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시작되었습니다.
새벽불면증, 이 증세는 보통 4월초부터 시작됩니다.
보통 해가 짧은 겨울에는 날이 샐 때까지 자도 되는데 요즘처럼 5시 반만 되어도 낮의 길이가 길어져 히부윰해지는 봄날에는 누군가가 등허리를 건드리는 것처럼 누워있기가 힘듭니다. 그래도 조금 더 뒤척이다 참을 수 없이 일어나니 5시 40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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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깅코스에 핀 꽃
새벽불면증이 아니라도
오늘처럼 하루를 온통 쉴 수 있는 토요일은 일요일보다 더 기다려지는 날입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밭에서 놀이를 할 수 있거든요.
다만 오늘은 마음이 급합니다. 다른 때와는 달리 12시쯤 비예보가 들어 있습니다.
게다가 기다렸다는 듯이 10시까지 교회에서 나무 심으러 오라는 광고가 있는 날이기에 지금 당장 가서 일한다고 해도 자투리 일밖에 되지 않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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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에서 애용하는 날씨 어플
그래서 행복합니다.
아주 젊지는 않지만 더 늙기 전에 이 몸뚱아리가 필요한 곳이 많다는 것에 긍지를 느낍니다. 10시 이전에 배수로 내느라 뭉개버린 밭을 손질하고 목사님께 약속드린 느릅나무 다섯 개를 파 가지고 가야 합니다. 아가둥지 어린이집 텃밭 비닐 씌워 달라는 아내의 부탁을 금방 들어줄 수가 없어서 마음이 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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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두릅밭이 엉망~
그러고 보니
새벽불면증의 원인이 해가 길어져서가 아니라 이 일 저 일이 복합적으로 바쁘기 때문인가 봅니다. 밭에 가면 사람을 볼 때까지 아침을 못 먹을 것 같기에 이른 아침으로 크림빵 몇 덩어리를 구겨 넣었습니다. 냉장고에 있었는데도 생각보다 굳지 않아 맛은 좋네요. 고물차 시동걸어 출발했습니다. 차창 밖으로 스쳐지나가는 살구꽃이 흐드러진 모습들이 마음 상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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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진 꽃조차 아름다워라~
이걸 참상이라 해야겠지요.
배수로 내느라 6W 포크레인을 불러 일을 시켰는데 밭주인과 심은 땅두릅 밭허리가 뭉개져 있고 기껏 15만원 주고 로터리 작업한 밭두둑이 짓뭉개져 있습니다. 지난 목요일 작업을 하면서 가슴 쓰렸는데 오늘 아침엔 무지 아픕니다. 큰 장비라서 밭을 뭉개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다 하여 작업지시를 했더니 복구작업이 만만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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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의 진실
삽을 들었지요.
대 여섯 골은 단숨에 했습니다. 그런데 점점 땀이 흐르고 힘에 부치는 겁니다.
헥헥~ 헥헥~ 어떤 분은 헤까닥 헤까닥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삽질은 참 힘드는군요. 포크레인기사가 긁어주길래 안심했는데도 바퀴자국이 다져져 딱딱하기가 생땅같습니다. 할 수 없이 고운 흙만 모아서 두둑을 만들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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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분은 갔어도 진달래 만발
에휴 힘들어~
허리를 펴고 사철가든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작년 이맘때 쯤에 밭에서 일할라 치면 가든의 안사장님이 커피들고 오셔서는 이건 뭐냐, 저건 뭐냐면서 말을 붙이곤 했지요. 날마다 헬스크럽 다니며 건강을 과시했는데 어느 날 심장병이 그 분을 모셔갔답니다. 그 분이 애지중지하던 화단에 진달래 피고 상사화가 이쁘게 오르고 있었지요. 거기서 조금 떨어진 뽕나무 밑에 심어놓은 키다리꽃이 생각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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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을 팽개치고
뽕나무 밑으로 내달았습니다. 열흘 전에 손톱만 하던 것이 많이 퍼드러졌습니다.
강원도에서는 흔히 키다리꽃이라고 하는데 겹삼잎 국화가 본명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보아도 국화와는 잎이나 꽃모양의 생김새가 완전히 다른데 왜 국화라고 하는지 모를 일입니다. 여느 국화와는 달리 키다리꽃의 새 순으로 무친 나물이 아주 맛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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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모랭이님이 올려주신 겹삼잎국화꽃
삼년 전 어느 님에게서
무료로 받아 뿌리를 분주하여 심었습니다. 그런데 나물로 뜯어먹으려고 보면 어떤 분이 캐 가는 바람에 개잡는 로프로 금줄을 둘렀더니 작년에 온전히 퍼져 오늘은 군락을 이루었습니다. 원없이 뜯었습니다. 가져가면 아내가 좋아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 두어 번은 더 베어 먹어도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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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다리나물이 최고라요
다시 삽질을 시작했습니다.
반 정도 진척이 되었을까 싶은데 후둑후둑 떨어집니다. 시계를 보니 9시 정도네요. 분명히 예보에는 12시부터라고 했는데 벌써 비가 시작하는 가 봅니다. 느릅나무 캐기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이 느릅나무는 나사연의 <발해참느릅>님으로부터 회초리 같은 걸 분양받아 심었는데 2년만에 아기 발목만큼 굵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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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릅나무가 금방 자라요
느릅나무가 커지니
어딘가로 시집보내야 하는데 명품나무로 기르지 못하여 시름이 깊었습니다. 밭주인은 밭둑에 필요없는 나무가 서 있는 것이 거슬리는지 원상복구해 달라고 하여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교회 정원에서 소용될 줄 어찌 알았을까요.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녀석들이 수십미터 거목이 될 때까지 주인의 보살핌을 받게 된 것도 녀석들의 행운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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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 5일장 묘목판매장
온갖 나무가 다 있습니다.
꽃나무, 과일나무... 없는 것 빼고는 다 있어요.
목사님과 정집사님과 함께 횡성 5일장에 갔습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데도 나무장은 살아있습니다. 사과나무, 대추나무, 밤나무, 수국, 앵두나무, 자두나무, 목련 등을 2개씩 샀습니다. 묘목값이 모두 16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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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잘 해서 집사님이 만원 깎아 보세요.”
정집사님에게 내려진 목사님의 숙제입니다.
“아으~ 나 절대로 못해요. 안수집사님이 깎아 보세요.”
그 숙제가 제게로 왔습니다.
“사장님, 돈이 만원 모자라네요. 좀 깎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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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조합에서 판매하는 묘목은
가격이 정해진 것이라 깎지 못하지만 시장에서 판매하는 것을 장사하시는 분이 달라는 대로 다 주면 너무 비싸지요. 사람 따라서 부르는 값이 전부 다를 수 있다는 게지요. 안 깎아주면 내돈 만원 더 보태주고 다른 묘목을 하나 더 받을 생각도 했지요.
“네, 그러면 15만원만 주세요. 그 대신 묘목이 필요하시면 또 오세요.”
참 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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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그루가 15만원이래요
저도 가을부터
장삿꾼이 되지만 이 분처럼 유연한 장사기술을 배워야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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뜯어먹으려고 눈독들였던 금낭화(강원도말 며눌취)
오랫만의 행복한 비요일입니다.
오후내내 실컷 잠자고 일어나 농장일기를 적었습니다.
농장일기 동영상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즐감하세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제 글에 공감하시는 걸 보니
하이택님도 주말농부신가 보군요.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