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구비문학대계韓國口碑文學大系](한국정신문화연구원 간행)는 진묵대사의 죽음에 얽힌 비화를 싣고 있다.
진묵대사(震默大師,1562~1633)의 도술 조화의 능력을 시기하고 질투한 유학자 김봉곡(金鳳谷,1575~1661)에 의해 참혹하게 죽었다는 것이다.
진묵대사(震默大師,1562~1633)는 뛰어난 도력을 지녔으나 몸을 두고 시해(屍解)로 다른 곳으로 간 사이 김봉곡에 의해 억울한 죽음을 당한다. 진묵대사는 조선 중기 명종 17년 임술년(1562)에 태어나 인조 11년 계유년(1633) 10월 28일에 세상을 떠난 고승으로 고려 말 공민왕 때 나옹懶翁대사와 더불어 석가모니 후신불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름은 일옥一玉이며, 진묵震默은 그의 호로 김제군 만경萬頃면 화포火浦리에서 태어났는데, 이 화포리란 곳은 옛날의 불거촌佛居村으로 부처가 살았던 마을이란 의미를 나타낸다. 대사가 태어날 때 불거촌의 초목이 3년 동안이나 시들어서 말라 죽었으므로 사람들은 모두 '불세출의 기운을 타고났다'고 하였다. 어려서 부친을 여의고 7세 때, 전주 서방산西方山에 있는 봉서사鳳捿寺로 출가했다.
대사는 불가(佛家)의 인물이지만, 이미 그 경계를 뛰어넘어 유불선儒佛仙 삼교에 회통會通한 인물이었다. 타자(他者) 구원보다는 자기구원에만 집착하는 소승불교를 비판하고, 명리승인 서산대사를 비판하면서 중생들의 생활 속에서 중생들을 제도하는 진정한 보살행을 행함으로써 부처의 화신다운 면모를 보였다.
또한 출가인임에도 모친과 누이동생에 대한 지극한 정성과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는 점에서 부모와 자식 사이의 천륜과 동기간 우애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중시한 인물로 유자(儒者)보다 더 유자儒者다웠다.
진묵대사는 이땅의 인간들을 위해 천상문명을 지상에 이식하기 위해 '시해선尸解仙'으로 천상에 올라간 사이에 유학자 김봉곡의 시기심과 질투로 인해 대사의 육신은 불타서 사라지고 말았다.
봉곡鳳谷 김동준(金東準,1575~1661)은 자가 이식(而式)이고 호는 봉곡鳳谷이다. 본관은 광산으로 고려조의 시중 문정공 태현의 후손이고, 생원 희지의 아들이다.
서인의 영수격으로 예학에 능통했던 사계 김장생(1548~1631)의 제자로서 그의 추천을 받아 의금부도사와 사헌부 감찰 등을 제수 받았다. 그는 계몽도설啓蒙圖說, 심성서언心性緖言 등의 성리학에 관한 저술을 남길 정도로 성리학적 지식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훗날 그의 묘갈명을 우암 송시열(1607~1689)이 지었다.
다음은 초의선사草衣禪師(1786~1866)가 쓴 [진묵조사유적고震默祖師遺蹟考]의 일화이다.
조선 인조 때 무더운 여름날 변산(邊山) 월명암月明庵에서 진묵대사를 모시던 시자(侍者)가 때마침 속가에 제사가 있어 공양물을 지어 놓고 산을 내려가 내일 온다고 고했다. 이 때 스님은 방안에서 창문을 열어놓고 손을 문지방에 대고서 능엄삼매楞嚴三昧에 들어있었다. 이튿날 시자가 올라와 보니 밥상은 그대로고 스님의 자세도 그대로인데, 스님의 손에서 피가 흘러 내려 그대로 말라붙어 있는 것이 아닌가.
바람이 불어 닫힌 문이 계속해서 문지방에 댄 손을 찧어 피가 흐르는 데도 그것을 알지 못한 채 삼매三昧(수행에 있어서 최고의 정신 집중 상태)에 들었던 것이다.
스님은 이미 시,공간을 초월한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삼매에서 깨어난 스님은 평소 좋아하는 술을 거르고 있는 다른 중에게 무엇을 거르는가 하고 물었다.
스님이 평소 술을 곡차(穀茶)라고 하면 마시고, 술이라고 하면 마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그 중은 스님을 시험하기 위하여 술을 거른다고 거듭 대답하여, 결국 스님에게 곡차 공양을 하지 않았다.
이에 스님은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길을 가는데, 얼마 뒤 금강역사金剛力士가 나타나 그 중을 타살해 버렸다. 이후 절문을 떠나 길을 나선 스님은 냇가에서 천렵(川獵,냇물에서 하는 고기잡이)을 한 뒤 매운탕을 끓이고 있는 소년 무리들을 만났다.
스님이 이 광경을 보고 탄식하면서, "이 무고한 물고기들이 화탕火湯 지옥의 고생을 하는구나!"하니, 한 소년이 희롱하여 말하기를 "선사께서도 이 고깃국을 드시겠습니까?"하니 "나야 잘 먹지"하였다. 이에 소년이 "저 한 솥을 선사께 맡기겠으니 다 드시오."하였다. 이에 스님이 솥을 들어 입에 대고 순식간에 남김없이 다 먹어 버리자, 소년들은 살생하지 말라는 계율을 어기고
고깃국을 다 먹었다고 조롱하였다.
이에 말씀하시기를 "물고기를 죽인 것은 내가 아니지만 그것을 살리는 것은 내게 있다"고 말하며 냇가에 가서 뒤를 보니 무수한 고기들이 살아서 헤엄쳐 갔다. 이에 소년들이 탄복하고는 그물을 거두어 가지고 돌아갔다. 그 물고기들이 ‘중태미’로 중(僧)의 태(胎)에서 나온 물고기란 뜻으로 전북지방에만 있다고 한다.
전주 장날을 맞이하여, 어스름이 찾아올 즈음 어머니를 뵙기 위해 왜막촌으로 가는 길에서 흥이 돋은 스님은 덩실덩실 춤을 추며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天衾地席山爲枕 천금지석산위침
月燭雲屛海作樽 월촉운병해작준
大醉居然仍起舞 대취거연잉기무
却嫌長袖掛崑崙 각혐장수괘곤륜
하늘을 이불로 땅을 자리로 산을 베개로 삼고
달을 촛불로 구름을 병풍으로 바다를 술통으로 삼아
크게 취하여 거연히 일어나 춤을 추니
도리어 긴 소맷자락 곤륜산에 걸릴까 꺼려지노라.
유유자적하고 무위 자연한 소요유(逍遙遊)의 경지를 보여주면서 호호탕탕한 스님의 모습은 명리를 초탈하여 아무 것에도 속박 받지 않은 대자유인大自由人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이윽고 도착한 왜막촌에는 7세 때 출가한 이후 봉양해 온 늙은 어머니가 계셨다. 스님은 그 마을 뒤에 있는 일출암에 머물렀다.
어머니가 해주신 보리밥 한 덩이와 보글보글 맛있게 끓인 된장국에 누이가 거른 곡차로 저녁을 맛있게 먹은 스님은 또다시 입정삼매에 들었다. 만경들녘에는 휘영청 밝은 백중百中일의 보름달이 대지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진묵대사는 신통력이 뛰어난 도인이면서도 세상에 초연한, 그러면서도 인간 냄새가 물씬 풍기는 다정다감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살가움을 지닌 이였다. 그리고 결코 손으로 움켜잡을 수 없는 바람과 같은 인물로 그 무엇에도 걸림이 없이 홀로 나아가는 구도자이며 천지만물과 함께 살아가는 대자유인大自由人이었다.
다음은 상제님의 말씀 중, 진묵대사의 억울한 죽음에 관한 내용이다.
道典 4편 138장) 전주 서방산(西方山) 봉서사(鳳捿寺) 아래에 계실 때 하루는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김봉곡(金鳳谷)이 시기심이 많더니 하루는 진묵(震默)이 봉곡에게서 성리대전(性理大全)을 빌려 가면서 봉곡이 곧 후회하여 찾아올 줄 알고 걸어가면서 한 권씩 보고는 길가에 버려 봉서사 산문(山門) 어귀에 이르기까지 다 보고 버렸느니라.
봉곡이 책을 빌려 준 뒤에 곧 뉘우쳐 생각하기를 '진묵은 불법을 통한 자인데 만일 유도(儒道)까지 정통하면 대적하지 못하게 될 것이요, 또 불법이 크게 흥왕하여지고 유교는 쇠퇴하여지리라.' 하고 급히 사람을 보내어 그 책을 도로 찾아오게 하니, 그 사람이 뒤쫓아 가면서 길가에 이따금 한 권씩 버려진 책을 거두어 왔느니라. 그 뒤에 진묵이 봉곡에게 가니
봉곡이 빌려 간 책을 돌려달라고 하거늘 진묵이 '그 책은 쓸데없는 것이므로 다 버렸노라.' 하니 봉곡이 크게 노하는지라. 진묵이 말하기를 '내가 외우리니 기록하라.' 하고 외우는데 한 글자도 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봉곡이 이로부터 더욱 시기하더니, 그 뒤에 진묵이 상좌(上佐)에게 단단히 이르기를 '내가 8일을 기한으로 하여 시해(尸解)로 천상에 다녀올 것이니 절대로 방문을 열지 말라.' 하고 떠나거늘
하루는 봉곡이 봉서사로부터 서기가 하늘로 뻗친 것을 보고 '내가 저 기운을 받으면 진묵을 능가할 수 있으리라.' 하며 즉시 봉서사로 올라갔느니라. 봉곡이 서기가 뻗치는 법당 앞에 당도하여 진묵을 찾으매 상좌가 나와서 '대사님이 출타하신 지 얼마 안 됩니다.'하니 봉곡이 '옳거니, 법당의 서기를 이 참에 받아야겠다.' 하고 '법당 문을 열라.' 하매 상좌가 '대사님께서 자물쇠를 가지고 가셨습니다.' 하거늘
봉곡이 큰 소리로 호령하며 기어이 문을 부수고 들어가니 뜻밖에 진묵이 앉아 있고 그의 몸에서 서기가 뻗치더라. 봉곡이 잠시 당황하다가 문득 진묵이 시해로 어디론가 갔음을 알아차리고 '서기를 못 받을 바에는 차라리 돌아오지 못하게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상좌에게 '어찌 시체를 방에 숨겨 두고 혹세무민하느냐! 중은 죽으면 화장을 해야 하느니라.' 하며 마침내 마당에 나무를 쌓고 진묵의 시신을 화장하니 어린 상좌가 울면서 말리거늘 봉곡은 도리어 화를 내며 상좌를 내쳤느니라.
이 때 마침 진묵이 돌아와 공중에서 외쳐 말하기를 '너와 내가 아무 원수진 일이 없는데 어찌 이러느냐!' 하니 상좌가 진묵의 소리를 듣고 통곡하거늘 봉곡이 '저것은 요귀(妖鬼)의 소리니라. 듣지 말고 손가락뼈 한 마디, 수염 한 올도 남김없이 잘 태워야 하느니라.' 하며 일일이 다 태워 버리니 진묵이 다급한 음성으로 상좌에게 '손톱이라도 찾아 보라.' 하는데 봉곡이 상좌를 꼼짝도 못하게 하며 '손톱도 까마귀가 물고 날아갔다.' 하는지라.
진묵이 소리쳐 말하기를 '내가 각 지방 문화의 정수를 거두어 모아 천하를 크게 문명케 하고자 하였으나 이제 봉곡의 질투로 인하여 대사(大事)를 그르치게 되었으니 어찌 한스럽지 않으리오.
나는 이제 이 땅을 떠나려니와 봉곡의 자손은 대대로 호미질을 면치 못하리라.' 하고 동양의 도통신(道通神)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건너갔느니라.' 하시니라.
이로써 대사의 뜻은 좌절되고, 깊은 원한을 품은 채 동양의 도통신(道通神)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넘어갔다. 또한 거의 동시대에 서양의 천주교를 동양에 뿌리내린 이마두((利瑪竇,마테오리치 신부,1552~ 1610) 대성사는 아래 말씀처럼 동양의 문명신(文明神)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넘어가 서양의 과학문명을 일으키게 된다.(17세기 과학혁명과 산업혁명).
道典 2:30) 마테오 리치 대성사의 큰 공덕
이마두(利瑪竇)는 세계에 많은 공덕을 끼친 사람이라. 현 해원시대에 신명계의 주벽(主壁)이 되나니 이를 아는 자는 마땅히 경홀치 말지어다. 그러나 그 공덕을 은미(隱微) 중에 끼쳤으므로 세계는 이를 알지 못하느니라.
서양 사람 이마두가 동양에 와서 천국을 건설하려고 여러 가지 계획을 내었으나 쉽게 모든 적폐(積弊)를 고쳐 이상을 실현하기 어려우므로 마침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다만 동양과 서양의 경계를 틔워 예로부터 각기 지경(地境)을 지켜 서로 넘나들지 못하던 신명들로 하여금 거침없이 넘나들게 하고 그가 죽은 뒤에는 동양의 문명신(文明神)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돌아가서 다시 천국을 건설하려 하였나니 이로부터 지하신(地下神)이 천상에 올라가 모든 기묘한 법을 받아 내려 사람에게 ‘알음귀’를 열어 주어
세상의 모든 학술과 정교한 기계를 발명케 하여 천국의 모형을 본떴나니 이것이 바로 현대의 문명이라. 서양의 문명이기(文明利器)는 천상 문명을 본받은 것이니라. 그러나 이 문명은 다만 물질과 사리(事理)에만 정통하였을 뿐이요, 도리어 인류의 교만과 잔포(殘暴)를 길러 내어 천지를 흔들며 자연을 정복하려는 기세로 모든 죄악을 꺼림 없이 범행하니
신도(神道)의 권위가 떨어지고 삼계(三界)가 혼란하여 천도와 인사가 도수를 어기는지라
이마두가 원시의 모든 신성(神聖)과 불타와 보살들과 더불어 인류와 신명계의 큰 겁액(劫厄)을 구천(九天)에 있는 나에게 하소연하므로 내가 서양 대법국 천개탑에 내려와 이마두를 데리고 삼계를 둘러보며 천하를 대순(大巡)하다가 이 동토(東土)에 그쳐
중 진표(眞表)가 석가모니의 당래불(當來佛) 찬탄설게(讚歎說偈)에 의거하여 당래의 소식을 깨닫고 지심기원(至心祈願)하여 오던 모악산 금산사 미륵금상에 임하여 30년을 지내면서 최수운(崔水雲)에게 천명(天命)과 신교(神敎)를 내려 대도를 세우게 하였더니
수운이 능히 유교의 테 밖에 벗어나 진법을 들춰내어 신도(神道)와 인문(人文)의 푯대를 지으며 대도의 참빛을 열지 못하므로 드디어 갑자(甲子 : 道紀前 7, 1864)년에 천명과 신교를 거두고 신미(辛未 : 道紀 1, 1871)년에 스스로 이 세상에 내려왔나니 동경대전(東經大全)과 수운가사(水雲歌詞)에서 말하는 ‘상제’는 곧 나를 이름이니라.
송구봉과 진묵대사, 그리고 최풍헌의 도력(道力)
[道典 4편 7장] 지난 임진왜란에 정란(靖亂)의 책임을 ‘최풍헌(崔風憲)이 맡았으면 사흘 일에 지나지 못하고, 진묵(震默)이 맡았으면 석 달을 넘기지 않고, 송구봉(宋龜峯)이 맡았으면 여덟 달 만에 끌렀으리라.’ 하니 이는 선도와 불도와 유도의 법술(法術)이 서로 다름을 이름이라.
옛적에는 판이 작고 일이 간단하여 한 가지만 따로 쓸지라도 능히 난국을 바로잡을 수 있었으나 이제는 판이 넓고 일이 복잡하므로 모든 법을 합하여 쓰지 않고는 능히 혼란을 바로잡지 못하느니라.
오늘날의 찬란한 문명은 인간의 힘과 노력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과 신명의 합작품이다. 천지신명들이 인간의 꿈이나 사색의 영역으로 찾아와서 열어주는 알음귀, 영감력 덕택에, 지난 수백 년 동안 인류문명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현대과학문명은 인간과 천지신명(神人合一)의 합작품이다.
인간 생명의 바탕이 신(神)이다. 죽어서 혼이 몸을 떠나면 신명(神明)이라고 한다. 진리의 세계는 이법적理法 측면만 있는 게 아니라 ‘진리의 세계도 두 얼굴(two faces of truth)’이 있다.
사람의 몸도 앞면이 있고 뒷면이 있고, 또 좌측이 있고 우측이 있다. 또 우리 몸은 외면(outer side)과 내면(inner side), 곧 물리적인 몸(physical body)과 영적인 몸(spiritual body), 이렇게 둘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을 동양에서는 음양의 법칙이라고 했다.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 한번은 음 운동을 하고 한번은 양 운동을 하는 것을 도道라고 한다.
도란 진리의 근원, 한 근원(ultimate One)이다. 진리의 근원인 도가 자기를 드러낼 때는 반드시 두 얼굴로, 즉 음과 양의 두 현상으로 나타난다.
‘진리의 두 얼굴’로 볼 때 이법, 법칙의 측면뿐만 아니라 인간이 배워서 지식만으로는 알 수 없는 또 다른 얼굴이 있다. 그것이 바로 신(神), 신의 세계(神道)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지식으로 깨닫고 판단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이성적·합리적인 측면과, 우리가 아무리 많이 배우고 지식이 많아도, 아무리 사고·판단을 잘해도 그것만으로는 결코 알 수 없는 또 다른 얼굴, 비합리적인 신적인 측면이 있다.
현대과학에서는 우주는 물질 4.9%, 암흑물질 26.8%, 그리고 암흑에너지 68.3%로 이뤄져 있다고 한다. 우리가 보고 만지고 이용하는 모든 물질들, 생명들, 그리고 밤하늘을 가득 메운 무수한 별과 은하는 다 합쳐도 전체 우주의 5%도 채 차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머지는 우리눈에 보이지 않는 암흑물질이라는 것이다.
이치가 진리의 양적인 면이라면 신도(神道)는 음적인 면이다. 이것은 오직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수행과 기도다. 이처럼 자연은 인간이 이성적, 합리적, 수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원리적인 면이 있고, 인간이 아무리 배우고 지식이 최상의 경계에 갈지라도 결코 알 수 없는 신神적인 부분(神道)이 있다. 그것이 바로 신명의 세계, 이 신도神道 세계를 모르면 인생은 한 마디로 까막눈이다. 절대로 인간이 뭔지, 진리가 뭔지 알 수 없고 자연의 섭리조차도 제대로 깨칠 수가 없다.
진리는 리(理,principles)와 신(神,spirit), 이 둘이 하나가 되어 여기에서 인사人事, 즉 사람의 일(human affairs)이 전개된다. 인사(人事)는 사건(event)을 말한다. 인간의 총체적인 사건을 중심으로 보면 역사(history)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이법과 신도神道를 바탕으로 인간 역사가 전개되는 것이다.
진리를 구성하는 전체 틀이 바로 이법(理)과 신도(神)와 인사(事)이다. 이것이 모든 철학과 과학과 인생 문제, 제대로 풀리지 않는 진리에 대한 갈급증을 해결할 수 있는 전 인류의 보편 진리, 우주적인 진리의 틀이다.
앞으로의 문명은 현실선경, 조화선경, 지상선경이다. 앞 세상에는 여러 천 년 동안 사람들이 생활해 온 업적과 지혜가 하나로 결집된 문명이 나온다. 지금의 최첨단 과학문명을 바탕으로 생활환경도 좋게 되고, 또 신인(神人)이 합일하는 문화도 나온다. 그런데 그 문화라는 게, 여러 천 년 동안 인간이 개발해 온 생활문명의 결정체를 뭉쳐서, 천지신명들이 인간에게 알음귀(영감력)를 열어줌으로써 나오는 것이다. 과학자도 제 재주가 뛰어나서만 된 게 아니라, 천지신명들이 머리를 열어준 것이다.
『서경書經』은 유가(儒家)에서 말하는 가장 이상적인 통치자, 즉 4천여 년 전 이후의 요, 순, 우, 탕, 문, 무, 주공 등의 성인 제왕들이 어떻게 통치했는지, 그 통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그 책의 서두에는 “제왕으로 등극을 하면 먼저 태산泰山에 올라 천상에 계신 상제님께 제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중국 산동성山東省에 있는 태산泰山 꼭대기에는 지금도 ‘옥황전玉皇殿’이 있다.
제왕이 되면 누구든 그 곳에 올라가 천상에 계신 하나님, 상제님께 천제를 지내고 나라 살림을 시작했던 것이다. “상제님! 제가 즉위를 했습니다. 신고를 올리겠습니다.” 하고 그래서 ‘제왕은 천상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다.’ 해서 ‘천자(天子)’라 불려 왔다.
근대 역사의 출발점인 19세기 후반에 나온 동학의 주제는 동방 한민족이 섬겨왔던 제천문화의 원 주인공인 우주의 통치자 상제님이 동방 땅에 강세하시고, 그분의 무극대도 진리가 나와서 앞으로 인류 문화는 시천주조화정(侍天主造化定)의 조화문명(造化文明) 시대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1860(경신)년 음력 4월 5일에 동학(東學)의 창시자 최수운 대신사가 하나님과 직접 문답을 했다. 그것이 천상문답(天上問答) 도통사건이다. 이때 최수운대신사가 상제님에게서 도통을 받으며 ‘앞으로 오는 새 시대를 선언하라.’하는 천명을 받았다. “무극대도(無極大道) 닦아내니 오만년지 운수로다.” 이것이 동학의 핵심 선언이다.
다음은 도(道)의 원전(原典), 도전(道典)속에 인간 삶 뒤의 세계에 대한 내용이다.
道典 10:16) 사람의 죽음길이 먼 곳이 아니라 문턱 밖이 곧 저승이니라.
道典 10:36) 죽으면 아주 죽느냐? 매미가 허물 벗듯이 옷 벗어 놓는 이치니라.”
道典 2:118) 김송환(金松煥)이 사후(死後)의 일을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사람에게는 혼(魂)과 넋(魄)이 있어 혼은 하늘에 올라가 신(神)이 되어 제사를 받다가 4대가 지나면 영(靈)도 되고 혹 선(仙)도 되며 넋은 땅으로 돌아가 4대가 지나면 귀(鬼)가 되느니라.”
“자손을 둔 신은 황천신(黃泉神)이니 삼신(三神)이 되어 하늘로부터 자손을 타 내리고 자손을 두지 못한 신은 중천신(中天神)이니 곧 서신(西神)이 되느니라.”
道典 8:32) 하루는 상제님께서 어느 마을을 지나시는데 한 집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거늘 정작 제사 받는 신명은 마당을 겉돌고
다른 신명이 들어가 제사상을 받고 있는지라 상제님께서 그 신명을 부르시어 “저 사람의 날인데 어찌 네가 먹느냐?” 하시니 그가 답하기를
“저 사람이 살아생전에 저의 재산을 모두 탕진시킨 채 갚지 못하였는데 죽어서도 그 은혜를 갚지 아니하니 오늘은 비록 자기 날이라고 하나 저의 것이나 진배없습니다.” 하니라. 후에 상제님께서 이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세상에 이치 없는 법은 없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2:31) 황제(黃帝)가 난(亂)을 지으므로 치우(蚩尤)가 큰 안개를 지어 이를 평정하였나니
난을 지은 사람이 있어야 다스리는 사람이 있느니라. 최수운은 동세(動世)를 맡았고 나는 정세(靖世)를 맡았나니 전명숙의 동(動)은 곧 천하의 난을 동케 하였느니라.
최수운은 내 세상이 올 것을 알렸고, 김일부는 내 세상이 오는 이치를 밝혔으며, 전명숙은 내 세상의 앞길을 열었느니라. 수운가사는 수운이 노래한 것이나, 나의 일을 노래한 것이니라. 일부가 내 일 한 가지는 하였느니라.
道典 2:26) “부모를 경애하지 않으면 천지를 섬기기 어려우니라. 천지는 억조창생의 부모요, 부모는 자녀의 천지니라. 자손이 선령(先靈)을 박대하면 선령도 자손을 박대하느니라. 예수는 선령신들이 반대하므로 천지공정에 참여치 못하리라. 이제 인종 씨를 추리는 후천 가을운수를 맞아 선령신을 박대하는 자들은 모두 살아남기 어려우리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조상은 아니 위하고 나를 위한다 함은 부당하나니 조상의 제사를 극진히 받들라. 사람이 조상에게서 몸을 받은 은혜로 조상 제사를 지내는 것은 천지의 덕에 합하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1:42) “이 세상을 살면서는 죄를 지어도 남 모르게만 하면 그만인 줄 알아도 죄진 사람은 천상에 가면 모든 게 다 드러난다.
죽으면 편할 줄 알고 ‘죽어, 죽어.’ 하지만 천상에 가면 모든 것이 다 무섭다. 믿으면서 지은 죄는 사하지도 못하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8:38) 선천에는 죄를 지어도 삼대(三代)가 물러나면 받았으나 현세에는 그 당대로 받느니라.
道典 4:122) 사람들끼리 싸우면 천상에서 선령신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나니 천상 싸움이 끝난 뒤에 인간 싸움이 귀정(歸正)되느니라. 전쟁사(戰爭史)를 읽지 말라. 전쟁에서 승리한 자의 신명은 춤을 추되 패한 자의 신명은 이를 가나니 도가(道家)에서 글 읽는 소리에 신명이 응하는 까닭이니라.
道典 2:119) 하늘이 사람을 낼 때에 무한한 공부를 들이나니 그러므로 모든 선령신(先靈神)들이 쓸 자손 하나씩 타내려고 60년 동안 공을 들여도 못 타내는 자도 많으니라. 이렇듯 어렵게 받아 난 몸으로 꿈결같이 쉬운 일생을 어찌 헛되이 보낼 수 있으랴.
너희는 선령신의 음덕을 중히 여기라. 선령신이 정성 들여 쓸 자손 하나 잘 타내면 좋아서 춤을 추느니라. 너희들이 나를 잘 믿으면 너희 선령을 찾아 주리라.
道典 9:213)“죽는 것도 때가 있나니 그 도수를 넘겨도 못쓰는 것이요, 너무 일러도 못쓰는 것이니라. 나의 명으로 명부에서 데려오라고 해야 명부사자가 데려오는 것이니 각기 닦은 공덕에 따라 방망이로 뒷덜미를 쳐서 끌고 오는 사람도 있고, 가마에 태워서 모셔 오는 사람도 있느니라.
또 하늘에 가면 그 사람의 조상 가운데에서도 웃어른이 있어서 철부지 아이들에게 천자문을 가르치듯 새로 가르치나니 사람은 죽어 신명(神明)이 되어서도 공부를 계속하느니라. 죽었다고 당장 무엇이 되는 것은 아니니라.”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무엇이든지 소원하는 바를 이루려면 천지에만 빌어도 안 되나니 먼저 조상에게 빌고 그 조상이 나에게 와서 빌어야 뜻을 이루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7:19) 자손에게 선령은 곧 하느님
만성 선령신(萬姓 先靈神)들이 모두 나에게 봉공(奉公)하여 덕을 쌓음으로써 자손을 타 내리고 살길을 얻게 되나니 너희에게는 선령(先靈)이 하느님이니라. 너희는 선령을 찾은 연후에 나를 찾으라. 선령을 찾기 전에 나를 찾으면 욕급선령(辱及先靈)이 되느니라.
사람들이 천지만 섬기면 살 줄 알지마는 먼저 저희 선령에게 잘 빌어야 하고, 또 그 선령이 나에게 빌어야 비로소 살게 되느니라.
이제 모든 선령신들이 발동(發動)하여 그 선자선손(善子善孫)을 척신(隻神)의 손에서 건져 내어 새 운수의 길로 인도하려고 분주히 서두르나니 너희는 선령신의 음덕(蔭德)을 중히 여기라. 선령신은 그 자손줄을 타고 다시 태어나느니라.
첫댓글 항상 감사합니다
네, 말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