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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사상의 진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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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 回顧的인 불교 / 5. 호국안민의 불교(고려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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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말기에 이론불교에 대신하여 禪, 眞言密敎등의 실천불교가 수입되어 이론불교는 다시 再興하지 못하고 신라가 멸망하는 동시에 高麗朝로 바뀌었다. 이 나라 이론불교는 신라통일 그 전반기에 終幕을 告한 후, 그 후반기에 수입된 실천불교의 二宗이 고려조에 계승되어 470여년동안 계속되었던 것이다.
이 나라 불교사를 만약 대표적인 형식상으로만 본다면 가장 화려하고 훌륭한 황금시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승려중에서 수많은 國師와 王師가 배출하여 국가와 사회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교사상 내용으로 본다면 가장 빈궁하였던 것이다. 신라의 멸망과 동시에 王氏가 이어받아 고려조를 세우기는 하였지만은 政見上으로나 일반적인 識見, 정치적 迫力등 어느모로 보아도 그다지 自信을 소유한 정치가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므로 불보살의 가호에 依賴하여 타력주의에 기울어가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 불교는 신라조부터 국교이었으니 이를 국교로 삼았던 것이요, 國敎를 삼은 이상 승려들을 우대하여 호국안민을 기원해 주도록 하는 정책을 썼던 것이 아닌가. 一言而蔽之하면 고려 470여년의 불교는 호국안민의 祈禱佛敎이었다 할 수 있다.
그 기도는 眞言密宗의 本職이다. 禪宗은 원래 그런 것이 아니었지만은 국가의 요청에 의하여 역시 기도를 본업으로 하게되었다. 그 방법으로서는 仁王般若百高座會 金光明經會, 法華會, 華嚴會, 기타 多種의 법회 심지어 談禪法會등 까지도 열어서 호국의 기도를 행하였으며, 수백 수천 수만승려에게 공양을 베푸는 공덕력에 의하여 기도의 목적을 達하자는 飯僧會까지도 자주 자주 열었던 것이다.
高麗史, 歲歲年年 可謂 每月條에 불교의 무슨 법회인가를 반드시 개최하였던 기록을 볼 수가 있으나 이것은 반드시 왕씨조의 열렬한 불심의 발로라기 보다는 호국안민의 성의가 얼마나 놀라웠던가 하고보면 可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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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