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려고 하면 사실 쉽지 않습니다. 일단 분량이 어마어마해서 엄두도 잘 안 나고 기껏 용기 내서 읽기 시작해도 금방 질리기 마련입니다. 사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수 있는 단행본(?)도 아닙니다. 구약 39권, 신약 27권의 합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은 좀 나눠서 읽는 것이 좋습니다. 다행히도 성경은 오랜 전통에 의해서 그룹별로 잘 나눠져 있습니다. 올해는 성경 읽으실 때 이 전통에 따라 읽어 보시면 내용 파악도, 신학적 의미도 좀 더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구약
1. 모세오경 :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이 다섯 권의 책은 매우 오래 전부터 [토라] 라는 카테고리로 분류되어 왔습니다. 실제로 이 다섯 권의 책은 처음부터 하나의 덩어리로 읽게끔 작성되었습니다. 오경은 시내 산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언약과 거기서 주어진 율법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구성되어 있습니다.
세상과 이스라엘의 시작(창세기) - 출애굽과 시내산 언약, 그리고 성막(출애굽기) - 하나님의 백성의 거룩함의 본질(레위기) - 약속의 땅(가나안)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과 그 의미(민수기) -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새롭게 하나님과 갱신한 언약(신명기) 이라는 큰 줄기를 따라 읽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오경에서는 의외로 레위기가 그 중심에 위치에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상당히 외면당하는 성경이 레위기인데 레위기는 제의와 성결 양쪽에 걸쳐 구약의 가장 중요한 신학적 주제들(속죄, 정결, 거룩)을 설명하고 있는 책이니 주의 깊게 읽어 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2. 역사서 :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 상/하, 열왕기 상/하, 역대상/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여호수아부터 에스더까지의 책들은 역사서로 분류되는 그룹입니다. 이 책들은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착(여호수아-사사기)부터 이스라엘 왕국(사무엘, 열왕기, 역대기) 시대를 거쳐 포로기와 귀환기(에스라, 느헤미야)까지의 시대를 배경으로 합니다. 룻기와 에스더는 사실 정확하게 말하면 역사서는 아닙니다만(룻기와 에스더는 모두 유대 전통에서 축제 절기 낭독 성경들에 속하는 책들로 룻기는 오순절(칠칠절), 에스더는(부림절) 낭독성경) 사사시대(룻기), 페르시아 시대(에스더)를 반영한다 하여 역사서에 자리했습니다.
이 책들은 형태는 역사서이지만 실제로는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언약이 어떻게 성취되었고, 또 이스라엘이 어떻게 반역하고 불순종하였는지를 추적하고 그 결과를 기술한 책들입니다. 따라서 실록과 같은 역사 기술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기록한 신학적 서술이 주가 되는 책입니다.
이 가운데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 열왕기는 [신명기적 역사서]로 분류하여 신명기, 특히 율법(토라)의 관점에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판단하고 비판하여 후대에 반면교사로 남긴 책들이며, 역대기, 에스라, 느헤미야는 [성문서계 역사서]로 성전과 레위인들을 중심으로 성전 중심의 유대교로 재편되는 포로기 이후의 유대인들의 신학적 관점이 반영된 책들입니다. 두 차이를 비교하면서 읽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3. 시가서 :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
이 책들은 시와 노래로 작성된 책들로 분류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책들은 구약의 지혜문학의 전통에 큰 영향을 받은 책들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 성경들을 읽으실 때에는 설교나 역사서술, 혹은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과 같은 개념으로 읽거나 받아들이면 곤란합니다.
이 성경들은 어디까지나 시와 노래라는 장르의 특성을 잘 이해해야 하고 무엇보다 이 그룹에 속한 책들은 구약의 전통에서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반응과 고백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하고 읽어야 합니다.
이 가운데 시편은 이스라엘의 제의와 신앙고백의 내용들을 주로 다루고 있으며, 욥기와 잠언, 그리고 전도서는 구약의 지혜문학의 전통을 충실히 따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가서는 본래 축제 절기 낭독 성경 중 하나로 유월절 낭독 성경입니다. 따라서 아가서는 단순한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유월절의 신학과 잘 맞는 주제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시가서들은 표면적 읽기 보다는 심상(image)과 다양한 은유들을 통해 구약성경의 중요한 신학적 주제들을 깊이 있는 상상력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책들을 읽으실 때에는 독자들 역시 히브리 시와 지혜 전통의 특성을 따라(특히 문학적 수사를 이해하며) 읽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4. 예언서 :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 애가, 에스겔, 다니엘,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이 책들은 이스라엘의 예언자들, 특히 주전 8세기 이후에 활동한 소위 문서 선지자들의 신탁(oracle)과 설교를 중심으로 기록한 성경들입니다. 역사적 배경은 주전 8세기 이후의 문란하고 패역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시기를 배경으로 이스라엘과 유다의 멸망, 그리고 포로기 시대(주전 6세기 이후)까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예언서를 읽을 때에는 (1) 하나님과 언약을 파기하고 불순종과 패역의 길을 가게 된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정의로운 심판 (2) 하나님의 심판이 지나고 난 후 다시금 하나님의 백성을 새롭게 회복하실 하나님의 은혜라는 거시적 주제들을 꼭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합니다.
또한 예언서에는 토라(오경)에서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성품과 뜻(하나님의 의로우심, 공평하심, 인애하심, 진실하심)들이 성취되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내용과 그 속에서 살아가야 할 그의 백성들의 관한 내용들도 무척 많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 내용들은 언제나 당대(현재)를 살아가는 성도와 교회에게도 중요하게 적용되는 기준들이기도 합니다. 이런 부분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잘 살피면서 예언서를 읽으시면 좋습니다.
2. 신약
1. 복음서 :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이 네권의 성경들은 예수님의 탄생과 생애, 사역, 고난, 죽음, 부활 및 승천의 내용과 그 의미들을 정리하여 기술한 책들입니다. 복음서들로 분류되는 성경들은 단순한 예수님의 전기가 아니며 예수님의 모든 사역과 교훈들이 다 기록된 것도 아닙니다.
복음서들은 예수님께서 구약성경에서 예견한 메시야이자 하나님 나라의 왕이심을 각각의 복음서의 신학적 관점에 따라 선별적으로 자료들을 취합, 편집하여 서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에 대한 기록은 시간적 순서에 따른 것이 아니니 주제와 신학적 관점에 따라 읽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어느 정도 유사한 자료들과 편집 순서를 따르는 마태-마가-누가(이를 공관복음이라고 합니다)에 비해 요한복음은 자료의 편집과 정리도, 신학적 주제도 꽤 다른 책입니다. 오히려 요한복음은 요한문서(요한 일, 이, 삼서)의 신학적 주제들과 상당히 유사한 내용들이 많으니 이 책들과 비교하면서 읽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또한 누가복음은 뒤이어 나오는 사도행전의 1부, 혹은 전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상당히 밀접한 관련이 있는 성경입니다. 특히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된 하나님 나라가(누가복음) 그의 제자들을 통해 어떻게 확장되고 있는지를 연결하고 있는(사도행전) 관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따라서 두 책은 하나의 책처럼 연결하여 읽는 것이 좋습니다.
2. 바울서신 :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여기에 속한 성경들은 바울이 기록한 서신서로 분류되는 책들입니다. 이 가운데 바울이 직접 기록했느냐 혹은 그의 유작이냐에 따라 제1, 2 바울서신으로 분류합니다만 성경을 읽으실 때는 굳이 몰라도 상관 없습니다. 그냥 모두 바울의 신학적 유산이 담긴 성경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바울서신 속에 나타난 구원론, 교회론, 기독론은 초기교회를 비롯한 기독교 신학의 초석이 되었다고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요한 내용들이 많습니다. 다만 바울서신 자체는 그러한 신학적 주제들을 변증하거나 교육할 목적으로 기록된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당대(주후 1세기)의 초기교회들에게 나타난 각종 문제들에 대한 권면과 교육이 주가 된 교회론적, 목회론적 관점의 편지라고 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바울서신에 속한 성경들은 당대의 교회들의 정체성, 특히 유대교와 유사 기독교(이단)들과 정통적인 사도적 교회(공교회)와의 차이점에 대한 설명과 권면이 많습니다. 이 내용들을 잘 정리해서 읽다보면 교회의 기본적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잘 정리할 수 있는 이점이 있습니다.
3. 공통서신 :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 요한 일, 이, 삼서, 유다서
이 그룹에 속한 성경들은 바울이 아닌 다른 사도들 혹은 저자들이 기록한 서신들의 모음집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중요성이 감소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다양한 초기 교회의 신학적 관점들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내용들이 많습니다.
이 책들은 유대 전통으로부터 이어지는 중요한 지혜의 가르침들에 관한 것도 있고, 레위기적 속죄 시스템의 신약적 적용과 이해라는 중요한 내용도 있고, 중요한 기독교적 종말론과 잘못된 이단(적그리스도)들에 대해 교회가 취하고 대응해야 할 가르침에 관한 것도 있는 등, 당대(주후 1~2세기)의 초기교회들이 직면했던 많은 신학적, 시대적 도전과 갈등에 대한 적절한 교훈들이 많습니다.
이 책들은 신학적 배경도, 분파들도 각각 다른 공동체들이 초기 공교회라는 하나의 틀 안에서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되는 교회를 지향하기 위한 노력이 배여 있습니다. 이 점들을 고려하시면서 읽어 보시면 많은 유익이 있을 것입니다.
4. 그 외의 책 : 사도행전, 요한계시록
사도행전은 누가복음의 2부라고 할 수 있는 책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 나라가 그의 제자들, 특히 베드로와 바울이라는 각각 유대인과 이방인 전도를 대표하는 사도들이 각각의 자리에서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나갔는지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도행전은 단순히 전도나 선교에 관한 책이 아니라 누가복음의 신학적 관점에서 로마제국 전체에 영향을 끼친 예수님과 그를 따르는 제자들이 보여준 [하나님 나라]가 어떤 것이었고 그것이 제자들과 그들에게 도를 전해 들었던 성도들과 비신자들에게 어떤 영향과 변화를 이끌어내었는지를 살피며 읽는 것이 중요한 책입니다.
마지막으로 요한계시록은 본래 요한의 묵시라는 원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예언서가 아닌 유대 묵시문학을 기반으로 한 성경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알 수 없는 미래적 종말에 관한 비밀스러운 계시가 아니라 당대 로마제국 하에서 고난과 핍박을 견뎌내야 하는 교회들(요한계시록에서는 일곱 교회가 그 대표적 모델로 등장합니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 가져야 할 자세와 태도, 그리고 결국 성취되고 완성될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에 대한 소망과 약속이 구약 특유의 묵시적 언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거의 유사한 장르인 다니엘서의 후반부(7-12장)와 비교하면서 읽어 보시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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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구약과 신약 성경들의 그룹별 구분과 특징에 따라 한 그룹씩 나눠서 성경을 읽어보면 훨씬 그 내용을 이해하기도 쉽고 정리하기도 쉽습니다. 한꺼번에 성경 전체를 다 읽는 것이 부담되신다면 이랗게 나눠서 읽어 보시면 어느새 성경 전체를 정독하실 수 있으시리라 생각합니다.
또 하나의 팁을 드리자면 성경을 읽으실 때에는 가능한 책상 위에서 노트를 하나 펴시고(혹은 노트북이나 태블릿도 좋습니다) 자신이 읽고 있는 성경의 장별 요약을 하시며 읽으시면 더욱 좋습니다. 그냥 읽는 것과 자신의 말로 정리해 보는 것은 나중에 큰 차이가 납니다. 그리고 장별 요약은 확장하면 그 성경의 구조분석의 기틀이 되니 꼭 해 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성경은 정말 아는 만큼, 이해한 만큼 전혀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무엇보다도 내가 하나님을 믿고 사랑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당신의 마음과 뜻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책인 성경을 읽고 마음에 새기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올해는 꼭 성경을 전부 읽어 보실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권영진 목사(정언향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