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2:1-5 남을 판단하는 사람
읽을 말씀 : 롬2:1-5
설교 목표 : 남을 판단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면서 아이들로 하여금 남을 판단하기 이전에 나 자신을 바로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한다.
주제 제기
법률 용어중 ‘항소’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급 법원의 결정이나 명령에 대해서 당사자가 복종할 수 없다고 생각할 때 상급 법원에 다시 판결을 요청하는 행위입니다. 아무리 공정하게 재판을 해도 형을 받는 피고인의 입장에서는 억울한 데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으면 다시 한 번 재판을 받아서 자신이 무죄하다는 것을 인정받거나 아니면 약간이라도 감형을 받았으면 하는 것이 대부분의 피고의 심정일 것입니다.
목사님이 재판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있습니다. 이미 우리가 1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사람이 얼마나 악한 죄인인가를 보았습니다. 다시 말해 모든 사람에게 유죄가 이미 확정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판결이 못마땅해서 승복할 수 없다고 항소를 하는 자들이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성경속으로
1절에 가장 먼저 나오는 단어가 무엇입니까? ‘그러므로’입니다. 이 단어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여기에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죽음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죄인이라고 말씀하셨으니 더 다른 소리를 하지 말아라”라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더 이상 말하지 않는 것이 옳습니다. 머리를 숙이고 무릅을 꿇고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므로’ 다음에 어떤 사람이 나오는지 눈 여겨 보세요. 남을 판단하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이 누구일까요? 1절 이하의 내용을 보면 그들은 하나님이 죄인이라고 하는 데 불만을 품고 있는 자들로 보입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세상 사람들을 정죄해도 자기만은 아니라고 하는 생각에서 무엇인가 은근히 자랑할 것을 들고 나오는 자들입니다. 대체로 많은 성경학자들은 이들을 ‘유대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지금 팔장을 끼고 그럼 그렇지! 하면서 고개를 끄떡이고 있는 장면을 연상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유대인은 어떤 사람일까요? 그들은 대체로 말이나 행동이 선하고 비교적 양심적인 긍지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주변으로부터 착하다고 칭찬도 듣고 법이 없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도 자주 듣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도덕군자라고 하죠. 자신을 선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죄 이야기를 해도 별로 놀라지 않습니다.
가끔 우리는 라디오를 통해 교통사고가 났다는 뉴스를 들으면서 고속도로를 정신없이 운전해 갈 때가 있습니다. 그때 무슨 생각을 합니까? “나는 괜찮겠지”하는 막연한 생각입니다. 이와 같이 죄 이야기가 전부 남의 말로 들리니 죄인으로 정죄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무릎을 꿇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이요 그래도 남보다 선하다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버티고 있는 사람들을 2장에서 다루시고 계실까요?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뻔뻔스러운 자들을 포기하지 않으실까요?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들도 구원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남을 판단하고, 스스로 선하다는 사람들의 몇가지 특징을 살펴보면서 자신을 점검받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ꋎ 남을 판단하기를 즐깁니다
1절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1절에서 이 사람들을 향하여 ‘남을 판단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가 은근히 선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남을 비판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결점은 눈에 잘 안 들어오고 남의 약점이나 잘못은 항상 크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을 가리켜서 형제의 눈 속에 있는 작은 티는 잘 보면서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우월감을 갖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항상 죄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상대적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어떤 사람과 비교해서 저 사람보다 조금 낫다 싶으면 선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 착각이요. 자기 교만입니다.
남을 판단하는 사람들을 향하는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무론 누구든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이 곧 죄다 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죄’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지적해 주는 내용입니다. 한번 물어볼까요? 죄는 뿌리입니까? 열매입니까?
죄는 마음입니까? 행동입니까? 이렇게 묻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됩니다. 죄는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만 죄가 아닙니다. 마음으로 하는 모든 악한 생각까지 다 포함합니다. 지금 남을 판단하는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의 겉모습만 가지고 죄인이라고 판단합니다. 정작 자신의 속, 양심, 마음, 생각을 보지 못하는 큰 죄인입니다(예,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눅18:11)
ꋏ 자기 죄에 둔감합니다
2, 3절 말씀입니다.
2절과 3절 말씀은 똑같은 내용입니다 이것은 강조를 위한 것입니다.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누구입니까? 남을 판단하는 사람입니다. 남보다 그래도 선하다고 여기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죄에 대해서 매우 둔감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남의 죄는 드러나서 자꾸 비판을 하지만 자기는 어떤 점에서 잘못되었는가를 잘 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똑같은 죄를 범해도 자기의 잘못에 대해서는 아주 관대합니다.
자신에게 관대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둔감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죄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남의 죄는 드러났으나 자기가 똑같은 죄를 범하는 죄인이라는 것을 잘 모른다는 말입니다. 바리새인들을 보고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눅16:15) 하나님은 죄의 결과 행동을 보기 이전에 죄의 동기, 죄의 마음을 보고 평가하십니다.
그래서 그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판단이 진리대로 된다’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진리가 뭐죠? 진리의 반대말이 무엇입니까? 유대인들의 개념으로 ‘진리’(Truth)라는 말은 실체(Being, Reality-본성)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이 반대말이 뭐죠? 현상(phenomenon)입니다. 즉 드러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진리대로 판단하신다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그렇죠. 죄의 동기로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외모로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중심을 보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즉, 죄란 마음과 행동을 다 포함하는 것이죠. 이 진리를 피해갈 사람은 한 사람도 이 땅에 없습니다.
ꋐ 자기의 선을 자랑합니다
4절 말씀입니다.
즉 자신의 형통이나 행복이 자기가 선해서 얻은 복으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4절을 다시 주의해서 보세요. 이 사람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듬뿍 받아 왔습니다. 그리고 잘못이 있어도 하나님이 오래 참아 주셨습니다. 길이 참는다는 말은 죄를 짓는 즉시 보복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세상을 살면서도 힘든 줄 모르고 살았습니다. 내가 마음 먹은대로 척척 일이 잘 풀립니다. 시험도 잘 치룹니다. 남보다 건강해서 병원도 잘 안갑니다. 돈 많은 집에 태어나 누릴 만큼 누리고 삽니다. 이렇게 형통하고 잘되는 것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아세요? “내가 잘나서 그렇지” “내가 정직하고 똑똑해서 그렇지” 이런 자부심 내지는 교만이 깔려 있는 것을 알아 차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의 생각이 옳다고 할 수 있습니까? 4절을 다시 보면, 하나님께서 이 사람에게 불행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지금까지 내버려 두신 이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가 잘되는 것은 그가 회개하기를 기다리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자기가 남보다 선하고 잘나서 얻은 복으로 알고 있으니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이제 5절 말씀으로 갑니다. 그들의 결국이 나옵니다.
그들의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것입니다. 멸망할 때까지 가는 것이 고집입니다. 고집 센 것 별로 좋은 성격이 아닙니다. 체면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하나님의 축복과 영생을 체면과 바꾸시겠습니까?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문화는 이 고집과 체면문화입니다. 그래서 남들에게는 잘하는데 자기 집에서는 문제야. 옛날 아버지들입니다. 밖에서는 힘 못쓰면서 집에 들어오면 큰 소리치고 그러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집과 체면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격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계속 쌓는 무서운 심판입니다.
삶의 적용
오늘 여러분은 무엇을 배웠습니까? 이 말씀을 들으면서도 팔장끼고 열중쉬어 한 자세에서 ‘나는 아니네’ ‘저 친구 얘기지’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이미 마음속에서 비판하는 죄를 범한 것입니다. 다른 친구들과 비교하지 마세요. 그들을 판단하지 마세요. 그냥 나는 그들과 상관없이 하나님 앞에 스스로 나아가면 됩니다. 하나님께 잘못했다고 한마디만 인정하면 됩니다. 아직도 고집 피우실래요? 아직도 체면 차리실래요? 하나님은 지금 두 팔을 크게 벌리시고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안으시고자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품으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