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문에 대한 열등감이 있다. 가방끈이 짧아 학교에서 한문을 정식으로 배운 일이 거의 없기에 나는 한문을 독학으로 깨우쳤다.
지금이야 한글 전용이 거의 정착이 되었지만 예전에는 신문에도 절반이 한문이었다.
책도 한문을 해독하지 못하면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 정도여서 늘 한자에 막혀 옥편을 찾아가며 읽었다.
그때 한국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문 공부가 필수적이라는 걸 깨달았다.
천자문 펜글씨 교본도 사서 공부를 했지만 한문 실력은 제자리 걸음이었다.
어느 날 낙원동에 있는 고전문화원(?)에서 한문 수업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등록을 했다. 기초반인 동몽선습을 배웠다.
조선시대 아이들이 천자문을 뗀 후에 공부했다는 동몽선습을 나는 성인이 되어 기초영어를 배우듯 떠듬떠듬 깨우쳤다.
기초반을 마치면 중급반에서 논어 등 사서삼경을 배울 수 있다 했지만 직장 때문에 기초반을 끝으로 낙원동을 떠났다.
그때 느꼈던 것이 한자는 배울수록 묘한 매력이 담긴 문자라는 것이다. 우연히 한시 모음집을 읽다가 정지상의 한시를 만났다.
그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한문을 깨우치고 나서 읽으니 새로운 맛이 났다.
송인(送人) - 정지상
雨歇長提草色多
送君南浦動悲歌
大洞江水何時盡
別淚年年添綠波
비 갠 긴 강둑에는 풀빛 더욱 푸르른데
남포로 님 보내는 노랫가락 구슬프다
대동강 물은 어느 때나 마를 것인가
해마다 이별의 눈물 푸른 물결에 보태는 것을
옛날 낙원동에서 배운 한문 실력으로 나는 지금껏 떠듬떠듬 한시를 읽는다.
여전히 초보 수준을 못 벗어나고 있지만 한시 읽는 맛이 쏠쏠하다.
이 시는 고려시대 문인 정지상의 시로 <정든 님을 보내며>로 명명할 수 있다.
워낙 유명한 시여서 굳이 여기서 논할 것은 없겠고 정지상과 김부식의 우정을 언급하고 싶다.
고려 인종 때 관리를 지낸 정지상과 김부식은 어렸을 때부터 친구였다.
가문은 물론이고 신언서판 모든 면에서 앞선다고 생각했던 김부식이 정지상에게 열등감을 갖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정지상이 자기보다 글을 잘 쓴다는 거였다. 하긴 이런 명시를 쓸 만큼 정지상의 재능은 김부식이 부러워할 만하다.
젊은 시절의 우정이 무색할 만큼 앙숙으로 지내다 오랜 기간 정지상의 재능에 열등감을 갖고 있던 김부식이 묘청의 난을 빌미로
정지상을 죽임으로써 두 사람은 이승에서 인연과 이별을 한다. 신채호 선생은 면면히 이어오던 우리의 낭가사상이
이것으로 단절되었다며 애석하다 했으니 이렇게 이별은 사사로운 인연은 물론 사상의 맥을 끊어놓기도 하는 것이다.
代悲白頭翁 - 劉廷之(유정지)
낙양성 동쪽에 핀 복사꽃 바람에 휘날리며 뉘 집에 지는가
낙양의 큰애기들 늙기 한이 되어 지는 꽃 바라보며 탄식하네
지는 꽃 따라 늙는 사람 내년에 피는 꽃엔 누가 남으리
보았노라 송백은 늙어 땔감이 되고, 들었노라 상전은 벽해가 된다고
낙양성엔 옛사람 자취도 없고 지는 꽃 서러워하는 젊은 사람들
해마다 피는 꽃은 같은데 사람의 모습은 해마다 같지 않네
사랑하는 나의 청춘들이여 늙은 이 몸이 서럽지 않은가
늙은이의 센 머리 가련하구나 이래 뵈도 옛날엔 홍안의 소년이었다네
나무 아래 모여서 춤추는 귀공자, 지는 꽃도 모르고 노래만 부르네
비단에 꽃무늬 수 놓아 벽에 걸고 신선 그림 아래서 신나게 놀았지
하루 아침에 병상에 눕고 친구마저 없어지니 즐겁던 봄날은 어디로 갔나
아름다운 얼굴 얼마나 갈까 어느 새 흰머리는 흡사 실낱 같구나
예전에 흥겹게 노닐던 터전에는 황혼녘에 새들만 서글피 우는구나
시의 제목인 <代悲白頭翁>이 오늘 내 글의 주제다.
머리 하얗게 센 노인을 보고 슬퍼하는 내용으로 나는 <늙은이의 슬픔을 대신하여>로 정했다.
원문은 너무 길어서 인용을 생략하나 원문 읽지 않고 풀어 놓은 시만 읽어도 충분히 느낌은 올 것이다.
이 시는 전문가가 해 놓은 해석에다 내가 느낀 바를 내 방식대로 첨가를 했다.
한시를 잘 모르지만 옥편을 옆에 두고 쉬엄쉬엄 내 방식의 시 읽기가 원작자의 의중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시에도 한 사람의 죽음에 관한 사연이 있다. 김부식과 정지상의 관계처럼 이 시의 저자인 유정지와 외삼촌 송지문의 애증관계다.
당재자전(唐才子傳)이라는 책이 있다. 제목처럼 당나라 시대 살았던 재능 있는 사람들의 전기다.
중국 역사상 가장 문학적인 꽃을 피웠던 시기여서 이 책에는 알고 있는 시인들이 여럿 나온다.
위 시의 주인공인 유정지, 송지문뿐 아니라 왕유, 이백, 두보, 백거이, 원진, 이교 등 쟁쟁한 시인들을 포함해
총 278명의 당나라 시대 기인들이 나온다. 학문이 짧은 나로써는 대부분 수박 겉핥기 식으로 지나가고
오직 유정지 시에 얽힌 사연을 시린 가슴으로 담았다.
유정지보다 훨씬 유명한 시인이었던 송지문은 어느 날 조카 유정지가 보여준 이 시를 읽고 탄복했다.
외삼촌인 송지문이 뺏으려고 했던 시가 이 작품이다.
송지문은 이 시의 11, 12구인 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을 유독 탐냈다고 한다.
<해마다 피는 꽃은 같은데 사람의 모습은 해마다 같지 않네>. 송지문이 이 구절을 자기에게 달라고 했는데
말을 듣지 않고 유정지가 발표해 버리자 화가 난 송지문이 매장해서 죽였다고 한다.
열등감을 이기지 못한 질투심으로 한 젊은 시인은 서른 살도 안 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외삼촌이 죽이지 않았더라도 유정지가 오래 살지는 못했을 듯하다.
이렇게 절창을 남길 수 있는 시인이라면 자기 명인들 온전히 보존했을 것인가.
분명 그는 밤을 지새우며 시를 쓰다 병들어 죽었을 것이다.
나는 이 시를 읽으며 늙은이의 슬픔을 대신할 수 있을 듯하다. 늙음을 너무 슬퍼하지 마라.
나도 곧 당신처럼 하얗게 센 머리로 지난 추억을 시리게 반추할 때가 올 것이니. 당신이 나보다 먼저 그 슬픔을 겪는 것뿐이다.
해도해도 끝이 없는 것이 공부라 했지만 나는 이 시에서 또 인생을 배운다.
첫댓글 울 학창시절에 신문에 반은 한자 이였습니다
그래서 한자는 꼭 필요하겠다 싶어서 옥편을 한권 다 외웠습니다.
그때 배운 한자가 아직도 유익하게 쓰고 있지요
세월이 벌써로 그리 되었네요 ^^
네, 예전엔 곳곳에 한자 투성이였지요.
모르는 한자를 읽기 위해 옥편과 친구가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섭이님 말씀처럼 한자는 중국 문자이기에 앞서 익혀 놓으면 우리 문화를 깊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요.
컴퓨터 시대가 되면서 두꺼운 사전들도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책상에 꽂혀 있던 국어, 영한, 옥편 같은 사전들을 친구처럼 자주 들춰봤었는데 말이죠.ㅎ
네~~맞아요. 저는 독학 했네요
네,
독학이 쉬운 일이 아닌데 박수 보냅니다.ㅎ
한문 문화권에 있는 이상,
동양 삼국은 역사 문화 고전 등은 한문을 모르면
공부하기 힘이 들지요.
님이 한문 공부를 하신 흔적을 봅니다.
代悲白頭翁 과 唐才子傳 에 대하여 잘 읽었습니다.
정지상과 김부식의 친구 사이에서,
외삼촌 송지문과 조카 유정지를 시기함으로써
상대를 죽임을 당하게 하는,
학문 한다는 사람이 가질 태도는 아니네요.
콩꽃님이 한자에 대한 중요성을 동의하시네요.
선조들이 전부 한문으로 기록을 남겼으니 더욱 그러하지요.
한문을 배워보니 한자의 묘미가 배울수록 빠져들게 하더이다.
한때는 한시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지냈더랬지요.
김부식과 송지문은 인성이 나빠서가 아니라 열등감과 질투심 때문에 그러지 않았나 싶습니다.
긴 글에 공감해주시니 감사합니다.ㅎ
고려시대 김부식 조선시대 정철
그들의 글이 역사에 남았거나 문학적으로 높이 평가를 받는다 하더라도 그들이 상대편을 향한 잔인한 도륙의 역사적 흔적도 함께 하지요 세상에 정철의 아름다운 글 과 기축옥사 참변
김부식의 삼국사기 뒷면에 묘청의 난을 빌미로 천하 제일 문장가 정지상을 그리 사람의 양면은 사나운 맹수보다 더 흉폭하다 보아요 제가 바뻐서 들여다 보질 못해 죄송합니다 현덕님 글 만 잠깐보고 나갑니다 피곤해서
운선님 다녀가셨군요.
정지상과 김부식의 우정과 어긋난 인연에 관해서는 저도 할 말이 참 많답니다.
단재 선생이 애석하다 했던 것도 천하의 문장가가 묻혀버렸기 때문입니다.
바쁘신 중에도 귀한 흔적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ㅎ
글읽고
괜스레 눈물이 핑~~~ㅠ.ㅠ
어제 늦은저녁 둘이서
숲길 걷는데
매미소리 온데간데 없고
가을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둘이서 그 뜨겁던 여름이 아쉬운건
내 늙음이 슬퍼서요ㅠ
또 한해가 가겠다며~
너무 슬퍼하지 않을게요
현덕님보다 조금 먼저
겪는 슬픔
아~~~
혼자있으며 읽으니
더 슬퍼져서 죄송해요
정아님 댓글도 시적이어서 좋습니다.
유난히 무더웠던 올 여름, 어느덧 9월도 후반전에 들었는데 조석에는 가을이고 한낮엔 여름입니다.
늦게 온 올 가을은 미처 즐길 새도 없이 훌쩍 떠나 겨울에게 자리를 내줄 겁니다.
이래저래 슬픈 마음이 낙엽처럼 쌓이겠지만 이것이 또한 인생 아닐런지요.
정아님 그래도 우리 웃고 살아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