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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 학자 |
배타주의 (exclusivism) |
포괄주의 (inclusivism) |
평행주의 (parallelism) |
다원주의 (pluralism) |
규범주의 (normativism) |
R.파니카 |
배타주의 |
포괄주의 |
평행주의 |
다원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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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니터 |
보수 복음주의 |
가톨릭 모델 (구원 방법은 다양, 규범은 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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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중심적 모델 |
개신교 주류 모델(타종교에도 계시 가능, 그러나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하여) |
J.드퓌스 |
교회 중심적 배타주의 |
그리스도 중심적 포괄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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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중심적 다원주의 구원 중심적 다원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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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 Niebuhr (최영철) |
타종교를 반대하는 그리스도 |
타종교 안에 있는 그리스도 |
타종교와 함께 있는 그리스도 |
그리스도 없는 종교 |
타종교 위에 있는 그리스도 |
제1항 교회 중심적 배타주의
교회 중심적 배타주의(Ecclesiocentric Exclusivism)는 그리스도교만이 진리를 소유하고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보는 태도이다. 이러한 경향은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구호에서 볼 수 있듯이 자신의 종교적 믿음 체계를 절대 진리로 확신하고 받아들이지만 타종교에 대해선 배타적이고 비타협적인 태도를 지닌다.105) 이러한 주장의 성서적 근거는 사도행전 4장 12절에서 볼 수 있다: "이분(그리스도)을 힘입지 않고는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 주신 이름 가운데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이름은 이 이름밖에는 없습니다." 이러한 대목을 바탕으로 니케아 공의회(325년)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이 결합되어 있으며 삼위일체(三位一體)의 2위로서 참 하느님이심을 고백하였으며, 이것은 그리스도론 교리의 핵심을 이룬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운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입장이다.106) 이러한 태도는 지상의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하느님 나라와 동일시하며, 인간 구원을 위한 유일한 수단이며 원천으로 생각한다. 오늘날 보수적인 개신교가 이러한 범주에 들 수 있다.107) 1920년 이래 개신교의 소위 신정통주의(新正統主義)로 등장한 칼 바르트(K.Barth, 1886~1968)에 의해 주도된 변증법적 신학(Thélogie dialectique)의 노선이 이 경향을 대표한다. 이들은 인간 구원을 위한 3대 원리를 '은총으로만(sola gratia), 신앙으로만(sola fide), 성서로만(sola scriptura)'으로 보고 그리스도교의 배타적 우위성을 강조한다. 그와 더불어 헨드릭 크레머(H.Kraemer)와 같은 신학자는 비그리스도교를 우상 숭배하는 종교로 보든지, 하느님 인식에 있어서 희미하고 빈약한 구원적 가치만 있을 뿐이라고 보는 견해이다.108) 여기서는 인간의 구원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가 절대로 필요하다.
가톨릭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 이러한 입장을 취했으나, 공의회 이후 가톨릭 교회 밖에서도 구원이 가능하다고 본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는 세상 구원을 위한 보편적 성사'라고 정의하였다. 성사(聖事)란 보이지 않은 하느님의 은총을 가시적인 표지로서 나타내 주는 거룩한 사물이다. 교회를 이렇게 이해할 때,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다'라는 배타적인 표현보다는 한스 큉(Hans Küng)의 말대로 '교회 안에 구원이 있다'고 긍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교회 안에서 구원을 선물로 받은 그리스도인은 좋은 신앙인의 모습으로 교회 안과 밖에 서서 세상 구원을 위한 성사로서의 역할을 한다면, 하느님의 보편적인 구원 계획에 협력하는 일이 될 것이다.109)
제2항 그리스도 중심적 포괄주의
1) 완성 신학의 관점
그리스도 중심적 포용주의(Christocentric Inclusivism)의 태도는 그리스도교가 절대적이며 보다 완전한 진리를 가지고 있지만 다른 종교들도 덜 완전하거나 부분적으로 진리를 소유하고 있다고 보는 견해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도 중세 신학을 통해 형성된 공리(公理)로서 '은총은 본성을 파괴하지 않고 전제하며 완성한다'는 이론이 있었다. 이러한 신학적 원리를 적용하여, 옷토 카러(Otto Karrer), 앙리 드 뤼박(Henri de Lubac), 장 다니엘루(Jean Daniélou)와 같은 신학자는 '완성 신학'(完成 神學)을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교는 비그리스도교의 충만이며 완성으로 여겨졌으며 비그리스도교는 하느님이 그 구세사적 교육과정에서 의도한 완성의 길에 이르기 위한 준비 단계(準備段階)로 이해되었다.110) 이러한 이론은 가톨릭 신학자 칼 라너의 '익명(匿名)의 그리스도인' 이론과 인도의 개신교 선교사였던 화쿠와의 성취이론(the theory of fulfilment)에 영향을 주었다. 화쿠와의 성취이론(成就理論)에 의하면 그리스도교의 구약이 신약을 위한 예표로서 역할을 했듯이, 세상의 모든 종교들은 구약으로서 신약인 그리스도교를 위한 표징 역할을 하며, 그리스도교를 통해야만 모든 종교는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111)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가톨릭 교회의 입장은 칼 라너의 이론을 반영한 포용주의적 범주에 속하며, 이러한 입장은 1981년이래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으로 있는 요셉 라칭거 추기경의 토착화 이론에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다.112) 라칭거는 우주적이며 정적인 문화가 유다- 그리스 문화 체계 안에서 변형되면서 지속적인 충만(充滿)에 이르렀으며, 반면에 비그리스도교 종교들은 그리스도께 인도되어 정화(淨化)되고 완성(完成)되어야 하는 '대림적 성격'(待臨的 性格)을 지니고 있다고 피력하고 있다. 이것은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 의지가 신약성서에 표현된 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결정적으로 나타났기에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 구원의 궁극적 중개자(仲介者)임을 믿고 그분의 교회 안에서 구원을 받긴 하지만, 그리스도교 교회 밖의 다른 종교 전통에서도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의지(普遍的 救援意志)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이 현존하고 활동한다고 본다. 그와 더불어 비그리스도교들은 정화되고 완성되어야 하는 성격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2) 하느님의 구원 은총의 보편성
포괄주의의 두 번째 관점은 하느님의 구원 은총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뿐 아니라 타종교인들에게도 작용하는 것으로서 보편적이라는 것이다. 사도 바오로는 아테네의 아레오파고 광장에서 아테네 시민들이 '알지 못하는 신에게'도 예배드리는 점을 관찰하면서 그들이 알지 못하고 예배드려 오던 분이 바로 온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창조주로서 사람들에게 생명과 호흡과 모든 것을 주시는 분으로서, 사람들이 '하느님을 더듬어 찾기만 하면 만날 수 있다'고 하였다(사도 17,16∼33). 그리고 사도 바오로는 디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편지에서 하느님의 보편적인 구원과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재자성에 대해 밝히며, 그 분의 대속적 죽음이 모든 인간을 구원으로 이끄신다고 밝히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받게 되고 진리를 알게 되기를 바라십니다. 하느님은 한 분뿐이시고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중재자(仲裁者)도 한 분뿐이신데 그분이 바로 사람으로 오셨던 그리스도 예수이십니다. 그분은 자기 자신을 모든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바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느님의 뜻을 적절한 시기에 분명히 나타내 주셨습니다"(1디모 2,4∼6). 그리고 「사목헌장」이 "성령께서는 하느님께서만 아시는 방법으로 모든 사람에게 빠스카 신비에 참여할 가능성을 주신다"(22항)고 표현한 것은 하느님의 영이 그리스도 신자가 아닌 이들에게도 작용하여 그들을 선한 지향과 선한 행실로 이끌어 하느님의 구원이 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태도이다.
그뿐 아니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도 '교회밖에 구원(救援)이 없다'는 표현과 '교회밖에 은총(恩寵)이 없다'는 표현을 다른 의미로 해석하였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교회의 비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신중한 태도를 반영한다. '교회밖에 은총이 없다'는 표현은 1713년 오라토리오 회원인 파샤시우스 퀘스넬(Paschasius Quesnel)에 의해 주장되다가 교도권으로부터 단죄되었다(DS. 2429). 그러므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도 하느님의 은총은 교회 밖에서도 작용하고 있다는 입장이었다.113) 하지만 그리스도교 밖의 종교 전통들 안에서도 구원되기 위해서는 어떤 모양으로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신비와 연결되어야 한다고 하면서도, 공의회는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 그 신비가 어떻게 연결되는 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다.114)
3) 익명의 그리스도교적 신앙과 명시적 신앙고백
이 문제에 대해 칼 라너는 익명의 그리스도인들의 구원 이론을 펴고 있다.115) 칼 라너는 자신의 신학적 진술을 유비적(analogous)관점에서 진술하며, 그가 생각하는 그리스도교 복음의 핵심은 무한하시고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먼저 당신 자신을 피조물에게 전달하셨기에, 인간은 또한 하느님이 주신 은총으로 하느님을 수용할 수 있고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 계시의 절정이 된다. 그리고 인간은 하느님의 자기 전달을 일상적 삶 속에서 깨달을 때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는 존재가 된다. 라너는 또한 그리스도인이 구원되기 위해서는 하느님을 믿어야 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아 크리스천의 명시적 신앙고백(明示的 信仰告白)에 이르기까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성체 성사의 충만한 친교 생활에로 단계적으로 상승되어야 함을 전제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인간의 구원은 크리스천 신앙(信仰)과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 의지(救援 意志)에 의해 이루어진다.
라너의 초월적 신학(超越的 神學)에 의하면 하느님은 인간에게 자신을 전달하시고 당신을 알 수 있는 은총을 선험적(先驗的)으로 부여하셨기 때문에, 인간은 자신의 자유를 보전하면서도 하느님을 알 수 있고 당신을 수용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어 있는 초자연적 실존(超自然的 實存)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상의 은총을 깨닫는 것이 하느님 체험이 된다. 그러므로 인간은 누구나 존재론적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하지만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역사 안에 구체적으로 '육화된 말씀의 전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명시적인 신앙고백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 의지와 하느님의 자기 전달로서, 그리고 말씀이신 로고스로서 육화의 절정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며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함께 하느님께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밖에 있는 비그리스도인들의 구원은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우선 하느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으로 이끄는 분이심을 전제할 때(1디모 2,4), 비그리스도인들도 하느님의 자비로운 구원 계획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느님의 자비로운 은총에 의해 폭넓게 구원 질서 안에 속하게 된 이들을 '함축적 의미의 크리스천' (implicitly christian)으로 표현한다. 함축적 의미(含蓄的 意味)의 그리스도인은 명시적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고백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선한 양심(良心)이 이끄는 대로 살아감으로써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이들로서, 이러한 의미로 익명의 그리스도인(anonymous christian)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이해된다.
자신의 도덕적 양심을 따르는 자는 자신이 비록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더라도 혹은 심지어 무신론자일지라도 관계없으며, 그는 그 행위로서 하느님께 받아들여져 영생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116) 그리고 도덕적 선한 양심을 따르는 자들, 이들이 바로 「교회헌장」(LG) 16항에서 말하는 '영상 속에서 신을 찾고 있는 사람들'이다. 다만 이들의 구원 문제에 있어서 전제되는 조건으로는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가 '자기 탓이 없어야' 하며, 하느님 편에서는 그들에게 '그분의 은총(恩寵)이 작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인간 편에서는 '하느님을 찾으려는 성실한 노력(努力)'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양심의 명령에 성실하게 따르는 삶을 말한다. 이러한 상태에 살고 있는 이들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서 제외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익명의 그리스도인들은 그 상태로 계속 머무를 수만을 없으며, 이들의 온전한 의미는 교회 안에서 명시적으로 신앙을 고백할 때 구원의 충만한 의미를 회복한다. 라너에 의하면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가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가시적 공동체이며, 우리 인간 역사 안에서 그분을 보여주는 영원성의 현존이며 세계 역사 안에서 그분의 계속적인 현존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117) 익명의 그리스도인은 가톨릭 교회 안에서 명시적으로 신앙고백을 함으로써 자신이 영상 속에서 찾던 바로 '그분'에게 귀의하는 일이다. 그것은 어두움 속의 여정과 방황을 끝내고 생명과 사랑과 구원의 하느님 품안에서 참된 휴식과 평화를 찾게 되는 일이다. 그러므로 익명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구원 섭리의 대상이 되는 동시에, 더 나아가 하느님의 계시와 교계 제도, 그리고 은총과 성사들을 간직하고 있는 가톨릭 교회 안에서 명시적으로 신앙고백을 하는 단계로 상승됨으로써 그리스도교적 구원의 충만성(充滿性)을 성취한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선교적 실존의 의미와 연결된다.
4) 포괄주의에 대한 비판
한편, 칼 라너의 '익명의 그리스도인'설과 한스 큉의 '가능적 그리스도교'설, 그리고 화쿠와의 '성취이론', 그리고 요셉 라칭거의 '비그리스도교의 대림적 성격 이론'으로 대표되는 이러한 포괄주의는 폴 니터, 존 힉 등 종교학자들에 의해 선험적 다원주의(先驗的 多元主義)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그것은 곧 포괄주의의 이름으로 타종교를 자신의 종교적 세계관의 범주에 예속시키는 이론이라고 비판되기도 한다.118) 가톨릭 교회의 포괄주의적 입장은 다원주의자들에게는 타종교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개방 필요성을 약화시키며 종교들이 동등하게 비교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의 궁극적 구세주가 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타종교의 가치관을 그리스도교의 척도로 해석하는 우월주의적 사고가 내재되어 있거나 혹은 혹평하여 말하길 '은폐된 종교 제국주의'가 숨겨져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입장에 대해서는 결론 부분에서 언급하기로 한다.
제3항 신 중심적 다원주의
신 중심적 다원주의(Theocentric Pluralism)는 종교간의 대화에 있어서 포괄주의 이론이 선험적 이론이라고 비판을 받게 되자, 다원주의를 하느님의 뜻으로 생각하며, 하느님은 구원적 중개자와 구원 수단들을 다양하게 마련하였다고 하면서 구원 방법의 다양성을 주장하게 되면서 나오게 되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건이 갖는 '유일회성'(唯一回性)은 역사적으로 증명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하느님이 제시하신 다양한 구원 중개자들 중의 한 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신 중심적 다원주의의 태도는 하느님이 각기 개별 종교 전통 안에 살아가는 이들에게 각기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을 계시하시고 현현(顯現) 하신다고 보는 견해이다. 여기서 하느님은 모든 종교 전통의 궁극자(窮極者)가 된다. 하느님의 현현과 계시(啓示)가 각자의 문화권과 관습, 사고방식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과 다른 방법으로 나타나기에 여러 종교들은 하느님을 인식하고 신앙하는 방법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태도이다. 그리고 하느님은 구원의 길에 있어서 그리스도와 같은 구원 중개자의 길을 여러 종교들을 통해 다양한 모습으로 제시하는 구도를 갖는다. 폴 니터나 존 힉과 같은 다원주의자들은 하느님은 한 분이면서도 그리스도교뿐만 아니라 힌두교와 불교 등 여러 종교들 안에서도 그리스도와 같은 구원적 역할을 다른 종교의 계시자(啓示者)들에게 다양하게 제시한다고 주장한다.119)
여기서 존 힉이 말하는 '하느님'의 의미는 유신론적인 의미를 초월하여 사용하는데, 그리스도교, 불교, 힌두교 등의 종교인이 다같이 지칭할 수 있는 분으로서, '하느님'(God)이라는 용어보다도 '영원한 일자' (The Eternal One) 혹은 '실재'(The Real)라는 말로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존 힉은 그리스도교의 예수 그리스도의 배타적 유일성 주장이 종교간의 대화에 있어서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제거하고자 하였다. 힉은 그리스도의 유일성은 니케아 공의회와 칼케돈 공의회에서 결정된 예수의 신성(성부와 동일 본질이며, 참 하느님이시오, 참 인간이신 분)을 지나치게 형이상학적이며 존재론적으로 해석한 것이기에 이것은 다원적 시대에는 알맞지 않은 개념으로 생각했다. 존 힉에게 예수는 신을 중심으로 전적으로 자유로이 헌신적인 삶을 살았던 위대한 분이셨다. 하지만 초대 교회 신자들은 예수를 흠모한 나머지 그에게 메시아,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부여하였으며, 특히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개념 속에서 '육화' 개념이 유일회적인 것으로 고정되어 갔다고 해석한다. 여기서 존 힉은 예수의 육화를 1세기 말 초대 교회 신학이 반영된 것으로 보며, 그것이 451년 칼케돈 공의회에서 교리로서 표현된 것으로 본다. 그러나 힉은 이 '육화'를 그 자체의 진실성이라기보다 그리스도 신자들의 예수를 통한 신과의 접촉점을 표현하기 위한 상징적, 신화적 표현으로 이해한다.
그러므로 힉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는 예수가 모든 인간을 위한 삶의 규범이 되며 다른 구세주를 필요치 않는다고 본다. 이런 의미에서 힉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인정하지만, 그것이 이 세상의 모든 다른 그리스도가 있을 수 없다는 배타적 독점성에는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는 나의 주님이다'라고 한 것은 연인들 사이에서 '나는 당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쁘다'는 고백과 같은 논리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인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당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쁘다고 말했다고 해서, 그 연인이 과연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것은 아니듯이,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는 나의 그리스도이시다'라고 한 것이, 과연 이 세상에는 다른 그리스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이다. 이런 의미에서 힉은 종교 다원 시대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예수께 대한 신앙의 유일성을 고백하면서도, 타종교에서의 그리스도들의 존재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으며, 이러한 그리스도들을 통해 실재 자체이신 '하느님' 혹은 '신'이신 분에게로 향하는 신 중심적 다원주의로서, 모든 종교들은 동등하게 대화하고 협력하여 인간 발전을 가져오게 하자는 취지를 볼 수 있다.120)
레이몬드 파니카는 교부들의 '로고스 그리스도론'을 바탕으로 '보편적 그리스도'와 '역사적 예수'를 구분하고, 역사적 예수는 다양한 종교 전통들 안에서 구원적 방법으로 현존할 수 있는 보편적 그리스도와 일치되지 않을 수도 있으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는 그리스도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그리스도가 예수'라고 말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전제해야 한다고 하면서 '진정으로 보편적인 그리스도론'(An au- thentically universal christology)을 주장한다.121) 그러므로 다양한 종교들 안에서 그리스도의 구원 중개자성은 유일성으로가 아니라 공통적으로 포함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느님은 역사 안에서 각 시대 각 장소에 여러 다양한 형태로 그리스도와 같은 인품과 역할을 수행하는 구원자를 주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느님은 한 분이면서 구원자는 여러 종교들 안에서 다양하게 나타난다고 보는 견해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규범적 이상(normative ideal)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을 구원하시는 것처럼, 각자가 속해 있는 신앙 전통들을 통해서도 사람들을 구원하신다고 보는 견해이다.122)
■ 그리스도교 입장에서의 신 중심적 다원주의에 대한 비판
그리스도교적 입장에서 볼 때,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본 바탕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육화사건을 의문시하여 신화적인 기술로 재해석하는 존 힉 등과 같은 다원주의적 입장123)은 그리스도교에서 수용되기는 힘들다. 그리고 파니카, 스미스(W.C.Smith), 폴 니터, 사마르타, 존 힉 등이 주도한 신 중심적 다원주의는 그리스도 중심적 모델이 지닌 배타적 성격을 극복하고자 궁극적 실재로서의 신의 초월성을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이 모델은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와 같은 유일신교와 유신론적 힌두교와 같은 면에서는 적용이 가능하지만, 인격신의 개념이 없는 불교나 도교, 신 유교(주자학)와 같은 종교에 적용하기는 부적합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존 힉은 궁극자를 '하나의 무한한 신적 실재'만을 가정하고 있으나 그것은 일종의 종교 통합에 불과하며 현대 포스트 모더니즘이 강조하는 진정한 다원주의가 될 수는 없다고 비판된다.124)
제4항 구원 중심적 다원주의
구원 중심적 다원주의(Salutocentric Pluralism)의 근본 입장은 모든 종교는 각자 신봉하는 궁극적 존재에 대한 다양한 반응이 여러 종교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여러 종교들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인정하며 서로 공존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각 종교가 신봉하는 궁극적인 존재는 각자 독립적으로 나름대로 궁극적인 실재가 된다고 보므로 다원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보는 견해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리스도교의 구원자가 되듯이, 타종교들 안에도 신을 인식하고 체험하고 나름대로 제시한 신앙 전통들은 그들 종교인들을 위한 구원의 길이 된다고 보므로 예수는 '비규범적' 성격의 그리스도가 된다. 존 힉은 인격적인 신(神) 표상과 비인격적인 신 표상을 포괄하는 더 높은 '영원한 일자'(The Etermal One) 혹은 '실재'(The Real)를 상정했기 때문에 유신론적 하느님관속에 머물러 있던 신중심주의로부터 불가피하게 구원 중심주의로 나아갔다. 힉에 의하면 모든 종교는 구원을 향해 가는 길들이며 자아 중심적 사고로부터 실재 중심적 사고로 전환하는 충만한 인간성을 실현하는 길들로 본다.125) 폴 니터도 종교간의 대화가 진전되기 위해서는 각자 신봉하는 궁극자 신(神)은 인간을 구원(救援)하고 해방(解放)한다는 목표가 동일하므로 올바른 실천(正行)과 인간의 복지를 증진시키는 일을 주제로 대화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하여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을 기준으로 종교인들이 정의, 사랑, 자유, 복지 등을 주제로 하여 인간의 진정한 행복(幸福)을 위해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대화하고 노력하는 일은 그리스도교의 복음을 선포하는 일보다 우선시 된다. 여기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유일한 구원자라는 믿음보다는 인간의 해방과 구원을 위해 헌신하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고 행동하는 일이 더 중요하게 된다.126)
■ 그리스도교의 입장에서 본 비판
구원 중심적 다원주의는 인간의 복지(福祉)와 해방(解放)을 위해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모든 종교인들은 동등하게 나름대로 구원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가 언뜻 보면 설득력을 갖고 있는 주장같이 보이지만, 좀더 깊게 생각해 보면 그리스도교의 입장에서 볼 때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개자성이 상대화되고 평준화될 뿐 아니라, '비규범적'이 되며 잘못하면 세바스찬 카로템프렐 신부의 지적처럼, '그리스도 없는 대화'(Dialogue without Christ)에로 갈 수 있는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127) 그리스도교적 입장에서 인간의 복음적 구원을 '그리스도 없이'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128) 사도 바오로는 아테네의 아레오파고 법정에서 '신을 중심으로' 설교했으나 그다지 큰 복음적 성과를 얻을 수 없었다. 그 이후 그는 신 중심적 설교보다는 오직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Christ on the Cross)를 통하여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설교를 하고자 결심하였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전하는 소위 어리석다는 복음을 통하여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기적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지만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선포할 따름입니다"(1고린 1,21∼23). 사도 바오로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함으로써 이방인들도 예수를 믿고 같은 성령을 받아 하느님 아버지께로 가까이 나아가게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방인들은 이제 외국인도 아니며 하느님의 한 가족으로서 하느님의 축복의 상속자가 되며 모퉁이 돌인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신령한 하느님의 집을 구성하는 것이다(에페 2,11∼22).
그러므로 가톨릭의 입장에서 '예수 그리스도 없는' 구원 중심적 다원주의의 모델을 수용하기는 힘들다. 가톨릭 교회는 어디까지나 인류 구원에 있어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보기 때문이다.129)
지금까지의 논의를 도표로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모델 척도 |
교회중심적 배타주의 |
그리스도 중심적 포괄주의 |
신 중심적 다원주의 |
구원 중심적 다원주의 |
신앙의 대상 |
그리스도교의 하느님 |
그리스도교의 하느님 |
초월자, 궁극자로서의 하느님 |
각 개별 종교의 궁극적 존재자 영원한 일자 혹은 실재 |
구원의 요소 |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 |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선한 양심, 바른 행동의 실천 |
각기 다양한 종교들 안에서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이 제시하는 법에 일치하여 살아가는 일 |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이 아니라 하더라도 각기 다양한 종교들이 제시하는 구원의 길을 수행함 |
구원받는 이들 |
그리스도교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 |
그리스도교인 및 선한 양심으로 살아가는 익명의 그리스도인들 |
타종교를 신봉하면서도 그리스도교인처럼 선량한 이들 |
각기 다양한 종교들 안에서 신봉하는 이들 |
신학적 입장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가톨릭 교회, 복음주의적 개신교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가톨릭 교회 |
가톨릭, 개신교의 자유주의 신학자 |
종교 철학자 종교 해방 신학자 |
신학사상 |
위로부터의 그리스도론 |
위로부터의 그리스도론 |
아래로부터의 그리스도론 |
아래로부터의 그리스도론 |
신학 방법 |
연역적 원리 |
연역적 원리 |
귀납적 방법 |
귀납적 방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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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제3절 종교간의 대화와 공존을 위한 다원주의적 입장
여러 종교들이 한 사회 안에 공존할 때 서로 다양한 신념 체계와 가치 체계들 사이에 갈등과 마찰이 생길 수 있다. 그리고 그 다양한 종교들이 내세우는 가치 체계가 절대성을 표방할 때 그 대립의 양상은 첨예해 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는 과거와는 달리 개인의 기본적 권리가 인정되고 자유가 보장되므로 과거처럼 어떤 특정 종교의 진리만을 전적으로 내세울 수는 없는 상황이다. 물론 각각의 종교는 나름대로 자신의 신념 체계와 가치 체계가 절대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종교 다원주의적인 이론이 각각의 종교들에 결코 호의적인 것은 아니다. 가톨릭의 경우 최근 교황청 신앙교리성은 전체 가톨릭 세계의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리를 증진하고 보호할 임무를 상기시키고 올바른 신앙에 반대되거나 위험해 보이는 글이나 의견들을 검토하기 위해 「교리검토규정」을 반포한 바 있다.45)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에서도 종교 다원주의의 신학적 경향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가톨릭의 올바른 신앙을 갖기 위해, 그리스도교의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포기하면서까지 타종교와 대화하려는 자세의 위험성을 우려하고 있다.46) 이런 면에서 종교 다원주의는 종교 자체가 갖고 있는 이론적 원리가 될 수는 없다. 그것은 종교 밖의 사회가 요구하는 상호 공존의 원리에서 온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들 간에는 긴장 상태에서 타종교의 가치 체계에 대해 상호 비방을 삼가고 필연적으로 상호 이해를 위한 대화의 길을 수용하게 된다.47)
제1항 종교간 대화 유형
이러한 종교간의 대화 유형에 대해 정진홍 교수와 윤이흠 교수가 분류한 바 있다. 정진홍 교수의 분류는 각주를 참고하기 바라며,48) 여기서 살펴보는 윤이흠의 분석에 의하면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되고 있다.49) 첫째는 선교 관계형(宣敎 關係形) 대화이다. 이것은 직접 선교를 위한 소극적 대화 유형과 간접 선교를 위한 적극적 대화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여기서 직접 선교를 위한 소극적 대화 유형은 우월주의를 은폐한 회유책이며 독백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태도는 토착 문화의 반발을 피하기 위한 관용적 회유책으로서 진정한 대화가 될 수 없고 자기 종교만을 선교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으로 지적된다. 그 다음 간접적 선교를 위한 적극적 대화는 종교 연합 활동을 통해 전개되는데, 세력을 지닌 종교단체들이 가입하여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간접적인 선교의 효과를 얻고자 한다. 두 번째 유형으로는 종교 외적 공동 목표형(宗敎 外的 共同目標形) 대화이다. 이 유형에 의한 대화는 종교간에 외적 목표를 공동으로 인식할 때는 대화가 지속될 수 있지만, 공동 목표가 사라지면 대화도 없어지는 유형이다. 셋째는 공동 질서 추구형(共同 秩序 追求形) 대화이다. 이 유형은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대화 형태로 평가되지만 현실적으로는 가톨릭의 수녀, 불교의 비구니, 원불교의 정녀들이 구성한 삼소회(三笑會) 모임처럼 특수한 조건에 있는 종교인들만이 가능하다. 하지만 공동 질서의 이념을 찾는 대화 운동에 있어서는 종교인들간의 학술회의와 저술 활동을 통해 활발히 전개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종교인 모임의 대화 과정에 참여하는 개별 종교인은 개인적으로는 자유로운 사상을 갖고 있을지라도, 실제로 타종교인들과 대화할 때에는 자기 종단을 대표하는 입장에 서므로 자기 종교의 교리적 입장을 고수하게 되거나, 혹은 포괄적(包括的)이거나 선험적(先驗的)인 이론을 내세우게 되는 한계점을 갖게 된다. 그러므로 종교 다원주의는 각 종교인이 지닌 선험성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다.50)
제2항 종교간 대화를 위한 규칙
레이몬드 파니카는 이런 의미에서 종교간 만남을 위한 몇 가지 규칙을 제시하였다:51) 첫째, 종교간의 만남은 자기 종교의 변호를 위한 특정한 호교론(護敎論)을 피해야 하며, 또한 종교성을 옹호하기 위한 일반적인 호교론으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종교간 만남에서 야기될 수도 있는 개종(改宗)이라는 도전에도 직면할 수 있도록 개방적인 자세(開放的 姿勢)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종교간 만남에 있어서 자기 종교의 역사적 차원이 지닌 중요성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바로 현재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생동력(生動力)있는 삶을 나누어야 한다는 것. 넷째, 종교간의 만남은 단순히 철학적, 신학적, 교회적 회합이 아니며, 오직 선입견적인 판단을 중지하고 믿음, 소망, 사랑 가운데 진행되는 종교적 대화(宗敎的 對話)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종교간의 대화'(Interreligious dialogue)는 '종교 내의 대화'(intrareligious dialogue)와 함께, 즉 대화하는 나 자신의 내적 대화(內的 對話), 나의 종교성의 깊이에서 이루어지는 만남의 차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종교간의 대화(對話)를 '신학'(神學)의 중심으로 삼아 '보편적 종교-이념의 신학'(普遍的 宗敎·理念神學)을 전개하고 있는 레너드 스위들러(Leonard Swidler)는 대화를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둘 또는 그 이상의 사람들이 저마다 변화하고 성장하기 위해 서로에게서 배우는 것을 일차 목적으로 하는 의사 소통'으로 정의하면서, 대화는 현대사회의 필연적인 요청이라고 주장한다.52) 스위들러에 의하면 지난 세기까지의 진리관은 정적, 절대적, 배타적이었지만, 현대에는 역동적이며 대화적, 관계적이 되었다고 본다. 스위들러는 칼 만하임(K.Manheim), 비트겐쉬타인(L.Wittgenstein) 등의 견해와 같이하여 진리를 역사적 환경의 산물로 보며, 또한 가다머(H.G.Gadamer), 폴 리꾀르(P.Ricoeur) 등의 해석학적 통찰을 따라서, 지식을 또한 '해석된 지식'으로 보는 경향을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진리는 '대화적' '관계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53) 이러한 입장에서 스위들러는 종교간의 대화를 세 가지 영역으로 제시한다.54) 첫째, 실천적(practical) 영역의 대화: 이 대화는 종교들 대부분이 가르치는 사랑, 자비, 관용, 정의, 인권 옹호 등 구체적인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한 종교간 협력을 말한다. 둘째, 영적(spiritual) 영역의 대화: 이 대화는 상대방의 종교나 이념을 안으로부터 경험하는 대화이다. 즉 다른 종교의 내면세계로 들어가서(going over) 새로운 경험과 통찰을 체험하고, 다시 자기 종교로 되돌아옴으로써(coming back), 종교체험을 풍요롭게 하며 상호 이해의 지평을 얻는 것이다. 셋째, 인식적(cognitive) 영역의 대화이다. 이것은 자신의 종교적 입장을 성실히 유지하면서도 상대방의 종교적 확신(宗敎的 確信)에 대해서 갖는 나의 추론적인 인식(推論的 認識)에 의한 이해를 말한다. 스위들러는 이러한 대화의 단계를 통해 상대방의 종교적 소신을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적 종교-이념의 신학'(Universal theology of religion-ideology)이 된다고 하였다. 스위들러는 이렇게 자신의 종교에 충실하면서도 대화를 통해 타종교의 전통과 사상을 적극적으로 이해하는 '보편적 종교-이념의 신학'을 세우고, 성서학자 조셉 켈리(Joseph G.Kelly)의 견해에 동의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느님을 따르는 제1규범이 되지만, 하느님을 발견하는 방법은 예수의 길이 유일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취한다. 그러므로 오늘날 진리는 독점될 수 없으며 '독백에서 대화로' 나아가야 함을 주장하는 것이다.55)
이런 면에서 종교 다원주의는 다양한 종교들이 공존하는 사회적 현실 상황에서 종교가 자신의 생존과 타종교와의 관계를 모색하기 위한 종교 재해석(再解釋)의 기틀로 이해되는 것이다. 종교는 종교 다원주의가 제시하는 책임과 의무를 준수할 때 종교간의 상호 공존과 대화, 협력을 위한 종교 윤리의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이다.56)
제3항 종교적 대화의 필요성
한편, 종교적 대화는 어떤 종교인이 타종교인과 대화할 때 자신이 신봉하는 진리나 규범 체계를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만일 어떤 그리스도인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받아들이는 것을 포기한 채로 다른 종교인과 대화한다면 진정한 종교 대화에 이를 수는 없을 것이다.57) 그는 이미 그리스도인임을 포기한 것이기에 종교인으로서의 대화는 성립이 안 되기 때문이다. 종교 신학자 파니카는 자신의 입장에 대해 "나는 기독교인으로 '출발해서', 나 자신이 힌두교인 임을 '발견하고', 불교도로 '되돌아갔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그가 그리스도 교인이 되기를 그만 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58) 그리고 유대교와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는 개신교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 1926∼)도 자신의 신앙을 절대화하지도 않고 타종교의 이념이나 신념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인식하는 가운데서 개방성(開放性)을 지니는 태도를 권고하고 있다.59) 그리하여 그는 종교 다원론자들이 빠지기 쉬운 초종교일반론(General meta-religious theory)을 경계하는 동시에 '종교' 통합을 위해 '그리스도교' '유대교' 등을 없애는 종교 제국주의적인 태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몰트만에게 있어서 종교 대화란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사랑 안에 있는 사랑의 표현'으로 이해되고 있다. 또한, 예수회 신부로서 그리스도교의 신비 체험(神秘 體驗)과 선불교의 선(禪)과의 만남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 윌리암 존스턴(William Jonston)은 현대 과학적으로 명상을 연구하고 있는데, 존스톤은 하느님의 구원적 보편의지와 하느님 성령의 자유로운 활동을 믿으면서,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임을 포기하지 않고도 불교의 내면세계 안에서 불교식으로 나타나는 그리스도를 체험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60)
한편 '종교 대화 없이 종교 평화 없으며, 종교 평화 없이 세계 평화 없다'61)는 유명한 명제를 남긴 한스 큉(Hans Küng)도 종교간의 대화에 있어서, 대화란 단순히 자기를 부정하거나 포기하는 것은 결코 아니며, 타인과 대화함으로써 자신을 비판하고 반성할 수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이 비판은 바로 자신이 속해 있는 종교를 위한 것이며,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타종교인과 대화할 때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거나 포기한다면 진정한 대화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한스 큉은 자신의 것을 기꺼이 포기하는 자세로 대화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진리를 올바로 고수하면서 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스 큉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최종적인 계시이며 규범이 되는 계시로서 타종교의 타당성을 판결하고 완성해 주는 마지막 규범(最終 規範)이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인은 모든 종교와 윤리의 규범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은총으로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62) 그리고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이슬람교와 대화하고 있는 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는 종교인이 자신의 신앙적 안목에 충실하면서도 종교간에 대화하고 협력하는 것은 타인과 더불어 지구촌 생활을 하는 현대인에게 있어서는 도덕적 명령과 같은 것으로 여긴다.63)
그러므로 종교적 대화에 있어서 전제해야 할 것은 각기 종교들에는 그 종교를 통해 독특하게 체험되는 초월적 경험의 실재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각 종교 안에 경험되는 초월 체험(超越 體驗)의 다양성(多樣性)에 대한 인정이 종교 대화를 위한 전제조건이 된다. 이러한 종교 다원 현상에서의 종교 윤리(宗敎 倫理)가 요청되는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교의 경우 예수 그리스도의 인류 구원을 위한 절대적 유일성을 견지하면서도 타종교인과 대화하는 길을 과연 어떻게 적절히 모색할 수 있는가는 현대 그리스도교 신학의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인 것이다.64)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종교간의 대화는 오늘날, 그리스도교가 2000년을 경축하는 대희년(大禧年)을 맞이하면서 이룩해야 할 큰 과제이기도 하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2000년 대희년을 맞이하는 교서 「제3천년기」(Tertio Millennio Adveniente, 1994.11.10)를 반포하면서, 대희년을 위한 직접 준비의 해로써 1997년을 성자의 해, 1998년을 성령의 해 1999년을 성부의 해로 봉헌한 바 있다. 그 중 1999년 성부의 해에는 「비그리스도교 선언」(NA)에서 제시한 종교간의 대화가 구체적으로 이루어지기를 희망하고 있다. 우선은 유일신을 믿는 종교들―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사이에 대화를 하고 또한 세계적 대종교들 힌두교, 불교, 유교 등의 지도자들과 종교 회합이 이루어지길 바라고 있다. 이같은 대종교 회합이 성부-하느님 아버지를 기념하는 해에 열린다는 것이 상당히 의미 있는 듯이 보인다. 존 힉이나 폴 니터, 파니카 등이 주장했듯이 그리스도교 신학이 그리스도 중심적 사고로부터 신 중심적 사고로 패러다임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종교 다원론자들의 주장이 설득력 있는 듯이 보여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황은 이러한 종교 회합에 있어서도 종교혼합주의와 기만적인 평화주의 위험을 피해야 한다고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 그리고 교황은 성부의 해(1999)에 신앙인의 시야를 하느님 아버지께 나아가는 큰 순례 여정을 하는데 있어서 진정으로 회개하는 마음을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도록 당부하고 있다.65)
그러면 다음 장에서는 가톨릭 교회의 종교 다원 현상에 대한 입장을 살펴본다. 다음의 도표는 현대의 그리스도교 신학자들이 종교간의 대화를 시도하는데 있어서 어떤 종교들과 주로 대화를 하는지를 보여준다:
<표 1> 그리스도교 신학자들의 타종교와의 대화유형66)
종교 |
그리스도교 신학자들 |
유대교 |
J.몰트만(희망의 신학, 정치 신학) |
이슬람교 |
W.C.스미스(세계 신학, 인격주의적 다원주의) |
힌두교 |
R.파니카(신 중심적 다원주의) |
불교 |
A.피어리스(아시아 해방신학), H.발덴펠스(자기 비움의 신학). J.캅(그리스도 중심적 다원주의), L.스위들러(에큐메니칼 대화 신학), 야기 세이이치(불교적 신학), W.존스톤(명상적 대화) |
유교 |
줄리아 칭 |
그리스도교 토착화 신학 |
A.피어리스(아시아 해방신학), G.드코스타(그리스도 중심적 삼위일체론) H.큉(평화 신학), J.라칭거(그리스도 중심적 토착화) K.라너(익명의 그리스도인), L.스위들러(에큐메니칼 대화 신학) P.니터(해방, 구원 중심주의 신학), P.틸리히(종교-문화간 변증 신학) 송천성(아시아 상황 신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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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종교다원현상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이해*1)
김 웅 태
[가톨릭대학교 종교학과 교수·신부]
* 이 글은 1997년도 가톨릭대학교 성심교정 교비연구비의 지원을 받아 작성된 논문이다. <가톨릭 신학과 사상>, 제 23호 (1998년 봄호), 가톨릭대학교출판부, 115-197쪽에 수록되었다.
** 본 논문에서는 각주 인용에 있어서 "저자(편, 역자), 「논문 제목」, 『수록된 책 이름 혹은 저서』, 쪽"으로 간략하게 인용한다. 본 논문의 말미에 제시된 참고문헌에 저자별(가나다 및 알파벳순)로 자세히 수록되어 있으므로 그것을 참고하기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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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타종교 안에서의 구원, 그리스도교 안에서의 구원*
- 「주님이신 예수님」(Dominus Jesus)을 중심으로 -
김웅태 신부
가톨릭대학교 종교학과 교수
5. 가톨릭 밖의 "교회들"과 "교회적 공동체들"의 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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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선교], 제 10호 (2001년 봄, 교황청전교회 한국지부, 28-43쪽)에 기고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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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제3절 그리스도 중심적 삼위일체 모델
종교 다원주의에서 주장하는 그리스도의 다원성과 또 교회중심적 배타성 모두 현대의 그리스도교적 입장에서 수용하는데 어려움이 보이자 이 두 극단을 극복하면서도 그리스도교적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모델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관점에서 가빈 드코스타132)에 의해 제시된 '그리스도 중심적 삼위일체 모델'은 하느님 중심의 다원주의와 그리스도 중심의 배타주의의 첨예성을 완화하고 그리스도교와 종교간의 대화 가능성을 한층 더 열어 주는 듯이 보인다. 이 이론은 분류상 포괄주의의 입장에 속하긴 하지만 이곳에서 별도로 다루는 이유는 이 모델이 하느님의 보편적 의지만을 강조하여 자칫 그리스도를 도외시할 수 있는 신 중심적 다원주의를 경계하고, 또한 오직 그리스도교만을 통하여 구원된다는 점을 강조하여 타종교를 배척하는 배타주의의 양극단을 넘어서, 현재의 가톨릭 교회의 포괄주의적 입장을 보완하려는 의도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133) 가빈 드코스타는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 교리를 중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특수성이 하느님 아버지의 보편적 구원 의지와 더불어 성령과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타종교인과 만나 대화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드코스타는 이러한 삼위일체적 모델을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 명제로 요약한다:
첫째, 삼위일체 그리스도론은 다원주의적 신중심의 보편성과 배타주의가 강조하는 그리스도 유일성을 모두 피해 가며, 그 두 입장의 변증법적 관계(辨證法的 關係)를 취한다. 드코스타는 신약성서의 '아버지에 대해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 아들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가 아니다'(요한 5,19∼47)라는 말씀을 근거로 하여, '아들은 아버지가 아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배타적 유일성에 대해 절대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해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 아들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라는 구절을 통해 '그리스도 없는' 다원주의적 입장을 경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둘을 변증법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하느님의 신비는 성령을 통해서도 밝혀지므로, 예수가 하느님의 모든 것을 계시하였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예수를 통하여 하느님을 알게 된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교 이외의 종교에도 자유로이 작용하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하느님을 배타적이며 절대적으로 밝혔다기보다 '규범적으로' 밝혔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명제로는 성령(聖靈)의 자유로운 작용으로서 인류 역사 안에서 이루어진 하느님의 보편 행위는 그리스도의 특수성과 연결된다는 것이다. 즉 성령은 인류의 역사를 통해 창조, 예언, 구원 활동을 하시며, 특히 예수 그리스도와 밀접히 연결되어 활동하셨다는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특수성과 연관된다. 그와 동시에 성령은 또한 '불고 싶은 곳으로 불듯이'(요한 3,8), 교회 밖으로도 갈 수 있다. 이렇게 교회 밖에서도 활동하시는 성령의 존재를 받아들인다면, 타종교인들 안에서도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성령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교 밖의 타종교들 안에서 드러난 하느님의 계시를 감지하고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드코스타가 말하는 제3의 명제는 사랑의 관계성(關係性)이다.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존재하듯이, 그리스도인은 자기 공동체 안에서는 물론 타종교 공동체 안에서도 이 사랑으로 살도록 소명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타종교인들과도 사랑의 대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4명제는 십자가 사랑의 규범을 주는 그리스도의 규범성(規範性)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상에 돌아가시기까지 사랑의 삶을 살았듯이,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사랑의 삶을 살아간다고 할 때 하느님 나라의 실천을 위해 타종교인들과도 대화하고 함께 협력해야 할 사명을 갖는다는 것이다.
끝으로 다섯 번째 명제로는 그리스도 신앙의 필요성(信仰 必要性)은 타종교 안에서도 활동하시는 성령을 통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드코스타는 이 명제의 근거로서 요한 16,12∼15 대목을 들고 있다. 하느님의 성령은 진리의 성령이시고 그분은 예수를 영광스럽게 밝혀 주신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내 것이다'라고 했듯이, 하느님의 신비는 성령을 통해 밝혀지며, 그리스도 안에서 그 신비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보편적 로고스로서 하느님의 규범적인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이상 가빈 드코스타의 그리스도 중심적 삼위일체 모델의 골자를 살펴보았다. 이 모델은 하느님의 보편적 의지만을 강조하여 자칫하면 '그리스도'를 잃을 위험에 빠지는 신 중심적 다원주의를 경계하는 동시에, 또한 그리스도의 배타적 유일성만을 강조하여 타종교와의 대화를 거절하고 그리스도교를 절대화시키는 배타주의를 동시에 극복하고자 하는 모델이라도 볼 수 있다. 이 모델은 하느님의 구원적 보편의지를 기본 바탕으로 하며, 성령의 자유로운 활동은 그리스도교와 타종교 안에서도 작용한다는 점을 통해 타종교의 구원적 가치를 인정하고 대화로의 가능성을 열어 주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하느님 구원 의지의 보편성은 결정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났으며,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밝혀 줄 분으로 보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규범적 유일성도 유지되고 있다. 이런 면에서 드코스타가 제시한 그리스도 중심적 삼위일체 모델은 그리스도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배타주의와 하느님의 보편성을 강조하는 다원주의를 화해시키고, 그리스도교가 종교 다원 상황 속에서 타종교와 대화하고 그들 안에서 작용하는 하느님 성령의 열매를 함께 나누며, 그리스도교의 바람직한 토착화가 될 길을 제시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현재까지 그리스도교 신학자들의 타종교에 대한 입장을 종합해 보면 다음 도표와 같다:
배타주의 |
칼 바르트: 케리그마 신학. 헨드릭 크래머 |
규범주의* |
폴 틸리히: 종교-문화 신학(변증 신학) 한스 큉: 그리스도 중심의 규범주의(평화 신학) |
포괄주의 |
가빈 드코스타: 그리스도 중심적 삼위일체론 송천성: 아시아 상황 신학, 요셉 라칭거: 대림적 성격의 그리스도론 칼 라너: 익명의 그리스도론, 폴 틸리히: 종교-문화 신학(변증 신학) 한스 큉: 가능적 그리스도론, 화쿠아: 성취이론 |
평행주의 |
에른스트 트뢸치: 문화적 상대주의 |
다원주의 |
레너드 스위들러: 보편적 종교-이념의 신학 레이몬드 파니카: 신 중심적 다원주의(보편적 그리스도론) 스탠리 사마르타: 종교 해방신학 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 인격주의적 다원주의 조지 린드벡**: 문화·언어적 종교신학 존 캅***: 그리스도 중심적 다원주의(변혁적 다원주의) 존 힉: 신 중심적 다원주의(철학적 다원주의, 구원중심적 다원주의) 폴 니터: 신 중심적 다원주의(종교 해방신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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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참고 문헌
1) 국내 서적
A.피어리스, 『아시아의 해방신학』, 성염 역, 분도출판사, 1988.
D.G. 도오·J.B. 카먼 편, 『종교 다원주의와 기독교 신앙』, 한숭흥 역, 나눔사, 1993.
D.죌레, 『현대 신학의 패러다임』, 서광선 역, 한국신학연구소,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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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이 글은 1997년도 가톨릭대학교 성심교정 교비연구비의 지원을 받아 작성된 논문이다.
** 본 논문에서는 각주 인용에 있어서 "저자(편, 역자), 「논문 제목」, 『수록된 책이름 혹은 저서』, 쪽"으로 간략하게 인용한다. 본 논문의 말미에 제시된 참고문헌에 저자별(가나다 및 알파벳순)로 자세히 수록되어 있으므로 그것을 참고하기 바람.
1) 정진홍, 「종교 다원 문화의 인식을 위한 이론적 가설―다원성의 구조와 대화의 유형을 중심으로」, 53∼81쪽; 정진홍, 「종교화와 윤리」, 364∼393쪽; 류성민, 「종교 다원주의와 종교 윤리」, 99∼117쪽.
2) 나학진, 「종교간의 갈등 극복: 기독교와 타종교의 경우」, 5∼59쪽; 이원규, 「종교적 배타성과 종교성의 관계에 대한 경험적 연구」, 173∼205쪽; 정양모, 「한국 가톨릭과 개신교의 대립과 대화」, 229∼254쪽; 박일영, 「종교간의 갈등과 대화―무속과 그리스도교를 중심으로」, 114∼124쪽.
3) H.카워드, 『종교 다원주의와 세계 종교』, 11∼194쪽.
4) R.파니카, 『종교간의 대화』, 19∼37쪽; 정진홍, 『종교 문화의 이해』, 13∼58쪽.
5) H.R.슐렛테, 『신학적 주제로서의 종교』, 22쪽.
6) 이문균, 「종교다원사회와 그리스도교」, 87∼91쪽; 윤이흠, 「종교 다원주의에 대한 경험적 접근」, 18∼25쪽; John Hick, "Religious Pluralism," pp.331∼333; H.R.슐렛테, 『신학적 주제로서의 종교』, 39∼57쪽.
7) P.F.니터, 『오직 예수 이름으로만?』, 13∼45쪽.
8)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헌장」(LG), 16항; 「사목헌장」(GS), 22항; 「비그리스도교 선언」(NA), 1∼2항; 「종교 자유」(DH), 2∼3, 9항; 심상태, 「다원주의란 무엇인가」, 23∼29쪽.
9) 세계교회협의회 대화 담당 소위원회, 「바아르 선언문」, 『종교신학 연구』 제5집(1992), 289∼300쪽(이 책에는 이 선언문의 원문도 실려 있다. 원문은 Current Dialogue 18, June, 1990에 실렸던 것을 재수록함).
10) 윤이흠, 「종교 다원주의에 대한 경험적 접근」, 25∼37쪽; 윤용복 외, 「현대 한국 사회에서의 종교 대화 운동에 대한 사례 연구」, 295∼311쪽.
11) 서울대학교 종교문화연구소 편, 『종교 다원주의와 종교 윤리』, 집문당, 1994; 이승찬, 「다원주의와 그리스도교 윤리 이해」, 133∼160쪽.
12) 이 부분에 대해서는 최영철이 이미 다룬 바 있으므로 여기서는 긴 언급을 피하고 그 부분을 참고하기 바란다: 최영철, 「다원주의와 그리스도교」, 45∼50쪽; 윤이흠, 「현대 종교의 한계와 극복」, 『한국종교연구』 권1, 165∼168쪽.
13) W.C.스미스, 『지구촌의 신앙. 타인의 신앙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1989; H.카워드, 『종교 다원주의와 세계 종교』, 1993; 변선환 학장 은퇴 기념 논문집, 『종교 다원주의와 한국적 신학』, 1992; 유정원, 「존 캅의 그리스도 중심적 다원주의」, 101∼103쪽.
14) 김승혜, 「종교학이 신학 연구에 기여하는 바는 무엇인가」, 29∼53쪽; 윤이흠, 「종교 다원주의에 대한 경험적 접근」, 20∼23쪽; 종교 문화의 다원화 현상과 세속화 현상에 대해: 정진홍, 『종교 문화의 이해』, 39∼45쪽; 길희성, 『포스트 모던 사회와 열린 종교』, 97∼117쪽; 김경재, 『종교 다원 시대의 기독교 영성』, 183∼192쪽; H.카워드, 『종교 다원주의와 세계 종교』, 32∼90쪽; 심상태, 「현대 신학의 동향」, 『속―2000년대의 한국 교회』, 256∼260쪽; 홍정수, 「종교신학의 두 기준」, 164∼185쪽; 이문균, 「종교다원사회와 그리스도교」, 98∼100쪽.
15) F.Schleiermacher, On Religion: Speeches to its Cultured Despisers[영어판(1958), 독일어판(1799)]; 채필근, 『비교종교론』, 114∼116쪽; R.옷토, 「슐라어마허의 '종교론' 소고」, 79∼92쪽.
16) M.뮐러, 『종교학 입문』, 1995; 채필근, 『비교종교론』, 183∼184쪽.
17) 에른스트 트뢸치의 종교 다원주의 입장에 대해, 위거찬, 「기독교의 절대성에 대한 비판적 고찰―Ernst Troeltsch의 종교사 이해를 중심으로」, 441∼492쪽 참조.
18) R.옷토, 『성스러움의 의미』, 21992; J.바흐, 「루돌프 옷토와 '성스러움의 의미'」, 93∼113쪽.
19) J.바하, 『비교종교학』, 85쪽; 「종교의 보편적 요소들」, 115∼141쪽.
20) M.엘리아데, 『종교형태론』, 한길사, 1996; 『성과 속―종교의 본질』, 학민사, 21996; 정진홍, 「멀치아 엘리아데 연구」, 『현상학과 개별과학』, 99쪽; 「엘리아데의 성현과 형태론에 대한 이해」, 179∼201쪽.
21) Th.S.Kuhn,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p.217; 심상태, 「다원주의란 무엇인가」, 『속―2000년대의 한국 교회』, 19∼20쪽; 「현대 신학의 동향」, 같은 책, 256∼258쪽; 김경재, 「구원 체험 유형과 해석학적 이해 이론」, 127∼134쪽.
22) H.Küng, Global Responsibility, 1991, p.123. 김경재, 「구원 체험 유형과 해석학적 이해 이론」, 129∼130쪽에서 재인용.
23) 김경재, 「구원 체험 유형과 해석학적 이해 이론」, 134∼136쪽.
24) P.Tillich, Christianity and the Encounter of the World Religion, 1963; P.Tillich, Systematic Theology, 3 vols., 1967; P.틸리히, 『문화의 신학』, 대한기독교서회, 1991; P.틸리히, 『문화와 종교』, 전망사, 1984; P.틸리히, 『기독교와 세계 종교』, 대한기독교서회, 1987; 이찬수, 「폴 틸리히의 종교신학」, 82∼93쪽.
25) P.Tillich, "The Significance of the History of Religions for the Systematic Theologian," p.242; 이찬수, 「폴 틸리히의 종교신학」, 89∼92쪽.
26) P.니터, 『오직 예수 이름으로만』, 273∼323쪽; 유정원, 「폴 니터의 종교신학」, 110∼116쪽.
27) W.C.스미스, 『종교의 의미와 목적』, 1991; W.C.스미스, 『지구촌의 신앙』, 1989; W.C.스미스, 「성사적 상징으로서의 종교」, 337∼347쪽; W.C.스미스, Toward a World Theology, Philadelphia, Westminster, 1981.
28) 이찬수, 「윌프레드 스미스의 세계 신학」, 95∼109쪽; 길희성, 「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의 인격주의적 종교 연구」 김승혜 편, 203∼217쪽.
29) J.힉, 『하느님은 많은 이름을 가졌다』, 45∼67쪽; J.Hick, Christianity and other Religions, B.Hebblethwaite(eds.), 1980; J.Hick, The Myth of Christian Uniqueness: Toward a Pluralistic Theology of Religions, P.Knitter(eds.), 1987; J.Hick, "Religious Pluralism", p.331; J.Hick, Problem of Religious Pluralism, 1985; J.Hick, God and the Universe of Faiths, 1988.
30) 존 힉의 종교 다원주의 이론에 대한 연구로는: 심광섭, 「존 힉의 신 중심적 다원적 종교신학」, 250∼275쪽; 김영태, 「존 힉의 종교 다원주의 철학의 기초」, 121∼147쪽; 김재영, 「존 힉의 종교 다원주의 철학 연구」, 149∼171쪽; 이찬수, 「존 힉의 종교신학」, 123∼133쪽.
31) J.힉, 『하느님은 많은 이름을 가졌다』, 20∼44쪽; J.Hick, God and the Universe of Faiths, 1973; 이찬수, 「존 힉의 종교신학」, 125∼127쪽.
32) R.Panikkar, The Unknown Christ of Hinduism, London, Darton, 1964 (Second edition, N.Y., Orbis, 1981).
33) R.Panikkar, The Trinity and the Religious Experience of Man, 1973; 『종교간의 대화』, 서광사, 1992; P.니터, 『오직 예수 이름으로만?』, 250쪽; 심상태, 「교회와 타종교와의 관계」, 269∼270쪽; 유정원, 「파니카의 종교신학」, 99∼107쪽.
34) Stanley J.Samartha, Courage for Dialogue, p.98.
35) 유정원, 「존 캅의 그리스도 중심적 다원주의」, 95∼104쪽; 한인철, 「존 캅의 다원주의 방법론 소고」, 227∼249쪽; J.B.Cobb, Christ in a Pluralistic Age, 1982; "Toward a Christocentric Catholic Theology," p.80.
36) 변선환, 「타종교와 신학」, 185∼210쪽; 「변선환 박사 신학의 평가와 전망」(좌담회), 80∼112쪽; 심상태, 「변선환 박사의 타종교관의 이해」, 271∼313쪽.
37) 변선환, 「나의 신학 수업」, 15∼30쪽; 「불교와 기독교의 대화」, 153∼179쪽; 「아시아 교회의 신학적 과제」, 『기독교 사상』(1983/4), 38∼51쪽; 「동양 종교의 부흥과 토착화 신학(1)」, 145∼162쪽; 「동양 종교의 부흥과 토착화 신학(2)」, 131∼146쪽; 「비서구화와 제3세계 신학―특히 스리랑카의 알로이시우스 피에리스 신부를 중심하여」, 『신학사상』 46(1984/가을), 536∼566쪽 등; 최준규, 「변선환 토착화 신학의 해석학적 고찰」, 가톨릭대학교 대학원(석사 논문), 1991. 위의 인용 서적과 그의 사상 이해에 대해: 심상태, 「변선환 박사의 타종교관 이해」, 31∼68쪽 참조.
38) 종교 다원주의에 대한 신학자와 교단 사이의 관계에 대해: 심상태, 「변선환 박사의 타종교관 이해」, 32∼35쪽. 참조: 기독교대한감리회 기독교교리수호대책위원회 공동 대표 김흥도 목사와 유상열 장로의 명의로 『조선일보』(1992.1.26)에 게재된 광고문.
39) 심상태, 「제3세계 신학의 탈 서구적 성격」, 『기독교 사상』 제278호(1981/8), 92∼101쪽. 김종서, 「기독교와의 대화: 타종교의 입장」, 238∼240쪽. M.A.토마스, 「아세아에서 조화를 위한 종교 대화와 협력」, 295∼301쪽. W.아리아라자, 「아세아에서 조화를 위한 종교 대화와 협력」, 302∼311쪽.
40) A.Pieris, "The Place of Non-Christian Religion and Cultures in the Evolution of a Third―World Theology," CTC Bulletin, vol.3, No.2(Aug 1982); 『아시아의 해방신학』, 1988; 박준양, 「알로이시우스 피어리스의 아시아 신학 방법론에 관한 해석학적 연구」, 1992; 유정원, 「피어리스의 아시아 해방신학」, 125∼134쪽.
41) 이찬수, 「야기 세이이치의 불교적 신학」, 108∼126쪽. 참조: 변선환, 「야기 세이이치의 장소적 기독론」.
42) 송천성, 『아시아인의 심성과 신학』(상·중·하), 1983; 『대자 대비하신 하느님』, 1985; 『아시아 이야기 신학』, 1988. 유정원, 「송천성의 아시아 신학」, 111∼120쪽.
43) H.발덴펠스, 『불교의 공(空)과 하느님―불교와 기독교의 진정한 만남을 위하여』, 1993; 「현대 세계사에서의 기독교와 불교의 대화」, 『무신론과 유신론』(히사마츠 신이치 외), 1994. 이찬수, 「한스 발덴펠스의 자기 비움의 신학」, 132∼144쪽.
44) H.카워드, 『종교 다원주의와 세계 종교』, 197∼220쪽.
45) 교황청 신앙교리성, 「교리검토규정」("Regulations for Doctrinal Examination," 1997.6.29), 87∼99쪽. 이 외에도 『착한 목자』(Pastor Bonus); 신앙교리성, 「교리 위원회들에게 보내는 서한」(1990.11.23) 참조.
46)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건전한 신앙생활을 헤치는 운동과 흐름』, 1997, 18쪽.
47) 윤이흠, 「종교 다원주의에 대한 경험적 접근」, 17∼22쪽; 정지련, 「신앙의 길과 종교간의 대화―종교간 대화의 신학적 근거에 관한 고찰」, 276∼301쪽.
48) 정진홍 교수가 종교 다원 현상 속에서의 종교간의 대화 유형에 대해 분류한 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기능적 분류 |
이념적 분류 |
형식적 분류 |
영역적 분류 |
실용적 대화 지적관심의 대화 전략적 대화 제의적 대화 |
상호간의 학문적 대화 상호간의 문화적 대화 상호간의 인간적 대화 |
동일종교안에서의 대화 종교와 종교간의 대화 타종교간의 대화 |
다차원적 대화 단차원적 대화 |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정진홍, 「종교 다원 문화의 인식을 위한 이론적 가설」, 69∼81쪽.
49) 윤이흠, 「종교 다원주의에 대한 경험적 접근」, 25∼42쪽.
50) 윤이흠, 「종교 다원주의에 대한 경험적 접근」, 42∼51쪽. 김승혜, 「종교학이 신학 연구에 기여하는 바는 무엇인가」, 39∼46쪽.
51) R.파니카, 『종교간의 대화』, 71∼107쪽.
52) L.Swidler, "Interreligious and Interideological Dialogue: The Matrix for All Systematic Reflection Today," pp.5. 7. 이 책에 소개된 레너드 스위들러의 신학사상에 대해서 다음의 논문에서 주로 참조됨: 이찬수, 「레너드 스위들러의 대화 신학」, 103∼114쪽.
53) 이찬수, 「레너드 스위들러의 대화 신학」, 104∼105쪽. L.Swidler, "Interreligious and Interideological Dialogue," pp.10∼12.
54) 이찬수, 「레너드 스위들러의 대화 신학」, 105∼106쪽. L.Swidler, "Interreligious and Interideological Dialogue," pp.16∼20.
55) 이찬수, 「레너드 스위들러의 대화 신학」, 107∼114쪽. 참조: L.스위들러, 「대화냐 죽음이냐―독백의 세대에서 대화의 시대로」, 아시아종교인평화회의 편, 『종교간 대화와 인류의 평화』, 1992, 97∼99쪽.
56) R.파니카, 『종교간의 대화』, 72∼88쪽; P.틸리히, 『기독교와 세계 종교』, 55∼56쪽; 이찬수, 「폴 틸리히의 종교신학」, 93쪽; 윤이흠, 「종교 다원주의에 대한 경험적 접근」, 48∼51쪽.
57) 류성민, 「종교 다원주의와 종교 윤리」, 107∼108쪽. 김승혜, 「종교학이 신학 연구에 기여하는 바는 무엇인가?」, 44∼46쪽.
58) R.파니카, 『종교간의 대화』, 40∼41쪽.
59) 이찬수, 「위르겐 몰트만이 보는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91∼93쪽; J.Moltmann, "Is 'Pluralistic Theology' Useful for the Dialogue of World Religions?" pp.153∼155.
60) W.존스톤, 『내면의 불꽃』, 114쪽; 『선과 기독교 신비주의―불교와 기독교가 만나는 고요한 정점』, 1993 참조. 유정원, 「윌리암 존스톤의 신학과 명상」, 112∼114쪽.
61) 한스 큉, 「세계 윤리 구상」, 145, 207쪽. H.Küng, Christianity and World Reli- gion, p.194.
62) 한스 큉, 『세계 윤리 구상』, 193∼194쪽; 「이교도는 어떻게 될 것인가」, 265∼278쪽. 유정원, 「한스 큉의 평화 신학」, 106∼107쪽. 손희송, 『그리스도교 신학의 근본 규범인 예수 그리스도 ―한스 큉 신학에 나타난 그리스도 중심주의』, 1996.
63) W.C.스미스, 『지구촌의 신앙』, 174∼175쪽; 이찬수, 「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의 세계 신학」, 103쪽.
64) K.Rahner, "Pluralism in Theology and the Oneness of the Church's Profession of Faith," pp.103∼123; 심상태, 「교회와 타종교와의 관계」, 255∼266쪽; 심상태, 『익명의 그리스도론』, 161∼175쪽; 박양운, 『가톨릭 신학의 어제와 오늘』, 1996: 박양운은 이 책에서 이러한 문제들과 관련하여 현대 신학의 최근 동향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제목으로 다루고 있다. 「하느님 백성의 신학」, 197∼210쪽; 「대화의 신학」, 225∼243쪽; 「타종교와의 대화」, 244∼252쪽; 「신학의 복수성과 신앙고백의 단일성―카를 라너의 신학을 중심으로」, 253∼261쪽.
65) 요한 바오로 2세, 「제삼천년기」, 49∼53항.
66) 여기서 신학자들이 겹쳐서 제시된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교 토착화 신학을 목표로 하면서도, 주로 그러한 타종교와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을 나타낸다.
67) 교황 레오 12세, Ubi Primum, 1824; 그레고리오 16세, Singulari Nos, 1834; 비오 9세, Qui Pluribus, 1846; Singulari Quaedam, 1854; Quanto Conficiamur Moerore, 1864(DS 2720, 2785). 이에 대해: 심상태, 「교회와 타종교와의 관계」, 252∼254쪽.
68) 최근 교황청 국무원 산하 중앙통계처가 1995년 12월 31일을 기준으로 발표한 「교회통계연감」(Statistical Yearbook of the chuch, 1995)에 의하면 신자 총수는 9억 8천9백36만 6천명으로서 세계 총인구 56억 8천7백37만 4천명(1995년 6월 30일 기준 UN통계연감) 중 17.40%를 차지하며 이를 대륙별로 인구와 대비해 보면, 아메리카(63.27%), 유럽(40.61%), 오세아니아(27.55%), 아프리카(14.75%), 아시아(2.93%)로 나타난다[In- ternational Fides Service, N.4068(oct., 10th 1997), NE.559 and 600].
69) 폴 니터, 『오직 예수 이름으로만?』, 15∼22쪽.
70) 「사목헌장」(GS), 26, 42, 53∼62, 74항; 「비그리스도교 선언」(NA); 「종교 자유 선언」(DH). 특히 공동선(共同善) 개념은 인권, 문화, 평화, 자유, 평등, 신앙, 구원 등의 용어들과 깊은 관련을 갖고 논의된다. 이에 대해: 졸문, 『윤리 규범으로서의 공동선―Leo ⅩⅢ이후 교회 문헌들을 중심으로』, 1982 참조.
71) 국제신학위원회, 「신앙과 토착화」(신앙의 토착화와 비그리스도교들, 8∼14항), 200∼201쪽.
72) 참조: 「교회헌장」(LG), 14항; 「인간의 구원자」[RH, (1979.3.4 반포)], 7∼11항; 「교회의 선교 사명」[RM, (1990.12.7 반포)], 4∼11항 등. 인류 구원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가 갖는 보편적 유일성에 대해: 심상태, 「신앙의 보편성과 역사성」, 17∼35쪽; 「그리스도 진리의 보편성과 역사성」, 22∼25쪽; 「그리스도 진리의 보편성」, 18∼42쪽; 『익명의 그리스도인』, 19∼25. 248∼261쪽; K.글로이,「하나인 진리와 다수의 진리 이론들」, 신교선 역, 179∼203쪽. 최영철, 「다원주의와 그리스도교」, 60∼75쪽. 김광식, 「예수의 권리 주장과 위격적 정체성」, 161∼202쪽.
73) 창세 3,15. 창세기 1∼11장의 구원 신학에 대해: R.코흐, 『구원 신학』, 43∼106쪽 참조.
74) 임병헌, 「그리스도교의 구원관에 대한 숙고」, 88∼91쪽.
75) 교황청 신앙교리성,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해방에 관한 훈령」(1986.3.22), 43∼69항. 심상태, 「그리스도 구원의 해방적 요소」, 『속―2000년대의 한국 교회』, 135∼165쪽. 임병헌, 「그리스도교의 구원관에 대한 숙고」, 76∼98쪽.
76) 「인간의 구원자」(RH), 13항.
77) 「교회헌장」(LG), 14항.
78) Augustinus, In 1Jo. 3, 4 이하(PL 35, 199), Ps.106, 14(PL 37, 1421); Sermo. 354, 2, 2(PL 39. 1564). De Catechizandis Rudibus 22, 40; (PL, 339). W.케른,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는가』, 58∼64쪽.
79) 「교회헌장」(LG), 15항. 「일치교령」(UR), 2∼4항.
80) 「교회헌장」(LG), 16항; 「비그리스도교 선언」(NA), 2∼5항; 「사목헌장」(GS), 22항 등. 그리스도교의 타종교들에 대한 평가 문제와 그 역사에 대해: H.R.슐렛테, 『신학적 주제로서의 종교』, 21∼37쪽.
81) 이에 대해: 제2차 바티칸 문헌 해설 총서, 제1권(현대 세계의 사목헌장, 비그리스도교에 관한 선언), 성바오로출판사, 21988. 박양운, 『가톨릭 신학의 어제와 오늘』, 173∼261쪽.
82) 이에 대해: 박양운, 『가톨릭 신학의 어제와 오늘』, 250∼251쪽. 이 당시 파니카 신부는 포괄주의적 노선에 있었다.
83) 한스 큉,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 33∼62쪽.
84) 「사목헌장」(GS), 22항. 「비그리스도교 선언」(NA), 1∼5항.
85) 「교회헌장」(LG), 14, 17항. 「선교교령」(AG), 2∼3, 7항. 「일치교령」, 3항. 교회의 선교 사명과 활동 그 필요성에 대한 최근의 공식 문헌으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령, 「교회의 선교 활동」(AG, 1965.12.7); 교황 바오로 6세의 사도적 권고, 「현대의 복음 선교」(EN, 1975.12.8);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교회의 선교 사명」(RM, 1990.12.7)이 있다. 이 문헌들에 대한 해설로는: 졸저, 『선교의 역사와 개념』, 231∼290쪽 참조.
86) 국제신학위원회, 「신앙과 토착화」, 185∼205쪽. 심상태, 「신관 토착화의 과제와 전망」, 355∼410쪽; 「인간관의 토착화―인격 이해를 중심으로」, 411∼475쪽; 「요셉 라칭거 추기경의 토착화론 (1)·(2)」 참조. 필자가 현대의 선교 개념에 대해 다룬 것을 외람되게 소개하자면: 졸문, 「선교 개념의 신학적 이해―선교에 관한 문헌들을 중심으로」, 43∼69쪽; 「교환으로서의 선교」, 16∼18쪽; 「토착화로서의 선교」, 16∼18쪽; 「적응으로서의 선교」, 16∼18쪽 참조.
87) 「선교교령」(AG), 6항; 바오로 6세, 「현대의 복음 선교」(EN), 51∼58항; 요한 바오로 2세, 「교회의 선교 사명」(RM), 33, 37항; 졸저, 『선교의 역사와 개념』, 204∼206쪽.
88) 심상태, 「요셉 라칭거 추기경의 토착화론(2)」, 105쪽; J.Neuner &J.Dupis (eds.), The Christian Faith in the Doctrinal Documents of the Catholic Church, London, Collins, 1983, pp.304f; 졸저, 『선교의 역사와 개념』, 43∼44쪽.
89) M.릿치, 『天主實義』, 이수웅 역, 분도출판사, 1984; 주재용, 『선유의 천주 사상과 제사 문제』, 1988(개정판); 이성배, 『유교와 그리스도교』, 1979; 줄리아 칭, 『유교와 기독교』, 1993; Joseph Ung-Tai KIM, L'expérience religieuse coréenne dans la pre- mière annonce du message chrétien(1779~1839)―Le Seigneur du Ciel comme précompréhension de la notion chrétienne de Dieu, Paris, 1989: 이 논문은 파리 가톨릭대학교와 파리 소르본느대학교의 신학과 종교학에 걸친 공동 박사 학위 논문이다. 이 논문은 불문으로 가톨릭출판사에서 1990년에 출판되었다. 이 논문의 일부에 대해 소개한 것으로는: 졸문, 「토착화의 관점에서 본 어제의 한국 교회의 복음 선포」, 79∼105쪽.
90) 심상태, 「요셉 라칭거 추기경의 토착화론(1)」, 75∼86쪽; 「요셉 라칭거 추기경의 토착화론(2)」, 100∼111쪽; 졸저, 『선교의 역사와 개념』, 62∼71. 223∼227쪽.
91) R.Friedli, "Mission/Missiologie," pp.430∼435; R.프리들리, 『현대의 선교』, 1989, 15∼23쪽; R.Hoffman, "Mission," pp.904∼905; 졸문, 「선교 개념의 신학적 이해」, 43∼69쪽.
92) 선교의 적응 문제에 대해: H.R.Schlette, "Theological Problem of Adaptation," pp.81∼84; J.Masson, "Church and Mission," pp.77∼79; E.L.Murphy, "Missio- logy," p.88; 윤민구 엮음, 『전례의 토착화』, 1990; 졸저, 『선교의 역사와 개념』, 207∼210쪽; 졸문, 「적응으로서의 선교」, 16∼18쪽; 심상태, 「요셉 라칭거 추기경의 토착화(1)」, 82∼84쪽.
93) Cf. J.Masson, "Antecedents et Genèse du Document," p.277; 박양운, 『가톨릭 신학의 어제와 오늘』, 250∼252쪽.
94) K.Rahner, "Salvation of the Non-Evangelized," p.81; 심상태, 「요셉 라칭거 추기경의 토착화론(1)」, 82∼86쪽.
95) J.드퓌스, 「종교 다원주의와 그리스도론 논쟁」, 87∼96쪽[자크 드퓌스(Jacques Dupis)의 이 논문은 세계종교협의회(WCC)산하 대화 소위원회가 1990년 1월 9일부터 15일까지 스위스 바아르(Baar)에서 개최한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것이다. 종교 다원주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아시아주교회의(FABC)는 이 논문이 그리스도교적 입장을 잘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여기고 1997년 9월 회의 때에 재 발표한 것이다. 본인도 이 논문을 통하여 종교 다원주의에 대한 이해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原題: "Religious Plurality and the Christological Debate"]; 최영철, 「다원주의와 그리스도교」, 44∼45. 50∼60쪽; 김경재, 「해석학과 종교 다원론」, 『종교 다원주의와 종교 윤리』, 90∼93쪽.
96)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6).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개자이시다'(1디모 2,5). 베드로의 고: '이분(그리스도) 말고 다른 어느 누구에게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 우리가 의지하여 구원받아야 할 또 다른 이름은 하늘 아래 없습니다'(사도 4,12). 1디모 3,6; 에페 1,3∼13; 골로 1,15∼20; 요한 3,17; 사도 10,44∼48; 17,24∼31; 로마 10,12 등.
97) J.Hick, The Myth of God Incarnate, 1977; 박종천, 「종교 다원주의와 신학의 탈 서구화」, 133쪽; 최영철, 「다원주의와 그리스도교」, 44. 62∼64쪽; 폴 니터, 『예수 이름으로만?』, 273∼323쪽.
98) R.파니카, 『종교간의 대화』, 19∼37쪽; 폴 니터, 『오직 예수 이름으로만?』, 127∼270쪽.
99) 김성곤, 「종교다원화 현상에 대한 세 가지 태도의 분석과 그 문제점」, 186∼205쪽 참조.
100) 홍정수, 『다종교와 기독론』, 223∼224쪽; 「종교신학의 두 기준」, 166쪽; A.Race, Christian and Religious Pluralism: Patterns in the Christian Theology of Religion,Mary knoll, N.Y. Orbis. 1982.
101) 폴 니터, 『오직 예수 이름으로만』, 제2부(종교적 다원주의를 향한 그리스도적 태도들), 127∼270쪽.
102) 최영철, 「다원주의와 그리스도교」, 44∼45. 50∼60쪽.
103) J.드퓌스, 「종교 다원주의와 그리스론 논쟁」, 88쪽. Cf. P.F.Knitter, "Catholic Theology of Religions at a Crossroads," pp.99∼107.
104) 「교회헌장」(LG), 16∼17항; 「비그리스도교 선언」(NA), 2항; 「선교교령」(AG), 9. 11. 15항; 「사목헌장」(GS) 22항 등.
105) 참조: 이원규, 「종교적 배타성과 종교성의 관계에 대한 경험적 연구」, 173∼205쪽.
106) W.케른,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는가?』, 9∼23쪽.
107) 이에 대해: R.파니카, 『종교간의 대화』, 20쪽; P.니터, 『오직 예수 이름으로만?』, 130∼163쪽; H.카워드, 『종교 다원주의와 세계 종교』, 52∼53쪽; 심상태, 「교회와 타종교와의 관계」, 254∼255쪽.
108) 최영철, 「다원주의와 그리스도교」, 50∼51쪽; H.크래머, 『기독교 선교와 타종교』, 390∼403쪽.
109) W.케른,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는가』, 49∼69쪽.
110) O.Karrer, Das Religiöse in der Menschheit und das Christentum, Frankfurt a. M., 1949, pp.239∼293. H.de Lubac, Katholizismus als Gemein- schaft, pp.216∼241. J.Daniélou, Le problème théologique des religions non- chrétiennes, in: Archivio di Filosofia, Roma, 1956, pp.214∼216. 위의 인용 서적에 대해: H.R.슐렛테, 『신학적 주제로서의 종교』, 27∼28쪽에서 재인용.
111) 김재영, 「존 힉의 종교 다원주의 철학 연구」, 150∼151쪽.
112) 심상태, 「요셉 라칭거 추기경의 토착화론(1)·(2)」 참조.
113) W.케른,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는가』, 40∼48쪽.
114) J.드퓌스, 「종교 다원주의와 그리스도론 논쟁」, 88쪽.
115) K.Rahner, "Salvation of the Non-Evangelized," pp.79∼81. K,Rahner, "Christianity and the Non-Christian Religions," pp.115∼134. K.Rahner, "Anonymous and Explicit Faith," Theological Investigations, vol.16, N.Y., Seabury Press, 1979. 칼 라너, 『교회의 미래상』, 1987. 심상태, 『익명의 그리스도』, 159∼166쪽; 「교회와 타종교와의 관계」, 262∼266쪽. 이제민, 「K.라아너 사상 접근」, 141∼159쪽. 이찬수, 「칼 라너의 종교신학」, 96∼105쪽. 졸저, 『선교의 역사와 개념』, 159∼163쪽.
116) 칼 라너, 「무신론에 관한 가르침」, 『신학 전망』 제20호(1973), 42. 45쪽; 이찬수, 「칼 라너의 종교신학」, 96∼98쪽; 이제민, 「K.라아너 사상 접근」, 152∼157쪽.
117) 이찬수, 「칼 라너의 종교신학」, 100∼101쪽; K.Rahner, Foundations of Christian Faith: An Introduction to the Idea of Christianity, p.310.
118) 폴 니터, 『오직 예수 이름으로만?』, 211∼212쪽; 존 힉, 『하느님은 많은 이름을 가졌다』, 30쪽; 이찬수, 「칼 라너의 종교신학」, 101∼103쪽; 윤이흠, 「종교 다원주의에 대한 경험적 접근」, 22∼23. 42∼48쪽; J.드퓌스, 「종교 다원주의와 그리스도론 논쟁」, 91쪽; 홍정수, 「종교신학의 두 기준」, 180∼181쪽; 김성곤, 「종교다원화 현상에 대한 세 가지 태도의 분석」, 191∼199쪽.
119) 폴 니터, 『오직 예수 이름으로만?』, 239∼248쪽; P.Knitter, "Catholic Theology of Religions at a Crossroads," p.101; 최영철, 「다원주의와 그리스도교」, 54∼56쪽.
120) 존 힉, 『하느님은 많은 이름을 가졌다』, 45∼67쪽; 폴 니터, 『오직 예수 이름으로만?』, 239∼248쪽; 이찬수, 「존 힉의 종교신학」, 128∼132쪽; 김영태, 「존 힉의 종교 다원주의 철학의 기초」, 130∼139쪽; 심광섭, 「존 힉의 신 중심적 다원적 종교신학,」 267∼273쪽.
121) R.Panikkar, "Christianity and World Religions," pp.86∼91; The Unknown Christ of Hinduism,21981, pp.8∼9. 폴 니터, 『오직 예수 이름으로만?』, 248∼255쪽. 최영철, 「다원주의와 그리스도교」, 55쪽. 유정원, 「파니카의 종교신학」, 101∼103쪽.
122) J.드퓌스, 「종교 다원주의와 그리스도론 논쟁」, 88. 92∼93쪽; 최영철, 「다원주의와 그리스도교」, 53∼54쪽.
123) 존 힉, 『하느님은 많은 이름을 가졌다』, 56. 86. 144쪽 등; 김영태, 「존 힉의 종교 다원주의 철학의 기초」, 122∼145쪽.
124) 박종천, 「종교 다원주의 신학의 탈 서구화」, 143∼145쪽. J.Cobb, Toward a Christocentric Catholic Theology, 1987; Beyond Pluralism, 1990. Kai Nielsen, "Eschatological Verfication," George L.Abernethy &Thomas H.Langford, Phi- losophy of Religion, London, The Macmillan Company, 1968, pp.287∼288. 이 인용 서적에 대해: 김영태, 「존 힉의 종교 다원주의 철학의 기초」, 140∼143쪽에서 재인용.
125) 존 힉, 『하느님은 많은 이름을 가졌다』, 96∼99. 104∼110쪽; 심광섭, 「존 힉의 신 중심적 다원적 종교신학」, 262∼267쪽.
126) P.Knitter, "Catholic Theology of Religions at a Crossroads", pp.104∼106; 최영철, 「다원주의와 그리스도교」, 57∼58쪽.
127) S.카로템프렐, 「그리스도 없는 복음화는 가능한가」, 97∼106쪽[이 논문은 살레시오 회원이며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 사무총장인 세바스찬 카로템프렐 신부가 1992년 11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복음화를 주제로 개최된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의 회의에서 행한 기조 연설이다. 그는 국제신학위원회 위원이기도 하다. 본인은 이 분의 가르침에 많은 도움을 받았음을 밝힌다. 原題: "Evangelization cannot be Christ-less?," L'Osservatore Romano(1993.2.3), N.5, pp.9∼10].
128) 「현대의 복음 선교」(EN), 32항.
129) 그리스도교의 구원 개념에 대해: 심상태, 「그리스도 구원의 해방적 요소」, 『종교신학 연구』, 제4집, 1991, 89∼114쪽; 임병헌, 「그리스도교의 구원관에 대한 숙고」, 76∼98쪽 참조.
130) J.드퓌스, 「종교 다원주의와 그리스도론 논쟁」, 94∼95쪽.
131) J.드퓌스, 같은 논문, 95∼96쪽.
132) 가빈 드코스타는 인도의 가톨릭 신자로서 현재 서부 런던 고등교육 연구소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타종교 신앙인과의 관계를 위한 타종교 위원을 맡고 있다. 그는 그리스도교적 포괄주의의 입장에서 다원주의와 배타주의를 극복하고자 한다. 이러한 그의 사상에 대해: 유정원, 「가빈 드코스타의 그리스도 중심적 삼위일체론」, 126∼134쪽에서 주로 참조했음. Gavin D'Costa(ed.), "Christ, the Trinity, and Religious Plurality," pp.16∼29; Theology and Religious Pluralism, 1986.
133) 이와 유사한 다원주의적 노선은 존 캅(John.B.Cobb)이 내세운 '그리스도 중심적 다원주의' 이론에서 볼 수 있는데, 그는 '상호 이해'에 대화의 목적을 두었던 신 중심주의를 넘어 그리스도교의 본질성을 견지하면서도 타종교 전통과 만나 '상호 변혁'을 지향한다. 이에 대해: 한인철, 「존 캅의 다원주의 방법론 소고」, 227∼249쪽; 유정원, 「존 캅의 그리스도 중심적 다원주의」, 95∼104쪽 참조.
134) 정진홍, 「종교 다원 문화의 인식을 위한 이론적 가설」, 53∼81쪽; 김경재, 「해석학과 종교 다원론」, 93∼94쪽.
135) 김성곤, 「종교다원화 현상에 대한 세 가지 태도의 분석」, 202∼203쪽.
136) 이시카와 준이치, 『종교분쟁지도』 1996; 이찬수, 「레너드 스위들러의 대화 신학」, 114쪽; 이원규, 「종교적 배타성과 종교성의 관계에 대한 경험적 연구」, 173∼205쪽; 김재영, 「존 힉의 종교 다원주의 철학 연구」, 167∼171쪽.
137) 김성곤, 「종교 다원화 현상에 대한 세 가지 태도의 분석」, 198∼199. 203쪽.
138) 이문균, 「종교다원사회와 그리스도교」, 95∼96쪽.
139) H.카워드, 『종교 다원주의와 세계 종교』, 214∼220쪽; 이문균, 「종교다원사회와 그리스도교」, 94∼97쪽.
140) J.B.Cobb, "The Meaning of Pluralism for Christian Self-Understanding," p.172; 이문균, 「종교다원사회와 그리스도교」, 95쪽.
141) 홍정수, 「종교신학의 두 기준」, 173쪽; 김승철 편, 『종교 다원주의와 기독교 Ⅱ』, 275∼ 277쪽; 이문균, 「종교다원사회와 그리스도교」, 96∼97쪽.
142) S.카로템프렐, 「그리스도 없는 복음화는 가능한가」, 87∼92쪽.
143) J.드퓌스, 「종교 다원주의와 그리스도론 논쟁」, 96쪽.
144) 김진태, 「진리와 진리들」 123∼132쪽. Cf. N.Rescher, Pluralism, Against the Demand for Consensus, Oxford, 1993.
145) 김성곤, 「종교 다원화 현상에 대한 세 가지 태도의 분석」, 204∼205쪽.
146) 이문균, 「종교다원사회와 그리스도교」, 98∼100쪽.
147) 심상태, 「요셉 라칭거 추기경의 토착화론(2)」, 100∼109쪽.
148) 국제신학위원회, 「신앙과 토착화」(신앙의 토착화와 비그리스도교들, 14항), 210쪽; 『건전한 신앙생활을 해치는 운동과 흐름』, 8항, 16∼18쪽; 최영철, 「종교 다원주의―그 주장의 문제점과 대책」, 17면.
149) 이문균, 「종교다원사회와 그리스도교」, 108∼109쪽.
150) 이찬수, 「칼 라너의 종교신학」, 103∼105쪽.
151) 심상태, 「요셉 라칭거 추기경의 토착화론(2)」, 105∼1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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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가톨릭 교회의 종교다원상황에 대한 입장
제1절 현대의 다종교 상황에 대한 인식
가톨릭 교회가 타종교의 문화에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고 타종교인과 진지하게 대화를 모색하도록 계기를 불어넣어 준 것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였다. 이 공의회 이전의 가톨릭 교회는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다'(Extra ecclesiam salus non est)는 입장을 견지하였었다. 이러한 표현은 플로렌스 공의회(1442)에서 천명된 바 있다: "가톨릭 교회밖에 머물고 있는 자는 이교도뿐 아니라 유대인들, 이단자들, 열교자들 어느 누구도 영원한 생명의 공동 상속자가 될 수 없다…"(DS 1351). 그리고 타종교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부정적 입장은 특히 19세기 유럽에서 합리주의적 영향하에 확산된 상대주의와 종교적 무차별주의에 대한 교황들의 단호한 태도에서 나타난다.67)
하지만 인류 역사 안에 함께 살고 있는 타종교인들을 이해하고 그들이 이룩한 문화적 가치를 존중할 필요성은 필연적인 시대적 요청이었다. 현대의 종교 생활 분포로 볼 때, 그리스도교는 유럽과 남미에 편중되어 있으며 그 밖의 지역에서는 여전히 소수 집단에 머물고 있다.68) 종교 다원주의 신학자 폴 니터는 역사상 그리스도교에 의해 이룩된 선교는 대부분 다신교(多神敎) 지역의 민속 종교들이나 종교적 미신주의에 물들은 이들만을 개종(改宗)시킬 뿐이었으며, 지적인 체계가 갖추어진 살아 있는 종교들, 예를 들면, 이슬람교, 불교, 힌두교, 유교 등과 같이 나름대로 교리 체계와 문화 전통이 살아 있는 종교들과 마주쳤을 땐 그리스도교의 개종 사업은 진전될 수 없었다고 평가하였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교의 선교가 개종(改宗)만을 목표로 하는 자세를 갖는다면 전통 문화를 갖고 있는 종교들과 큰 마찰과 갈등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종교적 다원 상황에 새롭게 대처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69)
오늘날 교통과 통신의 발달, 문화간의 잦은 교류, 비그리스도교 지역에서의 선교활동을 통해, 가톨릭 교회도 타종교인들의 엄연한 실존을 인식하게 되었으며, 그들이 이룩한 문화의 위대성과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현대는 과거 16세기 이후 유럽 열강의 무력과 강제 논리로 주도된 식민지 경영 시대가 아니며, 민족들의 자주와 독립, 개인의 인권과 자유가 인간의 가치로 부각되는 시대이다. 또한 사상적으로도 종교적 억압의 굴레에서 벗어나 소신과 확신에 따라 자유롭게 자신의 입장을 개진할 수 있는 사회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생활 속에서 가톨릭 교회도 현대적 상황에 적응해야 할 과제를 인식하게 된 것이다.
바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러한 현대 상황에 처한 가톨릭 교회의 입장을 천명한 것이며, 그 이후 교회의 교도권의 많은 문헌들이 문화의 다양성, 신앙 표현의 다양성, 인권, 종교 자유에 대한 입장을 인간의 자유와 평등, 평화, 공동선의 원리에 입각하여 밝히고 있다.70) 특히 가톨릭 교회의 영향력 있는 신학자들이 참가하여 비중 있는 신학적 견해를 표명하고 있는 국제신학위원회에서도 '신앙의 토착화와 비그리스도교들'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타종교와의 대화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임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종교간의 대화는 상호 교환과 학술 연구와 공동 노력을 통하여 상대방 종교를 더 깊이 이해하고 서로의 종교심을 성숙시키는데 이바지함을 피력하고 있다.71) 이런 맥락에서 가톨릭 교회의 타종교에 대한 입장을 교회의 공식 가르침을 통해 살펴본다. 여기서 타종교와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타종교 안에 있는 구원적 가치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이해가 관건이 되므로, 여기서는 구원관을 중심으로 살펴보며 먼저 가톨릭 교회의 구원관에 대해 언급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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