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의한 환경의 변형은 농경 사회가 시작되며 본격화되었다. 터를 잡아 정착하기 시작한 인간은 주변의 숲을 개간하여 농지로 만들기 시작했다.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에 지배당했던 인간이, 이제 자연을 가축처럼 길들여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인류 문명이 발전하고 도시들이 건설되면서 더욱 가속화된다.
인류사 속에서 비규칙적이며 무질서한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었다. 동시에 규칙과 질서의 공간에 익숙해져 버린 도시인에게 야생의 자연 공간은 신비로움과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엄격한 규칙적 구도를 중시하던 프랑스 고전주의 화가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 1594~1665)은, 말년에 다수의 역동적 풍경화를 남겼다. 그중 다음의 풍경화들은 예기치 않은 죽음과 근원적 공포를 일으키는 배경으로 숲을 표현하고 있다.
푸생의 그림 [뱀에 물려 죽은 남자의 풍경(Paysage avec un homme tué par un serpent), 1684]에서는 공포에 질린 채 도망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그들은 비교적 밝은 색채의 오른쪽 공간에 위치하고 있다. 그들의 시선은 그림 왼쪽 하단의 어두운 곳을 향하고 있다. 그늘진 공간 가운데 희미하게 빛나는 형상이 보인다. 즉각적으로 식별하기 어려우나 자세히 보면, 거대한 뱀에 휘감긴 채로 죽어 있는 남자의 사체임을 알 수 있다. 어둡고 축축해 보이는 땅바닥 위에 홀로 누워 있는 시체의 모습은, 숲에서 길을 잃은 사람이 맞닥뜨릴 미래를 보여주는 듯하다.
푸생의 다른 그림을 보자.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Paysage avec Orphée et Eurydice), 1650~1653]에서는 오른쪽 아래의 장면이 먼저 눈에 띈다. 햇볕 가득한 양지에 앉아 연주하고 있는 사람은 오르페우스이다. 그의 주변에는 여러 사람들이 둘러앉아 아름다운 음악을 감상하고 있다. 그러나 평화로운 순간은 위태롭다. 그들 가운데 일부가 갑작스럽게 공포에 질려 있으며, 과장된 동작들을 통해 무언가 심상치 않은 사건이 발생했음을 드러낸다. 그림 왼쪽의 음지 쪽에서는 오르페우스의 사랑하는 아내인 에우리디케가 독사에 물리고 만다. 사랑하는 여인의 죽음을 모른 채 음악에 심취해 있는 남편의 모습이 그림의 장면을 더욱 비극적으로 만든다.
밝고 평화로운 장면과 어둡고 위태로운 장면의 대조는 푸생의 또 다른 그림 [피라무스와 티스베가 있는 비바람 부는 풍경(Paysage orageux avec Pyrame et Thisbé), 1651]에서도 나타난다. 그림 오른쪽 하단에 울면서 달려가고 있는 하늘색 옷의 처녀, 티스베가 먼저 눈에 띈다. 그녀는 왼쪽에 있는 푸른 빛의 시체를 향하여 소리치고 있다. 사랑의 도피를 약속했던 피라무스의 사체였던 것이다. 숲에서 티스베의 찢어진 옷을 발견하였던 피라무스는, 사랑하는 여인이 사자에게 잡아먹힌 것으로 착각해 성급하게 자살해 버렸다. 비통에 빠진 티스베 역시 그의 뒤를 따르려 하고 있다. 그림의 중앙에는 아직 사자가 날뛰고 있으며 사람들은 도망치고 있다. 번개와 비바람을 동반한 하늘은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더하고 있다.
푸생의 풍경화들 속에서, 멀리 원경으로 보이는 마을의 풍경은 전원적이고 평온하다. 마을과 숲은 대조적일 뿐만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동떨어져 있다. 이 그림에서 마을과 숲은 차가운 호수에 의해 분리되어 있다. 마치 요단 강 너머처럼, 숲은 일상과 단절되어 있는 비일상적 공간이다.
숲에서도 즐거움과 유쾌한 경험이 가능하나 영속적이지는 않다. 숲은 한 눈에 파악되지 않는다. 불규칙한 언덕과 바닥의 곡면이 중첩되어 펼쳐지며, 무성한 나무들에 의해 감추어져 있다. 숲은 은밀하다. 눈 앞에 당장 보이지 않더라도 저 너머 깊숙이 무언가가 숨어 있을 것 같다. 어두움 속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은 한순간 치명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에서도 자연은 무질서의 공간으로 인식되곤 했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Piero della Francesca, 1412~1492)의 그림 [솔로몬과 시바 여왕의 만남(Queen of Sheba Meeting with Solomon), 1452~1466]은 상반된 두 종류의 공간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왼쪽 장면은 이교도이며 아직 솔로몬 왕을 만나기 이전인 시바 여왕의 공간이다. 그녀의 배경은 아직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 상태의 대지로 다양한 언덕들이 중첩되어 있다. 오른쪽 공간은 지혜의 왕 솔로몬의 공간이다. 다시 등장하는 시바 여왕이 이제 솔로몬 왕을 영접하고 있다. 솔로몬의 공간은 건축의 내부이다. 규칙적이고 대칭적이며 원근법적인 공간인 것이다. 그림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왼쪽은 잘못된 (불: gauche / 영: left) 공간이며 오른쪽은 올바른 (불: droite / 영: right) 공간이다. 시간이 그렇게 흘러갔듯이, 공간도 왼쪽에서 오른쪽의 유형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세속적인 공간인 자연은 신성한 건축적 질서가 부여될 필요가 있다.
건축적 질서가 부여된 자연의 대표적 사례는 정원이다. 정원은 숲과 유사해 보이나 엄연히 구분된다. 프랑스 파리의 경우에도 녹지들은 숲(bois)과 정원(jardin)으로 나누어진다.
파리의 숲을 대표하는 것은 서쪽의 불로뉴 숲(Bois de Boulogne)과 동쪽의 뱅센느 숲(Bois de Vincennes)이다. 과거의 프랑스 왕들이 사냥터나 군사훈련 장소로 사용하곤 했다. 오늘날 이 숲들은 시민들이 즐겨 이용하는 공원(parc)이나 도심의 정원(jardin)처럼 애용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들의 공식 불어 명칭은 공원이나 정원이 아니라 숲(bois)이다. 인공적으로 창조된 것이 아니기에 공원이나 정원으로 불리는 것은 사실 적절치 않다.
불로뉴 숲과 뱅센느 숲은 숲으로서 자연 상태의 이미지를 최대한 ‘보존’해 왔으며, 인공물이 추가되어 건설되더라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 앞으로도 숲이라는 명칭이 유지되는 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숲들이 파리 시의 경계, 다시 말해 도시 외곽에 위치하고 있다면, 파리의 정원들은 시내에 위치한다. 파리 도심에 있는 튈르리 정원(Jardin des Tuileries)이나 뤽상부르그 정원(Jardin du Luxembourg)이 대표적이다. 정원의 이름은 함께 있던 궁전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정원은 건축에 귀속되어 있으며, 정원의 디자인 또한 건축 계획의 일부분이었다.
논과 밭이 용도와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조성된 것이라면, 정원은 심미적 즐거움을 위하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그러나 인공적으로 조성된 자연이라는 점에서 정원은 논, 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원은 순수한 자연이 아니다. ‘자연 그대로’의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연의 요소들을 ‘전시’한다고 해서 자연은 아니다. 동물들을 전시하는 동물원이 야생의 밀림이 아닌 것과 같이, 정원 또한 숲이 아니다. 자연 요소들을 이용하면서 인위적으로 결합해 새로운 형상을 ‘창조’해 낸다는 점에서, 정원 설계는 건축 설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정원은 구성의 예술이다. 의도적으로 구성되지 않은 자연 상태의 숲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프랑스식 정원(Jardin à la française)은 유럽 대륙의 정원 예술을 대표한다. 보자르 건축 구성처럼, 프랑스식 정원 또한 규칙적이고 대칭적이며 기하학적인 특징을 지닌다. 이러한 전통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정원 예술을 도입하며 시작되었다.
이탈리아 북부의 르네상스 양식 빌라들의 건축에서는 이전의 중세 시대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유형의 정원들이 선보여진다. 빌라 남쪽에는 테라스와 이어지는 수평의 녹색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잔디 바닥의 수평면 위에 다양한 수직 요소들이 배치된다. 식물들의 수종은 조형적 관점에 따라 선택되고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로 재단된다. 나무와 꽃뿐 아니라 그리스 로마 풍의 대리석 조각 예술들, 분수나 연못과 같은 건축적 요소들이 함께 구성된다.
이탈리아 정원 예술은 곧 프랑스로 유입되어 발전을 거듭한다. 프랑스 궁정들이 활발히 건축되면서, 동시에 큰 규모의 정원들이 함께 만들어진다. 규칙성과 대칭성이 여전히 강조되고 있는 가운데, 기하학적 형태가 복잡해지며 더욱 섬세하고 화려한 구성들을 선보인다.
1 피렌체 보볼리 정원(Giardino di Boboli) <출처: Wikimedia Commons> 2 뤽상부르그 정원(Jardin du Luxembourg) <출처: Wikimedia Commons> |
앞서 언급했던 파리의 뤽상부르그 정원의 사례를 보자. 이탈리아 피렌체 메디치 가문 출신으로, 프랑스 왕 앙리 4세(Henri IV, 1553~1610)의 왕비이자 루이 13세(Louis XIII)의 어머니였던 마리 드 메디치(Marie de Médici, 1575~1642)는 1612년 뤽상부르그 궁을 개조하고 정원을 건설할 것을 지시한다. 어린 시절 추억의 공간인 피렌체의 피티 궁전(Palazzo Pitti)이나 보볼리 정원(Giardino di Boboli)과 유사한 공간을 파리에 만들어 내고자 한 것이다. 규칙적이고 대칭적인 이탈리아식 정원은 파리의 도심에서 재현된다.
마리 드 메디치는 많은 예술가들을 초청해 정원을 꾸민다. 특히 뤽상부르그 정원의 대표적 명물인 메디치 연못(Fontaine de Médici)은 이탈리아의 기술자(Thomas Francine)를 직접 초빙하여 건설하게 한 작품이었다. 마리 드 메디치의 지시에 따라 보볼리 정원의 인조 동굴인 부안탈렌티 동굴(Grotta del Buantalenti)을 모방한 건축 조형물로서 원래는 뤽상부르그 동굴(Grotte du Luxembourg), 또는 메디치 동굴(Grotte de Médici)로 불리었다. 19세기 파리의 도시 계획으로 정원의 경계가 바뀔 때, 지금의 자리로 옮겨져 연못으로 개조된다. 운하처럼 긴 사각형의 수공간 주위로 난간과 조각 장식들이 규칙적으로 배치되면서, 메디치 연못은 완벽한 대칭적 구성이자 원근법적 건축 효과를 일으키는 공간이 되었다.
숲의 경계가 불분명하게 열려 있다면, 정원의 경계는 명확하며 폐쇄적이다. 뤽상부르그 공원의 이상화된 자연 공간은 마치 건축의 마당처럼 펜스로 둘러막혀 있다. 내부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문을 통해야만 한다. 외부로부터 철저히 차단됨으로써 완벽한 순수함을 유지할 수 있는 에덴 동산처럼 프랑스식 정원은 닫혀 있는 이상 공간이다.
내부의 구성이 완성될 때, 그 작품의 경계는 명확할 수밖에 없다. 비록 펜스와 같은 칸막이로 막지 않더라도 프랑스식 정원이 외부와 명확히 분리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프랑스식 정원을 대표하는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도 그러하다.
베르사유 정원의 조경가 앙드레 르 노트르(André le Nôtre, 1613~1700)는 프랑스 정원 예술을 대표하던 인물이었다. 일찍이 뤽상부르그 정원의 조경을 관리하던 그는 당시 프랑스 재무장관 니콜라 푸케(Nicolas Fouquet) 소유의 보-르-비콩트 성(Château de Vaux-le-Vicomte, 1658~1661)의 계획에 참여한다. 각각의 전문가들인 건축가 루이 르 보(Louis Le Vau, 1612~1670), 화가이자 장식 예술가인 샤를 르 브룅(Charles Le Brun, 1619~1690)과 함께 작업하면서, 성의 건축과 내부 장식, 정원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고유한 작품으로 통합시킨다. 정원은 나무와 꽃을 키우던 기술의 결과에서, 모든 화단을 디자인하고 관람의 동선과 효과를 조율하는 건축적 예술 작품으로 승화된다.
보-르-비콩트 정원의 중심축에는 중앙 산책로가 만들어지며 그 주변으로 대칭적인 화단들이 구성된다. 정원은 독립적인 화단들의 연속이다. 마치 보-르-비콩트 건축 평면이 중앙의 동선축을 중심으로 대칭적인 방들의 연속으로 구성되는 것과 흡사하다. 화단들의 내부는 각기 독립적으로 선별된 꽃들과 나무들의 기하학적 배치로 꾸며진다. 이는 건축에서 개별 방의 내부를 독립적으로 장식하는 것과 유사하다.
정원 내부의 나무들 형태는 모두 다듬어져 있다. 삼각뿔 형태의 나무는 정원 바깥의 숲 속 나무들의 불규칙한 형태와는 극명하게 대조된다. 야생의 숲이 불규칙한 나무들로 이루어진다면, 정원은 표준화되어 있는 형태의 나무들로 구성된다. 이 또한 건축적 구성을 연상시킨다. 불규칙한 숲의 바닥과는 달리 정원 내부의 바닥은 건축 바닥처럼 완벽한 수평면을 지향한다. 정원의 바닥들이 높이가 다를 때도, 그 수직적 연결은 계단을 통해 이루어진다. 정원의 구성과 건축의 구성은 상통한다.
보-르-비콩트의 예술가들은 태양왕 루이 14세(Louis XIV, 1638~1715)의 요구에 따라 베르사유 궁전(Châteaux de Versailles, 1664~1710)의 건축과 정원을 재디자인하게 된다. 이제 정원에서 대칭성과 규칙성은 절대적인 가치가 되었다. 궁전 진입 방향의 중심축을 따라 엄청난 규모의 정원이 조성된다. 베르사유 정원은 자연의 스케일에 다가선다. 거대한 크기의 십자형 인공 운하가 만들어졌으며, 곳곳에 연못들과 화려한 분수 장치, 다양한 건축 파빌리온들과 기묘한 장식의 화단들이 배치되었다.
절대왕권의 질서와 통제가 온 땅에 드리우듯, 베르사유 정원은 규칙적이고 대칭적이며 광활한 인공 자연의 구성이 공간을 지배한다. 르네상스의 건축적 이상이 불규칙한 중세 도시 가운데 규칙적인 공간으로서의 광장을 이식해 냈듯이, 베르사유 정원은 무질서한 숲의 자연 상태를 걷어내고 이상화된 자연 공간을 표상하는 카펫을 덧씌웠다. 베르사유 정원의 이상은 건축과 통합될 뿐 아니라 도시로 확장된다. 규칙적 정원은 중심축을 따라 규칙적 궁전을 관통하여 베르사유의 규칙적 시가지로 연결된다.
1 베르사유 궁전(Château de Versailles), 1664-1670, 평면(1746) <출처: Wikimedia Commons> 2 베르사유 궁전(Château de Versailles), 1664-1670, 베르사유 시가지 방향의 전경 <출처: (CC BY-SA) ToucanWings@Wikimedia Common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