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219 아가서 1:1-4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노래 / 한빛교회 윤 석 목사
1솔로몬의 아가라
2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
3네 기름이 향기로워 아름답고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으므로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
4왕이 나를 그의 방으로 이끌어 들이시니 너는 나를 인도하라 우리가 너를 따라 달려가리라 우리가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더 진함이라 처녀들이 너를 사랑함이 마땅하니라
요한복음 2:19절을 보면 예수님이
성전 안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쫒으시고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의 말을 하셨는데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이 성전을 46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일 동안에 짖겠느냐 라고 비웃었는데
그들은 진정 인류 죄를 해결하시려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모르는 것이었습니다.
아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표면상으로는 연인 간의 러브스토리이지만 내면에 흐르는 진리를 발견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기 동산이 보이는데 그 위에 있는 나무만 보이는 사람은 아가서를 연인간의 사랑의 노래로만 이해하는 것이고
동산 밑에 뭍혀있는 금광을 발견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향한 깊은 진리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아가서가 단순한 러브스토리라고 하면 만남ㅡ 사귐ㅡ 결혼ㅡ 출산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오직 사랑 만을 노래하고 있으니
열려있는 상태로 끝나(Opening Ending)는 이 아가서를 보고서
당시 유대인들은 아가서의 이 풀리지 않는 어려움을
“열쇠를 잃어버린 자물쇠”와 같다고까지 표현하였습니다.
아가서가 정경으로 결정된 것은 얌니야 회의에서 입니다.
주후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어 마음 둘 곳을 잃은 유대인들은
주후 90년 얌니야에서 정경(타낙)을 결정할 때
아가서를 정경에 넣어야할지 말아야 할지 많은 논쟁이 있었지만
아가서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고 생각하여서 정경으로 인정하게 된 것입니다.
1:1절에 솔로몬의 아가라는 내용을 근거로 아가서의 저자가 솔로몬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니다.
아가 : 히, 쉬르 하쉬림
쉬르(명사, 노래), 하(정관사) 쉬림(명사 복수, 노래들) =노래들 중의 노래
헬, 칸타쿰 칸티코룸 이라 하고
이것을 직역하면 the Song of Songs (노래들의 노래)
NIV 성경은 자의적인 것들이 많은데 Solomon’s Song of Songs.
새번역 성경에서는 솔로몬의 가장 아름다운 노래 라고 부르는 것을 볼 때 아가는 한국어로 의역된 것입니다.
유대 학자들이 아가서를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의 관계를 묘사한 책으로 보는 것은 /
시편의 하나님과 아가서의 하나님을 동일시하여 본 것입니다.
시 21:13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 여호와여 주의 능력으로 높임을 받으소서
시 59:16에서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주는 나의 요새시며 나의 환난 날의 피난처심이니이다.
시 85:1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 여호와여 주게서 주의 땅에 은혜를 베푸사 야곱의 포로된 자들이 돌아오게 하셨으며.를 바라보았으며
아가서에는 단 한번도 하나님에 대한 언급이 없으나 내면에 흐르는 내용을 통하여 남녀간의 사랑을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읽어낸 것입니다.
아가서에 대한 해석의 방법이 다양한데
1. 연인간의 사랑이라는 해석 :
2. 철학적 해석.
게르솜이라는 철학자는 아가서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주장하며 / 남자 주인공을 활동하는 지식으로, 여자 주인공을 질료적 지식으로 표현하였는데
/솔로몬의 생애가 (BC 970-931년)이고
아가서의 기록 연대를 BC 970-960년대로 추정하기 때문에 그 이후에 태어난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아가서에 헬라의 문체가 섞여있는 것을 두고 헬라문학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 후세의 사람들이 기록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일 뿐 원 작품을 흔들만한 주장은 되지 못합니다.
3. 주변 문화로부터의 영향이라는 해석
근동의 이방종교의 영향을 받은 희랍 문학은 대채로 BC 700년 경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는데 대표적인 작품인 ‘솔론의 시’, ‘알카이오스의 시’, ‘체카티이오스의 시’ 등은 제의적 축제에 초점을 맞춘 연시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주변 나라들은 자기네들의 민족신을 섬기도 있었는데
자손의 다산과 농사의 풍요를 위하여 남신과 여신의 사랑을 다루었고
신전에서는 창기들의 음탕한 행위를 통하여 신의 임재를 기다렸는데
이러한 저급한 사랑과는 차원이 다른
아가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천지를 창조하신 유일신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간의 사랑을 다룬 내용입니다.
4. 풍유적(알레고리) 해석 :
A라는 사실을 통해서 B라는 사실을 바라보게 하는 것으로서 육을 통해서 영을 보는 방법입니다.
이것은 은유적인 해석이라고도 하는데
아가서에서는 특정 장소나 인물과 관련된 실제 사건을 보여주지는 않고
영적인 의미에만 초점을 두는 어설픔이 드러날 수 있습니다 /
정경에 들어있음으로 인하여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
내용의 큰 줄기를 이해하지 못하고 가지와 같은 작은 부분에서까지
지나친 영적 해석을 시도하는 것은
본질을 발견하는데 장애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5. 문학적(드라마)으로 해석 :
고대 이스라엘과 근동의 역사를 읽으면 아가서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누가복음의 가치를 높게 보는 것은 다른 복음서에 비해서 구성이 좀 떨어질지라도
먼저 기록되었다는 것이고
아가서의 가치를 높이 보는 것도 문학의 구성도가 좀 떨어질지라도
ㅡ근동의 헬라문학보다 먼저 기록되었다는 것이고
ㅡ하나님과 관계된 내용인 것입니다.
오리겐 교부(184-250)는 아가서를 한 편의 드라마로 인식하였습니다.
다윗의 생애를 나타낸 것이라고 보는 것 보다는 남녀간의 사랑을 통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는 알레고리를 바탕으로 발표한 문학 작품으로 보아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 합니다.
인류 문명의 발달은 경제의 부흥 이후에 나타나는 현상들입니다.
다윗 왕으로부터 왕권을 물려받은 솔로몬은
말과 전차의 국경무역과 구리광산과 염전에서 많은 부를 누릴 수 있었는데
재산의 부는 문화의 부를 이룰 토대를 만드는 것입니다.
또한 솔로몬은 재산의 부는 둘째치더라도
하나님으로 부터 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열왕기상 3-4장을 보면 솔로몬이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지혜와 부귀영화까지 받은 솔로몬은(왕상 3:4-15)
초목과 짐승과 새와 물고기 등을 논하면서
잠언을 삼천 가지를 말하였고
노래를 일천 다섯 개 지었다 (왕상 4:32-33)
그 중 아가서는 시 중의 시를 노래 중의 노래로 발표한 것입니다.
=왕궁의 결혼 예식이 5일 동안에 진행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받은 솔로몬이 자신의 결혼식에서
궁궐의 최고의 배우들을 통하여 노래하는 한 편의 연극이나 뮤지컬 같은 느낌이 듭니다.
1:1-4절은 아가서를 여는 서문이고
6개의 노래가 나열되어 있고
8:8절 부터는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랑을 노래하며 그리워하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하고, 다시 만나면서 사랑을 완성해간다는 내용을 노래로 불리워집니다.
무대는 예루살렘의 궁궐로 추측할 수 있고
배우는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과 예루살렘의 딸들과 술람미 여인의 오빠들이고
관객을 결혼식장에 모인 축하객들입니다.
그날의 결혼식 장면을 상상해보니
축포가 하늘을 향하여 터지는 것처럼 소파르의 울림이 있고
군악대의 연주가 울려퍼지는 것처럼 악사들의 행렬이 지나가고
이어서 한 무리의 여인들이 등장하여 부르는 합창 소리는 아가서의 시작을 알리고 있으며
이어서 몇일 동안 사랑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1;2 내게 입 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구나 ~~~♪
직역을 하면 “그가 나에게 그의 입맞춤들로 입맞출 것이다, 왜냐하면 너의 사랑들이 포도주보다 좋기 때문이다”인데
신랑에게 입 맞춤 당하기를 원하는 신부의 간절함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를 간구하는 이스라엘의 간절함이요
남녀의 사랑을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의 사랑으로 확대하는 노래입니다.
이러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근거는
출 34:14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하나님과 백성 간의 언약 관계, 즉 이방 나라와 언약을 맺지 말고,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섬기리라는 고백입니다.
이것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순결의 입맞춤입니다.
이사야 54:5-6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호 2:16-2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는 내용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사랑으로 이해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주로 쓰는 해석법을 보면
ㅡ구약시대에는 미쉬나(배운 것을 암기하고 자신의 것으로 내면화 하는)와
미드라쉬(랍비들의 가르침과 석의 해석)와 이것을 발달시킨 탈무드로 백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2절에서 포도주보다 나음이라 하였는데
포도주 : 율법, 인간의 잔치에서 빠지지 않는 귀한 술입니다.
잔치집에서 포도주를 마고 흥겨워하지만 술에서 깨면 그 즐거움은 사라지고 마는 것인데
오리겐 교부는 포도주를 율법과 선지자의 말로 보았으며
술람미 여인이 신랑에게 입맞추기를 원하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갈망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세상의 어떠한 행복보다, 율법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솔로몬의 지혜입니다.
1:3
네 / 기름이 향기로워 아름답고
네 이름이 쏟는 향기름 같으므로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 구나.
직역하면
네 기름들이 향기로 인하여 좋다:
기름의 향이 좋다 → 이 좋은 향 때문에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너의 이름은 쏟은 기름이다:
향유가 부어져서 항아리가 부어지면 주변은 향기로 진동하는 것처럼, 솔로몬의 훌륭한 인격이 주변에 진동한다는 것입니다.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
솔로몬의 성품이 뛰어남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다는 것입니다.
고후 2:15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는 어디를 가든지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뿜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깊으신 사랑이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1:4
왕이 나를 그의 방으로 이끌어 들이시니 너는 나를 인도하라 /우리가 너를 따라 달려가리라 /우리가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더 진함이라 처녀들이 너를 사랑함이 마땅하니라:
왕을 알레고리로 해석하면ㅡ 하나님이나 예수님으로 볼 수 있고
문학적으로 보면ㅡ 왕같이 보이는 사랑하는 연인이 됩니다.
왕이 나를 그의 방으로 이끌어 들이시니라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는 것과 같은 것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인류 구원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을 위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천국에 이르는 길을 놓아주셨음은 인류 구원을 위한 길입니다.
술람미 여인이 왕의 방으로 들어가는 것은 육체적인 초대이지만 /
이스라엘은 그 내용을 영혼으로의 초대로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육체적이 사랑을 이루는 것이 영적인 사랑을 이루는 것 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기고 있으니/
인간의 에로스의 사랑과 하나님의 아가페의 사랑이 공존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아가는 수메르 신화에 나오는 사랑의 노래나, 이집트의 사랑의 노래의 저급한 수준의 것과는 다른 / 하나님의 형상 안에서 택함받은 자들이 부르는 거룩한 노래입니다.
창 2:22-23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하나님이 아담을 위하여 여자를 만드시니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는 것을 보면
여인이 간구하는 사랑이 비록 육체적인 필리아의 사랑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인간의 행복한 결혼을 기뻐하시며 더 깊은 사랑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것은 예수님의 성육신을 통해서 알 수 있는데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육신의 몸을 입게 하시어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시는 모습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 인류 구원의 길을 열어놓으신 것입니다.
예수를 부인하고 촉이 떨어져서 의기소침해 있는 베드로를 향하여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3번이나 반복하여 질문하고 있음은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함이요
그리스도의 신부로 삼으시기 위함입니다.
고후 11: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라.
예수님의 질문에 대한 베드로의 사랑한다는 고백은
술람미 여인이 왕의 침실로 들어가는 것처럼 /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것이고
십자가의 다리를 건너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아가서는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간에 사랑의 스토리에서
실수도 하고, 위기를 맞아 헤어지기도 하지만
그 사랑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성숙해지고 있는 것은
성도의 신앙이 성숙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아가서는
8:6절의 크라이막스로 이어지는데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같이 팔에 두라
ㅡ도장을 찍는다는 것은 피로서 서약한다는 것이요
그리고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불길 같이 일어나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다는 것은 그 사랑이 하나님 안에 있으면 어떠한 자라도 끊을 수 없으니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고
교회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확장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허락하신 이 땅에서의 인간의 즐거움도 누리는 동안
관심과 싫어함과 만남과 헤어짐의 과정을 사랑의 힘으로 극복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허락하신 인생마다
고난과 슬픔 만남과 헤어짐을 느끼며 살아가지만
그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누림으로
즐겁고 행복한 이 땅에서의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