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평작
언덕 위 하얀 타일 집
“집도, 깜깜한 얼굴도 모두 사라지고 나니 작은 이야기들이 원래의 자리에서 가만히 떠오른다"
이 문장이 좋았다. 실체는 사라졌지만 그래서 비로소 시작되는 이야기가 있겠구나, 슬프면서 소중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에게도 그렇게 찾아오는 이야기가 있을까, 문득 생각해보았다.
전체적으로 몽타주 샷을 보는 거 같았다. 스윽 풍경들이 지나갔고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어야 할 거 같았다. 가만히 떠오르는 ‘작은’ 이야기들이 궁금해진다. 그 작은 이야기들과 현재를 섞어 풀어내주면 좋겠다.
2. 불꽃놀이
“대화와 통화를 섞어서 하기가 일쑤였다"
“그렇게 불안에 잠겨가다 보면 어느 순간 함께 갈 수 없는 이유를 필사적으로 찾았고 그것에 의지해 산에서 내려왔다. 내가 몇 번을 도망치는 동안 그는 몇 번 더 산에 올랐다.”
이런 표현들이 좋았다.
나와 전혀 다른 성향의 인물을 등장시키고 나의 트라우마가 된 어린시절 사건을 서술하면서 현재의 나와 대비시켰다. 보통의 사람들 모습이 이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안전한 곳만 디디며 살고 있고, ‘그'를 오히려 무모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실은 ‘그’를 부러워하는, 또다른 시선이 있다고 말하는 거 같다.
* <클라라와 태양> 1부
“어쩌면 창문 셔터를 내린 뒤에 천장 조명이 바닥에 던지는 그림자 같은 것이었을 수도 있지만.”
“가끔, 이런 특별한 순간에 사람은 행복과 아픔을 동시에 느껴.”
클라라는 잘 보려고 한다. 받아들이려고 한다. 숨겨진 어떤 기미와 기색을 알아챈다. 분노가 분노만이 아니고 행복이 행복만이 아니고 다정함이 다정함만이 아닌, 복잡한 감정들을 들여다볼 줄 안다.
들여다보고 받아들이는 클라라여서 아무것도 아닐 한 소녀와의 약속을 믿었나보다. 선택 받는 운명이지만, 이런 믿음이 클라라도 선택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만들어주었다. 두려움, 절망이라는 입력값은 없는 듯한 클라라의 사랑, 그 고고함에 감동을 느꼈다.
*<복수의 여신>
“넌 나의 복수의 여신이야.”
이 말이 넌 나의 여신이야. 라고 읽혔고 가슴이 떨렸다. 아이들의 귀여운 불장난쯤으로 가볍게 읽다가 심쿵했다. 누군가를 함부로 미워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이 책에 나온 한편 한편이 다 재밌었다. 어떤 것도 가르치려 하지 않는 이야기들에 쾌감을 느꼈다. <일분에 한번씩 엄마를 기다린다>는 그저 아팠다. 희망을 넣지 않아서 고마웠다. 어떤 아픔은 고스란히 아파해야 할 거 같다. 좋은 책을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