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뒤안길을 거닐며
오늘이 2023년 12월23일(토)이다.
오후 3시3분에 1호선 종각역 12번 출구에서 동기들이 합류한다.
최근 며칠 사이 아침 기온은 영하 15도까지 급강하한 날이다.
오늘도 아침 기온은 영하12도를 예상하고 있다.
최고기온도 영하의 날씨이다. 저녁 5시5분에는 종각역 근처 맛집으로 올라서리라.
두시간 정도의 여유의 시간이다. 바람은 그런대로 세차게 불지는 않는다.
광화문 광장을 거쳐 경복궁으로 향할 예정이다.
광화문(光化門)은 조선 왕조의 법궁인 경복궁의 정문으로 서울과 한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물이다.
건물의 명칭인 '광화(光化)'는 '빛이 널리 비춘다.'라는 뜻이다.
건립 당시에는 정문(正門) 혹은 오문(午門)으로 불리기도 한다.
1425년(세종 7)에 이르러 집현전 학자들에 의해 '광화문'이라 명명된다.
태조 3년(1395년)에 이성계가 개경에서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뒤 지은 것이다.
1425년(세종 7)에 이르러 집현전 학자들에 의해 '광화문'이라 명명된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타 버려서 소실된다.
1865년(고종 2)에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광화문도 함께 지어진 것이다.
그러나 일본 침략기에 일본 왜놈 쪽발이들이 대부분 건물을 헐어 버린다.
일제강점기 당시 경복궁 홍예문 권역에 조선총독부 청사(중앙청) 건물을 지으면서
경복궁의 동문인 건춘문 북쪽으로 이전된다.
6·25전쟁 때 폭격으로 파괴되어 문루가 모두 소실된다.
1990년대 들어서 경복궁 복원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역사바로잡기의 일환으로 1996년에 조선총독부 청사(중앙청)를 철거를 한다.
훼손된 경복궁의 전각들을 복원하였으며 콘크리트로 지어진 광화문은 2006년에 철거된다.
2010년 고종 때 중건 당시의 모습으로 원래의 위치에 광화문이 복원되어 있는 것이다.
2019년에는 문화재위원회에서 현판의 원형이 검은색 배경에 금박 글씨였음을 확인하고
현판을 교체하기로 결정한다.
2009년 광화문 앞 옛 육조거리 도로 가운데에 남북으로 조성했던 광화문광장이 재공사를 거쳐
2022년 8월 새로 개장했으며 2023년 10월에는 광화문 앞 월대가 복원되었다.
경복궁은 조선 시대의 궁궐로 북악산 남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태조 3년(1395년)에 이성계가 개경에서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뒤 지은 것이다.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타 버린 것을 1865년에 흥선 대원군이 다시 지었다.
광화문을 옮긴 뒤 근정전 앞에 조선 총독부(중앙청) 건물을 지어 궁의 옛 모습을 찾기 힘들게 된다.
초기의 경복궁은 남북이 길고 동서가 짧은 네모난 울에 둘러싸여 있었다.
궁 앞에는 광화문, 북쪽에 신무문, 동쪽에 건춘문, 서쪽에 영추문을 세웠다.
정전(正殿)인 근정전을 중심으로 둘레에는 남문인 근정문을 비롯한 네 문이 있었다.
그 북쪽의 사정전은 임금이 거처하며 정사를 돌보던 편전이며, 강녕전 · 교태전 등의
침전과 여러 건물이 들어서 있다.
강녕전과 교태전은 1918년 창덕궁으로 옮겨 지어졌다.
태종 때에는 연회 장소인 경회루를 세종 때에는 보루각 간의대 등 관측 시설까지 갖추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주요 건물은 근정전 · 사정전 · 천추전 · 수정전 · 경회루 · 자경전 등이다.
경복궁은 수많은 역사적인 사연이 어려 있는 중요한 문화재이다.
명성 황후가 일본인들에게 살해된 곳도 후원의 건청궁이다. 사적 제117호로 지정되어 있다.
광화문 광장을 향하노라니 곳곳에서 마이크 잡음이 귀를 어지럽히고 있다.
토요일이면 언제나 우리 공#당 미군철거 문#인 감옥등등 그들만의 억지 주장은 끝이지를 않는다.
윤#통 아무개는 무엇을 하는 꼴통인가. 답답할 뿐이다.
추위에도 수많은 경찰들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는 모습이다.
광화문 광장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곳이 어느곳에 누구인가.
우리나라 글인 훈민정음을 창조하신 세종대왕과 충무공 이순신장군이리다.
세종대왕의 면면을 들여다 본다.
1397년(태조 6)에 탄생하여 1450년(세종 32)에 53세에 사망한 세종대왕이다.
조선 제4대 왕이자 한글인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조선 초기 국가의 기틀을 마련한 왕이다.
지구상에서 한글만큼 간단 명료하게 창조한 문자는 어디에도 없을 게다.
1418년 6월 왕세자에 책봉된 후 8월에 태종의 양위를 받아 즉위한다.
조선 초기 국가의 기틀이 되는 전반적인 제도를 갖추고 조선왕조가 지배 기반으로 삼은
유교문화를 융성하게 한 임금이다.
농사에 도움이 되는 천문기구를 개발하고 도량형을 정비하고 출판사업을 크게 일으킨다.
대외적으로 여진과 왜를 정벌하고 명의 요구를 적절히 조율도 한다.
한글과 일본어를 비교해 본다.
일본어는 전부 한자에서 따온 글들이며 받침도 띄어쓰기도 없다.
한가지만 예를 들어보자. " かね,까네"라는 발음의 뜻을 가진 것이
鐘(종, 종소리), 金(금속, 쇠, 금전,돈,쇳돌), 鐵, 鉦(징,굉과리), 印(낙인, 소인), 钜(곱자, 직선, 직각),
그리고 " ~ 이냐"등 7가지나 된다.
한글로 뜻은 무려 15가지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일본글이라는 한개의 뜻은 그때 그때 대화 내용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2년여 전부터 일본을 신랄하게 비판코저 스스로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을 한 것이다.
하노라니 처음엔 엄청 쉬운것 같아도 들어갈수록 기가 막히게 엉터리 느낌이 가일층 되고 있다.
이런 언어를 가진 국가가 세계에 몇개 국가가 있을까.
중국의 한문을 도용(盜用)해서 제멋대로 해석이 분분한 엉망진창인 것이 아닌가.
그래도 저들만이 잘났다고 총칼을 들이대려고만 하는 군국주의 쪽발이들이다.
세계에서 가장 경계하며 의심의 눈빛으로 봐야 할 인간도 아닌 개만도 못한 그룹이리라.
저들을 절대로 진심으로 받아주고 대하면 결과는 정반대일 터이다.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동상의 모습은 어떤가.
광화문 광장 한복판에 서서 계시고 있는 오른쪽 손아귀에는 커다란 칼자루를 움켜쥐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부라리고 계신 눈동자는 을릉도 독도 건너편에 일본 쪽발이들을 노려보고 있는 모습이다.
언제든 헛다리를 또 다시 휘두르면 단칼에 일본열도를 뒤집어 엎을 늠름한 기세가 아닌가.
이순신의 거북선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올린다.
임진왜란이 발발되기 전해인 1591년 전라좌도수군절도사로 임명된 이순신은 왜구의 내침을 미리 대비하여 특수전투함인 거북선의 건조에 착수한다.
거북선의 크기는 판옥선의 크기와 같다. 판옥선은 임진왜란 중 조선 수군이 완승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옥포해전·당포해전·한산해전·부산해전 등 주요 해전에 동원된 군선 중에서 3척의 거북선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판옥선이다.
그때 판옥선의 크기는 2층으로 저판 길이 50~55척(尺) 탑승인원 130명 정도로 파격적으로 컸다.
1척(尺)의 길이는 고려와 조선 초기에 32.12cm였으나 현재는 33.33cm로 통용된다.
거북선은 뱃머리에 용두를 설치하여 용의 아가리를 통해 대포를 쏜다.
거북의 등처럼 만든 귀배판에는 철첨( 鐵尖)을 꽂아 적병이 배 위로 오르는 것을 막았다.
포혈은 좌우 각 현에 6개, 용두에 1개, 선미에 1개가 있었으며 천자포·지자포·현자포·황자포 등의 각종 총통을 장비한다. 철로 덮어 많은 적선 속으로 뚫고 들어가도 적의 공격을 이겨낼 수 있다.
승무원수는 125~130명 정도이다.
돛대는 세우고 눕힐 수 있어서 접전시에는 돛대의 장비를 보호하고 기동성을 높이기 위해 돛대를 눕히고 노만으로 추진한다.
어느 날인가 무모한 명량해전 전야이다.
그는 붓을 들어 "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 "
"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고 살고자 하면 반드시 죽는다 "라고 명량(鳴梁)에서 쓴다.
1597년 9월 16일 운명의 9월 16일이다.
전남 울돌목. 일본의 정예함선 133척이 바다를 덮는다. 예비 함대 70척도 뒤를 따른다.
조선 수군의 세력은 불과 13척뿐이다. 누가 봐도 결과가 뻔한 싸움에서 기적이 일어난다.
싸움의 결과는 100척 이상의 일본 배를 침몰시킨 조선의 압승이다.
"우는 바다"라는 명량(鳴梁)에서 대첩을 거둔 것이다.
한산대첩과 더불어 사상 최고의 해전으로 꼽히는 명량대첩이다.
명량해전은 정유재란의 흐름을 뒤바꾸었다.
10만 명의 병력이 배를 타고 서해를 북상해 한양을 친다는 일본의 수륙병진책이 수포로 돌아갔다.
한양을 200여 리 앞둔 직산과 보은까지 올라왔던 일본군이 남쪽으로 총 퇴각한 것도 명량해전 패전 직후다.
조선 수군의 승전 요인은 명장 이순신의 존재이다.
빠르고 급변하는 울돌목의 해류를 이용할 줄 아는 지략과 불굴의 의지, 경영자적 마인드가 승리를 이끌었다.
이순신은 명량(鳴梁)해전에 겁에 질린 부하들을 독려하여 기적 같은 승리를 거둔다.
그렇게 조선 수군은 왜군의 서해안 진출을 틀어막음으로써 전쟁의 일대 전기를 이끌어낸다
이런 불세출의 승장 이순신에게 당도한 것은 ‘통곡(痛哭)’이란 두 글자가 쓰인 편지이다.
그해 10월 사랑하는 셋째 아들 이면이 고향을 급습한 왜군과 싸우다 목숨을 잃었던 것이다.
52세의 아버지 이순신의 영혼은 천참만륙 천참만륙(千斬萬戮)으로 찢어진다.
세상에 어느 부모님인들 자식에 대한 사랑은 목숨보다 더 귀하고 사랑스러운 존재일 터이다.
한마디로 아버지의 심정은 자신의 육신이 여러 동강으로 수없이 베여져 참혹하게 죽는 심정이 아닐까.
그날의 《난중일기》를 읽어보자.
"14일 신미. 맑았다. ……저녁에 사람이 천안에서 와서 집안 편지를 전한다.
열어보기도 전에 몸이 먼저 떨리고 정신이 어지러웠다.
정신없이 뜯어보니 겉봉에 ‘통곡’ 두 글자가 쓰여 있는 것을 보고 아들인 면이 전사한 것을 알았다.
나도 모르게 간담이 떨어져 목 놓아 통곡하고 통곡을 한다.
하늘은 어찌 이렇게 어질지 않단 말인가.
내가 죽고 네가 살아야 마땅한 이치거늘 네가 죽고 내가 살다니 어찌 이렇게도 어그러진 이치가 있느냐.
천지가 캄캄하고 밝은 해도 빛을 잃었다.
슬프다. 내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
남달리 영특해 하늘이 이 세상에 머물러두지 않은 것이냐.
내가 지은 죄 때문에 화가 네 몸에 미친 것이냐.
지금 내가 살아있은들 장차 누구에게 의지한단 말이냐.
부르짖으며 슬퍼할 뿐이다. 하룻밤을 보내기가 한 해 같다."
이처럼 용감 무쌍한 아버지 이순신도 자식에 대한 사랑은 끝이 없는 부모일뿐이다.
이순신장군의 무공(武功)은 임진왜란 발발 이후 이순신 장군이 첫 승전을 거둔 옥포해전이다.
한산도, 명량, 옥포해전 등의 3대 대첩이 있다.
23전 23승의 거둔 것이니 일일이 거명키도 어쩌면 무의미 할런지도 모른다.
이순신은 전략을 알고 전술을 구사할 줄 아는 탁월한 무장으로 나라를 지키고 역사를 지킨 영웅임에 틀림없다.
그는 적이 오기 전에 방비를 철저히 하고 전투에 나갈 때는 적진을 파악하곤 한다.
전투지의 상황을 철저히 조사하는 등 반드시 이기는 싸움을 하는 명장 중에 명장이다.
그러나 이순신 개인으로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은 것이다.
충무공(忠武公)이란 호칭과 시호(諡號)는 무슨 의미를 나타내고 있는 것인가.
충무공은 무공(武功)을 세워 시호(諡號)를 충무(忠武)로 받은 사람을 높여 이르던 말이다.
시호(諡號)는 임금이나 정승, 유현들이 죽은 뒤에 그들의 공덕을 칭송하여 주던 단어이다.
충무공이란 호칭을 받은 인물은 몇명으로 누구이던가.
조선 태조/태종 즉위 및 안정에 기여 1명 조영무, 세조 때의 반란 "이시애의 난" 및 여진족 토벌한 이준, 남이 2명이다.
임진왜란 등 일본과의 전쟁에 공헌자 이순신, 김시민 2명이며 병자호란 등 후금(청)과의 전쟁에서 4명인 이수일, 정충신, 구인후, 김응하등 모두 9명이다.
또한 그렇게 높은 자리까지 가는 와중에 아무래도 정치적으로 견제 세력도 많아지게 마련이다.
대부분 중간에 정치적으로 큰 고통을 당한 충무공들도 있다. 6명이 이런 케이스가 아닌가.
무탈했던 자는 극히 행동을 조심하며 요직을 거부하고 권력 야심이 적었던 1명으로 이수일 뿐이다.
그 외에 정치적으로 고통이 없던 자는 전사한 이들 2명으로 김시민, 김응하이다.
심지어 이순신은 정치적 고통도 있었고 전사한 케이스이리라.
어쩌면 그것이 유학(儒學)을 숭상하는 문치주의의 나라 조선에서 무장들이 겪어야 할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문치국가인 조선에서 성공한 무인은 불행해지며 죽거나 귀양 가거나 아니면 권력자의 하수인이 되게 마련이다.
이순신도 죽지 않았으면 반역자로 몰려 자자손손 역적의 누명을 벗지 못했을 것이다.
전장에서 활약하며 나라를 지켰음에도 문인들의 정쟁에 희생된
이순신은 조선에서 성공하고도 대접을 받지 못한 대표적 무장이었다.
민족의 성웅인 충무공 이순신의 애국 위훈을 길이 전승하고 민족자주정신을 선양할 목적으로
충무공 이순신의 탄신일인 1545년 4월28일을 기념해 제정한다.
대한민국의 기념일 중 위인들의 생일에서 따온 두 기념일 중 하나다.
또 하나는 세종대왕의 생일인 스승의 날(5월15일)이다.
이 날에 세종대왕 탄신 기념행사도 벌이긴 하지만
원래 기념일을 만든 취지가 '스승의 은혜에 대해 감사하는 날'이다.
따라서 위인 자체를 기념하는 날은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이 유일한 셈이다.
광화문 광장 순회를 끝내고 경복궁으로 향할 것이다.
광화문을 들어서고 근정문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 입장권을 보여 주세요 " 입구에서 젊은 아낙네의 큰 소리이다.
노객들은 무슨 입장권인가. 잠시 어리둥절이다. 노인네들은 전철도 공짜 국립공원등은 무조건 공짜의 어르신이렸다.
" 여기 신분증을 보아라(?) 이 녀언아 ~ , 아닌 보세요 " 라고 한마디 뱉을 밖에 없다.
입장권을 판매소는 뒷쪽 100여미터 후방에 있으니 어쩔까.
그제야 신분증을 일일이 확인코 입장이다.
들어서니 앞쪽에 근정전이 보이고 있다.
근정전은 신하들의 조하(朝賀)를 받거나 정령(政令)을 반포하는 정전(正殿)으로
때로는 사신을 맞아들이기도 하고 양로연(養老宴)이나 위로연을 베풀기도 하던 곳이다.
1985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정면 5칸, 측면 5칸의 팔작지붕 중층건물.
공포(栱包)는 다포계(多包系)이고, 구조는 전후 툇간 11량(前後退間十一樑)구조이다.
양쪽 좌우에는 돌비석으로 정1품(正一品) 정 2품(正二品) 정 3품(正三品) 정4품(正四品)등의
표지석이 자리하고 있다. 임금을 알현하려면 자기 자신의 지위에 따라 길게 늘어서야 하는 곳이리다.
이 몸은 과연 정품(正品)이면 몇 품이며 정품(正品)이라는 근처에라도 매달리기라도 했으려는가.
정품(正品)은 고사하고 위품(僞品)이라도 한 자리 추가하면 좋으련만 세월은 세월 따라 흐른다.
여기 저기에는 한복을 입은 수 많은 외국인 남녀 노소들이 기념 촬영에 설치고 있다.
지금 기온도 영하 7~8도이니 얇은 한복에 얼굴은 추위에 질리고 움츠리고 떨기도 한다.
동기들은 단체 사진 한컷을 여타 입장객에게 부탁도 한다.
한복을 입은 관광객들은 모두 입장료가 무료라고 한다.
나중에 나오면서 입장료를 확인하고 보니 3,000원이다.
물론 만 65세 이상인 노객들은 신분증을 들이대면 입장권은 그냥 꽁짜이다.
외국관광객들은 입장료 3,000원이 없어서 이련가 아까워서인가.
한복을 대여해서 입고 입장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한복 대여금이 2,000원 아니면 1,000원이던가.
이해가 불가(不可)한 모습도 아니고 그저 그러려니 하고 웃고 있는 노안(老顔)들이다.
경복궁을 뒤로 하고 인사동 방향으로 옮겨 간다.
인사동 곳곳의 점포에도 물건을 사려고 외국인들이 들락날락이다.
길거리 포장마차 같은 곳에는 붕어빵 잉어빵을 굽고 있는 곳이 저기 여기 즐비하다.
또 뭐드라 고래빵(?)이나 코끼리빵(?)은 보이지를 않고 있다.
마침내 파고다 공원을 스쳐 젊음의 거리 맛집으로 들어선다.
약속시간 보다 약 15분 일찍 3층 회식연 룸으로 입장이다.
지구상의 인간들의 모습은 어떤가.
우선 한반도의 정세를 들여다 본다.
1945년 8.15 한반도가 일본 왜놈들의 식민지 노예에서 벗어난 독립기념일이다.
북쪽에는 김일성 1인 독재 공산국가로 남쪽은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민주주의를 앞세운 대한민국으로 탄생한다.
광복 후 한반도에는 냉전체제 속에서 남북에 별개의 정부가 수립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막강한 군사력을 갖춘 북한이 통일을 명분으로 전면적인 남침을 개시한다.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위 38°선 전역에 걸쳐 북한군이 불법 남침함으로써
일어난 한반도 전쟁이다. 북한 김일성 독재인 공산당의 침공으로 한반도가 전쟁의 회오리에 휩쓸린다.
유엔의 결의에 따른 국제사회의 개입으로 역전되던 전황은 다시 중공군의 개입으로 교착상태에 머물기도 한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이루어지면서 전쟁이 중지된다.
한반도 전체가 엄청난 잿더미로 휩쓸리고 수많은 인명은 추풍낙엽일 뿐이 아니랴.
70여년이 훌쩍 지나고 있는 현재도 종전(終戰)도 아닌 휴전(休戰)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남과 북의 분단이 더욱 고착화되어 국경(國境)도 아닌 국경으로 38선이 철조망으로 차단된 상태이다.
먹을 것은 고사하고 집도 절도 없는 물설고 땅설고 하늘도 설은 피난민 시절이 바로 엊그제 같기만 하다.
일부의 주장은 6.25전쟁 때 사망한 남북한 사람들도 300만명 정도라고 한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당시 굶어 죽은 북한 주민은 300만명으로
한반도에서 한민족 백성들이 600만명이나 김일성 족속들에 의해 희생된 것이다.
600만명이 아니라 100만명이든 60만명 30만명 등등 추측하고 있는 숫자들도 있다.
이같은 주장은 어쩌면 축소되었거나 과장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확실한 증거는 남북한이 통일이 되어 정확한 역사적 증거로 확인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우리는 김일성 독재자에게 책임을 묻거나 반성이나 사죄를 요구한 적이 거의 없다.
어느 날에나 언제 쯔음에나 이북에 두고 오신 내 할머님을 만날 수 있는 날이 오려는가.
1.4후퇴 피난 나올 당시의 할머님의 연세는 회갑을 지난 상태로 알고 있다.
오늘 할머님의 연세를 계산키도 어렵지 않은가.
일곱살배기 맏 손자가 80세로 환하게 웃으시는 할머니 품에 꼭 안겨보고 싶다.
무슨 말이 필요한가.
2022년 2월24일 우크라이나 - 러시아 간 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수 많은 젊은이들이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는다.
폭격을 당한 생활 터전인 주택들도 모두 파괴되어 쓰레기장으로 함몰이다.
수백만명의 국민들은 이웃 국가로 피난민의 신세이다.
지금 이 순간까지 2년 가까이 전쟁은 계속되고 있으나 종전의 기미는 짐작키도 어렵다.
이틀 후이면 12월25일 크리스마스 성탄절이다.
세계 각국은 12월 25일을 성탄절로 기념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등 정교회를 믿는 일부 국가는 세계 표준인 그레고리력과 13일 차이가 나는
율리우스력을 기준으로 매년 1월7일을 성탄절로 기념해 왔다.
우크라이나는 1917년 이후 처음으로 법으로 성탄절 날짜를 바꾸고 국가 차원에서
성탄절을 12월 25일로 못 박았다.
러시아 정교회에 대한 반감이 커진 것으로 러시아를 지우기 위함이다.
수많은 젊은이들의 생명이 제물이 되고 곳곳의 주택들도 쓰레기장으로 바뀐것이다.
2023년 10월24일이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공격이다.
가자지구에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무장세력인 하마스가 좌지우지 통제를 받는다.
최근에 발생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 이유는 복잡한 역사적, 종교적, 정치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예루살렘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에게 중요한 도시이다.
세 종교의 신자들 사이에서 지배권을 둘러싼 분쟁의 원인이다.
서로가 상대방의 종교를 인정하고 받아드리지 않는 한 풀기 어려운 전쟁의 미로(迷路)가 아닌가.
수 만명 이상이 사망하고 행방불명자도 계속 될게 아니랴.
생활 터전인 모든 것이 숯더미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다.
지금 노객이 책상 앞에 편안히 앉아 글을 더듬고 있는 순간에도 전쟁터에서 허덕이며 갈 곳을 잃는다.
먹을 것은 고사하고 마실 물도 기댈 곳도 없다.
무너져 내린 건물더미 속에 파묻혀 있을 내 자식 내 부모님의 울부짖는 신음소리도 들을 수도 없다.
" 내 아들 딸 손주들아 ~~~ 어디로 갔는가."
" 왜 나에게 이런 참극이 연출 되고 있을까. "
" 감독은 누구이며 주인공은 어드메 있는가 "
" 언제나 끝이련가 "
"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왜 침묵뿐인가 " 답답한 마음에 말문이 막힌다.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는 총칼을 앞세우고 전쟁의 잿더미가 계속되고 있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말다툼하다 치고 받고 하다가 살인까지 하고 있는 인긴들의 모습이다.
세계 곳곳 어디에서든 국가적으로도 이와 같은 파멸의 물결이 넘치고 있다.
한마디로 지구는 둥굴고 200여개가 넘는 국가도 한 나라 한 지구촌의 마을인 것이리다.
80억 인구 모두가 유일한 생명체로 지구를 이끌고 있는 주인공들이다.
누가 누구를 미워하고 치고받고 불태우고 살인자가 되려는가.
지구의 온난화로 곧 파멸의 순간도 한발 한발 다가오고 있다.
자연을 파괴하고 있는 범법자들이 바로 인간들이다.
백년지기 동기들의 오늘 자화자찬(?)을 들어본다.
자신의 생각이 정답이며 바로 법이다.
옆에 있는 동기의 의견은 개나 소나 부르짖는 망발일 뿐이다.
눈알을 부라리며 넘치는 술잔에는 침을 튀기고 있다.
녀석들인 너와 내가 모두 한심한 몰골들이 아닌가.
광화문 경복궁을 걷고 돌아서는 80세 인생도 예외는 없다.
세상 만사 모든 것이 순간 순간 여기 저기에서 역사의 뒤안길로 들어서리라.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크든 작든 국가간에 분쟁(紛爭)과 전쟁(戰爭)은 계속되고 있다.
이 한해가 저물기 전에 총칼을 버리고 환한 얼굴로 서로를 껴안아 주면 좋으련만 ~~~
주절이고 있는 이 몸도 나라를 위하여 세계 평화를 위하여 무엇을 하였는가.
길거리에서 엎드려 구걸하고 있는 노숙자에게 십원짜리 동전 한냥 마실 물 한컵이라도 쥐여준 적이 있는가.
오롯이 내 앞에서 지껄여대고 있는 녀석들의 동조자일 뿐으로 방관자가 아닌가.
2023년 계묘년(癸卯年)도 며칠후에는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다시는 돌아올래야 돌아올 수도 없는 역사의 뒤안길로 말이다.
2024년도 새해 새 아침 천간(天干)이 " 갑 "이고 지지(地支)가 " 진 " 갑진년(甲辰年)이 밝아 오리다.
청룡(靑龍)의 해이기도 하다. 언젠가는 청룡을 타고 하늘로 치솟는 날도 오리다.
인간일세백세라지만 기뻐 하거나 노하거나 슬퍼하거나 즐거워 하지도 마라.
하늘에 계신 하나님처럼 침묵으로 일관하면 어떠신가.
2023년 12월 23일 회장 무 무 최 정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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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수 증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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