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ur de Mont Blanc / 뚜르드 몽블랑 허걱랠리 완승기 본 투어는 한국인 팀으로 최초 TMB 라이딩을 완주한 기록입니다. 인원: 최영규, 조원장, 임돱熾? 허긍열 때 : July 15-20 2005 기획:최영규,임덕용 글: 조원장 촬영및 안내: 허긍열 편집: 도상집 |
사진설명 위: 조원장, 허긍열, 최영규, 임덕용 아래: 샤삐우(Chapieux) 언덕의 노란 들꽃들 Tour de Mont Blanc/뚜르드 몽블랑 허걱랠리 완승기 뚜루 드 몽블랑 기행 1부 글: 조 원 장 누구 하루에 타이어 4번 펑크나 보신 분 있나요? 내가 그랬습니다. 그것도 어제 저녁 7시부터 오늘 아침 8시까지 딱 13시간 동안 타이어가 4번이 펑크가 났습니다. 이번 주에만 6번 펑크가 났는데 이게 왠 조화인지, 몽블랑에 가지 말라는 건지, 아니면 가서 당할 액땜을 전부 여기서 하는 건지… 이번 주에만 6번이 펑크가 났습니다. 내가 지난 6년간 낸 펑크보다 많은 숫자입니다. 앞타이어 2번, 뒷타이어 4번!!! 더구나 제 타이어는 tubeless 타이어 입니다. 얘기는 이렇습니다. 내가 작년 초가을 탄천변 잔차도로가 한강변 잔차도로와 연결된 이후 분당 집에서부터 광장동사무실까지 간간히 잔차로 출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29키로를 출퇴근 하는데 MTB 타이어가 너무 무거운 듯 하여 꾀를 내 평평한 도로용타이어로 바꾸어 타고 다녔습니다. 최영규군의 꼬임에 몽블랑 행을 결정한 이 후 잔차 출퇴근 회수를 늘리기 시작했고 드디어 이번 주부터는 타이어도 원래대로 MTB용으로 바꾸고 30리터짜리 몽벨 배낭에 원정시 지참해야 하는 용품들인 레인댄서 우비, 스트래치 두툼한 잔차바지, 제로포인트 두툼한 상의, 침낭, 산악용 내의류, 양말등 온갖 장비를 꾸겨넣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7월 4일 월요일 부랴부랴 일을 마치고 저녁 7시 사무실 근처의 헬쓰클럽에서 옷을 갈아 입고 언덕길을 정말 조심스럽게 내려왔지요. 2주전 서둘러 출근하느라 브레이크 세팅하는 것을 깜빡잊고 유유히 집 앞에서 내리막 라이딩을 하다 와장창하여 팔, 다리 4무릎을 모두 아스팔트로 무자비하게 갈았기 때문에 일단 잔차를 새로 셋팅한 후의 내리막에서는 다리를 달달떨면서 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거기다 예전에 쇄골 나간 것이 항상 머리속에 맴돌기도 하고… 그런데 내리막을 지나 광진교를 건너 한강변으로 내려가는 순간 피시식하고 뒷타이어가 가라앉는 거였습니다. 콘크리트트 경사로였었는데 속도를냈으면 이번엔 팔다리를 콘크리트에 갈았을 겁니다. 이게 첫번째 펑크. 타이어 떼워 본지도 오래되었고 귀찮기도 하고 또 하필 Zapal 펌프를 차에 두고 왔거든요. 마침 미국에서 라이센스 받았다는 영규네 미케닉하는 친구가 월요일 낮에 로드용타이어를 튜브리스 MTB용으로 바꿔주었었기 때문에 그 친구에게 구원을 요청하였습니다. 천호동사거리에서 접선을 하고 튜브를 새것으로 교체 하니 벌써 8시 반이 넘어 가더라구요. 김밥 두줄로 떼웠습니다. 다음 다음날 아침 수요일 다시 잔차로 출근하였고 퇴근도 잔차로 하려고 헬쓰에서 야하게 자전거복장으로 옷을 갈아입고 30리터짜리 몽벨배낭을 메고 트렁크에서 타이어를 꺼냈습니다. 앞타이어에 바람이 빠져있더군요. 그날은 Zapal 펌프가 있어 땀을 찔찔흘리며 새것으로 튜브를 갈았습니다. 오랜만에 작업하려니 튜브가는데만 30분 걸렸습니다. 이게 두번째. 7시 반이 넘어 광진교를 거의 다 넘어갔는데 뒤에서 또 뿌시식하는 겁니다. 세번쨉니다. 어두워 지기도 하고 짜증도 나고 하여 다리 위에서 그제 그 친구에게 다시 전화를 했습니다. 전화받은 친구는 공연히 미안하지요. 자기가 타이어를 새로 바꾸어 끼웠고, 끼운 후 6시간 만에 타이어튜브가 펑크났는데 36시간 후 또 같은 곳에서 펑크가 났다고 하니 괴이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거지요. 이번에는 길가의 짜장면집에서 짜장면을 먹으며 그 친구를 기다렸습니다. 마누라에게는 늦어도 8시 반쯤엔 집에 갈꺼니까 고기 좀 구워놔라 그랬는데 짜장면 다 먹은 시간이 8시였습니다. 이유가 뭘까 알아내려고 이번엔 자전거를 차에 싣고 영규네 가게로 가기로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그 친구가 몰고 온 소형봉고의 시동이 안 걸리는 겁니다. 가만보니 쎄루모터가 불량이라 끼끼긱만 하고 모터가 돌아가지를 않더군요. OD Camp 영업대빵이 타고 다니는 차라 하던데… 차를 뒤로 밀어서 겨우 시동을 걸었습니다. 난 뒤로 밀어서 시동 걸어보기도 처음입니다. 더구나 21세기도 5년이나 지났는데. 림테이프가 불량이랍니다. 림에 보면 자전차 살을 끼워두는 부분이 있는데 둥그런 홀이 날카롭기 때문에 그 위에 테이프를 감아 날카로운 부분을 덮어준 뒤 튜브를 넣고 바람을 넣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림테이프란 놈이 한쪽으로 조금 밀려있더군요. 튜브의 펑크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새 테이프로 빡빡하게 감은 후 바람을 넣었습니다. 앞타이어의 림테이프는 오래된 것이었지만 밀린 곳이 없이 깨끗하였기에 그대로 두었습니다. 수요일 아침, 몽블랑가기 전 마지막 피치를 올려야 하기 때문에 오늘도 또 내일도 계속 잔차로 출퇴근 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주엔 흰와이셔츠 하나로 3일을 버텼는데 그것도 제 인생의 기록입니다. 출근하려고 창고에서 자전거를 꺼냈는데 뒷바퀴에 바람이 또 빠져있는 겁니다. 이게 네번째 펑크입니다. 날씨도 좋고 편안한 마음으로 타이어를 열어보니 또 림테이프가 밀려있더군요. 그 자리에서 바람도 새고… 4년 만에 처음 펑크를 직접 때워보았습니다. 생각보다 간단한데 내가 왜 이걸 귀찮아 했지란 생각이 듭디다. 여유있게 룰루랄라 집을 떠나 탄천변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정확히 K16 서울비행장 옆을 지나갈 무렵 이번엔 앞타이어가 푸르륵하는 겁니다. 아 이제 정말 욕 나온다. 이게 다섯번째. 나 몽블랑 안간다 욕을 하면서 튜브를 때웠습니다. 이번엔 유리조각이 타이어에 박혀있더군요. 아니 몇 년을 다녀도 생전 펑크나는 적이 없는데 도대체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날 저녁 퇴근을 하려고 트렁크를 열고 자전거를 다 조립했는데 뒷바퀴가 이상한 겁니다. 누질러 봤지요. 물컹물컹. 여섯번째 입니다. 13시간동안 네번 타이어에 바람이 나갔습니다. 54시간동안 6번. 오늘 아침에 때운 건데 왜 그러지. 튜브를 열어보았는데 림테이프가 또 살짝 밀려있었고 바람은 빠져있고… 그런데 주차장이 어두워서인지 어디서 바람이 새는지 알수가 없더라고요. 9,000원짜리 튜브를 또 새로 갈았습니다. 이젠 눈감고도 튜브를 갈게 되었습니다. 미국라이센스를 갖고있다는 김군의 분석으로는 자기 평생 이런 경우를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으며 주변의 고수들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미지의 경우랍니다. 왜 림테이프가 밀리는 건지. 혹시 림과 자전거살인 스포크을 연결해 주는 니플(젖꽂지같이 생긴 너트)의 장력이 느슨해서일까 점검해 보았는데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결국 림테이프을 두겹으로 감아 튜브가 밀리더라도 니플 케이스가 튜브를 긁지 않도록 하자란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알 수 없는 것은 앞타이어의 림테이프는 계속 멀쩡한데 뒷바퀴는 왜 그런건지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 아 이제 test drive 할 날도 몇 일 안 남았는데 괜찮을까요? 뚜루 드 몽블랑 기행 2부 2005년 7월 15일 서울 출발, 쮜리히 도착 공항라운지에 도착하여 1시간 후면 떠나는 몽블랑(Mont Blanc)과 샤모니(Chamonix)에 대한 정보를 처음으로 검색해 보았다. 실은 그때까지 몽블랑과 샤모니와 알프스가 어떻게 다른 건지 찾아보지도 못했다(아니 찾아 보지도 않았다). 나이가 드니 게을러 지는 징조인가 보다. 목숨을 담보하게 될지도 모르는 여행에 대한 사전 조회도 없었다니… 영규의 설명에 의하면 몽블랑은 대청봉이고 샤모니는 설악동이란다. 알프스는 설악산 혹은 태백산맥쯤 될 듯 하다. 그런데 출발 직전 숙소예약도 할 겸 www.atlas.com 에서 지도를 검색해 보니 샤모니는 스위스 제네바(Geneva)에서 남쪽으로 1시간 정도의 거리라는데 내 비행기 표는 그 반대편 쪽에 있는 쮜리히(Zurich) 행이 아닌가? 샤모니에서 300km 이상 떨어진 곳… 순간 당황하였으나 메일에는 분명히 쮜리히에서 일행과 합류하는 일정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새로운 곳엘 도착하면 언제나 낯설다. 내게 대부분의 해외여행은 여행이 아니라 출장이었고 서류가방을 들고 씩씩하게 입국대를 지나 택시를 잡아타고는 호텔로 직행하는 진부한 일정이다. 그러나 쮜리히 공항에 내려서 내가 맨 먼저 한 일은 두리번 두리번 거리며 옷 갈아 입을 화장실이 어디인지 또 자전거를 펼쳐서 조립할 공간이 어디인지를 찾는 거였다. 그런데 배낭을 제외한 잡동사니들을 보관해 둘 로커(Locker) 가 보이질 않는다. 겨우 길 건너 기차역사 지하층에서 로커를 찾았는데 옷 갈아 입을 화장실은 공항청사로 다시 가야 했다. 또 다른 문제는 자전거를 타고 공항 밖으로 나갈 길을 찾는 것이 영 헷갈릴 것 같았다. 이럴 때 누군가 일행이 있으면 용기를 내고 원래 계획대로 고(go)를 할 텐데… 20여 년 전 겁도 없이 용근이와 비행기표에 배낭만 달랑 매고 몇 개월간 동남아 무전여행 하던 생각이 난다. 그때는 무슨 신이 났는지 번죽도 좋고 순 엉터리 영어를 구사하며 별일(?)을 다 했었는데… 결국 무료라는 말에 온갖 짐을 다 챙겨 들고 호텔버스를 타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였더니 그 비싸다는 스위스의 4 star 호텔인데도 120,000만원 정도에 숙박이 가능했다. 물론 시내에는 공동세면장을 사용해야 하는 90,000만원짜리 싸구려(?) 호텔도 있었지만 무료버스에 어쩌면 아침도 공짜일 수도 있는 Swissotel 선택은 잘한 것 같다. 오후 8시인데도 아직 날이 밝아 자전거를 조립하여 쮜리히 시내를 돌아 보기로 하였다. 지도를 가지고 확인하였건만 5분도 안돼서 방향을 잃었다. 샌프란시스코와 같이 언덕이 많은, 또 런던같이 꼬불꼬불한 길들이 나를 헷갈리게 하였는데 결국 호텔로 되돌아와 물어 보고 다시 길을 나섰다. 나중에 보니 지도의 동서남북이 엉뚱하게 표기되어 길을 잃은 것이었다. 쮜리히 관광지도는 윗쪽이 북쪽이 아니라 동쪽으로 표시가 되어 있더라. 다음날 저녁 9시, 영규가 공항에 도착해야 하고 또 우리를 픽업해서 샤모니까지 함께 갈 일행이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24시간의 여유가 있으므로 다음 날은 온종일 자전거를 몰고 쮜리히 시내와 근교를 헤집고 다닐 수 있었다. 쮜리히는 쮜리히호수(Zurich Sea) 때문에 멋지게 도시가 발달한 곳 같다. 도시의 중심은 호수의 북단에 있고 호수 양안 언덕을 따라 주택가들이 죽 들어서 있었다. 호안에는 백조가 우아하게 떠 다니고 있고 둘레가 백여키로는 될 호수를 끼고 있는 잔디밭 녁에는 일광욕을 하는 선남선녀들이 몸매를 자랑하고 있다. 잔차로 70여키로를 돌았더니 피곤하였다. 물에 첨벙, 나도 선남선녀들 틈에 끼어 스위스의 일광을 잠시나마 즐기기로 했다. 친구들이 보는 싸이트에 올리는 글이라 실명이 등장함을 양해주시기 바랍니다. 뚜루 드 몽블랑 기행 3부 2005년 7월 16일 영규야, 아직 새벽이야. 2시간 밖에 못잤잖아! (Chamonix – Houches –Contamines – Balme ; 주행시간 5시간, 주행거리 31키로) 새벽 5시 34분! 지난 밤 10시 30분에 이태리 볼자노(Volzano)에 거주하는 임덕영선생이 쮜리히(Zurich)공항에서 우리를 픽업하였다. 샤모니는 제네바(Geneva)에서 남쪽으로 1시간 거리인데 쮜리히에서 제네바까지가 350km 이다. 평균 시속 120km로 3시간. 새벽 1시30분에 제네바시내를 통과, 레만(Leman)호수를 지나고 에비앙(Ebian)으로 가는 싸인보드를 따라 결국 4시간을 드라이브 한 끝에 우리는 샤모니에 도착하였다. 새벽 2시30분의 몽블랑은 천둥과 번개로 우리를 환영하였다. 한국인 조문행씨가 경영한다는 샤모니 한쪽 켠의 알펜로제(Alpenrose)호텔을 찾아 헤매기를 30여분, 결국 짐을 내 던지고 잠이 든 시간은 새벽 3시가 다 되어서였다. 누군가 부스럭 거리며 불을 켠다. 예의 그 중얼 중얼거리는 소리를 내며 용감하게 영규가 라이트를 켠다. 새벽 5시 34분, 겨우 2시간 남짓 눈을 붙였을 뿐인데 우리의 영규는 잠을 다 잔 것이다. 영규야 아직 꼭두새벽이야. 좀 더 자야 한다고 불평을 하면서도 웃음이 나오는 건 왜 일까. 잠도 못 자고 고생할 걸 생각하니 기가 막혀서 그랬나? 문제는 밤새 벼락이 치고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다는 점이다. 여분의 브레이크패드를 안 가져왔는데 이 빗속을 주행하려면 어떻게 하나. 내 자전거 신발은 고어텍스도 아닌데 어떻게 한담. 근처 자전거포에서 평패달로 바꾸고 고어텍스 등산화를 새로 사야 하나. 그리고 디스크브레이크가 달린 잔차를 빌려서 가야 하나 생각이 복잡해 지기 시작한다. 비가 아무리 많이 와도 영규는 그대로 산행을 진행할 것이다. 옆에 누워있던 볼자노의 임덕용선생 왈 ‘산쟁이들은 무식하고 단순해서 날씨가 나빠도 그냥 가요’ 라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빗속을 뚫고 산행을 강행해야 한다는 것에 한심해 지기 시작한다. 다행히 출발하기 직전 구름이 걷히고 비가 그쳤다. 우리의 숙소에서도 빙하에 뒤덮힌 몽블랑의 정상이 구름을 뚫고 보이기 시작한다. 어떻게 이렇게 바로 코앞에 빙하의 정상이 서있을 수 있을까? 안나푸르나 산행의 시작점 네팔의 포카라 한 호텔에서 저 멀리 아련히 아침햇살을 타고 금빛으로 물들어 보이던 금단의 영산 마차푸차레(Machhapuchhre)와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우리가 5일간 자전거로 여행할 길은 몽블랑(Mont Blanc)을 가운데 두고 시계 반대방향으로 근 180여 키로를 산 능선으로 달리는 것이다. 능선을 탄다고 하지만 실은 온갖 봉우리와 고개를 넘어야 하는데 어느 안내책에 보니 오르락 내리락 해야 하는 고도차만 10여 키로에 달한다고 설명되어 있고 2,000-2,600미터에 달하는 봉우리 혹은 고개를 아홉개를 넘어야 한다. 참고로 투어의 시작점 샤모니 인근 오쉐(Houches)의 고도는 해발 1,007미터 이다. Tour de Mont Blanc(TMB)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산길이며 유럽대륙에서는 가장 긴 트래킹(tracking) 코스로 이미 240년 전인 1767년에 첫번째 시도가 있었단다. 몽블랑은 400여개의 봉우리와 40여개의 빙하골짜기가 프랑스, 이태리, 스위스 국경지대를 따라 이어져 있는 지역을 일컬으며 그랑죠라스(Grands Jorasses), 아귀리디미디(Aiguille du Midi) 등의 봉우리들이 산악인들에게 많이 회자되는 듯 하다. 오전 10시 이번 산행에 우리를 인도해 줄 허긍열프로와 함께 숙소를 출발, 1시간 후 케이블카 출발지인 오쉐(Houches)에 도착하였다. 흐흐 일단 케이블카로 고도를 높힌 후 시작하는 거지! 덕분에 첫번째 고지 1,653미터 보자(Col de Voza)고개를 공짜로 넘다 시피하고 꼰따민(Contamines)이란 산골마을에서 치즈와 토마토가 들어간 바게트샌드위치에 생맥주 오백을 시원하게 들이켰다. 좀 힘이 들긴 하지만 아, 이 정도면 이번 투어는 거의 환상에 가까울거야. 오후 2시. 티벳에서 처럼 꼬리 꼬리하게 냄새나는 음식을 먹지 않아도 되고, 지저분한 야크똥 밭을 지나지 않아도 되고, 더구나 산소베게를 껴안고 고산증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니 이 얼마나 환상인가. 더구나 쭉쭉빵빵 남프랑스 미인들이 여기저기서 봉쥬르를 해 주고 윙크를 날리고… 서울 돌아가서는 티벳에서 같이 고생한 형석과 병화에게 좀 보태서 자랑하자며 영규와 기분좋은 미소를 날렸다. 아이고 그런데 이게 왠 일입니까. 제대로 된 경사에 접어들자 심장의 박동이 솟고 다리 힘이 쭉 빠지는 겁니다. 맥주 때문에 몸도 풀리고 간밤엔 잠도 제대로 못잤고, 2시간 내리 오르막 페달질을 하려니 실은 간단한 일이 아니지요. 그림같이 아름다운 풍광이 발 아래로 펼쳐있는 발므(Balme)산장에 겨우 겨우 도착한 시각은 오후 4시30분. 이름을 기억하진 못하지만 젊고 예쁜 프랑스 아가씨가 어디서 왔느냐, 밥은 먹었냐 하며 기분 좋은 미소를 보낸다. 나중에 보니 그 아가씨는 그 산장의 조바(?)인 듯. 예약을 안 한 당신들은 저기 어두컴컴한 침상에서 자고 샤워는 이곳에서 하며 저녁식사는 7시부터 라고 알려준다. 깨끗이 샤워를 하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맥주를 시원하게 또 한잔 들이켰다. 오스트리아에서 왔다는 젊은 친구들과 잠깐 어울려 초코릿을 얻어 먹기도 하고 또 우리의 단백질 안주를 여기 저기 테이블에 나누어 주기도 한다. 호박스프에 옥수수죽 맛이 기막혔다. 소고기 동그랑땡이 메인이었고 치즈와 사과가 디저트로 나왔다. 와인과 함께 훌륭한 저녁식사를 끝내고 우리는 모두 침상으로 기어들어가 골아 떨어졌다. 저녁 8시. 새벽에 3번쯤 잠을 깼다. 우리의 영규는 일찍 머리와 눈이 떠졌을텐데 어떻게 했을래나? 걱정이 된다. 뚜루 드 몽블랑 기행 4부 이태리 국경을 넘어 꾸르마이어로 2005년 7월 17일 (Balme – Bonhomme – Chapieux – Seigne – Courmayeur :주행거리 60키로, 주행시간 6시간) 간밤에 푹 쉬었기 때문에 상쾌한 기분으로 7시 아침식사를 할 수 있었다. 코코아 한 그릇, 빵과 버터와 잼으로 요기를 한다. 우리 식탁의 빵이 없어지는 속도는 다른 테이블의 2배가 되는 듯하다. 탄수화물 로딩(Carbohydrate Loading)을 충분히 해야 오늘 일정을 버티겠지. 오전 7시45분, 1,706미터의 발므(Balme)산장을 출발 급경사를 그대로 치고 올라 2,392미터의 본옴므고개(Col du Bonhomme)와 2,483미터의 끄와(Croix)고개를 넘어야 한다. 아니 치고 오르는 것이 아니라 자전거를 밀고 가야 하는 곳이다. 어떻게 올라갔는지도 모른다. 다리근육의 산소요구량이 심장박동수를 올리더니 결국 어제 마신 알코올이 내 엔진에 엇박자를 놓기 시작했다. 우려했던 부정맥 불규칙바운드가 온몸의 힘을 빼앗아 가고 한 발짝을 내 딛기가 어려워진다. 조심 조심 심호흡을 하여 심장을 달래며 일행과는 상관없이 내 페이스를 맞추어 가기로 했다. 사람들이 안 보이는 곳에서는 아침에 못한 실례를 하기도 하고... 4시간 걸려 크와고개를 넘자 황량한 고개자락 아래로 본옴므산장(Refuge du Bonhomme)이 나타났다. 어쨌든 쉬었다 가는 곳이니 황량하지만 고마운 곳이다. 내가 좋아하는 나무로 만든 등걸의자에 앉아 땀을 식힌다. 어디선가 헬리콥터가 나타나 산장 옆으로 착륙하였다. 부상자가 있나 보다. 싣고 가는 사람은 별다른 부상을 입은 것 같지도 않았는데 아마 근력과 심장이 약한 사람이었나 보다. 해발 1,554미터의 샤삐우(Chapieux)까지 950여 미터가 내리 경사진 내리막이다. 이제야 실력발휘를 할 때가 온 것이다. 그러나 왠 걸 내리막이 하도 가파라 브레이크를 잡은 손가락은 물론 손바닥이 얼얼할 지경이다. 내리막에 똥 밭은 왜 이리 많은지, 아마도 방목하는 소들이 단체로 지나는 곳인 듯 하다. 분비물을 피하느라 온몸에 힘을 주며 내려오는 것을 결국 포기, 신경 안 쓰기로 했다. 그러나 소똥을 밟고 지나니 이번에 미끌미끌 브레이크가 듣질 않는다. 피하자니 그렇고 지나가자니 문제가 생기고 이럴 때 쓰는 사자성어가 있었던 것 같은데… 내리막 온 사방엔 노랗고 파란 들꽃들이 예쁘게 피어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지만 미끄러 넘어질까 한 눈 팔지도 못하고 내려왔다. TMB(Tour de Mont Blanc) 표시를 순간 보지 못하고 내리막에서 일행을 잃어 버렸다. 그런데 저기 헬맷 3개가 쌩하고 달리고 있는 것이 언뜻 보인다. 으흥~ 도로 내리막! 자전거 기어를 최대로 놓고 아스팔트를 멋지게 내려간다. 처음으로 신나게 제대로 달려보는 내리막이다. 대관령 옛길 내리막 같이 꼬불꼬불 한참을 가는 길이다. 이곳에 오기 2주전, 전지훈련 하기 위해 대관령에서 강릉 쪽으로 도로를 타고 10분 내려가고 다시 그 길을 2시간 걸려 쉬지 않고 올라 온 적이 있었는데… 급경사를 다 내려와 길이 갈라지는 곳인데 일행이 보이질 않는다. 어느 쪽으로 갔으려나. 첨병이 없는 걸 보아하니 가는 방향으로 그대로 직진했겠지. 완만한 경사를 계속 내려가는데 왠지 불길한 생각이 든다. 꼬불꼬불 몇 번을 더 내려갔지만 점심을 먹기로 한 그 아래마을은 나타나지 않는다. 도로변 계곡은 아직도 깊고 깊어 회색 빛의 빙하물이 우루루 꽝꽝 폭포소리를 내며 굽이 치고 있다. 이런 페이스로 마을이 나오려면 한참을 가야 할 텐데… 아! 반대쪽으로 잘못 내려 왔구나. 갈라지는 곳에 일행이 없었으니 분명 고개 반대로 간 것 일게다. 어이쿠 최소한 2시간짜리 오르막인데 이걸 어쩐다. 히치하이크? 그러나 조금 전까지도 조금씩 지나던 차들이 영 보이질 않는다. 그리고 쪽 팔리게 이곳까지 와서 자전거여행을 한다며 히치하이크를 하기도 그렇고, 삐질삐질 땀을 흘리며 경사를 오르기 시작했다. 정말 한심한 상황이다. 커브를 돌아 나오는 자동차 소리를 듣자마자 냅다 엄지 손가락질을 했다. 실패.. 그대로 가버리더군요. 한참을 지났지만 차도 별로 지나지 않고 그나마 세워주는 놈도 없다. 젊은 금발의 여자가 손가락을 들었다면 무조건 세웠을 텐데… 남자로 태어난 걸 잠깐 후회(?)하기도 했다. 다행히 30대 초반의 남자 여자 커플이 탄차를 얻어 탈 수 있었다. 아마 자기 여자친구가 옆에 있어서인지 친절하게도 전화기도 빌려주고 다운힐 시작점까지 오르락 내리락 해 주었다. 자동차론 10분인데 이거 잔차로 오르려면 2시간 짜리지. 일행을 찾은 곳은 도로가 갈라지는 곳에서 한참을 지나서였다. 일행들은 아스팔트로 내려온 것이 아니라 바로 옆 흙길로 질러서 내려 왔다고 한다. 그 길이 TMB 길이었다고? 도대체 처음 오는 내가, 앞서 가는 일행 꽁무니만 쫓던 내가 그걸 어떻게 압니까. 나를 찾으러 이태리 볼자노(Volzano)의 등반가이자 산악디자이너인 임덕용선생이 그 내리막을 다시 걸어 올라갔다고 한다. 1시간쯤 지나서야 수습이 되었는데 이번엔 하나밖에 없는 샤삐우(Chapieux)마을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수가 없단다. 예약을 하지 않아 자리가 없다고.. 베낭무게를 줄이느라 이미 행동식(롯데양갱, 비스킷, 쌀라미쏘세지, 견과류등)들은 많이 축내었는데 다행히 남아 있는 물건(?)들이 있었다. 참고로 롯데표 양갱은 영규가 가장 좋아하는 행동식입니다. 해태표는 안된답니다. 1시간 30분 걸려 오른 1,870미터의 모뜨(Motte)산장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고 이제 프랑스와 이태리의 국경을 넘어서야 한다. 국경인 2,516미터 쌩느(Seigne)고개 까지는 2시간 30분, 걸어서 올라갔는지 메고 올라갔는지 기억도 없다. 지도를 보니 4,810미터 몽블랑 정상에서 쌩느 고개까지는 남남서 직선거리로 10키로 정도가 된다. 오후 6시30분, 오전 7시45분에 발므산장을 출발하였으니 11시간 째 산행인 셈이다. 따뜻한(?) 점심도 먹지 못하고... 이곳에서 오늘 숙박을 하여야 할 이태리의 설악동, 꾸르마이어(Courmayeur)까지는 아직 20여 키로미터가 남아있다. 사람이 걷는 속도가 시속 4-5키로 남짓이므로 걸어 간다면 4시간짜리 거리이다. 그러나 상태 좋은 임도 내리막을 자전차로 간다면 시속 20키로는 낼 수 있으며, 만약 대관령 정도의 내리막 아스팔트를 간다면 평균시속 40키로는 낼 수 있다. 꾸루마이어까지는 상태 좋은 임도 내리막과 경사 깊은 아스팔트 내리막의 연속이다. 순간 시속 64키로를 낼 때는 혹시 타이어 펑크날까 겁이 덜컥나기까지도 한다. 그러다 펑크나면 죽음인데. 길이가 6키로에 육박하는 웅장한 미아지 빙하(Glacier du Miage)의 혓바닥이 계곡을 타고 코앞에 까지 다가왔지만 오늘의 종착지 꾸르마이어(Courmyeur)에서 저녁을 대접할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는 영규의 재촉에 최고속도로 내려 오며 곁눈질로 석양의 풍광을 즐길 수밖에 없었다. 빙하가 호수까지 내려와 있고 빙하계곡에서 흘러 내리는 옥회색 물과 반대쪽 계곡에서 내려 오는 투명한 물이 합치는 광경은 또 다른 아름다움이었다. 산악전문가라면 누구나 알고 있고 갖고 싶어한다는 최고품질의 피켈과 아이젠을 만든다는 그리벨(Grivel)사의 고비(?)사장과 고비사장 부인 그리고 고비사장 딸이 우리와 저녁을 함께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최영규군은 그리벨사의 한국총판을 하고 있고 임덕용선생은 그리벨사 용품들의 디자인 컨설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그 자리에 같이하는 영광(?)을 가졌다. 냄새나고 몸에 착 붙는 타이즈들을 입은 복장은 우스꽝스러웠지만 간만에 제대로 된 이태리식당에서 우아한 사람들과 우아한 저녁을 했다. 치즈샐러드로 입맛을 돋운 후 스프와 토마토소스의 마카로니로 전채를 하고 어린 송아지 고기다짐이 옥수수가루 찜과 함께 메인으로 나왔다. 지역 특산물이라 몇 병만 유기농법으로 한정 생산한다는 도깨비(Evil)브랜드의 와인은 무슨 품종일까 한참을 뒤집어 봤지만 캐비닛소비뇽도 아니고 산지오베세도 아니고 뭔지 모르겠습디다. 불행하게도 몽블랑 전문가이자 우리들의 가이드 허긍열프로는 오랜만의 우아식에 위가 놀랐는지 전채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첫번째 디저트로 맛난 복숭아 샤벳이 복숭아 슬라이스와 함께 나왔으며(나는 허긍열프로 것까지 먹었음), 두번째 디저트로는 초코렛 무스케익이 나왔다. 너무 많은 양을 소화한 우리 모두는 오늘의 마지막 코스 카푸치노는 거절하였다. 2시간의 거나한 식사 후 우리는 그리벨(Grivel)사의 영빈관에서 늦은 잠을 청했다. 오후 10시. 뚜루 드 몽블랑 기행 5부 잔차를 어깨에 매고, 등에 지고, 머리에 이고 (Courmayeur – Bertone : 주행거리 ?, 주행시간 ?) 2005년 7월 18일 이태리의 설악동이라는 해발 1,226미터 꾸르마이어(Courmayeur)는 프랑스 샤모니에서 블랑산(Mont Blanc)을 북동에서 남서쪽으로 11.6키로를 관통하는 터널의 이태리 국경 북서쪽의 작은 마을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 3,466미터에 위치하고 있다는 몽블랑을 관통하는 케이블카도 바로 그 터널 위를 지나고 있다. 샤모니가 동서로 뻗은 완만한 계곡에 위치한 마을이라면 꾸르마이어는 남북으로 이어진 깊은 계곡에 위치하였다. 널찍한 판암들로 지붕을 이은 건축물들이 인상적이었는데 계곡이 깊어서인지 도시의 모양은 샤모니보다 나은 듯 싶다. 일요일 이어서였는지 전날 오후 마을 인근 계곡에서는 피크닉 온 사람들의 고기굽는 냄새가 향기로웠던 기억이 있다. 6시30분 기상, 고비사장 내외와 작별인사를 하고 8시 30분 다음 목적지인 해발 1,970미터의 베르똥(Bertone)산장으로 향했다. 오늘은 베르똥산장을 지나 2,436미터 샤삥(Sapin)고개를 넘어 몽블랑 동벽 및 4,200고지 그랑죠라스(Grands Jorasses)봉 남쪽을 보며 보나티(Bonatti)산장을 지나 엘레나(Elena)산장에 도착하는 일정이다. 자동차가 지나는 도로인데 무슨 경사가 이렇게 심한지 모르겠다. 아스팔트를 지나 흙길 도로를 오르는데 1단기어로 낑낑매며 페달질을 한다. 내가 처질 때마다(항상 쳐졌지만) 늘 뒤를 받쳐주는 멋쟁이 임선생이 다시 따라붙는다. 임덕용씨는 이태리 볼자노에 거주하며 개인 디자인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한다. 산악전문용품이나 의류들을 디자인하고 여러 회사에 컨설팅을 하고 있단다. Snake란 산악전문 의류브랜드는 직접 디자인과 마케팅을 하고 있고, 최영규군과는 코오롱스포츠에 같이 근무했었던 동갑내기라 한다. 날렵한 몸매에 강인한 체력, 그리고 남다른 패션감각이 매력적인 사나이다. 내 페이스를 지키기 위해 임선생을 먼저 보내고 한참을 오르다 보니 반가운 TMB(Tour de Mont Blanc)표시가 나타난다. 노란 마름모에 검은색 TMB 글씨가 새겨져 있다. 또 다른 TMB 표식은 붉은색과 흰색의 이중 선이다. 프랑스국기에도, 이태리국기에도 또 스위스국기에도 붉은색과 흰색이 함께하고 있으니 세나라 국경을 넘나드는 TMB의 표식으로는 그만인 듯하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붉은색과 흰색의 이 표식을 코스의 후반부인 스위스 쪽에서는 별로 보지 못한 것 같다. 갈림길이지만 표식이 나타났으므로 일행들이 그 숲 속으로 들어갔으리라 생각하였다. 샤피우(Chapieux)에서 표식을 보지 못해 일행을 잊었던 생각이 났으므로 더욱 그랬다. 한참을 어두운 숲길을 혼자서 달렸다. 대략 남한산성의 싱글트랙 정도의 경사와 느낌이었으므로 별다른 무리도 없어 보였다. 그런데 급경사지에 있어야 할 타이어마크가 보이질 않는다. 잘못 들어왔음을 직감하고 부리나케 온길을 다시 더듬는다. 아니 이 사람들이 갈림길에서는 표시를 해 놓던가 맨 뒷사람을 기다려야 하는데 임선생과 허프로는 함께하는 자전거투어에 익숙치 않다 하더라도 최영규선수는 뭘 하고 있는 거지. 투덜 투덜대며 도로를 한참 오른 끝에 나를 기다리고 있는 일행을 만났다. 통박으로 길을 판단해야지 하며 영규가 핀잔을 준다. 허긴 숲에서 나와보니 갈라진 길 모두에 TMB표시가 있더라니… 지도상 수평거리는 4키로 남짓인데 고도는 1,226미터에서 1,970미터로 수직(?)상승이니 그동안 등장하였던 오르막 중 가장 높은 경사이다. 오르막이 겨우 450여 미터인데 4키로 대비한 경사도가 별 것 있겠냐고. 그럼 그대가 한번 해 보십시오! 당연히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는 곳은 없었고 잔차를 어깨에 매고 가야 했다. 잔차를 오른편 어깨에 매니 어깨쭉지가 떨어질 듯 아프다. 헬맷을 이용해 머리에 걸어 이고 가봤다. 나중에 내 노란 헬맷, 그거 20만원도 더 주고 산 건데, 껍데기가 여기저기 다 부숴져 있더라. 누가 뭐라 해도 급경사를 오를 땐 잔차를 등에 지는 것이 나는 가장 편했다. 배낭 위쪽으로 프레임을 얹고 크랭크 반대편 페달이 배낭 뒷편으로 가도록 한 후 왼손으론 안장꼭지를 오른손으로 왼쪽 핸들을 잡는 것이 가장 편한 자세이다. 덕분에 새로 산 30리터짜리 내 몽벨(Mont Bell)배낭이 너덜너덜 해 졌지만… 잔차를 끌고 좁은 급경사를 계속 오르게 되면 오른쪽 페달의 날카로운 부분이 왼쪽다리의 촛대뼈나 장딴지를 계속해서 긁게 된다. 더운 날씨라 짧은 팬츠를 입고 있으면 더 그렇다. 더구나 나는 급경사에서 잔차를 한참 끌고 오르면 숨이 차고 심박수가 빨라져서 더 심하게 지친다. 아마 평소에 남들보다 많은 몸무게를 지탱하다 보니 내 다리는 11키로 쯤 더 나가는 무게에 그나마 덜 부담을 느끼는 듯 하다. 노란색 Klein 내 자전거는 11키로의 날렵한 하드테일이다. 그렇지만 온몸이 피곤에 지쳐 다 퍼져있는데 또 다시 급경사 산길을 2시간 내리 잔차를 지고 올라 간다고 생각해 보라.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님에 비할 바가 아니다. 시지프스가 돌을 밀고 산에 올라가선 굴러 내려온 그 돌을 밀고 다시 올라가는 것과 다름이 뭐가 있는가. 잔차를 끌고 끝도 없이 언덕을 올라가는 놈들은 참으로 이상한 종족임이 틀림없다. 뭘 보겠다고, 뭘 먹겠다고 그 짓을 하고 있는지 다시는 해외 원정따위는 오지 않겠노라 다짐을 했다. 절벽 위에 서있는 베르똥(Bertone)산장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11시15분, 우선 핫초코렛에 설탕을 듬뿍 넣어 한잔 시켜 마시고 식사가 준비될 때까지 산장에 남아있던 스프에 빵을 말아 먹었다. 식사는 12시부터. 잠시 눅눅한 반지하 침상에 누워 눈을 붙였다. 추울까 가지고 간 온갖 옷가지(얇은 내복, 두꺼운 내복, 겨울 잔차용 윈드브레이커, 레인댄서 비옷 겸 윈드브레이커: 참고로 전부 몽벨브랜드임)를 다 끼어 입고 잠이 들었는데도 몸에 소름이 돋는다. 컨디션에 이상이 생기나보다 걱정이 된다. 날씨가 흐렸었는데 점심을 먹는 중 드디어 후두둑하고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제법 쏟아지는 비였는데 다시 날씨가 개었다. 기분도 그런데 오늘은 여기서 퍼지자고 한다. 어, 영규 네가 왠일이냐. 빗속을 뛰어 올라가자고 해도 안 놀랐을 텐데 날씨가 잠시 흐렸다고 퍼지자니… 오늘은 꽤 갈 길이 멀다. 몇 시간 오르막을 더 올라가고 적어도 보나티(Bonatti)나 엘레나(Elena) 산장까지 가야 하는데… 우리를 리드하는 허긍열프로는 어제 저녁식사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했지만 영구가 저렇게 퍼지자고 제안을 하니 안달이 나는 듯 혼자서 윗쪽 언덕을 등반하고 내려왔다. 어느 덧 날씨는 개어 다음 길을 재촉할 수 있게 된 듯하다. 구름의 흐름이 하 수상하니 5분만 기다려 보자고 임덕용씨가 제안을 한다. 잠시 후 구름이 몰려오고 본격적인 장대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오후 2시. 영규의 통박과 예감에 감탄하는 척 하였다. 지하숙소는 눅눅한데다 으시시까지 하니 지상숙소에 빈 자리가 있는지 알아 보았다. 마침 이층 침상에 네 자리가 비어있어 누워 잠을 청했다. 아니랄까 영규는 눕자마자 드르렁 코를 곤다. 저녁을 먹고 또 자고 그 다음날 아침 6시까지 잤다. 물론 우리의 영규는 그 다음날 새벽 일찍 잠이 깨어 해드랜턴으로 책을 보다 주위사람들에게 경고를 받았고, 또 전날 찍은 사진을 본다고 카메라를 칙칙돌리다 경고를 받고는 결국 밖으로 나가 새벽하늘과 벗을 하고 있더라. 뚜루 드 몽블랑 기행 6부 아! 그랑죠라스(Grandes Jorasses) (Rif Bertone – Mont de la Saxe - Col Sapin – Rif Bonatti – Rif Elena ) 2002년 7월 19일 베르똥산장을 7시45분에 출발하였다. 2시간 동안 다시 잔차를 어깨에 매고 사쎄(Saxe)능선까지 산행을 한다. 아~ 정말 욕만 나온다. 왜 이 힘든 짓을 하는 거지. 영규는 항상 맨 앞이다. 시간이 너무 지체될까 걱정이 되어 선두에 서고 있는 것 일거고 임덕용선생은 뒤에서 나를 응원한다. 전문 알피니스트이자 사진가이기도 한 허긍렬프로는 6미리 비디오와 디지털카메라로 연방 우리를 화폭에 담는다. 정말 겁나는 체력이다. 맨 뒤에서 사진을 찍다 어느덧 맨 앞으로 나가 낑낑대며 잔차를 지고 가는 장면을 비디오로 찍는다. 이 양반 잔차는 족히 13-4키로는 나가는 대만브랜드 초급자용 산악자전거이고 엊저녁도 굶었는데 산속에서는 위 아래로 날라 다닌다. 크릿이 없는 평패달에 브레이크도 뻑뻑하고 MTB를 몇 번 타보지 않았다는데도 업힐은 물론 다운힐에서의 돌진도 거의 영규와 나를 육박하고 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허영호 같은 유명산악인에 대비해 아주 깨끗하고 선비 같은 성격에 기술등반과 중거리 등반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산악인들 사이에서는 알아주는 전문등반가라 한다. 산이 좋아 회사도 다 때려치우고 이곳 몽블랑으로 날아와 등반과 산악사진을 전문으로 한단다(www.goalps.com 을 참고할 것). 임덕용선생도 한 때 등반가로 국내에서는 이름을 날렸으며 시시때때로 몽블랑의 빙벽과 암벽을 자유롭게 누비는 선수였다. 그리고 최영규군이 누구인지 여러분들이 모두 알지 않는가. 항상 선봉에 서는 사나이, 없는 길만 찾아 다니는 무모하도록 용감한 사나이, 양갱과 초코파이만 먹고도 일주일을 버티는 놀라운 체력(영규야 이거 비하하는 거 아니고 칭찬이다). 떠나기 전 영규가 왜 조심스러워 했는지 그때서야 알았다. 전부 다 프론데 나만 아마추어. 더구나 다른 건강한 사람들과는 달리 무리하면 안되는 몸 상태. 허긴 그런 것도 극복할 수 있는 거라 믿고 여기까지 날라온 것이었지만… 어쨌든 이번 산행의 주인공은 거의 나였다. 낑낑대며 잔차를 들고, 매고, 지고, 이고, 밀고 온갖 추태들이 모두 비디오에 담겼을 거다. 허프로, 나 잘 나가는 것도 물론 찍었겠지. 몸무게와 가속도 덕에 좋은 상태의 비탈에선 남들을 제끼기도 하고 난이도가 높은 심한 비탈에서는 폼을 재기도 했지만 조금만 경사가 나오면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한숨을 내쉬고 그렇게 산행을 하였다. 힘들게 올랐지만 사쎄(Saxe) 능선에서의 전경은 장관이었다. 북쪽골짜기 넘어 4,208미터의 그랑조라스(Grandes Jorasses)의 흰봉우리가 우리를 압도하고 있었다. 여기선 사진을 찍어야지. 지고 있던 자전거를 번쩍 머리위로 들고 만세하듯 사진을 찍는다. 내가 보았던 장관 중 으뜸이 아니었나 한다. 잠시 내려가나 했는데 다시 오르막이다. 2,584미터의 뜨론채(Tronche)봉을 오르니 저 아래 사뺑(Sapin) 고개가 보인다. 쉬는 것도 잠시, 다음 목적지 보나띠(Bonatti) 산장까지 갈길이 멀다. 한참을 내려 온 것 같다. 좁은 길에 돌이 많아 라이딩이 썩 좋지 않았다. 중간의 휴게소라고 생각했던 곳은 허물어져가는 아마 목동들의 쉼터 같았다. 다시 웅장한 설산이 골짜기 사이로 꽉 차여 들어오기 시작한다. 어 이거 화폭에 제대로 담으려면 18미리 광각렌즈는 있어야 할 것 같다. 멋진 풍광이 다가오면 바로 그곳에는 산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마치 우리나라 명산 가장 좋은 풍광이 보이는 곳에 절 집들이 들어서 있는 것 처럼… 쉴 곳을 보니 힘이 솟는다. 마치 개선장군처럼 어려운 마지막 내리막을 페달에 발을 떼지 않고 관중들이 모여 있는 곳까지 와서는 ‘본 조~르노’하고 외친다. 햇볕을 받으며 풍광을 즐기고 있는 이태리와 프랑스 관森冗觀壙?박수를 받으며 잔차를 내리고는, 무릅을 굽히고 한 팔을 멋지게 대각선으로 내려서는 박수에 답하는 시늉을 한다. 이곳 촌놈들에게도 잔차를 타고 험한 산길을 내려오는 동양인들이 흥미로운가 보다. 그곳에서 야채스프와 빵과 쏘시지 치즈모듬으로 맛난 식사를 하였다. 산에서 배고플 때 먹는 음식은 모두 꿀맛이다. 오후 3시, 뱃속의 이물질들을 몰아내고 다음 목적지 엘레나 산장으로 출발. 2시간 30분을 달려 오늘의 종착지인 해발 2,150미터 엘레나 산장에 도착하였다. 이테리 깃발이 바람에 나부낀다. 임선생은 각본에 의한 촬영을 한다며 자기가 먼저 가서 촬영 준비를 하고 있을테니 큐 사인을 받은 후 언덕을 치고 오라는 요청이다. 힘이 들어도 이런 요청에는 얼굴을 펴고 멋지게 제스처를 취해야지. 그러나 내 얼굴속은 찌그러져 있었다. 프리데바(Pre de Bar)라는 빙하가 코 앞에 있어서인지 햇볕에 나와 있어도 서늘한 느낌이다. 일인용 카약을 실은 차들을 보았다. 오호 이 빙하의 끝나는 지점부터 와르르 흐르는 회색의 계곡물에서부터 내려가는 것 같다. 굉장한 급류가 위험해 보이고 또 얼음물이니 엄청 추울텐데. 허긴 남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지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뭔 걱정. 엘레나산장은 그 동안 묵었던 산장과는 달리 아주 깨끗하였다. 현금을 300유로만 달랑 가져와 동료들에게 또 다른 민폐를 끼치고 있었는데 이곳은 카드가 된단다. 영규야, 맥주 맘대로 마셔라. 와인도 마시고. 네사람의 저녁식사와 숙박 그리고 아침식사를 포함 맥주값과 와인값까지 얼마 안됩니다. 물경 200유로. 비누칠을 하여 샤워를 하고 빨래를 하고 저녁을 먹고, 우리는 9시가 되기 전부터 드르릉 코를 골기 시작하였다. 뚜루 드 몽블랑 기행 7부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Elena – Grand Col Ferret – Champex – Bovine – Col Forclaz - Chamonix) 2005년 7월 20일 오늘은 갈 길이 멀기 때문에 일찍부터 서둘렀다. 7시15분 해발 2,062미터 엘레나산장을 출발하여 근 40도 각도 경사를 넘어 해발 2,537미터의 페레고개(Col Ferret)로 향한다. 낑낑대기는 하였지만 이제 2시간의 급경사 정도는 인이 박혔나 보다. 오를 땐 분명 욕을 하면서 올랐는데 어느 덧 정상에 오르면 기분이 좋아진다. 아마 이곳이 이태리와 스위스의 국경이지. 다음은 내리막이다. 15분을 내려와 스위스국기가 펄럭이는 산장을 지나 신나는 내리막이 계속되었다. 근 한 시간을 포장된 도로를 포함 기분좋게 내려왔지만 분명 다시 오르막 갈 것을 생각하니 내리막도 그다지 신나지 않는다. 샴페호수(Lac de Champex)까지 9키로의 아스팔트 오르막인데 얼마나 걸리려나. 1시간20분이 걸렸습니다. 앞에 1단, 뒤에 3단을 놓고 토크와 마력을 유지하며 평속 7키로로 저었습니다. 중간에 딱 한번 쉬었으므로 9키로의 언덕길 1시간 20분이 맞습니다. 해발 1,466미터 샴페호수는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그 동안엔 설원의 봉우리가 우리를 감탄시켰는데 이번에 산 위의 맑고 넓은 호수가 우리를 기분 좋게 합니다. 양광이 제일 따뜻하게 비치는 노천 카페로 갔습니다. 감자튀김과 닭가슴살 튀김을 먹었는데 제법 맛이 좋았습니다. 성격 좋은 임선생은 뻔히 영어를 할 줄 알면서 프랑스어를 고집하는 그것도 스위스 카페의 웨이트리스가 불친절하다고 불평을 하였습니다. 어쨌든 음식이 맛있었으니 다행입니다. 영규가 좋아하는 그리고 나도 좋아하는 아이스크림도 시켜먹었습니다. 이곳에도 카드가 되는 군요. 식사를 마치고 휴식을 끝내니 오후 12시50분입니다. 이곳에서 포크라즈(Forclaz)고개까지 가는 길은 세 갈래인데 허도사는 그 중 두 갈래 길을 가봤답니다. 나머지 중간구간을 가보지 않았는데 지도상으로는 그곳이 지름길 같다고 하는군요. 처음엔 완만한 돌길을 피곤하지만 잔차를 밀고 갔습니다. 조금 지나니 더 이상 밀수가 없고 경사가 그리 높지 않은데도 잔차를 들어야 했습니다. 물론 나는 등에 지고 갔지요. 이거 길이 아무래도 이상하다며 최영규군이 허긍열프로를 부릅니다. 물소리 때문인지 아무리 불러도 앞으로 치고 나간 허도사는 대답이 없습니다. 산길은 점점 험해집니다. 경사는 물론 급해지고 길은 좁아지고 돌도 더 많아 졌습니다. 최영규군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치 못했습니다. ‘미쳤다, 미쳤어 이런 길을 잔차를 메고 어떻게 올라가라고..’ 우리의 영규도 힘들 때가 있나 봅니다. 계속 중얼거리며 이곳에 잔차부대 몰고 왔으면 거의 맞아 죽었을 거랍니다. 허긍열프로는 있을 수 있는 불평에 아마 악소리 못하고 쫓아 오게 하려는지 한참을 가도 보이지 않습니다. 평소에는 일행이 조금 떨어지면 위에서 기다려 주곤 하였는데. 세 선수 중 이번엔 내가 맨 앞이고 그 다음이 최영규선수 그리고 임덕용선수가 맨 뒤에서 올라 옵니다. 정말 힘들더군요. ‘갈수록 태산’이라던데 바로 이런 경우입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라고 했지 않습니까? 등이 휘고 어깨가 빠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 옛날 머슴들이 이렇게 서럽고 힘들게 짐을 지고 날랐을까요? 잔차계의 내 예명인 ‘머슴’을 다른 것으로 바꾸기로 하였습니다. 다시는 머슴 짓 안 한다고 굳게 마음도 먹었습니다. 최형석군의 예명 ‘뽄드, 제임스뽄드’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 동안의 여정을 가만히 돌아보니 삼식이를 찾으러 삼순이가 올랐던 한라산을 다섯 번은 넘은 것 같고, 백두산도 두 번은 넘은 것 같습니다. 정상에서는 딸랑 딸랑 종을 목에 매고우락 부락 검은 소들이 우리의 앞길을 턱 하니 막고 있습니다. 꼼짝 못하고 임선수와 제가 서 있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꼬마 아가씨가 회초리를 들고 소들을 물리칩니다. 3시간을 올라간 정상부근 능선에는 보바인(Bovine)이란 이름의 낡은 산장이 있었습니다. 해발 2,100미터는 될 것 같습니다. 오래된 산장인 듯한데 주인 아줌마는 벤치에 나와 앉아 뜨개질을 하고 있었고 할머니는 우리에게 오렌지쥬스를 날라주었습니다. 아까 그 롱다리 꼬마아가씨의 손에는 들꽃이 한 줌 들려있었는데 아마 뜨게 아줌마의 딸인 듯 싶습니다. 낡은 탁자 위의 화병에 물을 담아 꽃을 꽂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3시50분, 5분간 휴식을 취한 후 우리는 쏜살같이 다음 목적지를 향해 내 달립니다. 아슬아슬 다운힐하여 해발 1,527미터 포크라즈(Forclaz) 고개에 도착한 시간이 5시입니다. 마침 목이 말랐었는데 다운힐 실력이 엄청 향상된, 물론 최고급 산타쿠르즈(Santa Cruz) 풀샥의 덕도 보았겠지만, 영규가 먼저 내려와 살구인지 복숭아인지를 한 바구니 사두어 맛나게 나누어 먹었습니다. 저 아래 뜨리엥(Trient)마을에서 파리에서 날아 온 남동건씨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원래 나머지 네 사람과 뜨루 드 몽블랑을 같이 하기로 했었는데 e-Bay를 통해 산 중고 잔차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이번 여행에 합류하지 못한 것을 매우 아쉬워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가게에서 구했는지 TMB 구간이 그려져 있는 판박이를 자전거 앞에 붙이고 있어 우리 모두를 부럽게 하더군요. 열심히 페달질을 하여 스위스 국경을 넘어 예상보다 일찍 6시45분에 샤모니에 도착하였습니다. 영규는 불고기가 먹고 싶답니다. 샤워를 하고 불고기에 상추쌈, 순창고추장, 김치, 미역무침, 오이무침, 그리고 남사장이 가져온 물김치까지 배가 터지도록 밥을 먹었습니다. 몽블랑 빙하의 물로 만들었다는 Mont Blanc 맥주를 마시고 론(Rhone)강 유역의 맛난 포도주도 마셨습니다. 최영규군은 그 동안 해외에서 여행이나 모험을 하면서 한식을 먹고 싶다는 생각은 처음 해 본답니다. 흐 흐 녀석도 늙어 간다는 증거겠지요. 여러분, 이번에 우리가 고생 고생하며 넘은 알프스의 TMB(Tour de Mont Blanc)코스는 산악자전거(MTB)로는 한국인 초등이랍니다. 그전엔 아무도 한 적이 없다는 뜻입니다. 아마 등반을 한 경우도 별로 없을 거라는 군요. 등반을 한다면 10-12일은 걸리는 코스거든요. 물론 몽블랑 산사나이인 허긍열선수가 한번 돌기는 했답니다. 어떤가요. 우리 박수를 받아도 되겠지요. 끝까지 포기하지 않도록 앞에서 끌어 준 최영규군, 뒤에서 밀어 준 임덕용님, 그리고 묵묵히 일행을 돌봐 준 허긍열님, 대단히 고맙습니다. |
첫댓글 행님 잘지내시죠~좋은글 감사합니다.
와우~~
사랑하는 아우님 별고 없어시옵고
샤모니로 떠나기전 간도 보시고
그모습 음미 하시라고
업고 온다고 ㅋㅋㅋ~~
무거버서 혼났시요
이글을 접하고 가입했습니다.. 얼마나 좋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