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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초원 이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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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스크랩 안동지방의 지명들
푸른초원 추천 0 조회 55 12.10.29 10:5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우리가 살고있는 지역에는 예로부터 전해오는 우리말의 지명들이 있다 이 지명속에는 우리 조상들의 문화가 담겨있고  그 지명에 담겨있는 뜻이 들어있고 유래가 담겨있다  점점 사라져가는 옜 지명들을 바로알고 마음속에 새겨서 간직하는것은   우리 조상님들에대한 자손된 도리가 아닐까 한다.

 

다음은 경상북도 안동지방의 우리말의 옛 지명들이다.

 

북문내리:북문안쪽에 있는마을로을 이르는 말로  내리라는 이름은  안쪽이라는 우리말이다.

 

대밭골:안동시 구 시 장터 에서 북쪽에 있는  지금의 현대예식장터에 있던 마을을 이름인데  대밭골이란 대나무가 많은 마을 이라는 뜻이다.

 

삼맷돌(삼뭇돌):현재 안동보건소앞의 마을이름이다.

 

늠갓·농비·늪갓·늪갓동네 : 이말은 늪가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늪갓 이라 불리우든 지명이 늠갓으로도 불리우게 되어 늠갓 늪갓 늪갓동네로 불리우며  지금은 안동초등학 교가 자리하고 있다.

 

서당골:서당이 있던자리라 붙여진이름으로  현 성소병원 뒷편 언덕에 안동권씨 추밀파(樞密派)의 권영준 선생이 금곡서당을 세우고 후진들을 양성하였다는 데서 유래한 지명.

 

논골

현 안동여중 아래에 있는 골짜기로 광복 전까지는 254평의 천수답(天水沓)이었다고 한다. 1949년 이후 모두 집을 지어 지금은 논이 있었던 흔적은 찾아 볼 수 없으나 그 논이 있었던 관계로 논골이라 불리어 오고 있다.

 

 

삼거리·삼걸

공원마 북쪽에 있는 마을로 세 갈래의 긴 길이 있어 삼거리라 불렀고 현재 안동중학교(安東中學校)의 윗쪽이며 옥동이 발전하고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세 갈래길은 오거리로 변하였다

한절앞

한절 즉 큰 사찰인 법룡사(法龍寺) 앞에 있다고 하여 한절앞이라고 하는데 처음에는 절만 있었으나 그 후에 민가가 생겨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현재 복주여자중학교에서 안동우체국 쪽으로 내려오는 그 일대이다.

 

너븐돌·

마을 안에 넓은 돌이 있었다 하여 너븐돌 또는 광석이라 하였다. 1895년 지방관제(地方官制) 실시에 의하여 부내면 옥리(玉里)에 편입되었다. 그 후 1931년 안동읍제 실시에 따라 법상정(法尙町) 4정목(町目)이 되었다가 1947년 광석동으로 변경하여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이 마을이 광석동의 원마을이다.

 

진담?·진담거리

안동시에서 영주방면과 예천방면으로 가는 국도변 부근에 위치한다. 현재 경안고등학교 사거리 부근이다. 이 마을에 100m가 넘는 긴 담으로 둘러싸인 집이 있었다 하여 진담? 또는 진담거리라 불렀으나 그 집은 없어졌다고 한다.

 

법석골거리·

이 마을은 현재 안동여고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법상사가 있었던 골짜기 입구의 마을이라는 뜻에서 법석골거리라 하였다고 한다.

 

구무탕·개변늪·갱변늪

안동시 사장뚝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은 안흥동의 터로서 넓이가 10마지기 정도가 된다. 모래 천방이 터져서 물이 넘어 늪이 생긴 마을이라 하여 구무탕 또는 개변늪 갱변늪이라고 하였다. 안흥동의 유일한 자연마을이다

 

나무둑·조산

이 마을에 천리천이라는 하천이 흐르고 있으며 이 하천의 둑에 회나무가 3그루 있었는데 수백 년 묵은 고목이었으나 한국전쟁 당시 폭격으로 없어졌다. 회나무를 심었던 곳이라 하여 조산, 나무둑이라 한다.

 

사장터·사장뚝·사장

구한말(舊韓末)시대 관가에서 관리들이 궁술(弓術)을 연마하는 넓은 늪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 제방을 막았기에 사장뚝 혹은 사장이라 말한다 .

지변·지변동

늪갓의 남동쪽에 위치한 마을로서 연못의 변두리에 자리잡은 마을이라 하여 지변동이라는 명 칭이 붙여졌다고 한다. 또 땅의 모습이 자꾸 변한다는 뜻에서 지변이라고도 하며 연못에서 때 로는 들이 끊어 올라 변경(變更)을 많이 시켰다고 하여 붙인 것이라고도 한다. 이 마을을 중심 으로 안동의 동채싸움이 많이 시행되었다고 한다.

 

새마·신촌

공원마 남쪽에 있는 마을로 광복 후에 새로 형성한 마을이라 하여 새마로 불리게 되었다. 지금은 주택이 많이 들어서고 주공아파트가 있어서 주민들의 수가 많으며 이로 인하여 조그만 장터가 형성되었다.

 

불미골·총골

원동 서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대장간을 설치하였던 곳이라 하여 불미골이라 불렀다가 일제강점기 때 사격장이 있어서 총골이라고 다시 불리게 되었다.

 

임방앗골

총골 북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큰 바위가 있고 임씨(林氏)가 방아를 놓았다고 하여 임방앗골이 되었다고 한다.

 

말구리

삼거리에서 예천방면으로 약 500m정도 떨어진 지점에 고개가 있는데 이 고개를 말구리재라 한다. 지금은 서쪽에 성창아파트와 안동공업고등학교가 있다.

 

어개골·어가동

공원마 남서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 어장자(魚長者)가 살았다 하여 어개골이라 불리어지고 있으며 남쪽 둑 너머로 낙동강이 흐르고 뒤쪽은 태화동 기슭으로 따뜻한 양지(陽地)마을이다. 현재 이 마을에 안동생명과학고등학교가 있다.

 

어벽제골·어벅적골

이 마을에 어복사란 절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지비서리·제비서리

말구리재 부근에 있었으며 옛날에는 도적이 자주 출몰하여 행인을 괴롭혀 이 곳을 지나가기를 두려워했다고 한다.

 

치이골·쳉이골·치곡·냉천·화장실곡

마을의 모습이 꿩처럼 생겼다고 하여 치곡이라 불렀으며 주로 산골의 전답으로 있었으나 일제 강점기에 화장장(火葬場)을 설치하여 화장실골로 불리기도 했다. 현재 화장장은 딴 곳으로 옮겼 고 깨끗한 주택들이 들어서서 마을을 새로 이루고 있으며 경일고등학교까지 여기에 설립되고 아파트가 들어서서 크게 번성하고 있다.

출처 : [기타] 안동시 홈페이지 한국정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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