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여든을 내일모레 앞둔 시인 고은 선생이 ‘나는 아직도 밥이 맛있다’고 말씀 하셨다. 여든이 넘으신 최근엔 이탈리아의 한 대학에 가서 한 학기 동안 강의를 하고 돌아오셨다. 고은 선생이 그 연세 되도록 열정적으로 글을 쓰며 바깥활동을 할 수 있는 비밀이 밥에 있었다니! 시인 고은에게 밥맛은 곧 자신의 ‘살아있음’과 연결된다는 얘기였다. 즉 ‘밥심’이 있어야 글 쓰는 정열도 인다는 얘기이리라. 그런데 밥심으로 해야 하는 일이 글뿐이랴. 세상의 어떠한 일도 밥심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게 없다. 그래서 죽음을 밥숟가락 놓는다고 비유적으로 말하리라. 비밀을 살짝 털어놓자면, 나는 아직도 밥이 맛있는 정도가 아니라, 밥이 맛없던 적이 없다! 나는 밥을 참으로 좋아한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우리말을 꼽을 때면 ‘밥’이라는 말이 꼭 들어간다. 밥을 워낙 좋아하기에 오십대 중반인 지금도 아침을 거르지 않는다. 아침 먹는 습관은 저 옛날 어린 시절에 일찌감치 든 게 틀림없다. 초중학교 시절 시오리(6킬로미터) 산길을 걸어 학교에 다녔다. 그러자면 새벽밥을 먹어야 했다. 밥을 든든히 먹고 가지 않으면 고개 넘기가 힘들었다. 밥을 든든히 먹고 집을 나서도 학교가 있는 읍내에 이르면 나는 물론 내 동무들 모두 장터의 식당에서 내뿜는 냄새를 오래도록 맡으며 ‘아, 배부르다!’고 했다. 고등학교와 대학은 도회에서 자취를 했다. 전기밥솥이 없던 시절이라 연탄불에 밥을 지어먹어야 했다. 그런데도 아침을 거른 기억이 없다. 학교에 늦더라도 연탄불을 다시 피워 아침을 지어 먹고 갔으니! 그뿐이랴. 군 훈련소에 입소한 첫날에도 이른바 ‘짠밥’이 담긴 식판을 깨끗이 비웠다. 다른 훈련병들은 군대 밥이 입에 맞지 않아 거의 한 주일 정도는 냄새도 맡기 싫어했다. 나는 밥 말곤 다른 것은 잘 안 먹는다. 이른바 군입치기를 하지 않는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까지 평생 먹은 라면도 50여 개를 넘지 않을 것이고, 과자도 몇 봉지 안 될 것이고, 빵도 몇 개 안 될 것이다. 밥을 좋아하긴 하지만 밥 가운데에서 보리밥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렸을 때 구황식품으로 보리밥, 서숙밥, 쑥밥, 톳밥 등을 자주 먹어서인데, 특히 보리밥을 많이 먹은 탓이다. 그런데 이젠 그런 게 이른바 ‘웰빙 식품’이 되어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려서 몸에 좋은 것을 미리 다 먹어 둔 셈이다. 우리 또래의 사내들은 산에 갔다가 내려오면 꼭 보리밥집으로 가서 보리밥에 막걸리를 시킨다. 그런 때 나는 보리밥 대신 흰 쌀밥을 시킨다…. 이태 전이었던가. 보리출판사 대표이신 농부철학자 윤구병 선생과 함께 강연을 한 적이 있다. 윤구병 선생이 자리에 앉아 계시고 내가 먼저 말을 하게 되었다. 무슨 말 끝에 농담 삼아, 쌀밥이 더 맛있지 보리밥이 무어 맛있느냐고 했다. 그래서 난 산에 갔다 내려와서도 될 수 있으면 보리밥을 먹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윤구병 선생이 말씀하실 차례가 되었다. 윤구병 선생이 백구두(그날 출연한 소리꾼이 그렇게 표현하였다. 윤구병 선생은 흰 고무신을 신고 계셨다.) 차림에 연단으로 가시더니 자신은 아직도 보리밥을 먹고 있다고 하셨다. 중의적 표현! 절묘했다. 나는 ‘깨갱’하며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계간 『시에』 2013년 가을호
박상률 전남 진도 출생. 1990년 『한길문학』으로 등단. 시집 『진도아리랑』, 『배고픈 웃음』. 소설 『봄바람』, 『개님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