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풍란(난초과)＜안동신문 638호 게재＞

[西痴]

윤삼숙의 야생화 이야기-

나도풍란(난초과)

나도풍란은 바람이 잘 통하고 습도가 비교적 높은 곳에서 자라는 난초로서 소엽풍란이라 불리는 풍란보다 잎이 크고 넓어서 대엽풍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식물에서 ‘나도’라는 접두어는 분류군이 다르지만 비슷하게 생긴 것에 붙는다. 나도풍란도 풍란과는 다른 속으로 분류되지만 비슷한 생김새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상록수림이나 침엽수림의 나무나 바위에 착생하는데, 다소 두껍고 둥근 타원형의 잎 2~6장이 2줄로 나며, 7~8월에 잎겨드랑이에서 나온 꽃자루에 연하게 붉은 색 무늬가 있는 3~5개의 꽃이 모여 핀다.
나도풍란은 난대나 아열대 지역에 분포하는 동아시아 특산식물이다. 우리나라에는 전라남도 섬이나 제주도에서 자생했었으나 멸종에 이르러 지금은 자생지가 확인되지 않고, 일부 지역에서 복원 된 몇 개체만 자라고 있는 멸종위기1급 식물이다. 우리나라 식물 4000여 종 중에 멸종위기1급으로 지정된 것은 9종인데 나도풍란이 그 중의 하나이다.
아름다운 자태와 향기가 좋아서 많은 사랑을 받는 까닭에 난을 좋아하고 잘 키우는 애호가라면 목부작이나 석부작으로 한두 점은 가지고 있는 난초 중의 하나가 나도풍란이다. 요즈음 식물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물 빠짐이 좋고 적당한 습도와 바람, 햇빛이 있으면 번식이 잘 되어 어렵지 않게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생지에서 사라져 간다는 점이다. 생육 환경의 악화도 문제이지만 눈에 띄기가 무섭게 뜯어가는 도채꾼들의 형태이다.
6월 말 경 제주도 탐사 때 꽃봉오리가 맺혀 있는 나도풍란을 보고서 열흘 뒤면 필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돌아왔었다. 복원된 것이긴 해도 야생 상태로 자라는 것을 보지 못해서 열흘 남짓 지난 뒤 다시 제주도로 달려갔다. 장맛비가 멈춘 제주도에도 폭염 주의보가 내렸으니 무더위에 꽃들이 남아 있을까하는 불안감을 앞세우고.
나도풍란이 붙어 사는 나무들은 녹음이 짙어지고 나뭇잎들이 해를 가리고 있는데 간간이 잎 사이로 비춰 드는 햇빛이 마침 나도풍란에 머문다. 그 빛을 받은 꽃들의 싱싱한 자태가 보인다. 오후가 되면 짙어 진다는 향기가 숲이 내뿜는 향에 실려 함께 전해지는 듯하다. 며칠의 비에 꽃들이 생기를 찾았는지 싱그럽게 빛난다. 높은 데 있어서 육안으로는 안 보이는 꽃 속을 렌즈로 들여다보니 환히 웃으면서도 수줍어하는 처녀의 볼처럼 꽃잎이 발그레하다. 갓 피어날 때보다는 붉은 빛이 엷어졌다 해도, 전해지는 향기가 조금 희미해졌다 해도 그게 무슨 흠이랴! 식물원이나 난원에서 잘 키워 놓은 것보다 몇 배는 더 귀하고 귀해 보인다.
나도풍란은 새싹이 나고 6년이 지나야 꽃을 피운다고 한다. ‘인내’라는 꽃말도 이런 특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막 싹을 틔우는 나도풍란의 꽃을 보려면, 사람도 나도풍란이 되어 6년이라는 긴 세월을 인내와 기다림으로 버텨야 할 것이다. 그들이 튼튼히 자리 잡고 잘 자랄 수 있도록 인내심과 기다림으로 지켜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도 나도풍란 꽃처럼 아름다워 보이리라.

촬영:2017년 7월 13일 제주도 서귀포
글/사진: 윤삼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