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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 도깨비들이 죄인을 고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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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당이 있다 한들 천당이 어디 있으며 왕생극락이 있다 한들 저승에 왕생극락이 있으리까? 극락이라 하는 것은 우리 인간에 있는 법입니다. |
우리 신녀들은 이렇게 노래한다. 천당도 극락도 없다.
여기서 ‘인간’이라는 것은 ‘사람 사이’로 인간 세상을 말한다.
즉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입고 근심 수심 없이 사는 게 극락’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 세상은 불평등하고 도적이 많다.
누구나 잘 먹고 잘 입고 근심 수심 없이 사는 게 불가능하다.
저승법은 맑고 깨끗하지만, 이승법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부모에게서 나 인간 세상에 와서 칠십 고래희요 팔십이 정해진 명이라도 잠든 날 잠든 시 병든 날 병든 시에 근심 수심을 다 버려서 단 사오십을 지낼수 있으리까?
부모 놓아두고 자식 가고 조상 버려두고 자손 가고 아이 갈 데 어른 가고 어른 갈 데 아이 가고 저승길은 거은 물 거은 다리가 되옵네다 . |
‘거은’은 ‘거슬러 오르는’이라는 말이다.
울며불며 따르는 어린아이를 버려두고 갈지라도 돌아오지 못하는 이 저승길,
한 번 가면 돌아올 줄 모르는 이 저승길은 ‘거슬러 오르는 물, 거슬러 오르는 다리’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저승길을 도저히 갈 수 없는 귀신도 있다.
한 많고 설움 많아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귀신이다.
우리 범을황제의 아들 삼형제가 바로 그렇다.
열다섯 십오세의 고개를 넘으려고 세상 공부를 다니던 삼형제는 어이없이 덧없는 죽음을 당하였다.
이팔청춘 꿈같은 시절을 눈앞에 두고 그 시체까지 돌에 묶여 까치못에 던져졌으니, 죽어서도 어미
아비를 한번 만나지도 못하고 어찌 발걸음이 떨어질까?
이 원수를 어찌할까? 맺힌 한을 풀지 못하고서야 어찌 맑고 깨끗한 저승으로 갈 수 있을까?
삼색 꽃 세 송이와 오색 구슬 세 개
삼형제를 죽인 과양상이가 하루 이틀 칠일이 지나가니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 까치못에 가만히 가서 살피는데, 송장은 아니 뜨고 난데없이 붉은 꽃도 동실동실 노란 꽃도 동실동실 파란 꽃도 동실동실. 꽃 세 송이가 물위에 둥실둥실 떠오르는구나. 욕심 많은 과양상이, 삼형제 죽어 있는 연못의 꽃조차 탐이 나네. “이 꽃아 저 꽃아, 나에게 태운 꽃이거들랑 내 앞으로 어서 오거라!” 물막개 빨래 방망이로 물을 앞으로 당기니 삼색 꽃이 과양상이 앞으로 떠온다. 앞에 오는 꽃은 벙실벙실 웃는 꽃, 가운데 오는 꽃은 비새같이 우는 꽃, 맨 끝에 오는 꽃은 팥죽 같은 용심을 내는 꽃. 오도독 꺾어다가 집으로 와서 대문에 하나 뒷문에도 하나 샛문에도 하나를 꽂아두었다. 과양상이 드나들 때마다 매달아놓은 꽃 세 송이가 조화를 부리는데,
나가려고 하면 앞머리채를 박∼박 잡아끌고 들어오려고 하면 뒷머리채를 박∼박 잡아끌고 머리가 문설주에 시도 때도 없이 부딪히기 일쑤구나.
“이런! 고약한 꽃∼∞§∼§∼같으니라구!”
과양상이가 꽃을 훅 하니 떼내어 손바닥에 놓고 복복 비벼서 청동 화로 은단 숯불에 미련 없이 털어넣으니, 얼음산의구름 녹듯 바스스 타는구나. |
아니, 삼형제의 넋이 과양상이 죄를 묻기 위해 꽃으로 환생한 것이 아니었나?
그런데 바스스 타버리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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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점에서 우리는 참으로 아쉬워할밖에!
그러나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자, 이야기를 더 따라가 보자.
과양상이가 꽃을 화로에 털어넣고는 제 성질을 못 이겨 소중기(팬티) 바람에 마당에 내려가 작대기로 검불(마른 풀이나 낙엽 따위)을 박박 긁고 있다. 마침 불씨를 얻으러 온 뒷집 청태산 마귀할망이 화로 속을 이리저리 휘저어보더니, “과양상이야! 불은 없고 웬 구슬이 세 개 묻혀 있구나!” 할망의 말을 듣고 화로 속에 있는 고운 화단지 구슬을 본 과양상이. 세상에 둘도 없는 욕심보가 발동해 ‘아이고, 그 구슬 내 것이우다’ 하고 얼른 빼앗아버린다. 오색이 영롱한 예쁜 구슬이라 과양상이는 구슬을 손바닥에서 동글동글 놀린다. 그러다가 햇볕이 비쳐 구슬이 뱅실뱅실 웃는 것 같으니까 기뻐서, 이제 아까우니까 그 구슬 하나를 입에 물어서 혀끝으로 이리저리 놀려 굴린다. 구슬이 자르르 스르르 녹아서 목 아래로 내려가는구나. 다시 구슬을 하나 입에 물어서 놀리니까 또 목 아래로 내려간다. 이처럼 입 노리개로 가지고 놀다가 구슬 셋을 모두 먹었네. 그냥 보기에는 성에 안 차 먹어치워 버렸구나. |
과거 깃발이 둥둥 떴구나
꼬챙이로 사람에게 벌주는 도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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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형제가 죽어 그 넋이 꽃으로 환생하고, 그 꽃이 다시 구슬로 변신한다.
과양상이가 그 구슬을 꿀꺽! 했다. 말하자면 삼형제의 넋이 과양상이 몸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렇다면 과양상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대충 짐작하는 독자도 있을 줄 안다.
이 궁금증을 풀기 전에 ‘구슬’ 이야기를 잠깐 한다.
구슬은 우리 옛 이야기에서 여의주를 말한다.
보통 ‘푸른 구슬’, ‘파란 구슬’, ‘황금 구슬’로 나온다.
이것은 뜻한 바 모든 것을 이루게 해주는 주술을 부린다.
여기서의 구슬은 주술을 부리기는 하지만, 여의주는 아니다. 꽃의 변신이다.
꽃은 암수의 생식기를 갖추고 있는 ‘생명’의 상징이다.
우리 신화의 서천꽃밭에 있는 꽃들은 생명을 살리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 능력의 결과물이 열매 아닌가?
과양상이가 먹어버린 구슬은 곧 꽃이 맺은 열매를 상징한다. 그런데 열매는 곧 씨앗이다.
씨앗은 또 다른 생명의 탄생을 예고한다.
그때부터 과양상이 배가 불러 오르기 시작하더니, 한 달에 피를 모아서 다섯 달에 배가 반 짐을 실어서 열 달에 배가 찬 짐을 실었네. 하루는 과양상이가 구들 네 구석을 데굴데굴 구르며, ‘아야 배야! 아야 배야!’ 죽을 듯이 소리 지른다. 청태산 마귀할망이 와서 과양상이 허리를 내리쓸어 보니 아기가 머리를 벌써 돌려 궁(宮)의 문을 열려고 한다. “한 맥을 써라!” 맥을 못 추다가 한번 힘을 내어 한 맥을 써보니 아들이 솟아나고, 두 맥을 써보니 샛아들이 솟아나고, 세 맥을 써보니 막내아들이 솟아나 한꺼번에 아들 셋을 얻었네. 과양상이가 삼형제를 금이야 옥이야 고이 기르는데, 일곱 살 나던 해에 산천 서당에 보내니 천하 문장감이라. 아들들에게 비단 옷 입히고 좋은 서당 보내는 사이에 범을황제 아들 삼형제에게 빼앗았던 은그릇·놋그릇·비단 꾸러미에다 논·밭까지 다 팔아먹고 집만 덩그마니 남았구나. 열다섯 나는 해 삼형제가 과거를 치르러 서울로 올라갈 때, 과양상이는 집마저 팔아치우고 아들들 노자를 마련하네. 과거를 치르니 삼천 선비 낙방하고 삼형제 과거 띄웠구나. 과거 깃발을 둥둥 띄웠구나. 삼만관속 육방하인 거느리고 어룡마를 타고 내려오는데, 삼 년하고도 석 달을 내려오는구나. 아이들이 암행어사가 되어 내려오면 서리 골살이 나라살이 골골이 다 추어서 내려오면서리 새면을 잡히는데,
뚱뚱뚜우뚱 뚜우∼ 꽝새는 꽝꽝∼ 나팔은 왱왱∼ 대부포는 두두둥둥∼ 새장이는 대댕댕∼
새면이라면 바로 해금, 대금, 목필, 곁피리, 장구, 북, 나팔 따위의 삼현육각(三絃六角) 을 잡히는 음악이라. 거, 풍류를 놀며 내려오는 소리 아주 근사하거든. 재수도 좋게!? 장례 때 입는 베치마를 둘러 입고 남의 밭을 빌려 콩을 갈던 과양상이 비비둥당 우둥당 북 치고 피리 부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어보니 청가마·백가마·흑가마 가마 세 개가 저 멀리 동네 어귀로 들어온다. “물렀거라! 섰거라!” 과거 깃발이 둥둥 떴구나. “아따! 어떤 놈의 집안은 산천이 좋아 과거를 띄워 오는고? 우리 집 아들들은 어디 간 놈의 손땅(손등)에 죽었는가 발땅(발등)에 죽었는가. 저기로 과거 띄워 오는 놈은 내 앞에서 모가지나 세 도막에 부러져 버려라!” |
욕 한번 섬뜩하구나.
그게 자기가 낳은 자식인 줄도 모르고 표독스럽게 “모가지나 부러져라”라고 저주를 해대는
과양상이 꼴이라니. 남의 자식들에게 저주를 퍼부어놓고 어찌 자기 자식이 잘되기를 바랄까?
그런데 이 과양상이의 모습에서 우리들의 슬픈 자화상이 떠오르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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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욕 없는 욕을 다 해대는 과양상이의 욕설이 떨어지기도 전에 머리를 풀어헤친 무지렁이총각이 과양상이에게 달려들며, “과거 기별입니다∼!” 과양상이 얼싸 ∼ 좋다, 좋다∼ 좋다 하는구나. “얼씨구 좋다! 절씨구 좋다! 설운 아기들 과거 띄워 오는데 아니 놀고 뭐할쏘냐! 과거 급제 자축하는 잔치를 이레 동안 베풀면 그 또한 좋겠구나!” 잔치를 한다는 게 남의 소는 다 모아다 잡아서 챙겨놓구서리 누를 다 끼쳐놓구서리, 기세가 등등해진 과양상이가 관헌으로 가서 호통 치는 꼴 좀 보소. “염치없는 김치원아, 감사가 세 명이나 오는데 마중을 안 나오고 무엇 하느냐?” 과양상이의 악살에 견디다 못해 김치원이 과양상이 집으로 마중 오고, 과양상이는 아들들 절 받을 채비를 한다. 아이 삼형제가 말을 타고 두룻이 들어와 말안장에서 내려선다.
큰아들 첫 번째 엎드려 절하고 일어서지를 않는구나. 둘째 아들 두 번째 엎드려 절하고 일어서지를 않는구나. 막내아들 세 번째 엎드려 절하고 일어서지를 않는구나. 과양상이 과거 띄워 온 아기 얼굴이나 볼까 하고 앉아서 바라고 기다려도 고개를 들고 일어서지를 않는구나. “이게 어찌된 일이더냐?” 달려들어 큰아들 머리를 들어보니 눈동자는 저승으로 돌아가 있고, 샛아들 고개를 들어보니 입에 거품 코에 송인이 오르고, 막내아들 고개를 들어보니 손톱 발톱 검은 피가 섰구나. 김치원이 시체를 뒤집어 일으켜보니 눈에는 흙이 가득 들고 배는 붕붕 부풀어 오르고 살이 문드러진 것이 이제야 죽은 사람이 아니라 죽은 지 오래된 송장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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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양상이의 속을 뒤집어놓은 과양 삼형제의 시체가 죽은 지 오래된 송장이라고?
여기서 과양상이의 속만 뒤집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이야기도 뒤집어진다.
오래된 송장은 바로 범을황제 아들 삼형제의 송장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범을 삼형제가 꽃으로 환생하여 다시 재가 되었다가 구슬로 맺혀 과양상이의 아들로
또다시 환생하여 과양상이 눈앞에서 죽어버린, 이 모든 환생과 죽음의 과정이 허깨비였다는
말이 아닌가?
과양상이가 꽃을 본 것도 구슬을 놀리다가 먹은 것도 환상이고, 아이를 밴 배도 헛배이며
산통을 느끼고 아이를 낳아 길러 과거를 띄우고 돌아와서 죽은 모습을 본 것도 다 허깨비 놀음
이었다는 대반전의 드라마가 펼쳐진 것이다.
우리 인생도 한바탕의 꿈과 놀이인데, 꿈속의 꿈이요, 놀이 속의 놀이인 환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더욱더 기가 막히는 이야기는 과양상이의 눈에 허깨비가 씌었다는 사실이다.
과양상이는 아직도 진실을 볼 수 없다. 욕망이라는 허깨비 놀음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팬터지 속 팬터지의 생명력이 아닐 수 없다.
과양상이의 소장
한꺼번에 아들 셋을 잃은 과양상이는 어처구니가 없고 끝없이 용심이 나는구나. 얼마나 분하고 원통한지, 원님에게 화풀이를 한다. “우리 아들 삼형제를 한날 한시에 낳고, 한날 한시에 문과급제해 와서 한날 한시에 죽어버렸수다. 무엇 때문에 죽어버렸습니까?” 아침에 아침소장, 점심에 점심소장, 저녁에 저녁소장, 하루에 삼세번씩 소장을 올려 석 달 열흘 100일을 계속하니 과양상이 소장만 아홉 상자 반이 차고 넘쳐난다. 과양상이가 날마다 성안을 마구 돌아다니며 욕을 하는데, “아들 삼형제가 하루아침에 죽었는데 까닭도 모르는 원님이 있느냐? 소장을 아홉 상자 반이나 들여다봐도 무슨 짓을 하는지 말 한마디 못하는 놈! 괘씸한 놈, 김치원 놈!” 또 날마다 성문에 올라가 소리를 친다. “개 같은 김치원아, 봉고파직하고 이 마을을 떠나거라! 다른 원님 놓아서 우리 아들 죽은 소장 처리나 하게끔!” 김치원이 삼형제가 이유도 단서도 없이 죽었으니, 절하다가 갑자기 죽었으니 뭘 밝혀낼 게 있으랴! “저런 못된 년에게 욕설이나 들어먹고, 정말 살맛이 안 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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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김치원은 과양상이의 소장을 어떻게 해결할까? 다음을 기대하시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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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이/ 문화평론가·연출가 nonil@korea.com |
발행일 : 2004 년 04 월 01 일 (428 호) |
쪽수 : 68 ~ 70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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