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1. 7 Soppasisuttaṃ.
143. Ekaṃ samayaṃ bhagavā rājagahe viharati veḷuvane kalandakanivāpe. Atha kho bhagavā bahudevarattiṃ ajjhokāse caṅkamitvā rattiyā paccūsasamayaṃ pāde pakkhāletvā vihāraṃ pavisitvā dakkhiṇena passena sīhaseyyaṃ kappesi, pāde pādaṃ accādhāya sato sampajāno uṭṭhānasaññaṃ manasi karitvā.
Atha kho māro pāpimā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ṃ gāthāya ajjhabhāsi: Kiṃ soppasi kinnu soppasi kimidaṃ soppasi dubbhago1 viya, Suññamagāranti soppasi kimidaṃ soppasi suriye2 uggate.
(Bhagavā:) Yassa jālinī visattikā taṇhā natthi kuhiñci netave, Sabbūpadhīnaṃ3 parikkhayā buddho soppati kiṃ tavettha mārāti.
Atha kho māro pāpimā jānāti maṃ bhagavā, jānāti maṃ sugatoti dukkhī dummano tatthevantaradhāyīti.
| S4:7 잠 경 Suppati-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에서 대나무 숲의 다람쥐 보호구역에 머무셨다. 2. 그때 세존께서는 밤의 대부분을 노지에서 포행을 하시다가 밤이 지나고 새벽이 되었을 때 발을 씻고 승원으로 들어가서 발로써 발을 포개고 마음챙기고 알아차리시면서[正念正知]일어날 시간을 인식하여 마음에 잡도리하신 뒤, 오른쪽 옆구리로 사자처럼 누우셨다. 3. 그러자 마라 빠삐만이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게송으로 말했다. “뭐, 잠을 잔다고? 왜 잠을 자는가? 가엾은 사람461)처럼 지금 잠을 왜 자는가? 빈집이라 여기고 잠을 자는가? 태양이 떠올랐는데도 이렇게 잠을 자는가?”{459} 4. [세존] “그물에 걸리게 하고 달라붙게 하는 갈애가 그에게 없나니 그러므로 어디로도 그를 인도하지 못하도다. 모든 재생의 근거(소유물)완전히 부순 뒤에 부처는 잠자노니, 마라여, 왜 그대가 참견하는가?”462){460} 5. 그러자 마라 빠삐만은 “세존께서는 나늘 알아버리셨구나. 선서께서는 나늘 알아버리셨구나.”라고 하면서 괴로워하고 실망하여 거기서 바로 사라졌다. |
461) ‘가엸은 사람’은 Eel의 dubbhayo 대신에 Be, Ee2의 dubbhago로 읽었다. Eel은 잘못 인쇄된 듯하다. 주석서는 “죽었거나 의식이 없는 것과 같은 자”(SA.i.174)라고 설명하고 있다. 복주서는 “운이 없고 행운이 사라져 버려 죽었거나 의식이 없는 자와 같은 사람”(SAT.i.181)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462) “그물에 걸리게 하고(jālini)’란 [갈애는] 삼계(tayo bhava)의 그물에 걸리게 하는 것이란 뜻이다. ‘달라붙는(visattika)’이란 형색 등의 [대상에] 달라붙게 하고 즐기게 하는 것이란 뜻이다. ‘어디로도(kuhiñci)’는 [삼계의 그 어디로도라는 뜻이다. - SAT] ‘모든 재생의 근거(sabbūpadhi)’란 무더기, 오염원, 업형성, 감각적 욕망들의 가닥으로 구분되는(khandha-kilesa-abhisaṅkhāra-kāmaguṇa-bheda)모든 재생의 근거를 말한다. ‘마라여, 왜 그대가 참견하는가? {kirṅ tavettha, māra)’란, 그대는 이런 나에게 마치 조그만 파리(khuddaka-makkhika)가 뜨거운 죽(uṇha-yāgu)에 내려앉을 수가 없어서 이리저리 윙윙거리는 것처럼 그러고 있는가라는 뜻이다.”(SA.i.17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