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사랑…나의 베트남(1)
호치민(사이공)시
내가 베트남이라는 나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것은 중학교때 집안 친척 중 월남전과 관련된 분이 계셨고, 당시 우리 세대(현재 30대초반 세대)까지만 해도 반공교육을 강도있게 받았었고..
우리나라 역사로는 해외에 파병된 두번째의 큰 사건이었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지금 갔다온 이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30년전 미국과 한국의 철수가 시작된 시기였다
일단은 그 나라에 여행을 가기 전에 일주일 정도 준비를 했다.
현지 정보 수집, 일정계획, 그곳에 갔을 때 필수적인 기초 언어들
(영어를 모르는 사람과 만났을 경우도 있었지만… 어떤 나라를 여행 갈 때는
먼저 그 나라에 대해 최소한은 알고 가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곳에 가기 전에 이미 다녀왔던 사람들에게 들었던 내용들은 좋지 않은 것들이 많았다.
그곳 사람들의 부정직성, 외국인에 대한 바가지, 날치기, 강력범죄, 사회주의 국가의
엄한 법들..
우리는 절대 당하지 말아야지…했으면서도 결국 가서 그걸 겪고 말았다.
일정은 출국하는 그 때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베트남 돈
(베트남돈은 단위가 ‘동’이다 한국돈 ‘1000원’이 월남돈으로는 대충 ‘11200동’ 정도이다.)
으로 환전하기위해 인천공항 환전소를 찾았을 때 직원 왈…
“베트남 돈(DONG)은 없습니다.”
국제통화가 아니기 때문에 국내에는 없어서 할 수 없이 달러로 바꾸어 갔는데 그게 화근이 되어버렸다.
출발당시 3월 7일….. 한국은 늦겨울..영상 3도
밤 11시 반에 도착한 이곳은 섭씨 33도..열대 몬순기후 중 가장 더워지기 시작 할 때였고….
공항에 내리자 숨막히는 더위가 겨울옷을 입고있던 우리를 에워쌌다.
늦은 시간이므로 환전도 못했다…..이 곳 사정도 잘 몰랐고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club.nate.com%2Fcindex%2F872%2Fpigworld%2F17828464%2F1%2Fimage002%5B20030331133748%5D.jpg)
호치민(사이공)의 '탄 손 누트' 공항
이 곳은 1960년 미군 공군기지로 만들어졌다가 후에 공항으로 이용되었다.
그걸 아는 공항의 택시들은 바가지를 씌울려고 안달이었다.
그렇지만 외삼촌은 월남전때 와 본적이 있어 호치민(사이공)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택시기사가 12달러라고 부르는 것을 7달러까지 깎고 번화가 쪽에서 조금 떨어진
호텔에 다다랐는데…
이 기사는 잔돈이 없다는 이유로 거스름돈을 안 내줄려고 했다(있으면서도 안 내 줄
생각이었다).
할 수 없이 호텔 카운터에 가서 50달러 지페를 잔돈으로 바꾸어 주고 나니 이번에는
호텔 직원이 트집을 잡는 것이었다.
내용인 즉 내가 준 지폐가 가짜라는 거였다.
사인펜으로 지폐에 그어보고는 색깔이 좀 틀리게 나오니까 이건 가짜 지페고
자기가 준 잔돈을 모두 다시 돌려 달라는 거였다.
물론 그가 다시 내민 지폐는 내가 주었던 지폐가 아니었다.
나는 카운터 옆에 있던 지폐 중 하나를 들쳐내며 내가 가져왔던건 이건데 무슨소리를
하냐고 따졌다.
(돈에 주인이름을 써 놓는 것이 아니기에 이런경우에는 사실여부보다는 끝까지 우기는 넘이 이긴다)
나는 이런인간들과 실랑이를 하는 것은 아무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우리가 지금
필요한 건 방이고 다시 어디로 나가서 헤매는 것보다 그냥 손해 좀 보고 내일을 기약(?)하며 하룻밤만 지내자고 생각하고 돈을 덤탱이로 주며 여권을 주고 방을 잡았다.
그들이 우리 여권을 보고 한국인이라는걸 알게되자 이내 태도가 돌변하기 시작했다.
없던 호의적인 태도는 물론이고 돈주고 써야돼는 인터넷까지 무료로 쓰게 해주며
늦은 시간인데도 퇴근 안 하고 내가 다 쓸대까지 옆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 등…
지나치게 호의적이면서 돈가지고 못살게 굴었던 종전의 모습은 어디 갔는지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는데 이 호텔 주인이 한국인과 대만인이었다는 것이고
그 직원들은 처음에 우리가 일본인으로 보였기에 돈 가지고 못살게 굴고 실랑이를 벌였는데…
(주인이 한국인이니 일본인한테 잘 해 줄 리 없을 테니 종업원도 막 대할 수 있었을거다….)
막상 한국인이라는걸 알자 나중에라도 말이 나오게 되면 자기들이 모가지 될까봐 그렇게 돌변했던 거였다.
우리가 일본사람들이었다면 당할만큼 당했을걸 생각하면서 우리는 엄청 웃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club.nate.com%2Fcindex%2F872%2Fpigworld%2F17828464%2F1%2Fimage004%5B20030331133748%5D.jpg)
월남지폐 …가운데 월남말로 쓴 것은 ‘하이 짬 동’이라 읽는데 하이는 2, 짬은 100을 뜻한다. 말 그대로 200동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화페는 없다. 아마도 만들 기술이 없어서가 아닌가 싶고
월남돈은 작은 돈에서 큰돈까지 모두 저렇게 한결같이 호치민의 얼굴이 들어 있었다
-------------------------------------------------------------------------
다음날 우리는 호치민(사이공) 시내로 나갔다.
사이공은 베트남에서 가장 번성한 도시지만 물론 서울이나 부산과는 비교도 안 되었다.
나와 외삼촌은 여기오기까지 ‘베트남’하면 사람들이 ‘농루(삿갓처럼 생긴 모자)’ 를 쓰고 여자들은 하얀 ‘아오자이’를 입고, 시내에는 자전거 물결이 넘치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 관념은 모두 허물어지고 말았다.
자전거는 모두 모터싸이클로 바귀어 있었고, 농루는 일반 천모자로 바뀌어 있었고
조용한 길들은 모터사이클에서 나오는 심한 소음들과 매연으로 오염되고 신호등이 없는 교차로들,
서로 지나가려는 오토바이들….길을 건너려 하면 굉음을 내며 스쳐가는 오토바이들…
쓸데없이 울려대는 자동차 경적 ..그 소음들은 우리의 귀를 멍하게 만들고 목에 핏대를 올리며 말하게 만들었으며
걸어다니면 10000동에 오토바이 타라고 호객행위하는 머스마들,
(이런부류들은 얼마나 저질한지 돈을 받아놓고도 안받았다고 하질 않나,
10000동 불러놓고 나중에 20000동이라 그랬다고 하질 않나,
행선지를 말해주면 엉뚱한 곳으로 빙빙 돌아놓고 40000동 달라고 바가지를 씌우질 않나,
그러면서 내국인들한테는 5000동 밖에 안 받는다,
그래서 그 말듣고 난 택시만 탔는데…그나마 났다고 생각한 이 넘들 중에서도
그 수준의 인간들이 적지 않았던 것 같다.
마치 우리나라의 7, 80년대 세태를 여기서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고 할까….)
밤에는 5만동(약 3.5달라)에 호텔가자고 오토바이타고 졸졸따라다니는 화장발의 여자들
(참고로 현재 공산월남에는 마약과, 매춘이 법으로 금지되어있고 남녀가 호텔이나 여관에서 한 방에서 잘려면 결흔증명서가 있어야 된다. 그래서 방따로 자야된다.
그러면 방 두개 잡아놓고 자면 되겠지?….그거 쉽지않다.
10호 감시체제라…누가 범법을 하는걸 앞집, 옆집은 물론 측근끼리도 감시하고 통보하게끔 사람들이 교육되어있어 보고도, 알고도 후에 말을 안 하면 엄청난 불이익을 당한다.
만약 적발되면 외국인은 추방되고 현지 남자나 여자는 징역2년 이상의 실형을 받는다.
그래서인지 정조관념하나는 잘 된 여자들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그런 것들이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club.nate.com%2Fcindex%2F872%2Fpigworld%2F17828464%2F1%2Fimage008%5B20030331133748%5D.jpg)
사이공 시내의 모습……….우리가 자동차를 타는 비율만큼 오토바이를 탄다. 출근하는 사이공 직장인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club.nate.com%2Fcindex%2F872%2Fpigworld%2F17828464%2F1%2Fimage010%5B20030331133748%5D.jpg)
서울의 종로, 세종로 정도 되는 사이공 동코이가 에 위치한 렉스호텔(가로등 뒤에 보이는 건물)
이 건물은 지은지 100년이 넘었고 외삼촌도 30여년 전 여기와서 월남차인 ‘늑다’
를 마신 적이 있다고 한다
이곳 지하 호텔 나이트는 사이공에서 제일 물이 좋다는 곳이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club.nate.com%2Fcindex%2F872%2Fpigworld%2F17828464%2F1%2Fimage012%5B20030331133748%5D.jpg)
호텔 바로 반대편에 과거 자유월남정부의 국회의사당이었다고 하는 건물, 현재는 오페라 극장으로 쓰이고 있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club.nate.com%2Fcindex%2F872%2Fpigworld%2F17828464%2F1%2Fimage014%5B20030331133748%5D.jpg)
시내의 가로수들은 이렇게 높이가 몇십미터되는 것들이 많았다.
열대몬순기후라 온대보다도 성장하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리라…
가까운 곳에 위치한 과거 자유월남정부의 독립궁 이 곳은 73년 고딘티엔 대통령의 사임,
75년 4월 17일 월맹군의 점령….
자유월남 패망의 한이 서려있는 곳이다.
현재는 호치민 기념 박물관으로 되어 관광객들이 찾는 곳으로 바뀌었다.
근처에는 전쟁박물관이 있었는데 이곳은 미군과 한국군에 의해 잔인하게 죽은 양민들의 모습 잔인하게 죽이는 장면의 사진들도 많이 걸려있었으나 91년 한국과 재 수교하면서 그런 사진들을 다 없앴다고 한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club.nate.com%2Fcindex%2F872%2Fpigworld%2F17828464%2F1%2Fimage022%5B20030331133748%5D.jpg)
당시의 상황으로 복원한 대통령 집무실, 영빈관…
가구나 인테리어의 풍이 70년대 스타일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내가 코흘릴 때 아버지따라 우리나라 정부기관 같은 곳에 따라갔을 때
보았던 그 느낌이 그대로 있었다
밤에 찍은 중앙우체국 건물…프랑스 식민지 시절 지어진 것으로
이 밖에도 대형성당, 법원, 재판소, 현재의 공산당 청사, 그 때의 양식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