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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눈물은 닦아 주는 평화의 어머니 (독생녀 한학자 천지인 참부모님의 자서전)
9장 하나님 나라는 우리 가운데에 있습니다
가장 으뜸 되는 가르침은 무엇일까요
우리에게는 많은 가르침이 있습니다. 가정에서 어머니 아버지의 밥상머리 가르침이 있고, 학교에서 선생님의 따끔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사물의 이치를 규명하는 과학이 있고,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경제학도 있습니다. 또 사회에 나가면 선배들이 올바른 직장생활의 자세를 가르쳐 줍니다. 그 가르침들은 모두 중요하며 삶을 더 밝고 지혜롭게 해줍니다. 지식과 지혜는 우리가 언제까지나 추구해야 할 소중한 가치입니다.
그러한 모든 가르침 중에서 가장 으뜸 되는 가르침은 무엇일까요?
바로 종교입니다. 종교라는 단어는 '마루 종(宗)'과 '가르칠 교(敎)'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곧 종교는 모든 교육과 진리 중에서 가장 으뜸 되는 가르침입니다. 공자, 석가, 예수, 무함마드를 비롯한 여러 종교 창도자들의 교리는 시대를 뛰어넘어 인간의 양심을 지켜 주고 문명을 이끌어 온 원동력이었습니다. 따라서 모든 종교는 죄악의 세계를 청산하고 신과 인간이 바라는 이상세계를 만드는 삶의 동반자입니다.
오늘날 이기주의가 보편화되어 버린 것은 가슴 아픈 현실입니다.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기술이 발전하는 것에 비해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소외되고, 자신의 나라와 사회, 심지어는 가정에 대해서도 책임감을 갖지 않습니다. 이혼율이 날로 증가하는 것은 부부가 서로 결혼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부모는 아들딸에게 합당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고, 아들딸은 부모를 저버리고 오로지 자신의 욕망이나 욕심만 챙기려 합니다. 자녀로 지은 인간이 이러할진대 하나님은 얼마나 가슴이 아프시겠습니까?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많은 종교가 있었습니다. 과연 그 종교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었을까요? 모든 종교는 먼저 신에 대해 올바로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신의 존재를 알리는 일도 중요하지만, 우리 인류와의 관계를 밝혀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떠한 분으로 계시는가, 하나님의 사랑은 어떠한가를 하나하나 가르쳐 주는 종교가 참된 종교입니다.
나는 5대양 6대주, 수백 수천 킬로미터 땅끝까지 말씀을 전하기 위해 혼신을 다했습니다. 가는 곳마다 하나님이 준비한 의인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힘든 여건 가운데서도 의인을 찾아오셨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는 음란과 패륜의 도시였습니다. 하나님은 의인 50명만 있어도 멸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점차 수를 낮춰 10명을 하늘에 고했습니다. 결국 단 한 사람의 의인도 찾지 못해 소돔과 고모라는 화산 폭발로 표상되는 화염 속에 내던져졌습니다. 오직 롯과 그의 가정만 살아남았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가는 세계 도처마다 많은 의인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국가와 민족을 초월해 어디를 가나 의인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식구들에게도 하늘이 예비한 의인을 찾으라고 말합니다.
2018년 나는 흑백 갈등으로 처절한 아픔을 겪은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갔습니다. 그곳은 10여 년 전 나의 입국을 불허한 나라였지만, 이제는 온 나라가 나서서 나를 뜨겁게 맞아 주었습니다. 그 아픔의 땅에서 아프리카 서밋과 6천쌍 축복결혼식을 주재했습니다. 아프리카 서밋에는 전 세계 60여 나라에서 1천여 명의 대표가 참석해 내가 제안한 아프리카 평화 정착과 보다 잘살기 위한 방안을 추진하기로 결의했습니다.
넬슨 만델라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그가 남긴 민주주의 유산을 마음에 되새기는 의미도 있었습니다. 넬슨 만델라의 장손 격인 만들라 만델라 남아공 국회의원은 나를 증언하는 진솔한 연설로 청중들의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한학자 총재님은 나의 할아버지와 같이 이 시대 평화의 아이콘입니다. 신(神)아프리카 프로젝트로 새로운 희망과 비전을 주신 한학자 총재님과 함께 만델라 대통령의 유업을 잇는 아프리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축복결혼식에는 20여 나라에서 6천여 쌍이 참석해 참어머니를 구원의 독생녀로 받아들였습니다.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처럼 남아공화국과 짐바브웨, 세네갈 그리고 아시아의 네팔은 비록 가난하고 굴곡이 많은 아픔의 역사를 겪었지만 독생녀를 믿음으로써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한국을 찬양하는 아름다운 시를 썼습니다. 그 시절 한국은 일제 식민 치하에서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으며, 세계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타고르는 "코리아, 그 등불 다시 켜지는 날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라고 예언했습니다. 빛은 참말씀입니다. 새로운 진리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한국에서 참다운 말씀이 출현해 인류의 등불이 되고 세계를 밝혀 줄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나는 지금 그 진리의 등불인 원리와 새말씀을 온 세계에 밝히고자 동분서주하고 있습니다. 이제 밭을 갈았으니 씨앗을 뿌리고 더 깊이 뿌리를 내리는 일이 남아 있습니다. 그 소중한 일에 우리 모두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온 인류는 지금 참부모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참부모의 사랑과 생명과 혈통을 이어받은 참된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진정한 행복과 영생의 문이 열립니다.
참사랑은 '자기가 없는 사람'입니다
남편은 나를 가리켜 '자기가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옷장이 텅 빌 정도로 나누어 준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어떤 것이든 애지중지하며 챙겨 쌓아 두는 것을 싫어합니다. 우리와 뜻을 함께하며 밤낮 없이 고생하는 식구들을 보면 항상 안쓰러운 마음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청파동 교회에서도 한남동 공관에서도, 지금의 청평에서도 선교사나 손님이 찾아오면 옷장을 열어 옷과 구두를 내어 줍니다. 생전에 남편의 옷이나 넥타이도 그렇게 다 새 주인을 찾아갔습니다. 수고하는 식구들을 볼 때마다 작은 것이라도 주어 보내야 마음이 편했습니다. 아프리카나 남미의 가난한 동네에 가면 아무리 바빠도 고아원이나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가려 애썼습니다. 일정이 너무 촉박해 들를 수 없으면 국제구호친선재단과 봉사단체를 통해 지원했습니다. 특히 장학금을 많이 주도록 했습니다. 누구라도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으면 그대로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온 진정한 사랑이었습니다.
"생명이 먼저일까요, 사랑이 먼저일까요?"
이렇게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명이 먼저라고 대답합니다.
"생명이 있어야 사랑도 하니까요."
그러나 사랑이 먼저입니다. 모든 존재의 출발점은 생명입니다. 그런데 그 생명이라는 것은 사랑에서 잉태되었습니다. 그래서 생명보다 사랑이 더 먼저입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부모에게서 나왔습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버릴지 언정 사랑을 버려서는 안 됩니다.
인간은 사랑에서 태어났고, 사랑의 길을 가야 하고, 사랑을 위해서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순간적인 사랑, 조건을 따지는 사랑을 탐닉해서는 안 됩니다. 영원하고 순수한 사랑을 지녀야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사랑은 절대적 사랑이며 참사랑입니다. 참사랑은 '위하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참된 사랑은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남을 섬기는 사랑입니다.
또한 참사랑은 끊임없이 용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십자가상에서도 자신을 창검으로 찌르는 로마 병정들을 향해 "저들이 알지 못하여 그리하오니 저들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간구했습니다.
문 총재 역시 일제강점기에 경기도 경찰부에서 자신을 혹독하게 고문했던 일본인 형사의 생명을 구해 주었습니다. 1945년 광복이 되자 미처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숨어 있다 한국인에게 붙잡혀 처형될 처지였습니다. 생명이 경각에 달려 있는 구마다 하라 형사를 한밤중에 밀선에 태워 도피시켰습니다. 원수나 다름없는 자를 용서하고 피신시키는 일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미 마음으로부터 모든 것을 용서하고 원수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모습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고는 쉽게 행할 수 없는 일입니다. 원수를 원수라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위해 기도하면서 용서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자기가 없는 삶을 살 때만이 가능합니다.
악은 자신의 이익을 얻으려 하는 것이고 선은 주고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참사랑은 주고도 잊어버릴 때 번성합니다. 사랑은 주면 줄수록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샘솟아 더욱 풍성해집니다.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과 같아서, 해도해도 끝이 없습니다. 사랑의 길은 진정 좋은 것을 주고도 부족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주고 그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것을 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것이 참된 사랑입니다.
사랑은 원과 같이 돌고 돕니다. 끝이 나지 않습니다. 끝을 느끼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참된 사랑은 영원하면서 또한 변치 않습니다. 시대가 아무리 변하고 환경이 바뀌어도 참사랑은 그대로입니다. 참사랑은 누구나 다 원합니다. 천년만년이 지나도 참사랑은 싫다 하지 않습니다. 참사랑은 영원하기 때문에 봄에도 그 사랑, 여름에도 그 사랑, 가을에도 그 사랑, 겨울에도 그 사랑입니다. 소년일 때도 그 사랑, 어른이 되어서도 그 사랑, 늙어서도 그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영원히 꽃을 피우고 싶어 합니다. 사랑은 남자와 여자를 하나 되게 하는 힘입니다. 서로가 완전히 사랑한다는 것은 그가 내 안에 있고 내가 그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찾는 것 중에서 제일 귀한 것이 사랑입니다. 인간은 귀한 물건, 귀한 사람, 귀한 사랑을 찾아 살아갑니다. 참사랑을 지니면 모든 슬픔과 고통도 기쁨으로 승화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한 번 주면 없어집니다. 그렇지만 사랑은 주면 줄수록 더 많이 돌아옵니다. 사랑을 받겠다는 마음이 사랑을 주겠다는 마음으로 바뀌면 평화세계가 찾아옵니다.
하늘 대한 효정, 세상의 빛으로
나는 강원도 평창의 발왕산에 종종 오릅니다. 해발 1,458미터인 그산의 기슭에 휴양지로 잘 알려진 용평리조트가 있습니다. 오래전 국민 드라마로 인기를 끌었던 <겨울연가>의 멋진 무대이기도 합니다. 산꼭대기에 오르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진귀한 나무가 있습니다. 나는 그 나무를 '마유목'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전혀 다른 두 종류의 나무가 한 몸통이 되어 마치 한 나무처럼 살아갑니다. 수백 년 된 야광나무는 어머니이고, 그 품 안에서 자란 마가나무는 아들입니다. 서로 의지하며 사이 좋게 살아가는 모자나무입니다.
야광나무가 오래되어 속이 텅 비자 그 안에 새가 마가나무 씨앗을 떨어뜨려 마가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새끼나무로 터를 잡았습니다. 야장나무는 마치 아기를 양육하듯 마가나무에게 영양분을 제공하며 품 안에서 점차 키워 나갔습니다. 마가나무는 차츰 자라나 깊이 뿌리를 내리고 마치 어머니를 봉양하듯 야광나무를 보살피며 공생합니다. 허공에는 두 종류의 나무가 각각 꽃과 열매를 맺습니다. 식물에 불과할지라도 아름다운 모자의 사랑과 배려, 깊은 정을 담고 있어 더할 나위 없는 효정의 본보기입니다.
'효정(孝情)’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알 듯하면서도 그 뜻을 정확히 말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효도를 하는 정성이라는 뜻인가요? 아니면 효도의 마음이라는 뜻인가요?"
어떤 사람은 이렇게 묻기도 합니다.
"혹시…… 이 효정이라는 단어가 효정(效情)입니까?"
효정(效情)은 '참된 정을 다한다'는 뜻이므로 과히 잘못된 풀이는 아닙니다. 그러나 내가 처음으로 사용한 효정(孝情)은 그보다 더 깊고 넓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효'는 동양에만 있는 단어입니다. 영어로 굳이 하자면 '필리얼 듀티(filial duty)'입니다. 그러나 '부모에 대한 자식의 의무'라는 의미로, 효의 깊은 뜻이 담기지는 못했습니다. 효를 의무로만 여긴다면 마음에서 진정으로 우러나와 부모를 공경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합니다. 효는 한국의 아름다운 전통이면서 삶의 근간입니다. 이토록 중요하고 가치 있는 효가 차츰 퇴색되어 가는 것은 누군들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효정을 생각하면 나는 늘 가슴속에 큰 슬픔으로 자리 잡고 있는 큰 아들 효진이와 둘째아들 흥진이가 떠오릅니다.
흥진이가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났습니다. 냉전이 치열했던 시기에 아버지를 지키기 위해 어린 나이임에도 용감하게 앞장섰던 아들이었습니다. 우리 부부가 전국을 돌며 승공궐기대회를 할 때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공산주의 추종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흥진이는 언제나 팔을 걷어붙이며 말했습니다.
'아버지를 내가 지켜 드리겠습니다."
전국승공궐기대회 마지막 날, 광주에서 문 총재가 강연을 하기 위해 연단에 올라가려고 하는데 넥타이에 꽂혀 있던 넥타이핀이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나는 의아했습니다.
“그게 어디로 갔을까? 언제 없어졌지?"
그때 태평양 건너 미국 뉴욕에 있던 흥진이가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했습니다. 문 총재가 광주에서 연단에 올라 강연을 하던 그 시각이었습니다. 흥진이는 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당하는 찰나에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었지만 앞에서 달려오는 대형 트레일러를 피하지 못했습니다. 옆에 앉아 있던 후배를 살리고 자신은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문 총재를 해치려는 불순한 사람들이 청중으로 가장해 광주 대회장에 들어왔습니다. 무대가 있는 앞쪽으로 가려 했으나 입추의 여지없이 들어찬 관중으로 인해 그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사탄은 문 총재를 목표로 했지만 기대가 무너지자 대신 흥진이를 희생제물로 삼았습니다. 흥진이는 "아버지를 내가 지켜 드리겠다"고 한 약속을 희생의 제물이 됨으로써 대신했습니다. 나는 흥진이가 태어날 때 3일 만에 깨어나 걱정을 했는데 '마지막 갈 때는 부모에게 가장 큰 효도를 하고 갔구나' 생각했습니다. 그 깊은 효정을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은 가슴에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큰아들 효진이는 음악을 좋아했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식구들 가운데 음악을 하는 청년이 많은 것은 효진이의 영향도 적지 않습니다. 큰아들답게 어렸을 때부터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효자는 내 거야! "
그러나 엄마를 바라보는 마음은 편치 않았던 듯합니다. 친구들의 엄마에 비해 가진 것이 없고 늘 바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엄마를 위로해 주려고 큰 소리로 장담하곤 했습니다.
"엄마! 내가 자라면 엄마에게 모든 것을다 해주겠어! "
우리 부부가 1970년대 초 미국에서 활동할 때 동양 사람은 어디를 가든 무시당했습니다. 한국인이건 일본인이건 가리지 않고 무조건 '차이니즈'라 불렀습니다. 그 시절에 문 총재는 50개 주를 돌며 순회강연을 했습니다. 우리에게 공감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비웃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효진이는 아버지 어머니를 따라다니며 그 모습을 모두 보았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이 아버지 강연장마다 나타나 위협하는 모습을 보고 열두 살에 불과했음에도 "내가 아버지를 지키기 위해 저들과 싸우겠다.”며 웃옷을 벗었습니다. 그러다가 점차 세상 사람들이 말씀을 받아들이게 하는 데는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회오리바람처럼 몰아서 한꺼번에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바로 이거야! "
무릎을 치며 찾아낸 것이 메탈 음악이었습니다. 음악으로 사람의 마음을 바꿔 교회로 인도해야겠다고 결심하고 3년 동안 1만 곡을 만들어 냈습니다. 작사와 작곡을 스스로 다 했습니다. 하루에 열 곡 가까이 창작한다는 것은 평범한 사람에게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그것을 3년 동안 매일 반복한다는 것은 더욱더 어렵습니다. 효진이는 자신을 돌보지 않고 밤낮 창작에 몰두했습니다. 그 일이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는 효정의 마음이고, 세상을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사명이라 여겼습니다. 그 많은 노래 중에 사람들은 <기적소리>를 가장 좋아했습니다.
"님께서 바라시는 나를 찾아야지. 두근거리는 내 가슴은 님을 위해 뛰어가는 기적소리야."
노래에 감명받은 사람들이 늘어나고 식구들이 늘어나면서 사탄의 질투도 커졌습니다. 효진이는 음악에 몰두해 밤낮으로 작사와 작곡, 노래에 매달렸습니다. 2007년 서울올림픽경기장에서 콘서트를 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콘서트투어를 한 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리고 공연과 연일 계속되는 창작활동으로 인한 과로로 2008년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우리 식구들은 음악으로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했던 그 마음에 늘 감사함을 갖고 있습니다. 효진이의 불꽃같은 음악은 어머니 아버지를 위한 효정이었습니다. 그 효정의 정신을 이어받기 위해, 매년 가을 문 총재를 추모하기 위한 천주성화축제가 열리면 효진이를 기리는 '효정페스티벌'도 함께 열립니다.
부모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하고, 그 길로 용감히 나아가는 사람이 효자입니다. 그런 효자는 섬김의 정신으로 사람들을 대하기에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고, 반드시 뜻을 이룹니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모두 섬기는 '효정'은 그래서 위대합니다.
나는 문 총재 성화 4주년에 효정의 아름다운 씨앗을 세상에 뿌렸습니다. 한국 전통의 시묘정성 기간인 3년이 지난 뒤부터 추모제는 그때까지와는 다르게 열렸습니다. 슬픔을 딛고 새로운 희망과 평화를 열어가는 축제의 장으로 변화했습니다. 2016년 8월, '하늘에 대한 효정 세상의 빛으로'를 주제로 선포한 추모제는 지구촌 곳곳에 사랑의 손길이 폭풍우처럼 퍼져 나간 기쁨의 한마당이었습니다.
참부모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는 한편 다채로운 문화경연도 펼쳐졌습니다. '밥이 사랑이다'를 모토로 '화합통일비빔밥 나눔 대축제'도 열었습니다. 큰 솥에 쌀밥과 맛난 재료를 가득 넣고 비빔밥을 만들어 식구들이 오순도순 나눠 먹었습니다. 커다란 주걱을 들고 내가 직접 밥을 비비면서 세계 인류가 한 식구로 화합하기를 염원했습니다.
4주년 추모제에는 즐거운 공연뿐만 아니라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한 달여 동안 강연과 세미나, 행사가 국내외 여러 곳에서 열려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진중한 시간도 가졌습니다.
남편이 성화하던 날을 나는 지금도 기억합니다. "초창기 교회로 돌아가 신령과 진리로서 교회를 부흥시키겠다”고 한 약속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아내로서 남편을 추앙하는 것과 똑같이 내 가슴에는 효진이와 흥진이의 효정이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그 효정이 사람들에게 전해져 모두가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살고 섬기며 살아간다면 그곳이 진정한 천국이 됩니다.
다른 무엇보다 효는 인간의 가장 큰 실천 덕목이자 삶의 영원한 기둥입니다. 효도는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해야 합니다. 부모님이 떠난 자리에서 아무리 효도한다고 발버둥을 쳐도 이미 때는 지나간 뒤입니다. 이 순간이 얼마나 귀하고 자랑스러운 때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처럼 숭고한 가치가 새롭게 발현된 효정의 빛은 한국에서 출발해 아시아를 넘어 세계를 비추는 찬란한 빛이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시간, 밥이 사랑이다
성혼 직후 남편과 마주했던 첫 수라상이 은빛 억새처럼 아련히 떠오릅니다. 함박눈 같은 큰 눈물이 금방이라도 와락 쏟아질 듯, 남편의 눈 빛은 하나님의 벅찬 심정을 모두 담고 있었습니다.
인류를 위한 참부모의 길을 걸으며 우리 부부는 수많은 밥상을 대했지만 그 목적은 늘 같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효정의 도리를 다하고 인류 구원과 평화세계를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절박했던 3년 개척전도 내내 꽁보리밥만 대했을 때도, 하루에 두 나라 이상을 숨가쁘게 순회하며 물 한 모금으로 겨우 목만 축였을 때도 남편과 나는 아무 염려가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감사였고 기쁨이었습니다.
매년 성탄을 맞아 축복가정에게 '수라상' 나눔 축제를 베풀어 줄 때는 얼마나 기쁘고 즐거웠는지 모릅니다. 축복가정은 참부모님의 시린 눈물 속에 가슴으로 다시 낳은 하늘 혈통의 참자녀입니다. 하늘이 선택한 선민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들을 ''선민 축복가정'이라 부릅니다.
지금은 천상에 계신 남편과 나는 영원토록 이 선민 축복가정을 사랑할 것입니다.무엇보다 뜻을 위해 고군분투한 많은 자녀의 뜨거운 눈물과 땀방울을 한시라도 잊지 않겠습니다.
사실 '수라상'에 대해 나는 많은 아쉬움을 갖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정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밥을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입니다.
2019년 12월, 대륙 복귀 선포의 초석(礎石)이 되는 남아프리카공화국 20만 축복식을 집전하기 위해 요하네스버그에 도착했습니다. 12월7일 FNB주경기장에서 개최될 아프리카 대륙 단위 축복식은, 이제 국가 복귀 선포의 단계를 넘어 대륙 복귀 선포의 놀라운 시대를 여는 역사적인 행사였습니다.
내리는 비를 뚫고 비행기가 공항 활주로에 착륙했습니다. 공항 라운지에 들어서자, 너무도 반가운 사람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서 있었습니다. 아들 하데베 선지자가 환한 미소와 함께 붉은색 꽃다발을 들고 나를 맞이했습니다. 나를 보자 마치 잃었던 어머니를 만난 것처럼 "어머님! 뵙고 싶었습니다. 남아공 어머님 집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인사하며 정성스레 준비한 꽃다발을 건넸습니다.
남아공 전통 복장을 하고 존경과 겸손의 마음을 담아 머리를 숙인 채 환영하는 하데베 선지자와 함께 '하나님 계시교회'의 청년학생들이 나를 마중했습니다. 이어 라운지에서는 한바탕 떠들썩한 환영공연이 펼쳐졌습니다. 청년학생 공연팀은 아카펠라로 "남아공을 축복하시기 위해, 아프리카를 축복하시기 위해 참어머님께서 오늘 오셨습니다"라는 의미의 가사로 멋진 노래와 함께 아주 특별한 공연을 선보였습니다.
"오늘 내가 오자 비가 내렸는데, 남아공과 아프리카에서 비는 아주 귀한 분의 축복이라고 들었습니다"라고 인사를 하자 하데베 선지자는 물론 지도자와 식구들이 큰 환호와 함성을 보내 주었습니다.
이후 나는 하데베와 함께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사실 하데베 선지자는 자신이 영적인 계시를 받거나 심각한 정성을 드릴 때는 항상 그만이 머무는 산에 올라가 있었습니다. 내가 도착한 12월 5일은 그에게 영적으로 매우 중요한 날로, 매년 이맘때면 산에 올라 정성을 드린다고 했습니다.
12월 5일은 남아공은 물론 아프리카 전역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인 넬슨 만델라가 서거한 날이자, 하데베가 만델라 대통령의 서거를 공개적으로 예언해 주위를 놀라게 한 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특별히 어떤 영에 씌인 한 소년이 하늘의 방언으로 남아공을 해방시킬 지도자가 하데베라고 증거하며 몸속에서 사자의 이빨을 뱉어내 그에게 증정한 역사적인 날이라고 합니다. 이 영적 스토리는 남아공에서 마치 전설처럼 전해지는 매우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매년 이날 하데베 선지자는 자신에게 내려진 하늘의 소명에 감사하며 산에 올라 결의와 다짐을 올려 왔다고 합니다.
그런 날 귀한 참어머님께서 오셨으니 매우 상서로운 의미가 있으며, 자신은 산에 있어야 하지만 참어머님을 모시기 위해 잠시 내려왔다고 했습니다. 점심식사후 다시 산으로 올라가 7일에 진행될 행사를 위해 사생결단 정성을 드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나는 따뜻한 한국식 잔치국수로 점심을 차려 주었습니다. 밥이 사랑이었습니다. 천륜에 의해 맺어진 모자지간의 사랑을 잔치국수를 통해 전했습니다. 참아버님 천주 성화 7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하데베 선지자가 한국에 왔을 때, 발왕산 정상에서 특별히 이번 행사를 위해 정성을 드렸습니다. 그때 내가 의형제를 맺어준 윤영호 사무총장이 젓가락 사용 방법을 알려 주었는데, 이제는 젓가락으로 잔치국수를 제법 잘 먹었습니다. 한국 문화에 대한 하데베 선지자의 이런 자세는 독생녀 참어머님에 대한 또 다른 사랑과 존경의 표현이었습니다.
섭리의 봄, 나와 함께할 때가 황금기
깊은 숲 속에 작은 오솔길이 있습니다.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길입니다. 처음에 이 길을 낸 사람은 손으로 나뭇가지를 쳐내면서 손에 생채기가 나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땀을 송골송골 흘리면서 길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 덕분에 뒷사람들은 편하게 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첫 사람의 노고에 깊이 고마워하면서 길을 더 넓고 평탄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숲에 오솔길을 내는 것보다 사람들 사이에 길을 만드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나무나 가시덤불과 달리 자신의 의지가 있습니다. 그 의지에 반하면 마음을 열려 하지 않습니다. 나는 평생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 한 가족이 되도록 하는 데 땀과 눈물을 흘렸습니다.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고 가장 험한 곳에서 세계인을 품에 안았습니다. 누구라도 도망치고 싶은 처지에서 인류 구원과 세계평화를 위해 묵묵히 참사랑을 실천해 왔습니다. 나를 비난한 원수까지도 용서하고 품어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섭리의 봄을 맞이했습니다. 한 해를 시작하는 봄은 결실을 거둬야 하는 농부에게는 가장 바쁜 계절입니다. 미래의 풍성한 수확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섭리의 봄을 맞은 천일국의 백성들은 본래 하나님께서 이루려 하셨던 그 본연의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자신의 종족을 책임지고 국가적인 기반에서 메시아의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그런 천명이 놓여 있습니다.
어렵고 힘들어도 섭리를 마감하고 진실을 드러내야 합니다. 해바라기처럼 정렬된 자세로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한다면 하나님의 꿈, 인류의 소원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문제는 내가 지상에 있는 동안 그 결과를 하나님 앞에 봉헌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후대 후손들에게, 미래에 올 인류 앞에 자랑스러운 나 자신이 됩니다. 이런 때는 언제나 오는 것이 아닙니다. 한 인간을 놓고도 독생녀인 나와 함께하는 이 시간은 그 누구든 나이를 막론하고 황금기입니다. 황금기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동시대에 살면서 참부모가 오셨는지도 모르고, 하늘의 축복과 은사가 있는지도 모른 채 살아가게 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 만민이 이 시대에 함께 사는 것을 감사하면서 하늘을 모시는 자리에서 살게 해야 합니다. 지상천국에서 살아야 천상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목표도, 우리의 갈 길도 하나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자랑스러운 아들딸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수고했다. 내 딸아, 내 아들아!" 하고 품어 주실 수 있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지상생활을 하고 있는 바로 이때가 황금기라는 사실을 가슴으로 깨달아야 합니다.
나의 생활철학은 '위하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든 다른 사람을 '위하는 삶'을 실천하기 위해 갑니다. 자기 부모의 사랑보다도, 형제의 우애보다도 더 사랑을 주기 위해 가시밭길을 걸어왔습니다. 사람은 좋은 것이 있으면 자기가 갖고, 다른 사람에게는 덜 좋은 것을 줍니다. 심지어 부모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면 그것은 욕망의 굴레에 갇히는 것이요, 다른 사람을 앞세우고 위하는 삶은 영원한 축복과 자유를 얻는 지름길입니다.
나는 곤궁에 처한 사람을 보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주었습니다. 나는 결혼반지조차 없습니다. 좋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세계는 기쁨의 세계가 됩니다. 이것이 나의 생활철학입니다. 자기만을 위하는 사람은 곧 벽에 부딪힙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위해 베푸는 마음과 사랑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뭇 세상 사람들은 통일교회가 돈이 많다고 지레짐작합니다. 문선명 총재와 한학자 총재 역시 돈이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두 사람은 평생 자신의 이름으로 된 집 한 채 소유하지 않았습니다. 전부 세상을 위해 썼습니다. 우리 부부처럼 자신에게 철저한 구두쇠는 없을 겁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선교사들이 낯선 땅에서 처마 끝을 바라보며 밤을 지새울 텐데 내가 어찌 맛있는 밥을 먹고 편히 잠을 잘 수 있겠습니까?
식구들의 헌금은 모두 학교를 세우는 등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쓰였습니다. 여러 기업체를 세운 것도 국가를 부강하게 하고 사람들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였지, 그 돈을 소유하겠다는 생각은 애당초 없었습니다. 아무리 배가 고프더라도 나보다 더 배고픈 사람이 있으니 그를 위해 참고 또 참았습니다. 뜻 길을 가면서 소유의 욕심을 지닌 사람은 부모의 살을 에는 자요, 뼈를 깎아 먹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늘 앞에 빚을 져서는 안 됩니다.
나는 늘 사랑을 생활의 중심에 두었습니다. 삶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마라톤을 뛰는 것과 같습니다. 그 힘은 돈의 힘도 아니며, 명예나 권력의 힘도 아닙니다. 위대한 사랑의 힘입니다. 사랑은 아기가 울 때 어머니가 젖을 내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이 가장 위대한 사랑입니다. 사랑과 더불어 내가 왜 왔으며, 왜 살아야 하며, 어디로 가야 하는 가를 늘 마음속에 담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더듬어 볼 때 내가 당하는 시련과 고통은 오히려 너무나 가볍다고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를 변명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합니다. 어려움이 닥치면 닥칠수록 절대신앙・절대사랑・절대복종 해야 합니다. 태어난 것을 나 스스로 태어났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주어진 삶을 충실히, 아름답게, 가지 있게 살아야 합니다. 내가 자녀와 가족을 위해서 있고, 아내나 남편을 위해서 있고, 전 인류를 위해서 있고, 전 세계를 위해서 있다는 마음만이 행복한 나를 갖게 해줍니다.
우리의 제일 가까운 스승은 자신의 마음입니다. 어려운 일에 처하거나 혼란스러운 일이 다가오면 마음한테 물어보면 됩니다. 그 마음에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내재해 계십니다. 그 진정한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마음 가운데 계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을 갈고 닦아 마음이 속삭이는 소리, 하나님이 들려주는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마음은 영원한 나의 주인입니다. 마음의 기도는 하나님과의 유일한 통로입니다. 그와 같은 참된 기도를 통해 가장 곤궁하고 가장 험난한 곳에서도 하나님과 참부모님의 은총을 허락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은총의 손길에 따라 하늘나라로 자유로이, 그리고 행복하게 올라갈 수 있습니다.
어머니의 수레바퀴, 새 생명과 용서
사람은 누구나 바다를 그리워합니다. 일상생활을 하다가도 문득 바다를 향해 달려가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푸른 바다에 마음껏 뛰어 들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바다는 어머니의 상징이요 모성의 아이콘입니다. 심연의 바다는 어머니의 품속과 같기 때문입니다.
거대한 북미의 나이아가라폭포나 남미의 이구아수폭포 앞에 서면 사람들은 감탄을 연발합니다. 그 웅장한 풍광에 압도되어 아예 말문이 막히기도 합니다. 크고 작은 수많은 물줄기가 합쳐져 장관을 이룹니다. 수많은 물줄기가 큰 물줄기를 향해 흘러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이치입니다. 하천이나 강은 각각 출발지는 다르지만 목적지는 결국 큰 바다입니다. 큰 물줄기를 향해 가지 않겠다고 멈칫거리거나 정지하면 그 물은 썩고 맙니다.
고인 물이 썩듯 종교들이 자기 교리에만 집착한다면 넓은 바다로 가는 길이 막혀 변질되거나 썩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본성을 설명할 수 있는 교리를 가진 종단이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그 근본 목적은 인류의 부모가 되시는 것이었습니다. 부모 앞에 우리는 모두 자녀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왜 우리 인류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 차단되었는지 기도하며 연구해야 합니다.
하늘은 이스라엘 민족을 세워 4천 년이란 기나긴 세월 동안 인류를 찾아오셨습니다. 400년도 아닌 4천 년이란 세월 동안 섭리해 오시면서 마지막에 "내 첫아들이다" 할 수 있는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과 그 가정에서 책임을 다하지 못해 예수님을 십자가로 내몰았습니다. 십자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길 때 가족은 물론 제자들마저 배신해 돌아섰고, 주위에서 아무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단지 십자가상에서 오른편 강도만이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할 따름이었습니다. 이제껏 이 참담한 역사를 기독교는 물론 지상의 어느 누구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참부모로서 타락한 인류를 중생 부활시켜 하나님의 참자녀로 나아갈 수 있게 인도하실 중보자였습니다. 우리의 부모가 되실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그로 인해 책임을 다하지 못한 이스라엘 민족이 어떤 탕감을 치렀는지 역사는 우리에게 여실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2천 년 동안 나라 없는 민족으로 유리방황했습니다. 이것이 역사의 진실이며 하늘의 섭리입니다.
예수님은 다시 와서 어린양 혼인잔치를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재림의 때를 맞이해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마지막으로 오실 독생녀를 맞이해야 합니다. 이 중대한 일에 하늘은 과거에 이미 책임을 다하지 못한 이스라엘 민족을 다시 들어 쓰시지 않았습니다. 독생녀를 탄생시킬 나라와 민족을 다시 선택하신 겁니다.
하늘은 기원전에 동이족인 한민족을 선택하셨습니다. 한민족은 농경문화를 이룬 가운데 하늘을 숭배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었습니다. 따라서 택함을 받은 한민족의 기독교 문화권에서 독생녀가 탄생해야 했습니다. 1784년 한반도에 기독교가 들어왔으며, 1943년에 독생녀인 내가 탄생했습니다.
1945년에 우리나라는 해방을 맞았지만, 바로 남북으로 갈라졌고, 북한은 공산화되었습니다. 그때 나는 북한에 있었습니다. 하늘은 내가 공산주의 체제에서 무사히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을 아셨기에 남하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남한은 북한의 침략을 방어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하늘은 나를 보호하기 위해 유엔 16개국을 참전시켰습니다. 기적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당시 소련은 유엔에 가입되어 있었습니다. 소련이 반대하면 유엔 16개국은 참전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극적으로 소련이 회의에 불참함으로써 참전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나는 1960년 참부모의 자리에 나아갔습니다. 이후 남편과 나는 평생을 통해서 세계적으로 많은 축복가정을 배출했습니다. 이제는 세계도처에서 많은 종단장들이 참부모의 뜻을 받들어 함께 축복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2018년 초 나는 무슬림 나라인 세네갈에서 아프리카서밋을 거행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아프리카가 하늘의 뜻을 받들려면 나와 함께 동참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참석한 정상들과 족장, 종단장들이 나의 제안에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했습니다. 유럽에서는 불교 종단장들이 자기 종단 사람들을 축복 대열에 참여시키고 있습니다. 무슬림은 독생녀인 나의 뜻에 동조하고 전폭적으로 따르겠다고 결의했습니다. 미국의 기독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종착점에 도달했습니다. 이제 새로운 천일국 시대를 열어 가야 합니다. 새 시대에는 그에 맞는 새 옷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천일국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효자·효녀·충신의 중심인물이 될 수 있습니다. 나는 역사적 진실을 말해야 하기에 주저하거나 거리낌이 없습니다. 2018년 8월 브라질에서 열린 중남미월드서밋에서 기독교는 더 이상 생명을 탄생시킬 수 없는 '무정란'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무정란은 생명을 잉태하지 못합니다.그 자리에는 천주교 추기경을 비롯해 종단장, 종교 지도자들도 대거 참석했습니다. 현재 모든 종교가 참부모를 받아들여 축복을 받아야만 새 생명을 잉태할 수 있다고 주저 없이 말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내 말에 동의했습니다.
나는 지상의 79억 모든 인류를 하나님의 참자녀로 거듭나게 해야 합니다. 나는 독생녀이자 참어머니, 우주의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는 "메시아를 거역하면 용서함이 있으되 성령을 거역하면 용서함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얻으려면 독생녀 어머니를 통해야 합니다. 어머니를 부정하는 사람은 미래는 물론 내세가 없습니다. 나는 언제나 새 생명을 준비하는 참다운 어머니입니다. 언제나 마음문을 열고 일곱 번씩 일흔 번을 용서하는 참어머니입니다.
참부모만이 삶의 나침반입니다
1960년 성혼을 하고 며칠 후 나는 난데없는 꿈을 꾸었습니다. 나 홀로 아이들을 업고 손을 잡고 보따리를 인 채 앞이 보이지 않는 험난한 낭떠러지 길을 걸어갔습니다. 천만다행으로 천길 낭떠러지에서 떨어지지 않고 광명을 찾아 평탄한 대로로 나오면서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내가 걸어온 길은 높은 산을 허물고 깊은 골짜기를 메우며 넘어야 하는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동안 어느 누구도 나와 같은 절박한 심정으로 하나님을 해방하겠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나는 성혼 이후 인류 구원을 위해 세계 곳곳을 찾아다녔습니다. 가는 곳마다 신발 한번 제대로 벗지 못했습니다.
참부모의 길을 걸으며 우리 부부는 늘 한결같았습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 효정의 도리를 다하고 평화세계를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노정에서 지난 수십 년 동안 당한 몰이해와 핍박은 참으로 혹독했습니다. 역대 정권은 물론이요, 일부 종교인들의 중상모략은 너무도 악의에 찬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참고 또 참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참사랑을 베풀었습니다. 그렇게 만난을 헤쳐 나옴으로써 오늘날 190여 나라에서 참어머니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다음에 "나는 독생자다"라고 했습니다. 독생자는 하늘부모님의 첫사랑의 열매요, 첫사랑을 받을 수 있는 왕자입니다. 그리고 독생녀가 있어야 합니다. 독생자는 신랑이요 독생녀는 신부입니다. 독생자와 독생녀가 만나 결혼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성경에 나오는 어린양 혼인잔치이고, 이를 통해 가정을 이뤄야 합니다. 하늘부모님이 바라는 소망은 독생자와 독생녀가 참된 가정을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소망은 그 참된 가정에서 참부모를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참부모의 사랑에 의해 완성됩니다. 참된 인간으로서 세상을 살고 영원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참부모를 만나야 합니다. 죽음길을 가더라도 만나야 할 사람이 참부모입니다. 역사를 다 잃어버리고 자기 후손을 다 잃어버리는 한이 있어도 참부모를 만나면 역사를 되찾고 미래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그러나 여기에는 사랑이 빠져 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넣어 새롭게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사랑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그 사랑을 지녀야 합니다. 지상의 79억 인류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이 땅에 현현하신 참부모를 만나야 합니다. 참부모에 의한 축복결혼을 통해서만이 참생명과 참사랑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참부모는 영원한 진리요, 사랑이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참부모가 여러분 곁에 있다는 것은 무섭고도 기쁜 진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우리 모두가 말씀으로 거듭나 참부모의 자녀가 되고, 또한 참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소원은 하나님의 모든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행복이란 부모를 잃어버린 인류가 6천 년 만에 부모를 찾는 것입니다. 그보다 더 기쁜 일은 없습니다. 종교를 갖는 것은 이런 부모를 찾는 일입니다. 나는 참어머니이자 독생녀로서, 그리고 우주의 어머니로서 모든 섭리 역사를 완성하고 새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사실을 가슴에 새기고 참부모의 뜻에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 길만이 참부모의 인침을 받고 평화의 어머니 독생녀가 인도하는 생명길에 동참하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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