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金須)[생몰:?-1270(원종11)] 고려의 문신. 본관은 광산. 사공(司空) 길(吉)의 후손이며 담략이 뛰어났다.과거에 급제하
여 어사를 거쳐, 1271년 영암부사(靈巖副使)로 출보(出補)되었다.
초계김씨(草溪金氏) 시조 김수(金須)는 《김씨분종보(金氏分宗譜)》에 의하면 대보공 김알지(金閼智)의 후예로 전하는 광산
김씨 시조 흥광(興光)의 14손이자 금오위대장군(金吾衛大將軍) 문하시중평
장사(門下侍中平章事)를 지낸 김경량(金鏡亮)의 아들이며 광산김씨 15세손 태현(문정공)의 아버지다.
그를 시조로 하고 있다.
그를 시조로 본관을 초계로 하게 된 연유는 상고할 수 없으나 문헌에 그가 시조로 보인다.
그는 문과에 급제,어사를 거쳐 영암부사로 나갔다.
1270년 진도에서 패한 삼별초가 제주로 몰려들자 안찰사 권탄(權坦)의 명으로 2백명의 군관을 이끌고 제주를 지키다 중과부
족으로 패하여 부하들과 전사했다는 사적이 문헌에 보인다.
아마 그의 후손들이 광산김씨에서 분파한 후 본관을 초계로 하고,그를 시조로 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초계는 본시 신라의 초팔혜현(草八兮縣)으로 경덕왕때 팔계현(八溪縣)으로 바꿔 강양군(江陽郡)의 속현이 되고 고려때 초계
현(草溪縣)으로 바꿨는데 현종때 합주(陜州)에 속하였고 명종때 감무(監를
두었다가 충숙왕때 군(郡)으로 승격되었고, 조선조에 와서도 그대로 하여 군수를 두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지
금은 경남 합천군 초계면(慶南 陜川郡 草溪面)이다. 1985년 인구조사 통계
에 의하면 남한에 총36세대 189명이 각 시·도에 흩어져 살고 있는데 논산에 11세대. 대전에 6세대등 충남에 73명, 서울에 46
명, 부산에 17명등이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