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장 집에서의 하루
샴페인을 곁들인 아침 식사에 누군가를 꼭 데리고 있어야할 때, 약간의 죄의식을, '내가 이 시간에 여기서 뭐 하는 거지?' 라는 감정을 누구나 가끔 느낀다. 가장 흔한 예로서, 혼인 피로연이 그런 느낌을 준다. 그것은 심각한 사람의 정신적 양심의 마지막 고통이다. 누구든 그런 본능적인 경고를 느끼지 못 하면, 그는 최악의 열반, 즉 몸은 살아 있는데 정신은 죽은 길을 걷게 된다.
아침에 자주 이런 감정의 먹이가 된다. 왜냐하면 조선인들이 처음으로 본 서양 사람들 중 하나이고, 조선에 대한 나의 우정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나를 방문했다. 모든 일이 막힘없이 잘 굴러가게 하기 위해 약간의 기름칠을 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이라는 것을 느꼈다.
조선에서는 아침에 결코 일찍 방문하지 않는다. 궁궐에서는 동이 트기 훨씬 전에 신년하례가 시작된다. 왕으로 태어나고 싶지 않은 또 다른 좋은 이유다. 하지만 아마도 으레 매우 불안한 상태로 누워있는 머리가 베개를 떠나는 것을 아쉬워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행스럽게도, 나를 향한 방문은 정오쯤에 이루어졌다. 이런 일들이 누군가 방문했을 때 생기는 일이었다.
앉아서 응접실을 정리할 때, 벽에 뚫린 문으로 하인이 들어섰다. 동그랗게 만들어진 한 쌍의 미닫이문을 방의 한 쪽으로 밀어 넣는다. 이렇게 해서 그 방은 내 집의 나머지 부분과 연결되어 있다. 그의 긴 두루마기가 일종의 문턱, 즉 원의 아래쪽 테두리로 1피트 높이에서 부스럭거리면서 누가 왔노라고 말하고, 나에게 8인치 x 4인치의 빨간 종이 조각을 건넸다. 종이 위에는 세로로 한 줄의 한자가 쓰여 있었다. 이게 방문객 명함이다. 원래 명함은 중국식이다. 명함은 다른 많은 사회적 관습과 함께 왕위를 기념하는 예의로부터 조선에 이식되었다. 그것은 보통 두께의 종이로 만들어졌고, 윗면은 선명한 암적색으로 아랫부분은 연분홍색으로 물들인다. 이 바탕에 사람 이름의 검은 글자들이 선명하게 대비된다. 여전히 강력한 사실이며 근심이 아니라 존경의 대상인 모든 귀족주의 관습처럼, 명함은 일률적으로 평범하다. 쓰인 이름은 최대한으로 단순하다. 법적이나 예우적인 호칭은 없다. 이 이름은 어떤 호칭보다도 더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아무리 정교하게 다듬어져도 8인치 x 4인치로 쓰일 수 있는 것 이상이다. '홍순목'홍영식의 아버지. 그 당시, 영의정이었다.이라고 쓰여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하인은 사라졌다가 방문객을 안내하기 위해 돌아왔다. 나는 일어났다. 우리 둘 다 목례를 함과 동시에 두 손을 포갠 후 누르면서 숙인 머리 높이까지 올린다. 이것 역시 중국식에 따른 것이다. 그것은 지인과 악수 한다기보다, 자기 혼자 악수하는 것이 전반적으로 상책임을 시사한다. 나는 일부러 지인이라고 말하는데, 조선에서는 남자가 당신의 친구가 되었을 때와는 매우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때는 그와 우리가 해야 하는 대로 악수를 해라. 나는 두 손 마주잡기 인사를 좋아한다. 그것은 악수의 격을 높인다. 조선인들은 금방 다시 보거나 매일 아침마다 볼 때에는 안 하고, 한참 못 보았다가 다시 볼 때나 그런 인사를 한다. 그들에게 있어 그것은 가식이 아니라 애정을 의미한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다시 자리에 앉았고, 차가 들어오고 나서 담배를 피웠다. 극동의 주인과 손님 사이의 공감대는 언제나 차와 담배인데, 이는 근동의 커피와 담배이고, 우리의 포도주와 시가다. 내 경우에, 이것은 방문객들에게는 기쁘게도, 바다 저편에서 온 것으로 보완되었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조선에도 의례적인 방문과 그렇지 않은 방문이 있다. 자신의 명함이 꼭 필요한 것은 소개나 새해 첫 날과 같이 방문이 공인된 경우다. 친숙함과 상호간의 애정은 곧 우리를 아주 쉬운 관계로 만든다.
특히 외국인이 그랬다. 한번 왔던 나의 방문자들이 다시 찾아왔다. 그들은 오랫동안 머물렀다. 때때로 고백하건대, 내겐 영원히 머물 것처럼 보였다.
선택된 몇 명을 제외하고, 짧지만 자주 반복되는 방문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내가 다른 무엇보다도 외무부의 방문을 가장 좋아하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 그 관리들은 나를 보기 위해, 단독 혹은 단체로 끊임없이 들렀다. 때때로 그들은 정치적인 것을 말했지만, 종종 그렇지 않았다. 단체로 들렀을 때, 그들은 합의한 듯 나를 소일거리 삼아 고된 업무에서 벗어났다. 나는 매우 편리한 장소에 있었다. 대학 다닐 때 쉽게 빈등거리는 곳이 되는 가운데 방에 거주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상황을 이해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일부 방문객들과는 달리, 그들은 단지 짧은 시간 동안 머물렀고, 업무 때문에 항상 일찍 돌아갔다. 역사적인 밥 소여처럼, 그들은 때때로 소환되어 떠나기도 했다. 자기들이 당장 무슨 일에 꼭 필요하다고 짐작하고 서둘러 떠났다.
다음으로 말할 사람은 상인, 혹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오랫동안 호기심을 끈 상인이었다. 그 사람 자신과는 별개로 나는 항상 그가 나타날 때, 복권에 당첨되는 것과 비슷한 흥분을 느꼈다. 왜냐하면 그가 그의 넉넉한 소매에서 무엇을 꺼낼지 인수 없기 때문이다. 꺼내는 물건도 놀라운데, 또 무엇이 더 있을까라는 불확실성의 기쁨을 더함으로 해서 그는 항상 일종의 진짜 마술사로서 나를 놀라게 했다. 소매의 오목한 부분으로부터 인간이 만들어낼 물건의 수와특징은 경이롭기 그지없었다. 책, 그림, 부채, 베개 옆 끝 등, 비어있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신비롭게 모든 것이 차례로 나왔다. 소매는 결코 아무것도 감추지 않은 것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큰 돌 항아리, 붓꽂이가 탁자 위에 진열되는 마술로 끝나는데, 너무 두껍고 무거워서 내가 방을 가로질러 들고 가는 것이 불편할 정도였다. 호주머니 대신 이 넉넉한 주머니 때문에 힘에 겨워도 걸어오는 것을 마다하지 않으니, 그가 올 때마다 적어도 물건 하나는 꼭 샀다. 그가 자기 것을 숨기는 데 능숙한 만큼 거래에 재주가 있어, 나는 단번에 그에게 상대가 안 된다고 느꼈다. 이 일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약인 상태일지 라도 내 자신에 대한 불신이 옳았다.
가격을 합의하지 못해 그 상인이 모든 물건을 가지고 철수하자, 밖에서 몸싸움을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창호지 문을 툭툭 두드리며 옆 학교 남학생들이 창문을 통해 나를 덮쳤다. 아직까지는 세계와 교제하고 싶은 욕망의 유일한 물적 징후는 영어를 가르치는 학교의 설립과 그것을 가르치는 영국인을 일본으로부터 들여오는 것이었다. 소년들은 자신들이 이미 배운 것이 얼마 되지 않아도 매우 자랑스러워했고, 내 모국어로 아침 인사를 하는 것에 무한한 기쁨을 느꼈다.
그 중 한 명은 동료들보다 더 모험적 이었거나 아니면 더 진보적이었는데, 그 다음 몇 마디를 합치려고 노력했고, 그 후 그의 더 수줍어하는 친구들에 의해 간단히 교정되었다. 그 갑작스런 만용은 어린 친구들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여부에서 비롯되었고, 물론 그러한 교정은 옳다기보다는 틀렸다. 이 시점에서 훨씬 더 흥미로운 논쟁으로 인해 나는 완전히 잊혀졌다. 예의 바르게 보이는 말로 시작된 것은 자기주장을 성공적으로 관철하는 것으로 끝났다. 그러나 나는 최종 심판으로 다시 등장했다.
그 소년들은 매우 부지런히 방문했다. 어느 날, 가장 자주 오는 학생 중 하나가 자기 붓으로 그린 그림을 가져왔는데 정말 정교했다. 조선인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이미 절반의 예술가로 태어난다는 것이다.
이 다양하고 좋은 사람들은 종종 점심시간까지 머물렀다. 사실, 그들은 그 특별한 목적이 있으면 몇 시간이고 계속 머물렀다. 시내에서 식사를 하거나 누군가를 특별히 초대하지 않는 한, 저녁은 항상 혼자 먹었다. 내 저녁은 엄청나게 외로웠다. 행복해질 방법이 없었다. 모두 아침에 왔고 밤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많은 밤을 나는 파이프 담배와 책을 벗 삼아 오밤중까지 깨어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한 군데 피난처가 있었는데, 그 학교 선생님이었다. 그는 유쾌하고 영리했으며, 일본에서 14년 간 살았기 때문에 극동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곳에서 그는 일본인 아내와 혼인했고, 예쁜 유라시아 소녀의 아버지가 되었다. 그는 현재 외무부 경내 뒤편의 높은 구석 한때 절이었던 곳에 사는데, 여러 채의 건물과 여러 개의 뜰로 이루어진 단지가 이 극동의 영국인이 사는 곳이다.
그곳은 내 집에서 돌 던지면 닿을 거리도 안 되는 곳에 있었다. 하지만, 가장 길거나 가장 짧은 길을 가는 경우에 따라, 그곳에 가려면, 세 개의 문과 네 개의 마당, 혹은 네 개의 문과 여섯 개의 마당을 지나야만 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한 길로 가서 다른 길로 돌아가야 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대문들을 망가뜨렸다.
경위는 다음과 같다. 해질녘에 영내 경비원은 순찰을 돌며 주의 깊게 모든 문을 잠갔다. 그러나 마당이 매우 많아서, 다른 마당으로 가는 문 하나는 열어 두는데, 이쪽 마당의 안쪽을 잠그면 이웃 마당의 바깥쪽이 잠기게 된다. 그러므로 밖으로 나가는 문 안에서 있는 사람은 항상 그가 원하는 곳 어디든 돌아다니는 것이 가능했지만, 다만 연속해서 통과하는 문의 순서는 정해져 있다. 그 순서대로 가면, 모든 문은 그에게 열려 있다. 모든 문은 자물쇠로 잠겨 있지 않고 빗장으로 질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빗장은 자물쇠 역할을 해 통과할 수 없다. 이쪽에서 가려면 벽을 하나씩 넘는 수밖에 없다. 어려운 일이었고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항상 불가피한 고리 모양을 타고 한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문 앞에 이르면 빗장을 빼는 것, 되돌아올 때 와보지 않은 길을 기억하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은 없었다.
내 야간 소풍은 밤새 한 시간에 한 번씩 규칙적으로 경내 순찰을 도는 경비원에게는 매우 성가신 일이었을 것이다. 모든 문을 열 수 있는 바로 그 가능성은, 다른 쪽에서 봤을 때, 통과 후 어떤 것도 다시 닫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 문들에 빗장을 질러두지 않았다. 그래서 충실한 경비원은 그가 단단히 질렀다고 생각되는 것을 계속 닫아두는데 시간을 보냈다.
한 가엾은 낡은 문은 슬프게도 계속 열리고 닫히는 고통에 시달렸다. 돌쩌귀가 완전히 떨어져 나간 다음 반으로 갈라졌는데, 이 돌쩌귀는 최대한 예전 위치로 떠받쳐 올려야 했고, 무거운 돌쩌귀를 이용해 아랫돌을 굴려 고정시켰다. 나는 어느 날 밤의 곤경에서 이것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것의 불구 상태를 인식하지 못하고, 그것에 밀어붙였는데, 첫 번에는 실패했고, 두 번째에 일종의 신음과 함께 산산조각이 되었을 때 잔인하다는 죄의식을 느꼈다.
어느 날 밤, 이 방문에서 돌아오는 길에 나는 경비원과 마주쳤다. 내가 그를 마주쳤다고 말하는 이유는 어떤 의미에서도 그가 나를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 뜰 반대편 끝에서 교대하는 소리를 듣고 그가 올라오기를 기다렸다. 소 눈에서 나오는 것 같은 빛과 끊임없는 종소리에 그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감각적으로 알 수 있다. 나는 예전에 그의 등불을 멀리서 많이 보았고, 그가 내는 소리는 너무 자주 들어서 한밤중의 몽상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소음을 내는 사람을 살펴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겼다. 그와 부하 동료는 이상하게 생긴 세 가지 도구를 가지고 다녔다. 순찰대장은 한손에는 모순의 원칙에 입각한 도둑 등이 라고 불리는 어두운 횃불을 들고 있었는데, 호기심을 가장 많이 끄는 기발한 발명품이다. 다른 손으로 종을 흔들었다.
마지막으로 문을 닫을 때 손이 모자라므로 종을 멈추었다. 도둑이 종소리를 듣고 도망가라는 듯이 그는 종을 계속 울렸다. 조선 경비원이 중국, 일본과 공유하는 관례다. 이것은 확실히 야간경비원이라는 직업이 좀 힘들지는 몰라도 그리 흥분되지는 않게 만든다. 이런 상황에서 잡히기를 기다리는 도둑은 나쁜 놈이 기도 하지만 바보다.
경종이 똑같이 범죄를 예방하는지는 의심의 여지가 있다. 일본에서는 순찰원들도 틈틈이 "불을 조심하라”고 외치지만, 조선에서는 주택 구조가 다르므로 화재 위험이 급박하지 않았고, 종을 제외하고는 조용히 돌아다닌다. 야간경비원이 들고 있던 불은 한 쪽이 열린 둥근 조개 모양으로 빗자루 손잡이처럼 생긴 몽둥이가 아래 위 방향으로 가로 지르고, 밑으로 8인치 정도 손잡이가 돌출되어 있었다.
전체를 종이로 덮었는데, 종이에는 한자와 장수, 행복, 그리고 그 밖의 바람직한 운세 소식을 전하는 화려한 무늬가 있다. 왜 이렇게 많은 고상함이 어둠 속에서 낭비되는가하는 것은 문제다. 바깥에 있으므로 순찰대는 물론 다른 사람모두에게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글자와 무늬가 그곳에 있다는 느낌은 아마도 긴 밤 동안 위안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관심을 끄는 진정한 아름다움은 그 안에 있다. 안쪽은 이중 이음매로 된 양철틀로 휘둘러져 있는데, 이 양철틀은 초를 보호하고, 어떤 방향으로든 움직인다. 빗자루 손잡이는 위나 아래 아무 곳을 잡을 수 있어, 불을 검사할 사람을 바깥쪽에서 나팔총처럼 겨눌 수 있다. 그런고로 촛대를 옆으로 기울이면 초를 갈 때 위에서 손을 넣지 않아도 된다. 전체적으로 어린 시절, 악귀 같은 유령을 나타내기 위해 독창적으로 파내어 조각한 호박을 연상시 킨다.
부하의 임무는 쇠사슬이 연결된 쇠막대인 세 번째 장치를 가지고 다니는 것이었다. 이것은 수갑 역할을 했다. 쇠막대는 일반적으로 쓰이지 않는 유일한 도구였다. 어두워서 얼마나 녹슬었는지 알 수 없었다.
순찰대는 각각의 임무가 얼마나 뒤바뀐 것인지에 대해 매우 관대하게 나의 점검을 받았고, 나는 그 착한 남자를 놀라게 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는 느낌을 그 에게 남겼다. 하지만 나는 그 만남이 지금까지의 어떤 신비함을 밝히는데 도움이 된 점에 그가 약간의 위안을 찾았을 수도 있다고 판단한다. 그때부터 문이 열리는 비밀이 그의 밤샘을 방해하지 않았음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