게 불지 않는 한 건물 외벽을 적시지 않는다. 전신주도 나무로 세워 놓았는데 이는 통나무를 그대로 쓰거나 혹은 가옥을 지을 때 사용했던 나무들을 재활용한 것이다. 장작은 일정한 장소에서 패서 처마 밑에다 쌓아 놓았고 잔가지들도 일정한 길이로 잘라서 다발 짓거나 쌓아서 보관한다. 나무와 습기의 관계성, 통나무가 밖에서 습기를 머금고 안에서는 열을 가한 화덕의 모닥불이 건조시키고 하는 통풍과 대류가 용이한 집안의 구조이다. 즉 습기를 머금으면 나무가 불어나 빗물을 막아주고 건조시엔 틈이 벌어져 기통이 용이하게 설계된 구조이다.
마룻바닥에는 네모 구멍을 뚫어서 머금은 물을 뱉고 침도 뱉고 엎질러진 음식물들이나 찌꺼기들도 버린다. 그런데 그 구멍도 어른이 기거하는 자리 위주로 있는 것으로 확인 됬다.(그 구멍을 나시어로 “지피끄” 라 한다)
굵은 통나무는 깊은 산에서 어른들이 구해오며 농기구 및 생활용품으로 쓰는 대나무도 산에서 가져온다.
강우량은 7~8월에 가장 많고 춘절에는 눈이 많으며 바람은 9~10월에 많이 분다. 나무가 썩어서 기생하는 곤충들이 많으며 높은 문턱 덕분에 주변의 뱀이나 개구리는 집안으로 들어오지 못하지만 쥐는 많이 있다.
아들이 결혼을 해도 새집을 지어주지 못하면 같이 혼숙하는 주거형태이다. 집의 상속은 부모님을 모시는 아들이 받고 집을 사고팔지는 않는다. 또한 헌집을 두고 새집을 지어 이사 가더라도 헌집을 부수지 않고 그대로 둔 채로 이사를 간다.
전기는 저녁 7:20분쯤 들어오더니 11:00넘으니 다시 가버렸다. 전기가 끊긴 집안에는 모닥불의 조명이 아른거리고 청주나 막걸리 비슷한 전통주 한잔에 뒷정리에 든다. 잔솔가지를 꺽어 불을 당긴 후 빗길을 밝혀 노천 화장실로 총총히 간다.
새로 두시쯤 잠자리에 든다.
7월20일 (금)
다섯 시쯤 눈을 뜨니 천정으로 빛줄기가 들어온다.
채광을 위해 만들어 놓은 “구쾌”라는 장치로 환한 여명이 깃들어 온다. 밖으로 나와서 서성거리다 옥수수 밭으로 향해 쭈그리고 앉는다. 신발엔 질척거리는 흙무더기들로 주체하기 힘든 무게감이 느껴진다.
한참을 처마 밑에서 빗소리의 향연과 운무 뒤덮인 아홉 개의 산 봉오리의 가운데 자리한 분지위에서 아침정서에 넋을 놓는다.
그런다 뭔가를 발견했다. 앞 집 노파의 움직임을 눈으로 쫒아 집의 한 귀퉁이에서 그냥 편하게 용변을 해결하는 모습을 눈에 담는다. 작은 돌 위에 발을 얹고는 그냥 간단히 해결하는 모습에 얼른 눈길을 접는다.
집에서 기르는 가축으로는 돼지, 닭, 양, 소, 말, 개 등이 있으며 숫소와 말은 쟁기질을 부리기 위해 키운다.
수도는 2004년 정도에 들어 왔으며 그 전에는 깊은 산의 맑은 물을 길어다 썼는데 “지칸드”, “신스크”, “르카타”, “웰러카” 라 불리는 샘이 있고 그 샘은 목욕할 때는 쓰지 않는 맑은 물 이었다.
화장실이 없는 이유는 풍습적으로 지속되기도 하지만 인분을 곡물에 주면 해가 된다 생각하여 일부러 인분을 저장하는 화장실을 만들지 않았다고도 한다.
개의 먹이는 사람이 남긴 음식을 주로 주며 닭의 먹이는 벌레, 곡물, 쌀 등을 준다.
사람의 배설물은 돼지나 개가 먹기도 하지만 일부러 먹이지는 않는다. 개는 집을 지키는 용도로 쓰기 때문에 개고기는 먹지 않는다.
7월21일(토)
오전 내내 줄자로 재어가며 건물의 평면도를 만든다.
집으로 들어가는 큰 대문이 없는 집에는 널빤지로 대문을 대신한다. 널빤지로 가로지른 갯수가 다 열면 개방, 하나를 가로지르면 집안에 사람이 있을수도 없을 수도 ,둘을 가로지르면 집안에 사람이 없음을 표시한다.
마지막 날인지라 다들 늦은 저녁시간까지 분주히 임한다. 빈대인지 벼룩인지가 심하게 깨물어 다들 긁적거리고 난리이다. 약을 바르고 소금을 바르고 난리들인데 그냥 참아버린다. 이런 저런 뒷정리를 마치고 새벽 두시 넘어 약간은 찌뿌듯한 기분으로 애써 잠을 청해 보지만 빗소리가 되려 잠을 쫒아 버린다. 온몸이 가렵다.
7월22일(일)
새벽 일찍 일어나 마당을 서성거리다 머리 감고 사색하고 하다가 선채로 소변을 보는 앞집 노파를 발견한다. 마지막 아침을 들고는 기념촬영에 임한다. 철수 준비에 짐들을 정리하는데 이러 저러한 작은 돌발들이 터진다.(모포 장수 파악 착오 변상 조치 등)
비는 연이어 계속 내리고 산은 온통 안개에 젖어 휘뿌옇게 달려든다. 호도협 가는 길들이 산사태로 막혀 한참을 돌아서 샹그렐라에 도착 점심 먹고 부랴부랴 또 달린다. 한참을 그렇게 달려 려강에 도착 몇일 전 묵었던 호텔에 여장을 풀고 샤워를 하는데 빈대에 물린 자국이 한 100여 군데....
저녁식사를 마치고 총정리에 들어간다.
흐르는 물에 제피나뭇가지를 꺽어 놓아 더러운 해충들을 무력화 시키는 원주민들의 삶과 따로 화장실을 만들지 않고 자연과의 하나됨을 실천하는 그들의 여유...
(우기에 접어들어 하수구의 수량이 풍부해지면 세균과 해충들이 물을 역류하여 집안으로 올라올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흐르는 물에다 살균과 소독의 기능을 가진 제피나무의 가지를 끊어다 적셔놓았다.)
외지인들이 다녀간 흔적인 여러 부스러기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저기로 버려져 있는데 이건 아니다 싶다. 그네들의 삶의 터에 우리는 컵라면용기, 비닐봉지, 사탕봉지, 커피봉지 등등을 남기고 왔다.
치약거품과 비누거품, 선크림이며 여러 가지 화장품 바른 얼굴들을 씻은 물들이 그들의 하수구를 오염시키게 되면 그들 하수구에 우글거리는 빨간 실지렁이들을 더 이상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주머니에서 건네준 사탕 한 봉지가 그들의 치아를 더욱 급속도로 썩게 만들것이고 찰칵거리는 카메라와 디지털 장비의 전자파는 그들의 맑은 기운들을 흔들어 놓을 수 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