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혜자 35만명으로 늘어… 가족 등 간병 부담 크게 덜어 세계 4번째 선진적 요양제도… 고용창출·복지향상 효과
“아버지께서 3등급을 받고 나서부터 나는 다시 업무에 복귀할 수 있었다. 어머니께서도 고통스러운 시간이 줄어들었다. 낮에는 예전에 못하시던 운동도 하시고 친구분들도 더 자주 만나고 얼굴도 한결 밝아지셨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 시행 5년간의 평가가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3 장기요양보험 체험수기 최우수상 수상자 문은정씨는 지난 6월 28일 국민건강보험공단 대강당에서 열린 ‘한국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시행 5년의 성과 평가 및 중장기 발전방향’을 주제로 한 국제심포지엄에서 치매환자인 아버지가 3등급 수급자격을 받고부터 달라진 가족의 모습을 소개했다. 문씨는 “아버지가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수급자격을 받기 이전에는 치매 증상으로 온가족이 시달리고 종일 아버지에게 매달려 있었다”며 “그런데 등급을 받아 주야간보호센터를 이용하고부터는 가족들이 직장에 다시 복귀하는 등 평화로운 일상생활로 돌아갔을 뿐 아니라 아버지 증상도 나아졌다”고 말했다. 한국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는 도입 초기인 지난 2008년 수혜자가 노인인구의 2.9%(14만6000명)에 불과했던 것이 현재 5.8%(35만명)로 대폭 늘어 치매, 중풍 등으로 일상생활이 불편한 노인 간병 부담의 짐을 나눠지고 있다.
제도 시행 5년간의 성과를 돌아보고 앞선 일본 사례와 비교하며 향후 발전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열린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이하 요양제도)의 단점으로 지적됐던 사안들의 구체적인 개선방안이 공개됐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김종대 이사장은 개회사를 통해 “2014년까지 등급 인정점수를 단계적으로 인하하고 등급판정체계를 개편해 경증치매자를 수혜대상에 포함시키는 한편, 내년 7월부터 등급 외 치매환자도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치매특별등급을 신설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네덜란드, 독일, 일본에 이어 세계 네 번째로 요양제도를 도입했다. 도입 당시 노인인구 비율이 독일 15.5%, 일본 17.4%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10.3%여서 고령사회를 빨리 대비한 선진사례로 일컬어졌다. 그러나 OECD 국가와 비교할 때 수혜범위가 넓지 못하고 시설간 서비스 품질격차와 특정급여(방문요양)에 서비스가 편중되는 등의 문제가 제도 운영과정에서 끊임없이 지적돼 왔다. 이에 공단은 지난해 공단쇄신위원회를 출범시켜 연구와 외부자문, 논의를 거친 끝에 이같은 내용의 개혁방안을 내놓았다. 보건복지부 노홍인 노인정책관은 비전문인인 가족들의 비공식적 수발에서 요양보호사 등에 의한 전문적인 수발로 어르신들의 신체적, 심리적 기능 향상을 도모한다는 점이 요양제도의 큰 성과라고 평가했다. 노 정책관은 “앞으로 5년 뒤에는 노인인구가 유소년 인구보다 많아진다”며 “5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제도가 성공적으로 안착된 것을 보면 바짝 다가온 고령사회도 차질없이 맞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요양제도가 고용 창출에도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제도 도입으로 늘어난 노인요양시설이 4000개, 재가장기요양기관은 2만개에 이르며 요양보호사 자격증 소지자만 해도 100만명이 넘는다. 복지서비스 향상과 고용창출의 효과를 동시에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개선해야 할 과제들은 산적해 있다. 권순만 교수(서울대 보건대학원)는 주제발표에서 “사회보험을 주 재원으로 하고 정부가 일부 지원을 하는 현재 형태로는 재정지속성에 한계가 있다”며 “제도를 발전시켜 나가는 데 필요한 재원 논의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지만 보험료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일본 사례 발표자로 나선 나이토 카츠오 교수(일본대 문리학부)는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돼 가고 있는 한국은 일본의 지역포괄 케어 시스템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며 “일상생활 권역 내에서 의료와 요양, 예방관리, 복지 서비스를 한번에 제공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한국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로 받을 수 있는 장기요양서비스는 8개가 있으며, 노인요양시설 및 노인요양공동생활가정 등의 시설급여(2개 서비스)와 주야간보호 및 방문요양, 방문목욕 등의 재가급여(6개 서비스)가 있다. 장기요양등급 1~2등급은 시설입소가 가능하지만 3등급은 재가서비스만 받을 수 있다. 등급을 받고도 부양의무자의 소득, 재산 때문에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 어르신들의 지원방안과 현행 사후관리 중심에서 예방까지 이 제도의 서비스 범위를 넓히는 일이 큰 과제로 꼽히고 있다.
장기요양시설 대부분 소규모… 품질개선 필요
■제1주제발표 - 권순만 교수(서울대 보건대학원)
국민 의료비는 인구 고령화와 함께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의료비 증가를 고령화 탓으로 돌리고 있지만 건강보험공단 등 보건의료시스템을 보면 의료비 증가가 고령화 탓만은 아니다. 요양제도 도입 전 장기요양시설이 부족해 많은 노인들이 일반 병원에 재입원하는 사회적 입원이 늘어 병원 편중 현상과 건보 재정 악화를 초래했다. 효율적인 제도와 시스템 정비가 먼저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요양제도의 갈등은 어르신들의 욕구 충족과 재정 충당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다. 요양은 의료와는 달리 일단 시작되면 급여가 계속되기 때문에 재정안정성이 특히 중요하다. 급여가 지나치게 낮으면 요양보험이 보험으로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기 때문에 일정수준의 보장성도 유지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현물급여가 원칙으로 현금급여에 대한 논의가 전혀 없다. 장기요양기관이 부족한 도서, 벽지에 거주하거나 기타 사유로 가족으로부터 수발을 받아야 하는 경우에만 현금급여가 나가고 있는데,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있는 가족이 간병을 하는 경우의 지급체계를 세워야 한다. 장기요양시설 품질 개선도 시급하다. 전체 시설의 50% 이상이 수용인원 30인 이하의 소규모다. 시설서비스와 재가서비스의 역할분담과 지역사회에 기반한 서비스 제공체계 활성화가 필요하다. 재가급여 서비스도 가사도우미 중심으로 전락하고 있다. 집에서 관리를 받는 재가급여를 낮에 시설로 나와 전문적 관리를 받는 형식으로 바꾸어야 한다. 요양보호사 처우도 개선해야 한다. 요양보호사 자격 소지자가 120만명인데 26만명만 취업상태다. 열악한 근무조건과 낮은 급여 때문인데, 재가요양분야 요양보호사 중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이라는 것은 요양서비스의 품질 전락을 예고하고 있다.
일본은 지역포괄지원센터 4200곳서 서비스
■제2주제발표 - 나이토 카츠오 교수(일본대 문리학부)
일본은 2000년 재가서비스 중심의 개호보험법을 시행했다. 그 결과 시설입소 희망자가 증가했고 경증인정자의 급증으로 재정파탄이 우려됐다. 당시 정부는 재가 서비스가 인기가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2006년 지역포괄케어로 전환한 개정 개호보험법을 시행하면서 예방 개념을 도입한 개호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지역포괄 케어 시스템은 일상생활 권역에서 의료와 요양, 예방, 복지 서비스를 포함한 전반적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시설과 제도를 정비한 것이다. 창구 역할을 하는 지역포괄 지원센터가 현재 4200개다. 2012년에도 한 번 정비작업을 거쳤지만 앞으로 베이비부머 세대가 고령자가 되는 2025년에 대한 대비가 일본 개호보험의 과제다. 독거세대와 노인부부 세대 증가로 가족 간병이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고령자 의료비 증대에 대처하면서 동시에 고령자의 존엄성도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관건이다. 한국은 노년 인구 비율이 비교적 낮은 시기에 요양제도가 시행되었다. 고령자 케어 문제는 아시아 여러 나라의 공통과제로 한국제도는 앞으로 다른 나라 장기요양보험제도에 참고가 될 것이다. 지역 센터를 통해 의료와 요양, 예방관리 등 전반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역포괄 케어시스템 구축에 관심을 갖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