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오운교의 시 세계 생명성 탐색 혹은 영혼의 시학 김 송 배 (시인.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1. ‘삶의 여정’에서 인식한 생명성 대저(大抵) 요즘 현대시의 경향이나 양상은 주지적(主知的)인 주제의 투영으로 작품 전체의 성향이나 지향점을 탐색하는 시인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이는 그들이 추구하는 현실과 작품 사이에는 어떠한 괴리(乖離)와 조화가 있는가를 스스로 비교해보는 시법(詩法)을 선호한다는 점을 간과(看過)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찍이 프랑스의 근대 탁월한 시인으로서 상징주의의 비조(鼻祖)라고 할 수 있는 C.P. 보들레르는 시의 목적은 하나의 진리나 도덕을 노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전제 아래 인간의 기쁨이든 슬픔이든 시는 항상 그 자체 속에 이상을 좇는 신과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견해는 현대시가 전개과정에서 동시에 투영되어야 할 이미지 또는 표현에 있어서 어떤 진리나 윤리적인 측면에서 작품을 해석하거나 감상을 해서는 안되며 우리들의 체험에서 상상력이 형상화한 희비(喜悲)의 체험들이 경외(敬畏)하는 신과의 교감이 있어야 한다는 요지의 교훈이다. 여기 오운교 시인이 상재하는 첫 시집『돌고래 하늘 날다』에서 보이는 그의 시적 상황 설정들이 대체로 우리 인간들의 삶과 연관된 내면의 진솔한 ‘여정’이 적나라(赤裸裸)하게 현현되어 있다. 거기에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바람 가르며 / 심장 멈출 듯 가랑가랑한 호흡으로 / 대신할 수 없는 삶 일그러진 얼굴들.(「경주자」중에서)’이라는 어조(語調)와 같이 현실적인 삶(real life)에서 추출한 이미지들이 시적인 진실로 흡인(吸引)하고 있다. 미끄러운 길 오가는 발자국들 욕망의 무게로 휘청 거릴 때 순간 실수도 용납 못 하는 현실에서 도사린 살얼음판 허술한 몸놀림으로 공동체 밀려나 거리 떠도는 군상들. 한 번 넘어지면 일어서기 어려워 조심스럽게 익숙해져가는 종종걸음 삶의 여정 오뚜기 지혜로 반석 다진다. --「빙판길을 걷는다」중에서 그렇다. 오운교 시인은 ‘삶의 여정’을 ‘오뚜기 지혜’로 상상력을 반추(反芻)하면서 위기의 ‘살어름판 허술한 몸놀림’으로 비유하는 현실을 적시(摘示)하고 있다. 이러한 비유나 이미지는 일상적인 교훈으로 수용하지만 시적 상황의 도입에서부터 그 전개과정이 삶이라는 대전제 아래 그의 ‘질긴 생존의 몸부림으로’ 여과(濾過)하고 있음을 이해하게 한다. 그는 다시 ‘욕망의 무게로 휘청거릴 때 / 순간 실수도 용납 못하는 현실’을 이해하고 이를 조화롭게 인식하는 시적인 지혜를 분사(噴射)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진실은 ‘바람이 세월 휘감아가는 동안 / 어느새 그들 얼굴 노인 분장이지만 / 온갖 삶의 흔적 곱씹으며 환한 미소로 / 서로 덩그러니 어깨 기댄 채 앉아 있다.(「늙은 구두」중에서)’는 ‘삶의 흔적’은 ‘생존경쟁’과 ‘윤택한 기상’이 어떤 체념으로 변환해서 긍정의 인식으로 재현되고 있다. 삶의 가치관 한 순간 삐거덕 어긋나면 헛걸음질로 헤매다가 수난 당하기 일쑤다 세상은 태연한 척하는 속임수에 잘 넘어가며 사람들은 엉뚱한 말장난에 놀아나 오리무중이고 늘 옹색한 변명은 결과를 x자로 선 긋는다. 삶의 본질 벗어나면 절망의 나락에 떨어지지만 과장 푸념 어처구니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때 숨겨진 의미가 고개 끄떡이게 탈바꿈 시켜서 오류의 역설도 잘만 활용하면 재치만점이다. -팍팍한 삶에서 톡톡히 한 몫 하는 활력소 역할. --「오류의 역설」중에서 오운교 시인은 이 작품에서도 그가 주창(主唱)하는 ‘삶의 가치관’이나 ‘삶의 본질’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인본주의(humanism)에 근원을 둔 그의 인생관이 형상화하고 있어서 그의 시 세계는 어차피 인생과 그 삶의 원류에서 이탈할 수 없다는 결론을 이해하게 된다. 그가 마지막 결론으로 제시한 ‘팍팍한 삶에서 톡톡히 한 몫 하는 활력소 역할.’은 현실적인 오류에서 시적인 함의(含意)를 투영하면서 진지하게 삶에 대한 탐색을 하고 있다. 이러한 ‘오류의 역설’은 긍정과 부정 사이에서 갈등의 요소를 동반하지만 이를 ‘잘만 활용하면 재치만점’이 될 수도 있다는 긍정적 수용임을 읽을 수 있다. 한편 그는 ‘내려앉은 오색찬란한 별꽃들 / 거미줄로 얽혀 생명력으로 빛나 / 길게 늘어진 안개 꽃길 어울리며 / 구원 메시지 전하는 피멍든 십자가.(「서울 야경」중에서)’라는 어조와 같이 ‘생명력’의 구현이 바로 ‘구원 메시지 전하는 피멍든 십자가’로 현시(現示)하는 현실 인식에서 형성하는 고뇌의 일단이 형상화하고 있다. 이 밖에도 작품「해녀의 삶에」서 ‘잠수 인생 오르락내리락 반복하며 / 곤고한 삶에서 울컥울컥 쏟아낸 푸념 / 속 깊은 바다가 온종일 희석 시켜주지만 / 물질하는 하루하루 고단한 여정이다.’라거나 작품「하늘 화첩」에서 ‘버거운 삶에서 하늘 화첩을 거울삼아 / 지혜롭게 마음 화첩에 하나 씩 옮겨 담는다.’, 작품「릴레이 여정」에서 ‘수심(水心)을 가늠하며 완주하는 끈기 시험장 / 물과 우리 삶은 천생 닮은꼴이다.’라는 어조와 같이 우리의 삶이 적시하는 다양한 시적 화해의 이미지를 많이 보여주고 있다. 오운교 시인은 다음 작품「미련」중에서 이렇게 현현하고 있다. 미련스레 우매한 짓만 일삼던 일상 지금은 미련퉁이라 불려도 유구무언이다 얼기설기 얽힌 미련의 극치 각별한 지혜로 풀었으면 행복한 삶으로 더 풍성했을 것을 참 아쉽다. 2. ‘허둥대는 영혼들’과 ‘행복 찾기’ 오운교 시인에게서 다시 유념하게 되는 부분은 삶이나 그 생명력에서 분화(分化)하는 영혼에 대한 집념이다. 그 영혼의 범주(範疇)는 그의 신앙과도 무관치는 않겠지만 그 영혼이 어떤 방황과도 상관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우선 이 시집의 표제시가 되는 「돌고래 하늘 날다」전문을 살펴보면 이해가 빠르게 다가온다. 유선형 날렵한 몸매로 오대양 누비며 활개 치던 무리 바다가 성에 차지 않아 볼쏙거리다가 바람에 업혀 허공 날려는 속셈인가 사뭇 치켜 오르려고 몸부림친다. 인명 구원으로 친숙한 그들은 영민하기 소문나 조련에도 능란하다 탐욕 그득 담긴 육중한 몸이지만 종일 널뛰기 수만 번씩 하늘 닿는 훈련 빛의 속도 오르내리며 담금질 중이다. 늘 하늘 날려는 소망 품은 영혼들 오묘스런 섭리에 지혜의 날개를 펼쳐 종내 영원한 공간에서 부활의 꿈 이루다. 보라. 오운교 시인이 간구(懇求)하는 ‘소망 품은 영혼들’의 향연에는 ‘섭리의 지혜’와 ‘부활의 꿈’이 항상 내재하고 있다. 이러한 비상(飛上)의 실재적인 상황에서 그가 추구하려는 이상(理想)의 세계는 ‘탐욕’이라는 생명의 근원을 실체로 발현하는 ‘돌고래’를 통한 이미지의 함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종일 널뛰기 수만 번씩 하늘 닿는 훈련 / 빛의 속도 오르내리며 담금질 중이다.’라는 어조에서 우리 인간들의 미약(微弱)한 육신의 고뇌가 현현되면서 그가 지향하려는 영혼들의 오묘함과 영원함을 동시에 구현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이 영혼의 정의는 철학에서 보면 생명 자체가 한 생물의 제일 현실태, 근원 및 목표로서 이 생물 안에 있고 자발적으로 행위와 산물(産物)을 산출해내는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영혼과 동식물의 영혼은 구별이 되는데 이런 구별은 인간의 영혼에는 본질적으로 ‘밖으로부터’ 정신이 들어와서 영혼에게 진정한 인식과 행위의 자유를 가능케 해주는데서 생긴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작품「장작불 여정」중에서 ‘자정 무렵 남은 장작 몽땅 넣을 때 / 이글거리는 유황불에서 허둥대는 영혼들 / 얼마간 타닥거리다 이내 포기한 몸짓으로 / 희뿌연 연기와 흐릿하게 재로 남은 흔적 / 영생과 죽음의 간극 새록새록 다가온다.’라는 명징(明澄)한 생멸(生滅)에 관해서 그 결론은 ‘허둥대는 영혼들’에 대한 ‘영생과 죽음의 간극’을 표면화하고 있다. 이와 같은 영혼과의 대화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다. - 불을 안고 사는 화덕에서 / 그는 생존 위한 몸부림치다가 / 종당 눈치 없이 속살 들어내 / 삶에 지친 영혼들을 위로해준다.(「석화(石花) 익어가다」중에서) - 지친 영혼들을 위로해 주는 수목원 / 순수한 자연사랑 담긴 에덴동산 아닐까 / 이곳에서 억겁의 세월 함께하고 싶다.(「천리포 수목원에서」중에서) - 삶의 여정 갈림길에서 / 방향감각 잃어 헤매는 영혼들 / 곤고함으로 갈피잡기 막막한 삶 인가.(「갈아타는 곳」중에서) - 거미줄처럼 엉켜 위선이 난무하는 현실 / 상승욕구와 하강 체험 반복해가는 여정이지만 / 그의 말간 속내 활짝 드러낸 자태 더욱 미덥다. // 맑은 영혼들 모아 달나라로 경품여행 보내줬으면.(「투명엘리베이터」중에서) - 두툼한 몸체로 뒤뚱거리는 영혼들 / 늘 빙판에서 오락가락 비틀거리지 말고 / 등 따스운 아랫목에 누울 소망 이루려면 / 곤고함 탓하며 여유부릴 틈새가 없다.(「일시 정지」중에 서) 이 밖에도 ‘이젠 상상의 나래 펼치는 시인 / 멋진 행과 연을 다듬는 연금술사 / 빛의 소리 유영해가며 심지 굳힌다 / 거친 마음결을 보듬어 영롱한 영혼으로 / 비상하는 언어의 마술사를 갈구한다.(「변신」중에서)’는 어조와 같이 그가 지향하는 시와 시인의 갈구(渴求)를 영혼과 동행하는 그의 심저(心底)를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오운교 시인은 다음 작품 「행복 찾기」전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탐욕에 눈 흐려진 영혼들에게’ 절규하듯이 외치는 ‘행복 찾기’의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게 한다 탐욕에 눈 흐려진 영혼들에게 무던히 참던 겨울 전령 발끈해서 수억만 장 흩뿌려진 새하얀 소식지 몰아닥칠 한파를 귀띔해 준다 똘똘 뭉친 이기심으로 교만의 뿔* 높이 솟아올라 하늘과 사회질서 외면한 채 세상 다 잡으려고 발버둥치지만 헛된 욕망은 허공만 맴돌 뿐 이따금 긴 여정에서 매사를 얼렁뚱땅 해결 하려다가 사랑앓이까지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선(善)한 지혜로 환한 웃음 지으며 감사 넘치는 삶이라면 늘 행복 찾기 정답 그 안에 다 있는 것을. 이와 같이 성경(스가랴 1장:18절-21절)을 인용하면서 ‘매사를 얼렁뚱땅 해결 하려다가 / 사랑앓이까지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라는 갈등이 ‘선한 지혜’와 ‘감사 넘치는 삶’이 결론적으로 ‘행복 찹기’의 ‘정답’으로 적시(摘示)하고 있다. 이처럼 그에게서 ‘영혼’은 모든 작용을 일관해서 걸머지고 있는 근원으로서 ‘나(自我)’라는 의식으로 나타나는 실체성의 철학을 일러주고 있다. 또한 영혼은 순수한 정신과 육신의 단순한 의식현상도 아니고 또 현실적이며 보편적인 정신에 의해서 생성된 미지의 철학을 작품으로 승화고 있어서 공감을 유로(流路)하고 있다. 3. ‘....싶다’는 기원의식의 시적진실 다시 오운교 시인에게서 절실하게 현현하는 메시지는 바로 ‘.....싶다’는 기원의식을 형상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원은 대체로 자신이 체득(體得)한 체험의 소산으로 그 체험이 시적인 발상과 연결되거나 주제로 투영될 때 간절한 기구(祈求)의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데 이는 ‘나’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성찰의 여과(濾過)를 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형성되는 고뇌와 갈등이 화해의 길을 모색하는 일종의 단계에서 기원의식으로 현현하는 경우가 많다. 동생들 행복하게 살길 소망해 날아든 기쁜 소식 부풀려 품으며 애환은 베란다 창틈으로 밀어내지만 그들에게 축복 한 아름씩 안겨주고 싶다. --「둥지 떠난 혈연들」중에서 그를 잡은 끈이 길어야 사람대접 받는다는 말 이명처럼 들었었지만 이제야 실감이 난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배움터를 오가는 일상 우주만물 소멸할 때까지 그와 동행하고 싶다 --「책가방」중에서 꿈길 더듬으며 꿈으로 사는 세상 비밀금고 열기 전 설레는 기대감으로 미로 찾아다니며 밤새 뒤척이다가 한갓 공상만 잉태하다 이슬로 사라진다 이다음엔 서산마루에 걸친 쌍무지개 타고 행운 만발한 여행 그와 또 떠나고 싶다. --「꿈과 여행하다」중에서 남은 인생을 전복죽처럼 영양가 있게 대죽처럼 곧고 푸르게 살고 싶다. --「죽에 반하다」중에서 위에 열거한 작품들에서 특징은 ‘축복 한 아름씩 안겨주고 싶다.’거나 ‘소멸할 때까지 그와 동행하고 싶다’, ‘행운 만발한 여행 그와 또 떠나고 싶다.’ 그리고 ‘대죽처럼 곧고 푸르게 살고 싶다.’라는 어조로 그의 여망을 적나라하게 분사(噴射)하고 있다. 오운교 시인은 다시 이러한 기원은 ‘기원한다’거나 ‘기도’ 등의 언술로도 표현된고 있는데 작품「일개미」중에서 ‘베짱이들의 신선놀음에 휘둘리지 않고 / 등에 업힌 가족들 위한 혼신의 열정으로 / 일터를 생명처럼 알아 빈틈없는 일꾼들 / 그들에게 물질이 축복 넘쳐나길 기원한다.’라거나 작품「돌잔치 전문점」중에서 ‘희망찬 새싹 영롱한 무지개 꿈꾸며 / 미래를 축복으로 지혜롭게 펼쳐나가 / 우주 넘나드는 삶 한껏 누리길 기원한다.’ 그리고 작품「양손」중에서 ‘가끔 수고는 독판하고 손가락질 당하면 서운해도 /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다.’라는 간구의 의식이 형상화하고 있다. 또한 그에게서는 다음과 같은 기원도 있다. 수십 년 간 응어리진 남북관계 개선 서로 한발 물러서서 화해와 소통으로 온전하게 제자리 잡아갔으면 좋으련만. --「회귀(回歸)」중에서 젊은이들 서리까지 너그럽게 감싸주며 전혀 밤손님 취급 않던 넉넉한 시골 인심을 아옹다옹 도시생활에서 한 번쯤 되돌아봤으면. --「별난 원두막」중에서 그들, 스트레스 켜켜이 쌓여가는 민심 헤아려 행복 소망하는 요리고수들의 힐링 맛깔처럼 지혜의 필력으로 날선 길잡이 노릇 해줬으면. --「날선 길잡이」중에서 햇살 조심스레 드는 밥상머리에서 가족 모두가 밥심을 충전하는 하루하루 손가락질하는 바람기 연예인 뺨 칠 끼가 아닌 늘 끼니를 품듯 충만한 사랑으로 살아갔으면. --「끼를 품은 밥통」중에서 그렇다. 여기에서 ‘온전하게 제자리 잡아갔으면 좋으련만.’, ‘한 번쯤 되돌아봤으면.’, ‘지혜의 필력으로 날선 길잡이 노릇 해줬으면.’ 그리고 ‘충만한 사랑으로 살아갔으면.’하고 진정으로 소망하는 의식의 일단이 잘 나타나고 있다. 우리들의 의식에는 이러한 속성(屬性)의 정신세계를 간직하고 있는데 이는 이 세상 존재자들에게 항상 붙어다니는 성질을 말한다. 이 속성은 이 존재자의 본질과 동일하지 않지만 반드시 그 본질에서 생겨난다는 철학적인 개념이다. 우연성은 변화하고 우연적이라는 점에서 속성과 다르며 본질은 존재자를 있는 그대로의 것으로 만들어주는 핵심이라는 점에서 속성과 다르다. 따라서 속성은 ‘본질의 결과’라는 해석을 경청해볼 필요가 있다. 4. 자연과 시간의 함수 그 서정성 오운교 시인은 위와 같은 자아의 성찰이나 자아에 편승하는 의식들은 다시 자연과 동행하면서 서정성을 탐구하는 시법으로 변하고 있다. 그는 대체로 이 서정의 갈래를 세 가지로 분류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는데 우선 자연의 정취에서 수용하는 서정성이며 다음은 이 서정의 뒤에 서 있는 계절의 시간성에서 생각해보게 한다. 그리고 그는 자연 정감에서 획득한 식물적인 시각을 통해서 동화(同化)하거나 투사(投射)하는 시법이 특이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이러한 이미지의 창출(創出)은 주로 시각적인 측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시간과 자연의 함수관계를 적절하게 형상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농익은 연분홍 패랭이꽃 바람에 휘둘리는 연약한 몸이지만 관람객들 관심 끌기엔 일가견 있다. 철따라 녹음 꽃향기 선물 한 아름씩 한 주간 곤고한 심신 회복 시켜주면서 녹색 생명력으로 살가운 정취 교감한다. 수목원 귀퉁이 통나무 쌓아놓은 더미 잰 발걸음 잡아 세우는 그윽한 세월 냄새 긴 인생 은은하게 반추하는 매력 살아있다. 약용 식물원 중앙 큰 까치 수염들 녹색무리로 아름드리 낙엽송을 향해 잠시 숨죽인 채 머리 숙여 기도 중이다. -자연 사랑으로 웃음꽃이 피어나는 쉼터. --「홍릉수목원에서」전문 여기에서는 ‘녹색 생명력으로 살가운 정취 교감한다.’라는 ‘수목원’에서의 정취가 향기롭게 퍼져나가고 있다. 또한 그는 ‘세월 냄새’와 ‘긴 인생 은은하게 반추하는 매력’ 그리고 ‘자연 사랑으로 웃음꽃이 피어나는 쉼터.’라는 어조로 결론을 도출함으로써 우리 서정시의 은은한 맥을 뿜어내고 있다. 이러한 장소의 취택은 작품「홍도의 절경」중에서도 ‘바다와 섬 속속들이 감탄의 불꽃 향연.’라거나 작품「안성 칠장사」에서 ‘새 희망 새 길 되찾은 의미 깊은 산사(山寺).’ 작품「속초 바다에서」에서 ‘늦가을 흔적 백사장에 묻고 생기 되찾다.’라는 서정적 향훈(香薰)을 풍기고 있다. 폴폴 풍기는 싱그러운 새싹 향기로 굳었던 토양 땅심 받아 풀릴 때 슬몃슬몃 다가오는 해동 설렘으로 나무들 새움 돋는 소리에 단잠 깨운다 --「새봄 다가오다」중에서 주변으로 즐비한 꽃 중에서 온몸 정결스레 오롯한 사랑은 에덴동산 천사들의 날갯짓 아닐까. 헛된 욕망 한줌 잡으려고 분수 몰라 허둥대다가 상한 심령 순백 물결로 환한 웃음 짓게 만들어 산뜻하게 풀어줄 힐링 전문 꽃무리. --「나팔나리꽃」중에서 그는 이처럼 시간과 자연의 화해를 형상화하는데 익숙하다. 이러한 서정적인 시법은 바로 우리들 심연(深淵)에서 숙성(熟成)되어 있는 것이다. 그가 순정적인 이미지로 자연을 노래하는 것은 우리의 서정시가 아직도 그 멋과 흥을 발현할 수 있는 적절한 정경(情景)의 미감(美感)을 음미(吟味)할 수 있다. 이러한 작품은「가을산이 저문다」「겨울 풍경화를 품다」등에서 시간성과의 함수를 이해할 수 있으며「담쟁이 넝쿨」「억새무리」「목백일홍」「능소화」등에서 자연성에서도 진솔한 그의 심중(心中)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작품「낙엽길」전문에서 ‘녹색 / 생명력 가득 담긴 가로수들 / 큰 날개 그늘로 / 복더위를 식혀 준다. // 가을 끝자락 / 거역할 힘이 떨어져 / 바닥에 나뒹구는 / 각양각색 물감들이 / 이글이글 타고 있다. // 가끔 바람 휘몰아치면 / 스산한 파도가 일렁이듯 / 밀려갔다 밀려오는 허울 뿐. // -입김보다 더 가벼운 저 시간의 조각들.’이라는 어조에서 확연하게 드러나듯이 이 시간성이 교감하는 서정의 시혼(詩魂)은 오운교 시학(詩學)의 구심점이 될 것으로 믿는다. 이제 오운교 시집『돌고래 하늘 날다』의 읽기를 마무리해야겠다. 그가 이 시집에서 천착하는 메시지나 주제는 생명성과 영혼의 관계를 탐색하는 일이었다. 그의 시적 마력(魔力)은 이러한 인본주의에서 처방하는 주제의 투영으로 공감대를 흡인하는 그의 인생관이나 가치관을 재점검하고 이를 진실로 승화하는 숙명적인 과지를 성실하게 이행하려는 욕구에 넘치고 있다. 그러나 일찍이 영국의 대시인 T.S. 엘리엇의 말대로 ‘시의 세계로 들어온 철학이론은 붕괴되는 법이 없다. 왜냐하면 어떤 의미에서 볼 때 그것이 진실이건 우리가 오류를 범했건 그런 것은 이미 문제가 되지 않으며 의미하에서는 그 진리가 영속성을 유지하기 때문이다’라는 명언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결국 시는 우리 인간들의 삶과 생명이 깊은 연관이 있으므로 ‘나(존재)’를 인식하고 성찰하며 거기에서 파생된 모든 고뇌와 갈등을 화해시키는 중요한 기능이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그가 ‘질곡의 사연 얽힌 시선(詩仙)의 시 한 수 / 읊조리며 사는 이들이 신선(神仙) / 설레는 기대감에 문학의 흔적 더듬으며 / 문화예술혼 만남 있어 진정 행복하다.(「김삿갓문학관 가는 길」중에서)’는 진실이 그의 시혼이며 예술혼이라고 할 수 있다. 첫 시집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