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제사장들과 이스라엘의 원로들은 사도들을 다시 잡아 와서 공회(公會, συνέδριον, Sanhedrin)에서 심문(審問)하기 시작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왜 예수의 이름으로 가르치냐는 심문이었습니다(27절, 28절). 예수님이 죽게 된 것에 대한 책임을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물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아 죽이도록 했으면서도 이에 대해 예루살렘 사람들이 그 책임이라도 물을까 봐 두려웠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 베드로와 사도들은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29절)라고 대답합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이 아무리 금하였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전하라고 하셨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못하도록 금한다고 해도 만유(萬有)보다 크신 우주 만물의 주권자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하지 말라고 하는 그들은 그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 자들인데, 그들도 전능자 창조주로 믿고 있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셨고, 이스라엘로 회개하게 하셔서 죄 사함을 얻게 하기 위해 임금과 구세주로 세우셨다는 것을 역설(力說)합니다(30절, 31절). 임금은 헬라어로 “아르케곤”(ἀρηγὸν)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는데, 아르케곤은 모든 것의 기원이 되는 지도자라는 의미입니다. 만물의 주관자이시며, 구원자이심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과 진리에 대하여 사도들은 증인이며,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임하게 하신 성령도 이러한 사실과 진리를 증언한다고 강력하게 전했습니다(32절).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도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었으니 이러한 사도들의 말은 그들이 하나님의 역사(役事)에 반역하는 죄를 지었다고 말하는 것과도 같았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사도들의 이런 말을 그냥 듣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크게 분노하며 사도들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33절).
위기일발(危機一髮)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을 때 가말리엘이 나섰습니다(34절). 34절에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가말리엘(גַּמְלִיאֵל, Γαμαλιὴλ, Gamaliel)은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율법 교사였습니다. 그 당시 유대의 바리새인들은 힐렐(הִלֵּל, Hillel)학파와 샴마이(שַׁמַּאי, Shammai)학파로 크게 양분(兩分)되어 있었는데, 가말리엘은 힐렐학파를 세운 유명한 랍비 힐렐의 손자로 힐렐학파의 수장(首長)이었습니다. 가말리엘은 사도들을 잠시 밖에 나가 있게 하고 공회에 모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가말리엘은 감정에 의해 도에 지나친 판단을 내리는 것에 대해 자제하도록 하였습니다. 가말리엘이 사도들의 편에 선 것은 아니었지만, 아마도 공정하게 처리하도록 권면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은 가말리엘을 통해서 사도들을 건져 내신 것입니다.
가말리엘은 바리새인이었기에 부활이 없다고 믿는 사두개인들보다는 부활을 인정하는 바리새인의 손을 들어주는 편에 속했기에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에 쌍심지를 켜는 사두개인들보다는 보다 공정하게 처리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기에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신중하라고 권면합니다(35절). 가말리엘은 드다가 일으켰던 일들과 갈릴리의 유다가 봉기(蜂起)했던 일들을 상기(想起)시키며, 이 두 가지 사건에서도 잠깐 사태가 일어났었지만 조금 지나자 모두 잠잠해지고 흩어져 없어졌었던 것처럼, 지금 이 일도 하나님께서 행하시지 않은 일이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흐지부지 흩어져 없어져 버릴 것이고, 만약 정말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이라면 그 일을 막아서는 것은 하나님께 대적하는 일이니 그러면 안 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한 것입니다(36절~39절).
드다는 헬라어 원문의 이름으로는 듀다스(Θευδᾶς, Theudas)인데, 이 드다가 누구인지는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아마 헤롯 대왕이 죽은 직후(BC 4년경)에 일어났던 수많은 반역 중 하나를 주도했던 지도자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갈릴리 유다의 일이란 AD 6년에 로마의 시리아 총독인 술피키우스 퀴리니우스(Publius Sulpicius Quirinius)에 의해 호적을 다시 정리하라는 명령이 있었을 때 갈릴리 유다에서 민족주의적 운동이 전개되었었던 사건을 일컫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 두 사건 모두 얼마 지나지 않아 스르르 그 영향력이 사라져 흐지부지 끝났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굳이 사람들이 많이 따르고 있는 사도들을 죽여서 일을 크게 만들지 말고 가만히 두면 저절로 그 기운이 사라지지 않겠냐는 조언이었습니다.
그러자 공회에 있던 사람들이 가마리엘의 말을 옳게 여겨 사도들에게 채찍질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풀어주게 됩니다(40절). 그러나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능욕(凌辱) 받는 것을 오히려 기뻐하며 공회 앞을 떠났습니다(41절).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자제하기는커녕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42절).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의 꿈틀거림이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고 전하는 일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가말리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일이 너무 확대되어 문제가 되지 않게 하려고 중재(仲裁)한 것이지만, 가말리엘의 말처럼 하나님의 일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사람의 소행(所行), 사람의 계획과 활동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이 복음은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영혼을 살리는 역사(役事)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멈추지 않습니다. 이 복음을 전하는 일은 중지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서 이 복음이 계속 전해지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 복음을 어디에 있든지, 어떤 상황에서든지 전한다면 하나님께서 역사(役事)하셔서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나는 그저 하나님께 순종하여 이 복음을 전하기만 하면 됩니다. 멈추지 말고 이 복음을 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안창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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