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우표 “엄마의 그림” 이야기

나만의 우표‘엄마의 그림’이야기    유회숙      11월 거리는 늦가을의 고요와 쓸쓸함으로 물들어가요. 마치 그리운 사람의 뒷모습 같아 발걸음이 바빠집니다.  안녕하세요. 큰딸 회숙이에요.  어머니, 하고 부르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침대 모서리에 혼자 앉아 계시던 어느 날이에요. 바람의 기척에도 두 귀를 세웠을 것 같아 송구한 마음에 오히려 제가 말이 길어졌겠지요.  큰딸은 가르쳐도 너무 많이 가르친다고 하셨지요. 그 말씀을 하시는 어머니의 목소리엔 물기가 가득했어요. 마음이 아플까싶어 얼른 두 손을 잡고 약속을 했어요. 이제부터는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하셔도 무조건 어머니 말씀에 네! 할게요. 벌써 10년 전 일이에요. 진작부터 그랬어야했어요.             그 약속을 한 후 불편할 정도로 깔끔한 어머니가 곱고 예쁘게 보여요. 일상의 사소한 습관은 틀린 게 아니라 다름을 볼 수 있어요.  어머니를 뵈러 가는 길에도 은행잎이 쌓여있어요. 그 중 노란 잎을 찾아서 책갈피에 넣었다가 드릴게요. 소녀처럼 좋아하시며 웃으시겠지요.  거동이 불편하신 어머니께서는 창문 너머 이층집 옥상을 어머니의 정원이라고 하셨어요. 철따라 피어있는 족두리꽃, 채송화, 팬지, 한련화, 국화 등. 마치 우리 이름을 부르듯 즐거워하실 때 저는 어머니께서 가꿨던 꽃밭을 떠올려요. 가을이면 집 앞으로 과꽃이 피어있고 키 순서대로 심어놓은 꽃과 멀리서도 해바라기가 보이는 우리 집을 이웃들은 꽃집이라고 불렀지요. 꽃밭에서 놀다가 야단맞은 기억이 있어요. 분꽃으로 귀걸이를 만들어서 귀에 걸고 소꿉놀이 하는 절 보고 기막혀 하셨지만 어머니께서는 웃고 계셨어요.  어머니, 저는 어머니의 웃음소리를 자주 듣고 싶어요.  어머니께 즐거움은 무엇일까요! “이 나이에는 아픈 날 밖에 없다며, 집에서 넘어지는 일은 남의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우울해 하실 때마다 저는 꽃밭이며 햇볕이 소복하게 앉은 장독대와 외할머니 이야기로 말머리를 돌리곤 하지요.  지난여름 보여줄 게 있다며 스케치북을 제 앞에 놓으셨어요. 한 장 한 장 그림이 펼쳐질 때, 누가 그린 거예요? 입말이 되기 전에 그림을 그렸더니 팔이 아프다고 하시며 수줍게 웃으시던 어머니는 선생님한테 숙제검사를 받는 학생 같았어요. 정말 잘 그리셨어요. 벼이삭의 섬세함이라든지 가을산에 단풍잎 하나 큼지막하게 그려놓은 솜씨라든지 산머루덩굴과 코스모스가 마주보고 있는 그림은 혼자서 밖에 나갈 수 없는 어머니의 시선으로 표현되었지요.  어머니의 그림을 오빠를 비롯하여 우리는 오래 간직하고 싶었어요.  저는 벼이삭 그림이 좋아요. 자식들이 풍요롭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하셨지요. 그런 어머니를 뵈며 엄마의 그림은 기도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나만의 우표로 만들고 싶었어요. 액자에 담아두면 사진처럼 언제나 볼 수 있고 특별한 선물이 될 것 같아서요.  곱게 나이 드신 어머니 모습과 그림을 사진으로 담아 시안을 만들고 집근처 우체국에 들렀어요. 우표 창구에서 신청을 하고 한동안 기다림은 설렘이었어요.  서랍장 위에 놓인 나만의 우표는 어머니 집에 오시는 지인들에게 자랑거리가 되었다고 하셨지요. 다 좋다고 하시면서도 늙은이는 사진을 찍어도 예쁘지 않다며 아쉬워하셨지요.  어머니, 이야기 하나 해드릴게요. 마침 그날은 한국편지가족 이사회가 있어서 사무실에서 우표를 받아보았어요. 저 말고도 여러분이 각자 나만의 우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어요. 그때 한 분이 고개를 숙이며 눈시울이 붉어졌어요. 자식들을 위해서 고된 삶을 건너오신 어머니로 마음이 전해졌나 봐요. 어머니라는 말엔 경계가 없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어요. 어머니, 노란 은행잎이 스케치북에 어떤 가을로 담길까요. 다음에 가면 보여주세요. 저도 감사노트를 읽어드릴게요. 한 줄 한 줄 적은 감사가 마치 편지씨앗처럼 보여요. 그 중 한 줄을 꺼내 편지로 쓰고 있어요.  감사는 감사를 불러오고 욕심을 내려놓게 해요. 하루하루를 고마움과 긍정으로 맞이하고 있어요. 올해 안에 100감사를 써보려고 해요. 일상의 작은 감사가 어머니께서 그리는 그림의 밑그림으로 때로는 햇볕 속에 따뜻한 그림자로 그려지면 좋겠어요.  외로움을 살아가는 것도 한 세상이라고 말씀하시는 어머니!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감사한 날, 잣과 대추를 얹어 동생이 만든 약식은 언제 어느 때 먹어도 맛있어요. 어젯밤에는 동생들과 한 방에서 자며 귀 어둔 어머니의 동문서답으로 웃다 웃다 눈물짓던 그 순간도 행복했어요.  혼자 계셔도 거실에 꼭 불을 켜두세요. 그리고 난방비 아끼려 말고 따뜻하게 지내시고 옷장에 넣어둔 물색고운 옷 꺼내어 집에서 입으세요.  어머니를 안으면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져서 또 오늘이 생각날 것 같아서 자꾸만 당부의 말이 길어져요. 어머니, 안녕히 계세요. 사랑해요.2016년 11월 14일 엄마를 닮고 싶은 큰딸 회숙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