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12-2편] 현상이 그대로 본질이다 | 즉 卽
| 의식이 드러나는 순간 | 인간의 성숙 (1:03:40)
0:15
여러분,
지금 내 안에 내면에서 생각과 감정이 일어나는 것을
지금 자각하고 느끼고
또 밖에서 일어나는 것을 느끼고 이게 공부잖아요.
그렇지 않나요?
어떤 생각에 빠지면 놓치고 어떤 사물에 빠지면 놓치고
그러니까 놓치느냐 아니면 깨어있느냐, 관찰하느냐
지금 요거 하나가 관건이잖아요.
지금 우리들의 상태는 어떤 거냐면 자꾸 까먹어요.
내가 나를 봐도 그렇고 여러분을 봐도 자꾸 까먹고 그러잖아요.
뭘 까먹느냐 그러면 이거 까먹는 거예요.
이 순간에 깨어있느냐 놓치고 마음을 뺏겨 버리느냐 그거잖아요. 그죠?
그래서 우리들은 한국인들의 특징 중에 하나가
어려서부터 학원을 다녀가지고 자율적으로 해야 되는데
강제로 시키면 (자율적으로 해야 하는데) 또 잘하는 게 있어서
그 생각이 들었어요.
조금 전에 쉬는 시간에 대화 중에 이거를...
여러분, 조그마한 노트 하나 구하셔서 일종의 관찰일기예요.
아침에 깨어서 자기를 관찰하기.
그래서 어느 날에는 이렇게 되겠죠.
1시간 뒤에 생각났다 그런 날도 있을 거고,
오늘은 눈 뜨면서부터 차근차근 여러분 관찰되는 게 있을 거 아니에요.
그거를 기록하기, 매일매일 그래서 일기 쓰게 합시다. 저도 할게요.
그래서 일기 쓰기가 참 좋은 수행이다.
왜냐하면 지금 이런 식으로 어떤 매개가 없으면, 약간의 강제가 없으면
금방 놓치고 그냥 옛날처럼 그냥 휩쓸려 살아가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삶이라서,
뭔가가 자꾸 이렇게 공부하는 그런 계기를 만들어 드리는 게
그게 도반들이 모여서 공부하는 좋은 힘이 된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일기 씁시다. 저도 할게요.
그래서 이제 내일부터 매일 아침에 눈 떴을 때,
근데 여러분 지금 경험해서 아시겠지만
그 시간이 의외로 아무도 방해 안 받는 시간이에요.
아침에 눈 뜰 때 그 시간이 방해 안 받는 시간이잖아요.
그때 오히려 관찰하기 좋다. 온전히 그 시간을 수행으로 삼으면
그 힘이 길러지면 중간에도 또 자각이 될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저는 반드시 하는 시간은 언제냐면 아침 눈 뜰 때 하고
버스 기다릴 때 그런 짬나는 짧은 시간에 반드시 하거든요.
그리고 그 재밌어요 사실은.
그럴 때 정말 안팎이 싹 밝아서 냉철하게 다 이렇게 보일 때
이 세상이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보이거든요.
그리고 반짝반짝 빛나요. 그럴 때는.
그런 시간을 내가 가져가는 것.
직장 다니시더라도 시간을 정해놓고
잠시라도 한잔하면서 안팎으로 깨어서 살피는 것,
그걸 하여튼 정기적으로 가져가고 기록하고
그게 큰 공부가 이어지는 힘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거 안 하면 지금 여러분은 유튜브 듣는 것밖에 더해요?
그러니까 거기다가 (유튜브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를 보는 이 시간을 가지기 합시다.
계속 보겠습니다.
< 의식은 형상의 일어난 뒤에 있는 지성 즉 조직화 원리이다.
의식은 형상들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수백만 년 동안
그 형상들을 준비해왔다.
형상으로(그러니까 현상이죠.) 나타나지 않는 의식의 영역은
다른 차원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우주라는 형상의 차원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
그러니까 이거를 의식의 영역은 숨어있는 은(隱)이고
우주라고 하는 형상의 차원은 드러난 현(現)이죠.
이것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 이 말은
은현 동시(隱現同詩)다. 중도다, 불이다, 연기다, 그 말입니다.
< 형상의 세계와 형상 없는 세계는 서로 스며들어 있다. >
(톨레는 스며들어 있다고 표현을 하네요.)
불교에서는 제일 좋은 표현이 '즉'이에요.
스며들어 있다 보다도 불교적인 표현은 즉(卽) , 색즉시공 (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 할 때 즉...
5:40
< 형상으로 나타나지 않은 것은 알아차림. >
여러분 형상으로 나타나지 않은 핵심은 알아차림입니다.
알아차림이라는 말은 자각인 거죠. 관찰이죠. 관찰.
관찰하는 그것 관찰, 관찰력.
혹은 내적 공간, 내적 공간 이라는 말도 이해되세요?
'즉'의 공간, 의식 자체는 보이지 않잖아요.
의식 공간, 또 현존.
현존은 지금이 순간 깨어있는 자각.
지금 이 순간 깨어있는 자각이 현존이에요.
지금 이 순간 깨어있는 이 자각.
< 현존으로서 이 차원 속으로 흘러 들어온다. >
그러니까 지금 톨레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 본질인 의식이 이 현상의 차원으로 흘러 들어오는 것,
나타나는 것, 드러나는 것, 이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
왜냐하면 인간의 존재 목적이 그거라고 보는 거예요. 톨레는.
우주는 인간이 없으면 우주가 어떻게 깨어있겠어요.
우주는 스스로는 못 깨어 있잖아요. 그렇잖아요? 이 물질 공간은.
그런데이 물질 공간이 깨어 있을 수 있는 것은
지금 우리 인간이 특히 인간이 깨어 있음으로써 우주가 깨어있게 되는.
우리는 우주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나서 살고 있어서
이거 하자, 이게 톨레가 지금 말하는 거예요.
어떻게 그렇게 하는가?
어떻게 이 본질이 현상계로 흘러나오는가?
어떻게 아미타불이 나투시는가?
어떻게 성령이 역사하시는가?
< 의식이 깨어있는
그러므로서 자기의 운명 자기의 존재의 이유를 완성하는
인간 형상을 통해서이다. >
참 이 말을 하고 싶어 가지고 톨레가 이 한 권을 쓴 거예요.
이 책의 결론이
< 어떻게 하면 본질이 이 현상으로 드러날 수 있는가,
한 인간이 의식이 깨어서 그럼으로써 자기의 운명을 완성하는
인간 형상을 통해서 이 본질이 이 세상으로 드러난다.
이 높은 목적을 위해 인간이라는 형상이 창조되었으며
수백만의 다른 형상들이 그것을 위한 토대를 준비해 왔다. >
이 거대한 자연이 계속 준비해 왔는데
자연의 꽃이 인간이라는 거죠. 자연의 꽃이 인간이다.
그 인간을 통해서 이 의식이 이 세상으로 지금 드러나고 있는 것.
< 의식은 외부로 나타난 차원 속으로 환생한다. >
환생한다 이 말을 불교에서는 '나툰다'고 표현해요.
아미타불이 '나툰다'라고 표현해요.
기독교에서는 역사한다고 표현을 했네요.
< 이건 외부로 나타나는 차원 속으로 환생한다. 즉 형상이 된다. >
이거는 공즉시색이죠. 공즉시색한다 이 말이죠.
공이 색으로 나툰다.
그렇게 할 때 의식은 꿈꾸는 것과 같은 상태로 들어간다.
이것도 참 좋은 통찰입니다. 한번 보세요.
< 의식은 이때 꿈꾸는 것과 같은 상태로 들어간다.
지성은 그대로 남아 있지만 지금 자기 자신에 대해 무의식적이 된다. >
우리가 꿈꿀 때를 보면 꿈이 펼쳐지기 시작하면
나는 꿈을 꾸는 사람이라는 걸 잊어먹고
꿈속에 나타나는, 그 꿈속에 나타나는 '나' 그것을 '나'라고 생각하고
자기를 까먹어 버린다. 무의식적이 된다.
똑같다 이거죠.
우리가 꿈을 꿀 때나 의식이 지금 형상을 지금 이렇게 나툴 때나
여기에 원리가 같다.
< 형상 속에 자신을 잃어버리고 형상과 동일화 되는 것이다. >
그래서 에고가 탄생합니다.
< 형상 속에 자신을 잃어버리고 형상과 동일화 되는 것이다.
신이 물질 속으로 내려오는 것이라고 묘사할 수 있다.
우주 진화의 이 단계에서는 외부로 향하는 모든 운동이
이 꿈의 상태에서 진행된다.
깨어남의 짧은 경험이 찾아오는 것은 개개의 형상이 소멸될 때
결국 죽음의 순간에만 일어난다.
그 뒤는 그 다음 환생이 시작되고 그 다음 형상과의 동일화가 일어나며
집단적인 꿈의 일부인 그 다음 개별적인 꿈이 다시 시작된다. >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우리가 잊어먹고 살고 있다는 뜻이에요.
자기가 의식인 것을 잊어먹고 형상과의 동일화를 통해서
윤회되고 있는 지금 상태다. 우리의 상태가.
11:05
< 우리의 행성에서 인간의 에고는
의식이 형상과 동일화 되는 우주적인 잠의 마지막 단계를 나타낸다.
이것은 의식의 진화에 꼭 필요했던 단계이다. >
요거는 지금 톨레의 통찰이에요. 톨레는 지금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요게 의식이 깨어나기 위한 마지막 어떤 준비 단계라고 그렇게 보는 거예요.
톨레는 상당히 낙관적으로 보고 있네요.
지금 요 단계를 거쳐서 마침내 인간들은 다 깨어날 것이다 라고 보는 거예요.
< 인간의 뇌는 고도로 차별화된 형상이며
형상을 통해 의식이 이 세상의 차원으로 들어온다.
인간의 뇌에는 뉴런이라고 불리는 약 천억 개의 신경세포가 있다.
이것은 우주의 뇌라고 볼 수 있는 은하계에 있는 별들의 숫자와 같다. >
무한대다 이 말이네요.
인간 뇌 속에 들어있는 뉴런 세포의 수나
이 우주에 있는 별들의 숫자가 같다. 그만큼 무한대다.
< 뇌가 의식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의식이 그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지구에서
가장 복잡한 물질 형태인 뇌를 만들어 낸 것이다. >
저는 실제 집중 수행에서는 이런 질문 많이 받아요.
의식은 뇌가 만드는 것이 아닙니까? 라는 질문 많이 받아요.
우리가 과학을 배웠기 때문에 뇌가 의식을 만든다고
우리들은 대부분 그런 식으로 생각을 해요. 그렇지 않나요?
일반인들은 뇌가 의식을 만들어 낸다고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근데 이렇게 깨닫게 되면 의식이 먼저 있고 의식이 자기를 나투기 위해서
뇌를 만들어낸 거라고 지금 톨레가 그렇게 말하잖아요.
차이점 아시겠습니까?
일반 과학적인 사고방식에는 뇌가 의식을 만들어 낸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는데
깨닫고 나면, 왜냐하면 인간 뇌가 없어도 의식은 이 세계 전체가 의식이니까.
이 세계 전체가 의식인데 요거 하나 없다고 의식이 죽냐 이거예요.
제가 예날에 처음 참선 배울 때 그 스님 앞에서 처음 배울 때, 아주 옛날 이야기에요.
그때 제가 뭐라고 했냐면,
모기가 탁 와 가지고 선방은 크고 하면 문 열려 있고 모기 있잖아요.
탁 이렇게 잡은 거예요.
그래서 불성이 죽었다 이랬거든요.
그때는 처음 공부할 때라서 모기를 잡으면서,
모기가 죽으면서 모기 안에 불성이 있었는데 불성이 죽었다, 그랬거든요.
그러니까 스님이 웃으면서 불성이라는 생각이 죽었다, 그러는 거예요. ㅎㅎㅎ
옛날에 한 20년 전에 이야기인데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공부하기 전에는 생명이 죽으면 의식이 죽는 줄 알았어요.
근데 그게 아니라 이 개체의 생멸과는 상관없이이 우주 자체가 의식이라는 거죠.
의식 속에 시간 공간이 생기고 그 시간 공간에 좌표 속에 만물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아침마다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우리가 봐야지 지금 여기 지금 톨레의 이 말도 이해되시죠?
< 뇌가 의식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의식이 그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지구에서 가장 복잡한 물질 형태인
뇌를 만들어낸 것이다.
뇌가 손상되었다고 해서 의식을 잃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의식이 형상 차원으로 들어오기 위해 그 고장난 뇌를 사용할 수 없게 되었을 뿐이다. >
이 말도 재미있죠. 그죠?
뇌가 고장났다고 해서 의식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이거죠.
< 당신은 의식을 잃어버릴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의식은 본질적으로 당신 자신이기 때문이다. >
생명이 의식이기 때문이다 이거죠.
뇌가 고장 나도 생명이 없어진 건 아니잖아요.
생명 자체가 의식이다. 그러니까 나의 의식이란 말은 없어요.
다시 한번 톨레가 강조하는 것,
나의 의식이라는 말은 성립이 안 된다. 왜냐?
'나'가 의식이기 때문에.
나의 의식이란 말은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나의'라는 말은 아니다. 내가 곧 의식이기 때문에.
< 의식은 본질적으로 당신 자신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오직 자신이 소유한 것만을 잃을 수 있을 뿐이며
당신 자신인 것을 잃을 수는 없다. >
요렇게 지금 톨레가 의식에 관한 장을 맺습니다.
다음에 이제 깨어있는 행동,
깨어있는 행동도 제가 중요하다고 표시는 많이 해놨네.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깨어있는 행동은 여러분,
깨어 있는 행동을 육조 혜능스님은 뭐라고 하느냐 하면
*일행삼매(一行三昧)라고 합니다.
깨어있는 행동은 일행삼매.
그리고 일행삼매는 반드시 전제 조건이 있는데 그것은 *일상삼매( 一相三昧 )입니다.
육조단경에서 6조 스님이 굉장히 강조하는 대목이에요.
모양은 알고 보면 하나 밖에 없다는 거예요.
지금 여러분 모양 다 다르잖아요. 겉모양만 다르다는 거예요.
속 모양은 하나 뿐이라는 거예요.
하나뿐인 속 모양이 뭐죠? 의식이잖아요.
그러니까 일상삼매라는 말은 항상 의식을 자각하고 있는 상태를 말하는 거예요.
【< 다음 어학 사전 >
* 일행삼매 [一 行 三昧]
잡념이 없이 오직 염불에만 전념함
* 일상삼매 [一相三昧]
진여의 세계는 평등하여 한결같고 차별이 없는 한 모양이라고 보는 삼매 .】
그러면 그때 보이는 모양이 아무리 많아도
전부 다 한 개 의식이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자기가 스스로 자각하고 살아가는 상태.
그게 깨달은 사람의 상태라는 거예요.
그래서 일상삼매 아무리 다양한 모양이 있어도 실제로는 다 같은 하나다.
아까 이야기 한 금강경에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그 말이 일상삼매하고 같은 말이다. 이해되세요?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만일 모든 겉모양에서 겉모양에 속지 않으면 본질을 보게 되리라.
(김홍근교수의 마음치유 '현재에 깨어있기' 20회/ 녹취에서.)
그래서 일상삼매인 사람은 무얼 해도 본질을 행하는거다.
이 말 좋지 않나요?
여러분 뭘 해도 일상삼매가 된 사람의 행은
오로지 본질이 드러나는 것 하나 뿐이다.
그래서 업이 남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일행삼매는 업을 남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의식하고 있는 상태,
의식이 깨어있는 상태 그 상태에서 하는 것은,
다시 말하면 천수 천하를 쓰는 상태는 업을 남기지 않는다.
그래서 즉각 하고, 현상계에서는 집을 나가는 거잖아요, 본질이.
그러니까 의식인 본질이 현상계에서 일을 하되 즉각 들어오는 거예요.
집 나가서 헤매는게 아니라 일을 하고 즉각 돌아온다.
공즉시색 했으면 즉각 색즉시공.
그런 상태에서 우리가 살아갈 수 있다면뭘 해도 하는 바가 없다. 이해되세요?
뭘 해도 흔적 남기지 않고 돌아오기 때문에 하는 바가 없다.
부처님께서 내가 49년 설법했지만 설법한 바가 없다. 이 말은
항상 자기 의식이 깨어 있어서 의식 상태로 돌아온다 이거죠.
현상계에서 나투더라도 금방금방 돌아와서 하되 하는 바가 없다.
이걸 '중도'라고 한다. 중도불이연기(中道 不二 緣起).
그것이 '하지 않는다'가 아니고 하지 않는다는 것은
공기가 빠져있는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그게 아니라
활발한 생명이 있어 가지고 이렇게 모든 걸 하는데 돌아오기 때문에
흔적이 없어서 뒤끝이 없어서 하는 바가 없다 하되 하는 바가 없다.
얼마나 깨끗할까요? 실제로 우리가 여러분,
지금이 순간에도 매 순간순간 새로운 순간이 나타나지 않나요?
지금 이거 새 것 아니에요?
여러분 난생 처음 아닌가요? 실제로 그래요 안 그래요?
난생처음 아니에요? 지금 이 순간이 난생 처음이죠?
그러면 이 난생 처음이 올 때 그냥 오지 않고 반드시 현상을 가지고 나타나요.
그러니까 저는 지금 저한테는 난생처음이 여러분이 난생처음이에요.
왜냐하면 지금 여러분은 처음 봐요.
어제 여러분은 어제 봤지만, 지금 여러분은 저는 난생처음 보는 거예요.
여러분도 그러세요?
그러면 서로간에 선물이다 이거예요. 선물.
지금 보는 이것이 이 아무것도 없는 적막강산에 주어지는 선물이다 이거예요.
그러면 이 선물을 내가 분별해서 좋다 나쁘다 하니까 고통이 되는 건데
여러분 선물은 감사한 거 아닌가요? 그렇지 않나요?
그러니까 이 주어지는 매 순간이 난생 처음이고
그리고 매 순간 나타나는 것이, 시간이 그냥 나타나는게 아니라
반드시 현상을 업고 나타나요.
그럼 그 현상은 전부 선물이다 이거예요.
그러면 내가 그걸 잘 쓰는 것이 내 인생이 얼마나 풍부해지느냐의 문제죠.
그러면 여러분 보세요, 과거에 매여 있으면
지금 난생 처음 보는 그 사람을 못 보겠죠?
고정관념이 살이 붙어 있으면 있는 그대로 못 보겠죠?
그게 이제 왜곡이다 이거예요.
그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보는게 직심(直心), 있는 것으로 보는 것.
그러니까 있는 그대로 보면 모든 것이 선물이다.
여러분 그러면 이 선물이 지금만 주어집니까? 아니면 계속 주어질까요?
계속 주어지고 있죠.
여러분 이 선물 가지고 다 받고 살기 바쁠 것 아니에요.
현재 나타난 이것 쓰기 바쁘다니까, 얼마나 아름다워요 모든 것이.
저는 칼라 하나가 그렇게 신기해요. 어쩜 사물들이 색깔이 있어요?
하나하나가 색깔이 달라, 같은 색이 하나도 없어요.
저는 개심사를 가요. 왜냐하면 개심사의 왕벚꽃이 있는데 그게 늦(겹)벚꽃이에요.
그래서 일반 벚꽃은 다 지고 산벚꽃이라고도 하는데 늦게 피어요.
그것 필 때가 개심사가 꽃대궐이 돼요.
울긋 불긋 꽃대궐을 정말 실감하거든요. (...)
농악하는 사람들 모자에 보면 그게 겹벚꽃이에요.
진짜 화려의 극치에요 그때 되면. 예쁜 절이에요.
근데 그걸 제대로 보는 눈이 있으면 정말 돌 하나가 다 배치를 놓은 사람이
디자이너가 개심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명의 기가 막힌 디자이너가
설계를 기가 막히게 해놓은 거예요.
24:35
그 왕벚꽃을 보러 갔다가 실제로 개심사 절 기록에 보면
그 개심사 가면 산신각이 있어요. 되게 예뻐요. 조그만해요. 아주 예뻐요.
그 산신각 옆에 자리에 앉으면 계곡이에요.
근데 그게 소나무가 많아 가지고 한 번씩 바람이 밑에서부터 싹 올라올 때
계곡 따라 바람이 올라올 때 소나무숲을 통과할 때는 파도 소리가 나요.
그래서 그 거대한 큰 곳에 파도 소리로 꽉 차요.
진짜 파도가 밀려오는 그런 소리가 나서 거기 앉아 있으면 아주 선경인데
저쪽으로는 울긋불긋한 것들이 보이지,
바람 소리가 정말 파도 소리가 이렇게 나지,
근데 이쪽으로 돌아보면 맞은편 산록에 5월 1일 그때가
초록색이 몇만 가지 초록색이 셀 수 없는 초록색이 다 달라요.
초록이 다 달라. 그때쯤 되면 같은 초록은 하나도 없고 이제 피는 것부터
조금 짙은 것부터 하여튼... 그 칼라가 기적 아닌가요?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어디에 생각을 뺏기면 아무것도 못 보지만
놓여 나면 순간순간 주어지는 모든 것이 지금이 존재의,
이 책에 나오는데 기쁨이...
그러니까 의식의 다른 이름은 기쁨이에요.
의식이 깨어있을 때는 매사가 기쁨을 품어요.
난생 처음이지 어린아이처럼 신기한 거 있죠. 신기. 놀이동산 간 것 같은.
그러면서 이걸 쓰기가 바쁘구나 인생은.
인생은 주어지는 찰나찰나 새롭게 주어지는 이것 쓰기 바쁘지,
근데 대부분의 인간들은 과거의 업의 발목이 잡혀 가지고
그거하고 싸움을 하고 인생을 다 소비하고 있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이 전환, 지금 찰나 생(生) 찰나 멸(滅)인데
찰나 생을 보는 사람은 매 순간 순간이 난생 처음이기 때문에
다 기적 같은 거예요.
소리 하나도 기가 막히고, 하여튼 모든 것이 다 기적이지 않나요?
숨쉬는 것, 모든 게 기적이라구요.
이거를 지금 우리가 생각 하나를 어디다 두느냐에 따라서
무의식이면 틀림없이 생각이 빨려 들어가고
생각이 빨려 들어가면 과거 미래가 그냥 복잡하게 펼쳐지고.
의식 하나가 딱 되면 여러분,
의식이 깨어나면 과거 미래가 있어요?
없는 이유는 생각이 없기 때문에.
의식이 깨어나면 생각이 없다.
여러분 톨레의 근본을 기억합시다.
당신 즉 의식. 기억나세요? 여러 번 나왔어요.
당신 즉 의식. 마음 즉 생각.
생각으로 들어가면 복잡한 마음 세계가 펼쳐지고
의식으로 딱 깨어나면 지금 '나'라고 하는 이 존재가 신비예요. 신비.
그것이 지금 텅 비어 있는데 이 모든 인연이 이렇게 펼쳐지고 있어서
알고 보면 여러분, 아프리카에도이 신비가 없을까요? 아무리 못 산다지만.
중남미라고 없을까요?
(...)
30:07
여러분 북극에 간다고 이거 없을까요?
거기서 또 그 인연으로 또 이렇게 주어지겠죠.
그러면 우리는 여러분 내가 불만족스럽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과거 미래에 사로잡히면 한없이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잖아요.
비교하게 되니까.
근데 지금 현재 깨어 있다면 유니크 하잖아요. 유니크. 한 번뿐인.
그래서 아까 사이간(間)처럼 이 선불교가 미학이 되면
사이 간, 아까 사이 간 이해하시겠어요?
생각과 생각이 소리와 소리가 딱 끊어지는 그 순간.
여러분 어느 책에 보니까 '탱고'란 춤 있잖아요?
탱고의 아름다움이 어디 있느냐 하면 그 격렬한 춤이 멈출 때 있대요.
탱고의 의미는 그 격렬한 리듬과 움직임 속에서 멈출 때, 텐션(tension)일 때
상대방 인간과 인간이 느끼는 그 침묵 속에서 전해지는 텐션
그게 탱고의 묘미라는 거예요.
여러분 그 격렬한 춤에 찾아오는 그 침묵이
거기에 탱고의 정수라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때 두 사람이 다 사라지고 너와 나는 사라지고
춤추는 사람은 없어지고 이거 하나가 드러난다 이거예요. 이해되세요?
지금 모든 인간의 우리가 느끼고 있는 초월적인
그런 예술이 되든 종교가 되든 어떤 초월적인 것과의 소통
혹은 초월적인 것이 나를 통해서 흘러나오는 것,
그것이 이제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존재 의미,
그래서 이걸 미학으로 해서 유명한 말이
법정스님 책 제목이 법정스님 책 제목이 1기(期) 1회(會)라는 책 제목이 있죠.
1기 1회.
1기는 한 번의 타임. '기'는 기간.
그러니까 1기라는 말은 지금 이 순간이란 말이에요.
1회라는 것은 한 번의 만남.
여러분께서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 귀한 일요일 날
이 오전에 이 시간에 여러분이 시간을 내 가지고 이렇게 오신 이유가 뭐냐?
저는 알아요. 1기 1회이기 때문에.
이 타임에는 한 번에 만남 밖에 없어요.
만남을 가지려고 지금 우리가 이렇게 모인 거예요.
자 그러면 이때 회는 만남인데 모든 찬스는 모든 만남을 가지고 온다.
무엇과의 만남인가? 본질과의 만남인 거죠. 그렇지 않나요?
여러분께 여기 왜 오세요?
본질을 공유하기 위해서.
희안하게 우리가 지금 법회할 때는 법회할 때는 인간은 사라지고
회는 법을 만나는 거죠.
한 번의 기회에서 한 번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할 때
결국은 우리가 이렇게 지금 여기 또 저 지방에서 이렇게 올라오시고
뭐 다양한 분들이 이렇게 올라오셨는데
이렇게까지 일부러 이렇게 시간과 공을 들여서 오시는 이유가
본질과 만나기 위해서.
본질이 가운데 있고 인간은 다 숨 죽여 버린다.
본질이 드러나는 이런 찬스를 우리가 향유하기 위해서.
이게 이게 인생에서 아름답지 않나요? 의미가 있다고 할까,
이것을 자주 공유하게 되면, 여러분 일기 씁시다.
일기도 이거예요.
1기(期) 매일 눈 뜰 때마다 한번의 만남이다. 맞지요?
요거 기록하자는 거예요. 1기 1회를.
그래서 법정스님이 이 글을 좋아해서 '1기 1회'란 제목으로
수필집을 만드셨는데, 1기 1회는 사실은 다도(茶道)에서 쓰는 말이에요.
다도라는 전체 목적이 본질과 만남이에요. 그 기회를 가지니까.
그래서 특히 아까 말씀드렸듯이 이 간(間) 자 중에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사람들이 모임에서 대화가 끊어졌을 때, 대화가 끊어졌을 때
그때가 진짜 '1기 1회'다 이거예요.
여러분 대화가 끊어질 때 누구 만나요, 우리가?
깨어있는 깨어 있는 그거. 근데 보세요.
우리가 마음 공부의 뜻이 있으니까 오히려 침묵하는 순간
연속되어 있고
나도 깨어있고 인간은 사라지고 생각이 없으니까
모든 분별은 사라지고 오직 깨어있는 요거 하나를 공유하는
그 시간을 맛을 아는 사람이니까 그 시간을 그렇게 좋아하지만,
이 맛을 모르는 사람은 그 순간에 견디지를 못해요. 저는 많이 느껴요.
그러니까 아는 사람끼리 차를 마실 때는 대화가 끊어질수록 좋은데
모르는 사람하고 차를 마실 때는 그 대화 끊어지면 사람은 그럼 미쳐버려요.
여러분 바로 핸드폰 꺼내요. 진짜 진짜로 관찰해보세요.
대화가 끊어지면 바로 핸드폰 꺼내서... 우리의 정신 상태 아시겠어요?
그만큼 무의식 상태다.
그래서 대화가 끊어질 때 의식이 오는데
그 의식을 견디지를 못하는 거예요. 일반인들은. 이해되세요?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일종의 이런 습관을 거슬러 올라가는 중이에요.
그러니까 힘든 거예요. 잘 잘 까먹어요.
그래서 자꾸 자기를 되돌릴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결론은 뭐냐면 여러분
결론은 이 의식이 드러나는 순간을 화두라고 해요.
정확하게 정말로 화두에 대한 최종적인 정의를 내린다면
이 의식이 딱 드러난 그 순간을 화두라고 해요.
그래서 화두 놓치면 죽은 목숨이다.
요게 화두 놓치면 무의식이다 이거예요.
화두 들면 의식 상태다 이거예요.
이 순간이 의식이냐 무의식이냐 이것밖에 없잖아요. 그렇지 않나요?
좁다고요. 여러분 실제로 우리가 싸우는 것은 좁아요.
지금 이 순간 밖에 없어요.
이 순간에 내가 의식 상태냐 무의식 상태냐, 명이냐 무명이냐.
명이면 화두고 무명이면 의식을, 화두를 놓친 거예요.
그러면 화두라고 하는 장치가 없으면 자기를 챙길 때 막연해요.
근데 화두라는 것이 있어 가지고 아침에 눈 뜰 때부터
왜 눈 뜰 때 이런 관찰이 벌어지느냐 하면 화두를 챙기기 때문이에요.
눈 뜰 때 화두 챙기는 거죠.
그러니까 이거 하나가...
화두라는 것이 없이 그냥 생기는 거 하고
화두에 목숨을 걸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순간순간 화두를 챙기는 삶.
그거 하나가 그 사람을 인생을 정말 바꾸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인간이 약해서
화두라고 하는 이런 어떤 매개체가 없으면 쉽게 깨어있기 어려워요.
얼마나 유혹이 많아요.
근데 나는 화두에 목숨을 걸었다, 그런 사람이라면
매 순간순간 화두를 챙긴다면 챙길 때마다 깨어있게 된다.
40:04
이 책의 결론은 화두 듭시다에요.
솔직이 한국인으로서 그래서 어쩌지고 할 때
이 모든 내용이 화두라고 하는 말 하나 속에 다 녹아 있어요.
이 책 전체가.
화두 드는 참선은 한국밖에 없어요.
중국은 염불 하구고요, *염불선(念佛 禪)이 돼있고
일본은 *공안선(公案禪)이에요. 공안을 푸는 거예요.
공안선 아니면 *묵조선(默照禪)이에요.
그런데 한국은 *화두선(話頭禪)이거든요.
【 < 다음 어학 사전 >
화두선(話頭禪): 화두로 삼매의 경지에 오르는 참선.
염불선(念佛 禪): 경전을 읽고 염불을 하는 참선.
공안선(公案禪): 공안을 공부함으로써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참선.
묵조선(默照禪): 묵묵히 자기 자신을 관조하는 참선. 】
40:35
그 화두 하나가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어요. 그 하나에.
지금 이 톨레의 가르침,
그러니까 처음에 화두가 시작할 때는
한번 세게 집중을 하는 단계가 필요해요.
근데 그게 화두에 진면목이 아니라
화두의 진면목은 의식을 자각했을 때부터
매 순간순간 챙기는게 없이, 이게 화두라는 거예요.
화두 들고 있는 사람과 화두 놓치는 사람의 차이,
관세음보살이 타고 계시는 저 용이 화두에요.
용머리를 관세음보살이 딱 타고 있다 이 말은
화두 들고 있다 이 말하고 같은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그 사람 인생을 가른다.
왜냐? 인간은 약해요.
어떤 매개체가 없으면 수행을 끌고 가기가 어려운 거예요.
살면서는 계속 우리를 산란하게 만드는 우리 마음을 빼앗는 것이
계속 나타나기 때문에 이 화두를 가지고 대적해 나가는
어떤 매개체가 필요해서 그걸 지금 한국인들은 채택했다.
그리고 나는 한국에 잘 태어났다. 그래서 화두한다.
누가 뭐래도 누가 뭐래도 누가 다른 사람들이 화두 어렵고 하면
모르는 소리인 거죠.
여러분 수행이 쉬워요, 어려워요?
자기 무의식을 거스르는 이것이 무의식을 바로잡는 일이 쉬워요, 어려워요?
어렵잖아요. 화두 어려운 거예요.
쉬우면 여러분 쉬운 것만 찾아가는 건 뭐예요? 말이 돼요?
그러니까 그런 거예요. 이거는 쉽고 어려운 것이 아닌 거예요.
인간이라면 태어나서 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깨어있는 행동은 일행삼매다. 이해되세요?
일행삼매. 깨어있는 행동은 뭐냐? 일행삼매다.
육조 스님 계실 때는 화두가 없었어요. 그때는.
육조 스님은 7세기 사람이에요.
우리 원효, 의상과 같은 시대, 600년대 7세기 사람.
근데 화두는 12세기 1100년대, 송나라에서 나왔거든요.
화두는 왜 나왔는가?
육조스님의 가르침을 우리한테 뭔가 매개체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
화두가 나온 거예요.
그러니까 맥은 같은 맥이다.
그래서 일행삼매는 화두 들고 사는 삶이라고 할 수 있어요.
43:11
< 깨어있는 행동에 세 가지 방식은
받아들임,(수용이라고 하는 거죠.) 즐거움, 그리고 열정이다. >
지금 톨레는 깨어있는 행동이 실제로 옮겨지는데는 요 세 가지
형태로 행동이 나타나더라 라고 지금 적고 있어요.
근데 제가 보기에는 좀 극단적이야.
훨씬 더 깨어있는 행동은 받아들임 당연하죠.
그리고 즐거움 열정, 지금 여기서 설명을 했는데
받아들임을 우리 식으로 말하면 받아들임을 저는 지족( 知足)이라고 봅니다. 지족.
지족이라는 말은 만족할 줄 안다, 그 말이죠. 만족할 줄 안다.
그러면 우리의 정신이 어디에 있으면 만족하게 되는가?
현재에 있으면.
지금 샘솟는 현재에 있으면 언제나 만족할 수밖에 없어요.
여러분, 공짜로 주어지는 거 아니에요? 이 현재가?
다시 한번
여러분, 현재라고 하는 시간은
보세요 현재라고 하는 시간이 이 순간에도 샘솟는다는 건 아시겠죠?
이해되세요? 어디서 샘솟나요?
자, 질문.
현재라는 시간이 어디서 샘솟아요?
1분 드릴게요 1분. 한 번 답을 한번 말해보세요.
분명히 샘솟지요? 새로운 시간이 샘솟지요? 어디서 샘솟아요?
의식 속에서만 샘솟아요? 얘(보드마카)도 새롭지 않나요?
현재가 어디서 샘솟아요?
45:23
이게 지금 중도(中道) 연기(緣起)예요. 제가 중도 연기를 묻는 거예요.
지금 현재라는 말이나 지금 여기라는 말이나 이게 다 같은 말이에요.
지금 여기가 어디서 샘솟느냐?
자, 1분 돼가지요?
놀랍게도 본질이 지금 현재가 샘솟는데 어디서 샘솟느냐면
현상으로 샘솟는 거예요. 사물 속에서 샘 솟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사물이 현재예요. 요 사물의 정체가 현재예요.
그러니까 모든 현상이 본질이 나오는 연기(緣起) 중도(中道) 지금 불이(不二)의 뜻이,
여러분 그러니까 현재를 다른 말로 합시다. 시간, 시간이 흐르지요?
어디서 흘러요? 아니 시간이 어디서 흐르냐고?
어디서 흐르냐면 물건들에서 흘러요. 이게 시간이에요.
그러니까 얘(보드마카)의 정체성은 시간인 거예요.
시간이에요. 시간이에요. 소리도 시간이고.
그러니까 여러분 시간이 어디 저 멀리서 흐르지 않죠?
어디서 흐르냐면 물체들이 시간이야. 물체 그것이 시간인 거예요.
에센스가 시간이야. 현재가 어디서 샘솟느냐,
물건 하나 하나가 다 현재인 거예요.
이것이 즉(卽)이라고요. 즉. 벌어지지 않은 것.
현재하고 물건이 벌어지지 않아요.
따로 현재가 샘솟는 곳은 없어요.
따로 시간 흐르는 곳은 없어요.
그럼 시간이 어디서 흐르는가?
얘네들이 시간이고 현상이 시간이다.
현상 자체가 시간이라는 거예요.
그럼 우리는 누구인가? 시간이다.
근데 시간이 뭐냐?
본질이 움직이는 것이다.
승주 계곡으로 나타난 건 현상이라고 부르는데
나타난 것이 뭐냐 할 때는 본질이다 이 말이에요.
현상이 그대로 본질이지
현상을 떠나서 어떤 본질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아 이거 좀 어려운 이야기에요.
이게 최종적인 깨달음의 중도 불이 연기의 최종적인 모습이에요.
그러니까 이 즉을 이해 하기는 머리로 따라오는 것을 넘어
하여튼 어떤 어떤 통찰 초월이 있어요.
48:33
따로 시간 흐르는 곳은 없어요. 지금 이것들이 그냥 시간이라 이것들이.
그러니까 이게 물질을 보는 것이 시간을 보는 거예요.
그 시간이 뭐예요? 지금이 순간에 시간이라는 것은 본질이 된다 이 말이에요.
그러니까 본질과 현상이 완전히 하나에요. 이게 딱 붙어 있거든요.
이 간격을 분별심 때문에 우리가 못 보고 이걸 넘기 좀 어려워요.
왜냐? 분별심 때문에 이걸 넘기 어렵지만 그러나 오랫동안이 관찰을 하면
그러니까 이런 것도 좋은 화두에요.
49:37
본질이 본질로 안 있고 이 현실로 지금 나오고 있다고요.
이게 최종적인 진리라구요.
색즉시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즉시색이에요.
색즉시공은 무심, 근데 무심은 한겹 막혔다.
평상심이 진리다. 평상심이 도다.
평상심은 뭐냐? 무심에서 현상계로 나오는 것.
그게 평상심이다. 한 단계 한 수 위다, 그게.
왜냐하면 무심은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에요. 어따 쓰려고. 무심을.
최종적으로는 잘 살자는 거예요.
잘 살려면 무심에서 살아야 잘 살아져요. 그렇지요?
무심이란 말은 마음을 뺏기지 않은 상태잖아요.
그래야 천수천안 으로 살 수 있잖아요.
지금 천수천안이니 1기 1회이 모든 모습들이
평상심의 모습이에요.
그리고 선불교가 살아나려면 이런 평상심이 대중화 되어야
우리한테 도움을 주는 거예요.
선이 참선이 무심을 강조하면
어디다 쓸라고, 그래서 어쩌라고, 하면 할 말이 없어져 버려요.
근데 무심이 끝이 아니고 평상심이, 우리가 보살행이에요. 한마디로.
보살행이 공부의 마지막이라서 실천이에요. 생활에서 실천.
그래서 사실은 여러분 방금 그 의미에 따르면
본질이 현상으로드러난 본질이 부처잖아요.?
맞아요? 본질이 부처잖아요?
그럼 그 부처가 어디 있느냐 이 말이에요.
본질은 본질로 있지 않고이 순간에도
프레젠트로 현상으로 나오고 있는 거예요. 다 부처예요.
요게 제 손에 있는 보드마크가 보드마카불(佛)이에요.
여기에 본질로서는 법신불이지만 법신불이 지금 보드마카로 화신불로
지금 이렇게 드러나고 있는 거예요. 두두 물물이 다 화신불이에요.
그래서 완전히 똑 떨어지는 거예요. 모든 것이.
이렇게 되면 세계 평화를 어떻게 할까요? 그게 아니라
당신 마음에서 깨달음이 일어나면 매 순간순간
모든 것이 부처의 마음이 되어 버리니까. 지족한다.
지족한다는 말도 이해되세요?
만족할 줄 안다. 아름답지 않나요? 이 세상이.
받아들임이 지족이고, 즐거움은 우리가 기쁨이라 그러죠?
템플스테이에 가면 템플스테이의 시냇물 흘러가는데 그 웅덩이마다
새벽과 저녁이 되면 해 뜰 때와 해질 때가 되면 모든 물고기들은 물에서
수직으로 튀어 올라요 이걸 '어약(魚躍)'이라고 해요.
어약(魚躍), 고기가 뛴다.
여러분, 유교 있잖아요? 유교의 최종 결론이 뭔지 아세요?
공자 맹자 가르침에 최종 결론.
중용에 나오거든요. 그 결론을 내린 데가 그 책이 중용인데,
중용의 제일 핵심적인 단어가 연비어약(鳶飛魚躍) 이에요.
연(鳶)은, 솔개는 날고 고기는 뛴다.
이게 유교도 최종적인 결론이에요.
유교도 결국에는 생명력이 이렇게 약동하는 생명력대로 살자는 거야.
솔개가 날고 고기가 뛰는 것처럼 인간도 자기 생명의 꽃을 피우자.
이게 유교의 가르침이자 이게 그 결론이에요.
불교도 그렇다 이거예요.
기독교도 당연히 그렇고.
결국에는 무슨 이러쿵저러쿵하는 이론이 아니라
이 순간 샘솟는 이거를 따라서,
여러분 결국은 이 순간에 기가 뿜어 나오는 거 아닌가요?
현재가 이 세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은 기가 뿜어 나오는 거다.
그 기 뿜어 나오는 것을 솔개가 날고 이 고기가 뛰는 것으로 표현된다 이거예요.
굉장히 재밌고 기가 막히거든요.
마곡사 같은 데 가보면...
Y자 강 두 개가 만나는 딱 그 태극, 삼태극기 있잖아요.
삼태극 모양이 마곡사 터인데 그 딱 간 두 개 만나는 거기에
넓은 연못처럼 이렇게 물이 있는데 마곡사 템플스에 가면 새벽에 넋을 놓아요.
거기서 얼마나 많은 물고기들이 뛰어오르는지.
생명의 약동을 말하는 거예요.
기쁨은 기가 뿜어지는 것이 기쁨이에요.
우리 말이 참 기가 막히지 않나요?
기쁨이라는 말은 우리가 현재에 살게 되면 기가 뿜어 나오게 되어 있어요.
고기도 뛰고 솔개가 나는데 인간이 얼마나 이 기쁨이 넘치느냐 이거예요.
기가 뿜어져 나오는 그것이 생명의 약동하는 모습이다, 라고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고.
55:10
< 삶의 주된 목적은 의식의 빛을 이 세상 속으로 가지고 오는 것임을 깨닫고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을 의식을 위한 매개체로 삼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새로운 지구가 탄생한다. >
이게 지금 톨레의 결론이에요.
이 책에서 모든 톨레가 하고 싶은 말의결론은...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 삶의 주된 목적은 (다른 사람 말고 나. 내 인생의 주된 목적은)
의식의 빛을 이 세상 속으로 가지고 오는 것임을 깨닫고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을 의식을 위한 매개체로 삼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새로운 지구가 탄생한다.
순수한 있음의 기쁨은 의식이 깨어있는 기쁨이다. >
이 말도 동감 되지요?
의식이 깨어있으면 여러분 순수한 기쁨이에요.
기가 뿜어져 나와요. 기가 뿜어져 나온 다는 것은 뭐예요?
본질이 현상계로 뿜어져 나온다 이 말이에요. 그게 기쁨이에요.
< 그때 깨어있는 의식은 에고로부터 권한을 넘겨 받아
당신 삶을 운영하기 시작한다.
그때 당신은 지금까지 오랫동안 해온 행동에 의식의 힘이 실려서
자연스레 더 큰 무엇인가로 확장되는 것을 발견한다. >
이것이 인간의 성숙이에요.
그러니까 인간의 성숙은 자기 형상의 발현이 아니라
자기 형상을 통해서 본질의 발현을 이룰 때
인간은 끝없는 성숙이, 성장이 이루어진다.
모든 예술은 여러분, 모든 예술은
제가 끝나고 여기 인사동에 갤러리들이 많잖아요.
작품이라는 것은 딱 보면 누구라도 첫 눈에 에고가 나온 거냐,
그 작품의 주제가 에고가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한 거냐,
아니면 에고는 사라지고 본질이 드러난 거냐, 를
딱 보는 순간 우리가 알 수 있어요.
정말로 눈이 번쩍 떠지는 그런 작품들이 나와요.
그때는 진짜 감동이 있어요.
왜냐하면 그 순간 나도 본질하고 접속이 되니까.
그 작품을 통해서 내가 본질하고 접속이 되니까. 이해되세요?
모든 명작은 음악이든 미술이든 연극이든 영화든 그걸 통해서
우리가 본질과 연결되는 것이 명작이에요.
근데 나가 죽고 나를 통해서 본질이 드러나는 통로가 될 때는 정말
무한한 힘이 기쁨이 번져 나오는 작품이 탄생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공부를 하게 되면 계속 본질에 가 있어요.
우리의 시선이 본질에 가 있어요.
그래서 이 통로를 통해서 본질이 드러날 때는
정말 엄청난 울림이 공명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게 인생의 기쁨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지금 인생의 우리 인간의 존재 목적이 무엇인가?
나를 통해서 본질이 이 땅으로 나오는 그 그 매체가 되는 것.
지금 그게 지금 톨레가 그렇게 주장하고 있어요.
58:55
끝에 마지막을 보고 이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 새로운 지구는 이상향이 아니다. >
이게 마지막 단락입니다.
두 번째 단락을 보겠습니다
< 모든 이상향의 그림들 핵심에는
낡은 의식의 구조적 균형 장애가 한 가지 있다.
구원을 미래에서 찾는 것이다. >
여러분 이것도 중요한 이야기에요.
우린 자기도 모르게 구원을 미래에서 찾아요.
지금은 없고 노력을 해서 미래에 있을 것이다.
이게 이상향의 구조예요.
그런데 < 미래는 다만 당신 마음속에 생각 형태로만 존재할 뿐이다.
따라서 구원을 위해 미래를 바라볼 때 당신은 무의식 중에
당신이 생각 속에서 구원을 찾게 된다.
즉 형상 속에 갇히게 된다. 그것이 에고이다.
성서에는 그리고 나는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을 보았다. 라고
성서에 예언자는 쓰고 있다.
새로운 땅의 토대는 새로운 하늘 즉 깨어난 의식이다. >
여러분 새로운 하늘, 성서에서 말하는 새로운 하늘.
어떤 예언자가 새로운 하늘을 보았다, 할 때 새로운 하늘이 뭐냐?
깨어난 의식.
그러니까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늘나라가 무엇인가?
의식이다 이거예요. 하늘나라.
깨어난 의식을 하늘나라라고 본다.
신국이란 말을 쓰시잖아요. 신의 나라 신국.
의식을 말하는 거예요. 깨어난 의식.
< 즉 그리고 땅은 즉 외부 현실은 그 깨어난 의식이
외부로 반등 된 것일 뿐이다. >
톨레도이 말을 했네요.
여러분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을 보았다, 라고 성서에 예언자는 말하는데
이때 말하는 새로운 하늘은 깨어난 의식이고
새로운 땅은 깨어난 의식이 투영되는 세계, 반영되는 세계,
그게 새로운 땅이다 이거예요.
그것을 지금 여러분 미래의 언젠가 해야 될까요? 아니면
지금 당장 우리가 해야 될까요? 지금 당장 해야 되죠.
그러면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이 나타나려면 누구를 통해서 나타나요?
나를 통해서 나타나요.
지금 이 순간 주어지고 있는 이 한 번밖에 없는 이 순간,
호흡 하나라도 기적 아닌가요? 숨쉬는 이것이 기적이다 이거예요.
이 매 순간순간 기적을 느끼는 거, 이때 나만 그런 좋은 게 아니라
하늘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이 출현하는 거다 이거예요.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은 나를 통해서 출현한다.
우리가 개인적으로는 걱정거리 있어요. 안 그래요?
걱정거리 있어요.
그것이 없어진다는 게 아니라 내가 깨어나면
그 걱정거리도 지혜로서 처리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깨어난 의식은 반드시 지혜를 가지기 때문에.
다시 말하면 촛불은 반드시 빛을 내요.
의식은 반드시 지혜를 내요.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
내가 의식이냐 아니냐 이거 하나가 인간의 갈림길이다.
매 순간순간 갈림길이다.
지금 깨어있느냐 혹은 습관대로 생각 속에 딸려가서
과거 현재 어둠 속에 빠지느냐 요거 하나를
내가 이 순간 하느냐 안 하느냐 이것밖에 없다.
여러분, 좁아요. 전선은 좁아요.
그러니까 매 순간순간 정신 차리기.
그런데 혼자서는 금방 옛날식으로 딸려 들어가요.
그러니까 자주 만납시다.
하여튼 읽어보고 싶어도 그게 그거예요.
시간은 지금 많이 갔고 그래서 좋은 단어로 끝나네요.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하늘은 깨어난 의식이 새로운 하늘이고
깨어난 의식은 이 세계를 새로운 땅으로 바꾸어낸다.
그걸 누가 하느냐? 내가 한다.
언제 하느냐? 지금 한다.
어디서 하느냐? 여기서 한다.
이거를 우리가 실천해 나가는 사람이 됩시다.
톨레와 참 고맙네요. 참 좋은 문장들이죠. 그죠?
참 톨레 좋아요. 감사합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