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찰흙'(粘土, clay) 아세요? 어린이들의 놀이용 칼라고무찰흙 같은 것도 있지만, 원래의 누런 떵색인 옛날 그 찰흙요! 우리 어릴적에..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 미술시간에 이 찰흙놀이 한번쯤 해본 기억이 나실꺼에요^^; (저도 만들기를 좋아했어요) '찰흙'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아래와 같습니다. 확인해 볼께요. (출처 : 네이버 '토목용어사전', '건축용어사전', '토양비료 용어사전') 서론 : '찰흙'(粘土, clay) 점착성을 가지며 지름이 0.005~0.001㎜의 아주 미세한 흙(광물) 입자의 집합체로서 암석 또는 광물이 분해하여 생긴 천연물을 말한다. '찰진 흙', '점토(粘土) 광물' 이라고도 부르며 토양 중 가장 미세한 입자로서 화학적·교질적 작용을 하고 물·양분을 흡착하는 힘이 크다. 모래와 성질을 달리하며 점착력은 있으나 내부 마찰각은 0에 가깝다. 일반적으로 이 '점토'를 가리키는 말로 다음과 같은 종류들이 있다. '일라이트'(illitic soil, 土壤 토양), '카올리나이트'(kaolinite, 고령석-石 고령토), '몬모릴로나이트'(montmorillonite, 몬모릴론석-石 비석). '점착성'(粘着性, stickiness)이란 말은, 일정 수분 상태에서 토양의 끈적거림 등을 나타내는 (수분상태에 의존하는-)'결지성'을 말합니다. 제가 무엇을 얘기하려고 하는 걸까요. 이 찰흙이 바로 흙(dust, 티끌, 먼지, 마른 땅/עָפָר, '아파르')하고 물(water, '와러'/מַיִם,'마임')하고 관련이 깊다는 거에요. 그리고 성경에서, '모래'(sand)는 비진리를 상징합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시며 했던 "그의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겠다"는 말은, 그에게서 나올 언약에 속한 후손들(하늘의 별)과 언약 밖의 후손들을(바닷가의 모래) 가리켜 표현하신 겁니다(창22:17). 해변에 모래알 수는 무수히 많죠. 말씀을 분리하고 나누는 율법의 (떡)부스러기를 의미합니다. 바리새인('화리사이오스'/분리주의자)의 의미는, 히브리어 '파라쉬'(분리하다, 흩뿌리다, 상처를 입히다, 쏘다), '파라쓰'(산산히 부수다, 깨뜨리다, 조각내어 자르다), '페레쉬'(배설물, 똥, 응가)란 뜻입니다. '말(horse)', '명확한 구분(/분리, 명시, 선포/심판)'과도 관련 있음. 예수님께서 떡 한 조각을 찍어다가 가룟 유다에게 주셨을 때, '그 조각'이라고 사용된 단어가 '프소미온'(/부스러기, 조각, 파편)인데요, "조각을 받은 후 곧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갔고 그가 나가니 밤이러라"(요13:26-30) 라고 성경에 기록합니다. '밤'은 흑암의 상태, 이 세상. 그 성령을 훼방하다가(/진리를 상하게 하다, 방해하다, 해를 끼치다/말을 깨다는 뜻) 결국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게 될 거짓 교사들에 대한 경고를 하는 벧후2:17이하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 가는 안개니 저희를 위하여 캄캄한 어두움이 예비되어 있나니. 저희가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여..." (벧후2:17-18) 계시록에선 용이 입에서 비진리의 말을 토하죠(계12:15) 반석이신 그 그리스도와 하나로 연합되지 못한 자들은, 집(성전)을 모래 위에 짓는 '허'탄한(딤후4:3-4) '경영'을 할 뿐입니다(마7:24-27). 그렇게 '죽은 흙', 먼지 풀풀 나는 마른 뼈, '없음'인 우리를 '생명'이라는 '있음'으로 산 존재 되게 하는 것이 바로 그 '물'이라는 것입니다. 재미있죠. '물'('마임')이란 것도, '말씀', '진리'를 상징하는 단어이니까요. 재해석 하면 '그리스도', '진리의 말씀', '아가페'의 사랑, 성령. 바로 이 '찰흙'과 같은 성질(/'지향성')인, 수분(물/진리/그 하나님) 절대 의존적 존재의 상태가 우리 성도의 모습은 아닐까 생각해 봤어요. 예전에 썼던 <콩떡 찰떡 이야기>도 갑자기 생각나용ㅋㅋ 어쩜 찰흙도 한 덩어리의 모양을 하고 있는게.. 꼭 '한 지체'가 된 우리들 같아요. (창2:7) "여호와 하나님이 ('아다마'/그 땅의) 흙으로('아파르') 사람을('하아담')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이 구절은 많이 봐서 잘 아시죠. 그 하나님께서 태초에 에덴에 동산에다 두실 사람을 창조하실 때를 설명한 부분인데 원어로 직역해보면, "그리고 그 분께서 지으신다('야짜르'/마치 토기장이가 흙으로 질그릇을 만드는 모양/와우계속형). '예호바 엘로힘'(들) 곧 '하 아담'으로. 그 땅의 흙을(dust, 티끌, 먼지). 그리고 그(들/쌍수)의 콧구멍에 '생기'인 숨(/호흡)을 불어 넣으신다(와우계속형). 그러자 그 '하 아담'이 살아 있어('하이'/산 존재의/그 하늘의 사람이며) 숨쉬는('네페쉬'/들숨 날숨으로 호흡을 하는) '생령'으로 존재한다('하야'/와우계속형)" 목사님 설교 중에 들은 기억이 나네요. 어느 한 목사님이 이 창2:7의 구절은, 그 하나님께서 진짜 '진흙'으로 인류의 조상 아담을 만들었고 그 찰흙인간에게 생명을 불어 넣어 산 사람으로 되게했다구요. 그래서 정말 잘 만들어졌나(마치 감자가 잘 익었나 젓가락으로 찔러 보듯), 쿡~! 찔러서 확인한 흔적이 바로 지금 우리 몸에 배꼽(umbilicus, 탯줄이 떨어지면서 흔적으로 남은 곳)이라고 했다는..... 믿거나 말거나;; 제가 늘 말했죠. "그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거랑 니하고 무슨 상관있냐를 생각하라" 하구용. 예수님 생일? 왜 그게 궁금하세요. 역사 속의 그 예수 그리스도는 '메시야'로 오신 그 하나님의 아들이신 참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진리로 이해되지 못한 예수는 메시야가 아닙니다. 우리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가 아니란 의미입니다. 그렇게 진짜 '그리스도'(들)가 못된 자들의 실상이 적그리스도(들) 입니다. '그리스도'('크리스토스'/단수/복수)는 '기름 부음 받은 자(존재적 개념)'의 뜻이고, 또 성경에서 기름은 감람유(/진리의 '성령') 이니까요. 역사 속에 그 육의 예수님도 그리스도는 맞아요. 그러나 지금 저와 여러분도 그 하나님의 아들(들)이 맞다면 '그리스도(들)'이어야 합니다. 왜 역사 속 그 육의 예수님에게만 두 눈을 두세요. 그가 하신 말, 기적 사건들(심지어 그 십자가까지!). 그 예수 안에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듣고, 보고('호라오'/들음으로 진리를 보아) 깨달아 '마음 간직'함으로 '생명'되는거야! 가 기독교의 복음이지 그 예수를 믿는게 아니에요.. '기독(基督, Christ)교'는, 알지 못하는 막연한 관념 속의 그 하나님을, 또 역사 속 그 예수님을 섬기는 종교가 아닙니다(종교도 아니지만). 진화론이니 창조론이니 창조과학이니 다 허탄한 짓일 뿐입니다.. 진리로 보아내지 못한 상태에서 그런 역사적 팩트에 심취해선 안돼요.. 여러분, 성경에서 그런 것에만 관심을 두고 거기에 한눈팔면 그 진리를 볼 수 없습니다. 성경은 과학책, 역사책, 윤리·도덕책이 아니에요. 저는 '없음'에서 '있음'을 창조하신 그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표적 기적과 이사,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성경에 나온 모든 일들을 믿어요.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정말 '진흙'으로 반죽하듯이(?) 사람을 창조했는지 그 팩트(역사적 사실)에는 관심 없지만 창2:7에서 말하려는 건, 그 하나님의 생기를(/그 분의 호흡인 영원한 '생명력'/'아가페'의 사랑/그 그리스도/'루아흐'/'호 프뉴마'/성령을) 심어주심으로 영적으로 산('하이'/'자오') 존재가('에이미') 되는('기노마이') 자로 창조하신 '교회'의 탄생인 것입니다. 역사 속에 육신을 입고 있는 '하 아담'이죠. '말씀육신', '그리스도의 예수'라고도 하고 '예호바 엘로힘'(들), "나"("나들"/"우리"), '인자'(들), '아들'(들), '그리스도'(인/들)로 표현해요. (창2:4)"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바라', 창1:1) 때에 천지의 창조된('아싸'/'포이에오') 대략이 이러하니라" 첫 사람 그 아담을 통해서 '인자'('하 벤 하 아담'/그 사람의 그 아들)의 라인들인 영적 계보가 이어져야 하니까요. 그걸 보여주는 것이죠. 그래서 한글 번역인 그 '생기'가 '루아흐'(/성령)이라고 다른데서 정확히 밝혀줍니다. [/겔37장에 '마른 뼈의 기적' = '창조'/새 언약 성취] 본론 : '간음한 여인 이야기' 위에 '찰흙'(粘土, clay)에 대해 설명한 글을 떠올리면서 오늘 이야기의 본문을 저랑 같이 살펴보아요. 그 유명한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 그 내용 바로 앞 장에는 예수님께서 자신이 생수이니 마시라고 말했었지요. 십자가 언약 성취 후에 임하실 '그리스도의 영'(성령)을 말함. (요7:37-39)"명절 끝날 곧 큰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나"로 '연합'되어라!). 나를 믿는(/"나"로 믿음이 된/'디카이오쉬네'가 된)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나"로 믿음이 된/그렇게 의의 존재가 된) 자의 받을 성령(창2:7에 그 '생기'/그리스도의 영)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영광' =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그 현장에서, 예수님(/그 하나님)께서 친히 손가락으로 땅에다 두 번 나누어 쓰신('그랍호'/글로 새기다, 기록하다) 그 표적은 무슨 의미일까요? 당시 출애굽 시절, 시내산 위에서 첫 번째 십계명 돌판과 두 번째 십계명 돌판에다 당신께서 친히 기록해 써주신 그 현장을 한번 떠올려 보세요. 이를 구약과(/모세/율법, "돌로 치라!" = 율법은 정죄와 심판을 한다.) 신약으로도(/그리스도/은혜와 진리, 덮으심의 은혜 = '시은좌') 볼 수 있음. 로마서로 보면(롬7:1-4), 율법이라는 첫 남편(/그 육의 예수/우리 육적 자아) 하고 은혜라는 다른 남자!(/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그리스도) (요8:3-11) [/기독교의 '용서'란, '죄와 더이상 무관한 자가 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디카이오쉬네'라는 그 하나님의 '의' = 복음]"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율법주의에 머무는 자들/자신의 죄 없음을 위해, 다른 이를 함부로 율법으로 정죄, 심판하는 자들/'무죄의식')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그녀 자신 또한 율법주의에 머무는 상태로, 자기에겐 죄가 있다고 여긴다/'유죄의식')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께 말하되('레고'/그들이 말하고 있다.) 선생이여('디다스칼로스'/"선생아!"/율법주의자에겐 주님이 되지 못함)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레20:10, 신22:22-24)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저희가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미완료 능동).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아나큅토'/웅크림에서 곧게 펴 일어나셨다/십자가 부활에 의한 '구속'의 시작, 눅21:28) 가라사대('흐레오'/그들, 율법에 거하는 저와 여러분 안에 주님께서 진리로 말씀하셨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그 죄 없는 자가(주님인 당신께서) 먼저(첫 번째의) 돌로 그녀 위에(/그녀 자신으로) (이미-)던져졌다!/십계명 첫 번째 돌판이 깨진 사건/율법을 들어 그녀를 정죄하는 자나(/'무죄의식') 또한 율법으로 자기 스스로를 정죄하는 그녀나(/'유죄의식') 돌(/율법)에 맞아 죽을 죄인!/시내산에서 내려온 모세가 십계명 첫 번째 돌판을 던져 깬 사건은, '인간의 율법 지킴의 불가능함과 무력함이 폭로'되는 현장임. 출32:19] (그리고) 다시('팔린'/새롭게/원리적으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미완료 능동). [/십계명 두 번째 돌판의 기록/은혜와 진리]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아쿠오'/진리로 들으면서) '양심의 가책을 받아'(이 부분은 원문에 없어요)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엑셀코마이'/그들이 떠나갔다/우리 속의 악한 말, 귀신이 떠나가게 되었다)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그렇게 십계명 두 번째 돌판으로 예표되는 그리스도의 영, 그 진리의 성령으로 임한 '구속'의 은혜를 설명합니다. '가운데' 라고 번역된 단어 '메소스'는 '메타'(/'연합', '하나 됨'을 의미)에서 왔는데, 유일한 그 그리스도와 하나되어 진리 안에서(가운데) 산 존재가 됨을 뜻함/'여자'라고 번역된 단어는 '호 귀네'(/남편이 있는 결혼한 그 여자, 아내, 부인)입니다.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가 되었음을 설명합니다./ 그렇게 우리 안의 비진리의 율법('죄의식')이 떠나가고(/육의 죽음 '다나토스'), 은혜와 진리 안에서 '생명'으로 다시 살아난 그림입니다.] 예수께서 일어나사('아나큅토')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흐레오'/진리로 말씀하셨다.) 여자여("아내여! 내 신부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where?)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거봐, 이제 없지?/원리적으로 너는 죄와 무관한 자가 되었으니까). 대답하되('흐레오'/그리고 그녀가 진리로 말했다.) 주여 없나이다("주님!" 전 이제 더이상 죄와 아무 것도 아닌 자가 되었어요/'죄무의식') 예수께서 가라사대('흐레오'/그리고 주님께서 진리로 말씀하셨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내 백성아.. 내가 너희의 죄를 가져갔으니(/죄인 되심/'십자가 언약의 죽음') 그런 자로서(/율법이) 어떻게 더이상 너희를 정죄 하겠느냐/ 그들의 정죄의식('무죄의식'), 너의 정죄의식('유죄의식')과는 더이상 상관없는 '죄무의식'으로 자유해라. 너는 죄와 무관한 자가 되었다!] (롬1:17) [/'아버지'('아브') 안에서 '연합'('그리스도의 예수', '엘로힘')되어 산다는 복음에 나타난 의]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엘로힘'이라고 하는 '디카이오쉬네'가) 나타나서(/'아포칼립토'되고 있다) 믿음으로('에크 피스티스'/그 하나님의 믿음으로 부터, from/아버지의 열심, 일하심에 의해서) 믿음에 이르게('에이스 피스티스'/우리의 주관적인 믿음으로 향하는/이르는, into, to) 하나니(/그렇게 우리를 믿음의 존재된 자 되게하는 그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 계시로 나타나져 있다), 기록된바(/성경 합2:4에 기록되었던 내용 같이),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에크 피스티스'/그 하나님의 믿음으로 부터, from, 전치사 일반명사 여성 단수/그의 주관적인 믿음으로, by/연계형 대명사어미 3인칭 남성 단수) 살리라('자오'/'하야'/산 존재가 될 것이다/지금도 산 존재이니!/직설법 미래 중간태) 함과 같으니라" 진리를 안다고 하는 우리도 육신을 입고 있기 때문에, 늘 연약함 가운데에 불안해 하며 그 언약을 신뢰하지 못 할 때가 많습니다. 맞아요.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진리로 굳게 서야 합니다. 담대해지세요! 성도라고 하면서 '죄의식'(/죄 인식)에만 계속 머문다는 건 있을 수 없죠. 사도 바울이 정신 분열증 환자(조울증 환자)처럼, 어디에는 "오호라! 나는 곤고해..ㅠㅠ" 하다가 또 어디에는 "그럴 수 없느니라!" 했듯이, 성도만이 겪는 아이러니하고 역설적인 이중의 천국을 동시에 경험하는 모습은 어쩜 당연합니다. 그런 현실 앞에 당황해 해서는 안돼요..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그 분의 아들입니다(히10:39). "우리는 진동치 못할 나라를 은혜로 받고" 있습니다(히12:28).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히12:12) 선으로 악을 이겨 내세요! "Fight for yourself and your courage" ("너 자신의 용기와 너 스스로와 싸워야해"/너 안의 대적, 그 마귀적 본성을 똑똑히 볼 수 있어야 돼!) - '아스팔트 사나이(1995)' [https://blog.naver.com/nabijuhee/221556486326] 기독교는 죄를 없이하는 게 아니라 (원리적으로) 아예 죄와 무관한 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것을 '용서'라고 합니다. [/'구원'] 이미 묵시 속에 완료된 그 하나님 나라의 자녀됨 이라는 신분적이며, 선언적이며, 확정적인 언약의 복음을 선포하는 게 기독교입니다. 그렇게 죄와 무관하게 된 자, 그 하나님의 의가 덧입혀져서 의롭다 여기심을 받은 자, 그 의를 가진자(/'의의 존재'인 자)를 가리켜서 '디카이오쉬네'(δικαιοσύνη) 라고 합니다.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고, 가운데('메소스') 똑 바로 선('히스테미') 자. '하 아담'입니다. '무죄의식', '유죄의식', '죄무의식'에 대한 부분과, 주님이 땅과 연합되는 그림은, 내 아비의 설교에서 언급된 내용이에요.. (참고) 설교한 그 영상이 어디 있을텐데 으음... 지금 못찾겠네용. 로마서인가 산상수훈이었는데 나중에 찾으면 여기에 다시 링크 해둘께요~ (아래에 제가 의역한 글은요, 예전에 적었던 내용이에요. 그렇게 정죄하고 결국 떠나가 버린 언약 밖의 율법주의자를 향한 시선..) "여자여.. (내 사랑하는 신부야...)" "누가 너에게 율법의 돌을 들어 정죄하고 쳐 죽이려 하더냐" "내가 너희에게 모세의 율법을 준 이유는, 진짜 '간음'이 무슨 의미인지를 깨달아 알라고 한 거였지, 그러한 사람의 계명으로 서로 송사하고, 윤리와 도덕적 죄의식으로 심판하라는게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그 율법으로 와서 돌이되어 던져지고 그 십자가에서 파괴되어 죽었잖느냐.." "죽은 흙일 수 밖에 없는, 옛 땅인 너를 위해 내가 이렇게 너와 연합되어 함께 죽었잖느냐...(쓰윽)" "그리고 다시 진리의 영으로 부활한 나의 이 말이 지금 새 땅이 된 너의 심장(-생명-마음) 안에 영원으로 연합되어 새겨져 심겨졌으니까...(쓰윽), 더 이상 '간음'하지 말아라. '죄'를 짖지 말아라..." "여자여..." "지금 떠나가는 저들의 모습이 보이느냐, 내가 그렇게 저들에게 떨어져 저들을 산산히 부수어 버렸다" "떠나간 저들 처럼(-너 처럼), 율법에 사로 잡혀 있는 자들이 진짜 멸망받을 '간음'하는 자들이란다" "그리스도인 나와 함께 연합되어 있지 않는 그게 '죄'란 것을 이제 너는 깨달아 알았으니, 더 이상 '죄'와 무관한 자로,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말고 선과 악의 개념으로 부터도 자유로운 자로, 나의 은혜와 사랑 안에서 천국을 누리며 살면 된단다. 너는 내가 사랑하기로 한 내 신부이니까..." 결론 : 아름다운 '찰흙인간'('하 아담' = 보배를 담은 질그릇) 오늘 제가, '찰흙'이란게 '점착성'이 있으며 그 성분이 흙(dust, 티끌, 먼지, 마른 땅/עָפָר, '아파르')하고 물(water, '와러'/מַיִם,'마임')하고 관련이 깊다고 언급 했었지요. 기억나세요? 오늘 이야기 본문에서 주님께서 땅에다 손가락으로 쓰신('그랍호'/새기다, 기록하다) 표적은, 바로 그 하나님이신 당신께서 친히 땅(/'죽은 흙'/죄인된 자기 백성)과 연합함으로, 함께 죽고 부활한 '십자가 언약'('스타우로스')입니다. 그렇게 당신께서 낮고 천한 육신을 입고 우리의 죄가 되셔서, 율법으로(/율법에 의해/율법에 대하여) 희생하신 숭고한 '신의 죽음'입니다. 무한이 유한에게 자신을 계시하고 드러냈다는 것 자체가 곧 신의 희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이미 묵시 속에 일어난 거에요. 영원한 생명이신 그 진리의 생수, 반석이신 그 그리스도라는 '물'이, 먼지 풀풀 나는 마른 뼈인 죽은 '흙'의 우리와 '하나가 됨'('연합')으로 그 하늘의 새로운 산 존재로, 신비하고 아름다운('토브'/선한) 그 사람, '찰흙인간'('하 아담')이 탄생(/창조)하는 언약 성취 현장인 거지요.. 여러분! 창세기 1장에 '일곱'(/'언약')의 날('욤'/덮으심의 은혜)에 보면, 노래에 나오는 여음구, 후렴구 처럼 늘 반복되는 말이 있지요? 뭡니까.. 그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 "보시기에 좋았더라",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계속 나오지요. 거기 쓰인 단어가 '토브'입니다. '선'이라고 번역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세상적인 선의 개념이 아니라 그 하나님의 창조물(/'교회'인 "우리"의 탄생등)을 보며 만족하신 그 분의 마음입니다. 엄마가 고통의 산고를 통해(/신의 희생) 아이를 낳았을 때, 그 아이를 쳐다보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끼는 이러한 부모의 사랑느낌이라 표현할 수 있겠지요. 왜냐하면 죽음과 같은 자신의 희생을 통해 만들어진 자기 자식이니까요! 행복합니다.. 창세기 1장의 창조 사역은 바로 그 얘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태초에(시공간의 시작 때) 이 하늘과 땅, 우주만물을 당근 창조하셨겠지만, 성경은 독자인 우리에게 그 말을 하고있는 게 아닙니다. 바로 우리 아버지께서 자신의 백성을 창조하시면서 감탄하는 "아이~ 좋다~!!" 이 "아이 좋아"라는 게 바로 '토브'(/선한/아름다운/아들 만들기, '창조')입니다. 성경 66권 전체가 다 그 복음만 계시하고 있다니까요..? 그러한 묵시 속 하나님 나라의 창조 원리와 존재 양식을, 아들들인 우리가 육신을 입고 이 현상계에 한시적으로 머물면서 배우는 거에요. 그 분은 이 '호 코스모스'의 세상, 율법, 성경, 예수, 육의 나로 표현되는 모든 것들(/만물)을 수단과 도구로 그 진리를 가르치고 계십니다. '죄'를 통해서 '의'를 깨닫게 하시고 '율법'을 통해서 '은혜와 진리'를 가르칩니다. 죽음을 통해서 생명을, 어둠을 통해서 빛을 설명합니다. 그러니 모든 것이 '선'의('토브') 재료이고, 창조의 완성에 있어서는 우리에게 '감사'고 '선물'인 거에요. 심지어 우리 '허물과 죄' 까지도.. 육신을 입고 살고 있기에 어쩔 수 없는 유한의 한계로 어려움과 고난을 겪게 될테지만, '아들 만들기'라는 큰 그림(아버지의 경륜) 안에서 '죄'를 통해서 '의'를 깨달아 '의의 존재'가 되었다면(/육으로 죽고 영으로 살아 났다면) 더이상은 이러한 개념으로 부터도 자유해 지세요. (롬7:12)"이로 보건대(그러므로) 율법도 거룩하며('하기오스') 계명도 거룩하며('하기오스') 의로우며('디카이오스') 선하도다('아가도스'/'토브')" (롬8:28-39)"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아가도스'/'토브') 이루느니라"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31절),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33절), "누가 정죄하리요..."(34절)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그 그리스도의 그 '아가페'로 부터) 끊으리요... (세상 그 무엇도, 어떤 영적 존재도, 어떤 개념 조차)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그 하나님의 그 '아가페'로 부터/"우리", "나"됨을) 끊을 수 없으리라!" 여러분이 혹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만큼 감동적이며, 무척 행복하고 기뻤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나요.. 웃음이 나옵니까? 아니죠.. 웃음이 아니라 오히려 눈물이 쏟아진 경험들 있을꺼에요. 그런 겁니다. 그 눈물 속에 감추어진 진짜 영원한 웃음(/기쁨, 행복, 평안, 안식)인거죠. 감당하기 싫은 고통을 내 의지와 힘으로 억지로 참고 견딜 때엔, 고통스런 신음과 비명이 아니라 오히려 웃음이 터져 나옵니다? 허탈한.. 그런 억지 웃음('썩소'/썩은 미소의 줄임말. 신조어) 말고, 날 사랑해 주는 이가 있기에 슬퍼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들장미 소녀 캔디처럼, 우리 성도가 이 세상에서 흘리는 그러한 눈물(고난의 과정, 환란, 인내, 연단)의 산고는 찰나와도 같아서 곧 영원한 기쁨으로 화할껍니다! 그렇게 주님께서 우리에게 '카이로스'의 현실 천국을 잠깐 잠깐 경험하게 해준다는 것이, 우리를 하늘 소망을 품고 살게 하는 것 같아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아이~ 좋다~!!" ) 이게 바로 '창조'이고, '구원'입니다. 성경 전체의 얘기고, 또 역사와 인생에서 그려집니다. 선택과 유기? 전 그런 얘기는 되도록 언급하고 싶지 않네요.. 하지만, 그 분만이 오직 선하시며 그 분의 뜻대로 작정된 창조(/피조) 세계를 보시며 "이게 선이야" 한다는 것만 인정할 뿐입니다. 우리의 처음 자리를 안다면 경외할 수 밖에 없어요. [/롬9:10이하 '토기장이의 비유'] 그렇게, 당신의 창조사역을 선하다 감탄하며 기뻐하신 우리 아버지께서는, 당신께 절대 의존적 존재의 그러한 "아이들을~ 좋아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