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주차
대화, 이야기를 주고받자
3. 조오현의 대화법
승려 시인인 조오현(1933~ )은 필명이며 법명은 무산, 법호는 만악, 자호는 설악입니다. 1958년 속초에서 문성준 선사에게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었으며, 1968년 《시조문학》으로 문단에 나와 시조를 쓰고 있습니다. 토속어와 한자, 불교 어휘를 자주 사용하는 그의 시에는 선적 향취와 향기가 가득 묻어납니다. 아래 시에서는 승려의 일화를 시로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민간에 내려오는 민담의 시적 수용형태로 보면 될 것입니다.
사내대장부 평생을 옷 한 벌과 지팡이 하나로 살았던 설봉스님은 말년에 부산 범어사에 주석했는데 그 무렵 곡기를 끊고 곡차를 즐겼지요.
그날도 자갈치 그 어시장 그 많은 사람사람 사투리사투리 물비린내물비린내 이것들을 질척질척 밟고 걸어 들어가니, 생선 좌판 위에 등이 두툼한 칼로 생태를 토막 내고 있던 눈이 빠꼼한 늙은 ‘아즈매 보살’이 무르팍을 짚고 꾸부정한 허리를 펴며 뻐드렁니 하나를 내어놓았지요.
”요새 시님 코빼기도 본 사람 없다캐싸서 그마 시상 살기 싫다케서 열반에 드셨나 했다캐도요. 오래 사니 또 보겠다케도……”
이러고는 바짝 마른 스님의 손목을 거머잡는가 싶더니 치마끝으로 눈꼽을 닦아내고, 전대에서 돈 오천 원을 꺼내어 곡차 값으로 꼭 쥐어주고, 이번에는 빠닥빠닥한 일만 원권 한 장을 흰 봉투에 담아 주머니에 넣어주면서,
"둘째 미누라 아아가 여태 태기가 없다캐도……잠이 안 온다캐도요. 둘째놈 제대 만기제대하고 취직하마 시님 은공 갚을끼라캐도요. 그마 시님이 곡차 한 잔 자시고요. 칠성님께 달덩이 머스마 하나 점지하라카소, 약소하다캐도 행편 안 그렁교?"
하고 빠끔빠끔 스님을 쳐다보자, 스님은 흰 봉투 속을 들여다보고는 선화(禪話) 하나를 만들었지요.
“아즈메 보살! 요새 송아지 새끼 한 마리 값이 얼마인줄 알고 캅니까? 도야지 새끼도 물 좋은 놈은 몇만 원 한다카는데에 이것 가지고 머스마값이 되겠니꺼?"
그러자 그 맞은편 좌판 앞에서 물오징어를 팔고 있던 젊은 아즈매 보살이 쿡쿡 웃음을 참다못해 밑이 추지도록 웃고 말았는데, 때마침 먹이를 찾아왔던 갈매기 한 마리가 그 웃음소리를 듣고 멀리 바다로 날아갔는데, 그 소문을 얼마나 퍼뜨렸는지…….
그후 몇 해가 지나 설봉스님 장례식 때는 부산 앞바다 그 수백 마리의 갈매기들이 모여들어서 아즈매 보살들의 울음소리를 흑흑흑……흉내를 내다가 눈물 뜸뜸 떨구었지요.
-조오현, 「자갈치 아즈매와 갈매기」전문
위 시는 실제로 생존했던 설봉스님의 일화를 시로 형상화 한 것입니다. 설봉스님의 일화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창작자는 이 시 주인공의 일화를 대화적 어법을 통해 재미있게 구성하고 있습니다. 대화를 하는 주요 등장인물은 설봉스님과 아즈매보살입니다. 창작자는 대화를 하고 있는 두 사람의 대사를 경상도 사투리로 처리하고 있습니다. 이는 두 인물이 소속하고 있는 범어사와 자갈치시장의 지역적 특성이 경상도임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 부산인데도, 시에서 대화를 서울말이나 표준말로 표현을 할 경우 어색할 것입니다. 그리고 인물의 특성을 대화체를 통해서 드러냅니다. 아즈매보살은 말주변이 없이 사실의 전달에 ‘캐서’를 반복 사용하며 스님에게 부탁합니다. 부탁 내용은 손자를 점지해달라는 것입니다. 어눌한 말투와 기원하는 내용이 민중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스님의 대답은 해학이 넘칩니다. 시는 1만 원을 하면서 손자를 점지해달라고 하면, 그 손자가 송아지 한 마리는 물론 돼지 한 마리 값도 안 되느냐는 것입니다.
스님의 대답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웃고, 그 웃음소리에 날아가는 갈매기들이 이러한 이야기를 퍼뜨렸다는 것입니다. 그 이후 설봉스님이 죽자 장례식 때 수백 마리의 갈매기들이 모여들어 아즈매보살들의 울음소리를 냈다는 것입니다. 창작자는 설봉스님의 해학이 넘친 민중친화적 일화를 통해 아즈매들은 물론 갈매기들도 감동하였다는 점을 시를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화스님은 중국 당나라 선승인데 죽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가 나에게 옷 한 벌을 시주하십시오.”
이 말을 들은 신도들은 너도나도 옷감을 떠다가 정성껏 지어지고갔지만 보화스님은 고개를 흔들며,
“아니오, 나에게는 이런 옷이 필요 없으니 도로 가지고 가시오.”하고그만 돌아앉아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임제선사가 홀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목수를 시켜서 빨리 새 관을 하나 만들게 하여 그 관을 가지고 보화스님 처소로 가서,
“자 귀공을 위하여 의복을 한 벌 마련하였소이다.”
하니 그때서야 보화스님은 희색이 면면하였답니다.
-조오현, 「마지막 옷 한 벌」 전문
당나라 보화스님의 실화를 시로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보화스님은 죽을 때가 되어서 관이 필요하다는 말을 옷이 필요하다는 은유로 대중들에게 던졌는데, 대부분 알아듣지 못하고 옷을 해올 뿐입니다. 이심전심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임제선사만은 보화스님의 말이 무엇인지 알아듣고 관을 만들어 보화스님에게 보냅니다. 보화스님은 자신의 말을 알아듣는 임제선사의 처신에 희색이 면면하였다는 내용입니다. 보화스님의 대사와 임제선사의 대사가 모두 세 번 드러납니다. 보화스님은 성품이 기이하여 북쪽 땅을 돌아다니면서 요령을 흔들며 “明頭來也打 暗頭來也打”라 하고, 또 여러 곳으로 다니면서 사람을 만나면 요령을 귀에 대고 흔들다가 돌아보면 손을 내밀며 “한푼 달라”하였다고 합니다. 한때 임제선사가 있는 곳에 머무르며 임제선사와 사귀다 관 속에 들어가 죽었다고 합니다. 당나라의 임제 의현은 독특하게 제자들을 가르쳐 학풍을 드날렸으며, 그 후계를 임제종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선종은 대개 임제종풍이었고, 태고와 나옹 이후부터는 확실히 임제종의 법맥을 이어받았습니다.
당송 2대 중 9대 문장가의 한 사람인 소동파는, 어느 때 승호라는 큰스님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는 한번 점검해 보기 위해 변장을 하고 찾아간 일이 있었답니다.
승호스님이 먼저 물었습니다.
“대관의 존함은 누구십니까?”
“나의 성은 칭(秤)가요.”
“칭가라니요?”
“천하 도인 선지식 학자의 무게를 달아보는 저울도 모르십니까?”
소동파의 오만무례한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승호스님은,
“악!”
벼락치는 소리를 내지르고는 덤덤히,
“이 소리는 몇 근이나 됩니까?”
그 찰나 독천하 소동파가 되우 죽은 얼굴을 하고, 돌아가 대 분심을 일으켜 이런 게송을 남기게 되었답니다.
山色은 그대로가 법신(法身)
물소리는 그대로가 설법
-조오현, 「이 소리는 몇 근이나 됩니까?」 전문
위 시에는 시인 소동파와 승호스님이 등장하여 대화를 나눕니다. 당대 저명한 시인인 소동파의 자신만만한 질문과 허를 찌르는 송호스님의 대답이 극적인 재미를 줍니다. 소동파(1036~1101)는 소식을 말하며, 이름은 식, 자는 자첨, 호가 동파입니다. 북송제일의 시문가로아버지 소순, 동생 소철도 문장에 밝아 ‘삼소’라고 했습니다. 정치적으로 불우한 경력을 겪었지만 그 학문은 유불도에 걸쳤고, 힘찬 성격과 아울러 뛰어난 작품을 많이 남겼습니다. 자신의 학문을 뽐내며 스님을 찾아갔다가 한방 맞은 시인은 나중에 불교공부를 더하여 게송을 남깁니다. 게송은 깨달은 승려나 깨달은 사람이 외우기 쉽게 글을 지어 부처의 공덕을 찬미한 노래입니다.
절이라고 하면 산은 높고 골도 깊고 물도 맑아 그 부근에 가면 기우뚱한 고탑 석불 그을린 석등 버려진 듯한 부도 탑신 주춧돌 홈대 장독 무거운 축대 돌담 돌다리 설해목 같은 것이 보이고 그래서 조금은 서늘하고 고풍스럽고 밤이면 폭포수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날짐승 산짐승들 울음소리로 하여 적막을 더해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어떤 道流들이 살다가 내버리고 간 그래서 담장은 진작 다 허물어지고 마당에는 풀이 무성한 파옥 한 채가 있었는데 언제 어디서 왔는지 한 노승(良實:1758~1831)이 그 파옥에 와서 살고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은 그 노승을위해 노승이 외출한 사이 담장을 쌓고 풀을 뽑고 집을 깨끗하게 보수를 해 놓았는데 외출에서 돌아온 노승 왈,
“풀을 다 뽑아버렸으니 이제는 풀벌레 소리도 못 듣게 되었군.”
시큰둥한 표정이었는데 집을 보수 해놓으니 집주인이 부자인 줄 알고 도둑이 들었는데 노승은 도둑에게 줄 물건이 없어 입고 있던 옷을 홀랑 다 벗어주고 알몸으로 마당가에 나와 둥근달을 쳐다보고 밝아졌습니다.
“저 아름다운 달까지 줄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조오현, 「노승과 도둑」 전문
위 시에서 등장인물은 실재했던 인물인 양실이라는 노승 한 사람입니다. 양실은 그럴듯하게 모두 갖추어진 절에서 수도를 하는 승려가 아닙니다. 도류들이 버리고 간 담장이 허물어지고 마당에 풀이 무성한 무너진 집에서 사는데, 마을 사람들은 그가 외출한 사이에 마당의 풀을 뽑고 담장을 쌓고 집을 깨끗하게 보수합니다. 그러자 양실은 풀을 뽑아버렸으니 풀벌레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불교의 양가적 사고입니다. 마당 풀을 뽑아버리면 깨끗하기는 할지 모르나 풀벌레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깨끗함이라는 하나를 얻으면 풀벌레 소리라는 다른 것을 잃어버린다는 진리입니다. 이렇게 잘 보수된 집은 부잣집인줄 알고 도둑이 들어 스님의 옷가지까지 벗겨갑니다. 외양의 화려함은 남의 탐심을 일으켜 도둑이 들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도에 방해가 되지 않으려면 다른 사람이 관심을 가지거나 탐심을 내는 어떠한 물건도 가져서는 안 되고, 자신을 비워야 한다는 말입니다. 나아가 자신의 마음을 빼앗아가 버리는 하늘의 달까지도 도둑에게 주어버려야 한다는 말이지요. 버리고 간 파옥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거나, 달까지도 주어버려야 한다는 승려 양실의 무소유 정신이 서술시로 형상되고 있습니다.
공광규 『이야기가 있는 시 창작 수업』
2024. 4. 23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