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9일 (화)
촬영.
지하철 분당선 가천대역에서 내려 2번 출구로 나가,
성남병원 삼거리에서 성남서초등학교가 있는
태평로로 좌회전해 걸으면
언덕배기 길을 만나게 됩니다.
성남서초등학교에서 올라온 길을 돌아 본
모습입니다.
경사가 심하네요.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거리가 짧으니까요. 약15분 정도 걸으면 왼편에
이런 모습의 봉국사란 절이 보입니다. 걷기가
싫다면 가천대역 3번출구에서 77번 버스를 타고 와도 됩니다.
봉국사는 1028년에 창건한 천년 고찰이라고 하지만 보다시피 일주문 앞에 서서 절을 바라보면 일주문부터
보이는 모든 전각들이 새로 건축된 건물들이어서
천년 고찰이란 느낌이 들지는 않습니다.
시멘트 콘크리트로 만든 일주문에는
영장산봉국사라는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일주문 뒤는 바로 주차장이네요.
일주문을 통과했지만 앞은 거대한 축대로 막혀
옆길로 나와 경내로 올라 갔습니다.
위에 있는 대광명전 앞 마당입니다. 보이는
건물은 종각입니다.
종각에서 본 봉국사
전경.
3층 석탑뒤로 봉국사에서 제일 오래된 전각인
대명광전이 있습니다. 양 옆의 건물은 염화실과 삼성각입니다.
대광명전의 모습입니다.
봉국사 3층 석탑은 불국사 석가탑(무영탑)을
원형으로 하여 만들었다고 하네요.
대광명전의 좌측에 있는 염화실은 큰스님을 모신
전각으로 문이 잠겨 있네요.
큰스님이 오실 때만 문을 연다고
합니다.
대광명전 우측에 있는
삼성각입니다.
대광명전 앞마당 모습이고요. 석등 뒤의 신축
건물은 누각입니다.
동백꽃이 피어 있는 대광명전 앞 좌우에는 사자를
닮은 서수 한쌍이 있습니다.
봉국사 대광명전, 奉國寺 大光明殿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1호.
봉국사는 고려 현종 19년(1023)에 창건되었으며, 조선 시대에 현종이 요절한 명선, 명혜 공주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현종 15년(1674)에 승려 축존에게 의뢰하여 중창된 절입니다.
6,25전쟁으로 절이 많이 훼손되었으나 1958년 승려 법운이 대명광전 등을 중수하였으며,
대명광전은 1974년에 해체, 수리되었습니다.
봉국사 대명광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집인데 몸체에 비하여 지붕이 커서 웅장합니다.
원래 지붕은 측면의 공포 배열과 귀공포 형태로 미루어 팔작지붕이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본래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모시는 법당이지만
이 불전에는 아미타불을 주존불로 모셨으며 좌우에는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을 모셨습니다.
기단 좌우에는 사자를 닮은 돌짐승상이 있어 특이합니다.
기둥 위에만 공포가 있으며 공포를 구성하는 부재인 살마의 쇠서, 연봉과 봉황 조각 등 세부조각과 건물의
구조는 조선 후기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안내문 내용-
좌측의
서수는 자유로운데 반해
우측의
서수는 목에 방울을 달아 놓았습니다.
대광명전의 측간 문의
꽃살문과
정간 문의 꽃살문 문양이 같지 않네요.
대광명전의 내부 모습입니다. 대광명전은 닫집을
위시한 부재들이 오래됐다는 느낌이 전해집니다.
성남 봉국사 아미타불회도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10호.
성남 봉국사 아미타불회도는 현재 주 불전인 대광명전의 후불도로 걸려 있습니다.
그림 하단의 기록에따라 이 그림은 조선 고종 10년(1873)에 삼각산 흥천사에서 제작하여 영장산 봉국사에
모셔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크기는 가로 216.5cm, 세로는 175cm이며 가장자리는 흰색과 청색으로 꾸몄습니다.
불화의 중앙에는 설법인을 취한 아미타불이 있으며 좌우로 보살 6위가 있습니다. 아미타불의 광배 뒤로는
가섭과 아난존자, 그 옆으로는 10대 제자로 추정되는 인물들이 있으며 상단 및 하단에는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 사천왕, 야차와 건달바 등이 있습니다.
이 불화는 화승 덕운긍윤이 책임을 맡아 제작하였으며, 제작에 시주한 사람은 왕실의 상궁입니다.
이 작품은 화면 구성이 안정되고 존상의 세부적인 묘사가 정교합니다. 강렬하고 짙은 파란색과 황토색을
사용하고, 얼굴 표현을 타원형으로
한데서 19세기 경기 지역 불화의 특징이 잘 드러납니다. -안내문-
대광명전에는 주불인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측엔 지장보살 우측엔 관음보살이 모셔져
있습니다.
성남 봉국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09호.
성남 봉국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봉국사 대광명전의 주존불이며, 그 높이가 112cm인 중,대형 불상으로
결가부좌하고 통인을 취했습니다. 머리털은 소라 껍데기처럼 틀어 말린 모양이며,
정수리에는 경계가 불분명한 육계가 있습니다.
이마 위에는 반원형의 중앙계주가, 정수리 부위에는 낮은 원기둥 모양의 정상 계주가 장식되어 있습니다.
불상의 대의 안쪽에 천 한 장을 더 둘러 이중 착의를 하고 있으며, 오른쪽 어깨의 옷자락이 가슴까지
수직으로 늘어져 옆으로 펼쳐저 있습니다. 또한 나머지 대의 자락은 팔꿈치와 배를 지나 왼쪽 어깨로 넘어가
있고, 하반신을덮은 대의 자락은 복부에서 수직으로 늘어져 있으며 끝부분은 역삼각형 모양입니다.
불상의 양식적인 특징으로 볼 때 17세기 전반에 활동한 조각승 수연이나 그 계보를 잇는 조각승이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이 불상은 임진왜란 직후의 불상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안내문-
알림.
이 탑에는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습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하여 주십시요. -봉국사 합장-
(1977년 태국으로부터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셔와
봉안하였음)
이 곳에서 뜻밖에 예불을 마치고 나오던 친절하신
보살님을 만나 봉국사 안내도 받고 공양까지 받았습니다.
관음전도 소개 받고.
관음보살.
새로 건립한 누각 아래층의 대 법당 내부도 소개
받았습니다..
아직 편액도 걸지 않은 법당은 상당히 화려 했습니다.
주불인 아미타불과 화려한 닫집의 모습입니다.
아미타불과 후불 탱화.
좌측의 대세지보살과 후불
탱화입니다.
우측의 관음보살과 화려한
닫집입니다.
관음보살과
후불탱화고요.
향로도 참
화려합니다.
공양간입니다.
이 곳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정말로 맛있는 점심을 먹었습니다.
맛있게 먹고 설겆이를 하고
나와
경내를 다시 한번 찬찬히 돌아
봤네요.
맞배지붕에
주심포 양식으로 지은 대광명전도
다시 돌아 봤죠.
아름다운 꽃 문양의
창살과
출목이 하나여서 이익공식으로
보이는 공포도요.
관음전 외벽에 걸려 있는 대형
목탁.
승탑들이 있는 절 뒤편도 가
봤습니다.
이 곳에 춘성대종사의 승탑과
탑비(1981년에 세움)도 있습니다.
승탑도
화려합니다.
이제 봉국사를 나와
바로 뒤에 있는 영장공원으로
들어 갑니다.
영장공원으로 오르며 본
봉국사입니다.
영장공원으로 가는 길엔 벚꽃이
한창이네요.
영장공원의
벚꽃.
영장공원에 있는 망경암으로 가는
길입니다.
망경암
입구입니다.
망경암
전경.
망경암에선 롯데타워까지 잘
보이네요.
가천대학과 롯데타워입니다.
날씨가 흐려 선명하지가 않네요.
망경암
대웅전입니다.
망경암이 오래된 암자라는 건 탑
옆 절벽 바위에 새겨진 불상과 명문이 증명합니다.
망경암 마애여래좌상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2호.
망경암 마애여래좌상은 자연 암벽에 높이 1.2m, 너비 0.75m의장방형의 감실을 만들고 그 안에 불좌상을
새긴 것입니다. 그리고 주위에는 군데군데 암석 면을 다듬어 14군데에 명문을 새겨 놓았습니다.
그 중에 고종 광무 원년(1897)에 이규승이 관음상을 새기고 불사를 일으켰다는 글귀가 있어 이 작품은
1897년에 제작된 제작된 관음상으로 보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상 자체의 형식이
관음이 아닌 불상의 특징을 가지고 있어 이 불좌상이 그 명문에 해당하는 작품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또한 이곳은 고려 말 조선 초에 임금이 친히 방문하여 나라와 백성의 안녕과 수복을 빌었던 곳입니다.
그리고 세조대에는 평원대군과 제안대군의 명복을 빌기위하여 칠성단을 만들고 칠성제를 지냈다 하여
지금도 이곳을 칠성대로 부릅니다.
이와 같은 이곳의 배경은 이 마애불좌상의 대강의 제작 시기를 가늠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현재 불상의 표면은 정돈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각법(새김 법)도 거칠어 세부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소발(素髮)의 머리에 육계가 분명치 않고 얼굴은 넓적하고 평면적이지만 이목구비는 분명하게 드러나 있고,
귀는 길어 어깨에 닿을 듯하고 통견(어깨에 걸침)의 법의는 두터워 신체의 굴곡이 거의 드러나지 않습니다.
왼손은 손바닥을 안쪽으로 향하게 하여 가슴에 대고 있고,
오른손은 마치 항마촉지인과 같은 모습으로 결가부좌한 오른쪽 발목 위에 올려 놓고 있습니다.
양 어깨와 길상좌(왼발을 오른쪽 넓적다리 위에 놓은 다음 오른 발을 왼쪽 넓적다리 위에놓은 자세)로
결가부좌한 양 무릎은 양감 있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은 각법이 치졸하고 각 부분의 표현이 정제되어 있지 않은 조선시대의 불좌상입니다.
하지만 주변에 새겨져 있는 명문들과 고려 말 이후 신앙 도량으로 지속되어 온 칠성대와 관련하여 주목한 만
하다고 하네요. -다음백과-
14군데에 새겨 놓은 명문 중의 일부입니다.
미륵불.
망경암 칠성대
중수비.
대웅전과
내부
모습.
삼성각입니다.
내부
모습이고요.
대웅전의 후면.
미륵대불.
위험한 곳까지 올라 가지치기를
하는 스님.
망경암의
풍경.
내려 오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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