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좋은 소식이 ···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어야 합니다.—마가 13:10. 오늘날 하느님의 뜻은 왕국의 좋은 소식이 온 땅에 전파되는 것입니다. (디모데 전서 2:3, 4) 그 전파 활동은 여호와의 일이며 그분은 사랑하는 아들이 매우 중요한 그 일을 감독하도록 맡기셨습니다. 우리는 끝이 오기 전에 전파 활동이 예수의 훌륭한 감독 아래 여호와께서 바라시는 만큼 완수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마태 24:14) 그 점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 그분은 하늘로 올라가시기 직전에 갈릴리의 한 산에서 많은 충실한 제자들을 만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이 나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가서 모든 민족의 사람들을 제자로 삼으십시오.” (마태 28:18, 19) 따라서 예수께서 전파 활동을 감독할 권한을 받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오늘날에도 그 전파 활동을 계속 감독하실 것입니다. 「파22.07」 8면 1, 3항; 9면 4항 |
좋은 소식이 ···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어야 합니다.—마가 13:10. And the gospel must first be published among all nations. Benson Commentary Mark 13:10. The gospel must first be published among all nations — “The fulfilment of this part of the prophecy we learn chiefly from the writings of the New Testament, which inform us that the gospel was preached by Paul in Arabia, and through the vast tract from Jerusalem to Iconium in Lycaonia, and in Galatia, and through all Asia Minor, and in Greece, and round about to Illyricum, and in Crete and Italy, probably also in Spain and Gaul. Besides, the gospel reached much farther than this apostle carried it; for we find him writing to Christians who had never seen his face. Also, we have still remaining Peter’s epistles to the converted Jews in Pontus, Asia, Cappadocia, and Bythynia. Probably the gospel was preached in these and many other countries by the Jews who sojourned there, and who, having come to Jerusalem to the passover, were converted on the day of pentecost. The Ethiopian eunuch, converted by Philip, would carry it likewise into his country. But whatever way it happened, the fact is certain, that in most of these countries churches were planted within thirty years after Christ’s death, or about ten years before the destruction of Jerusalem. Hence we find the apostle telling the Romans, (Romans 10:18,) that the sound of the gospel had gone forth into all the world, and that the faith of the Christians at Rome was spoken of throughout the world, chapter Mark 1:8. And hence, too, he tells the Colossians 1:23, that the truth of the gospel was come to all the world, and was preached to every creature. And when Mark wrote his gospel the apostles had gone forth, and preached everywhere, Mark 16:20. The preaching of the gospel, through the whole world, by twelve illiterate fishermen, and the destruction of Jerusalem, were events extremely improbable, and therefore the prediction and accomplishment of them deserve to be particularly taken notice of; and the rather, because they were both absolutely necessary for bringing about the conversion of the world to Christianity, and are mentioned in this prophecy as such.” — Macknight. 벤슨 주석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ㅡ "이 예언의 성취는 주로 신약 성경의 글에 기록되어 있다. 복음이 아라비아에서 바울에 의해 전파되었고 예루살렘에서 리카오니아, 갈라티아, 소아시아, 그리스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지역을 통해 전파된 것으로 우리는 신약 성경을 통해 알게 된다. 일리리쿰, 크레타, 이탈리아, 아마도 스페인과 갈리아까지도 포함될 것이다. 게다가 복음은 이 사도가 전한 지역보다 훨씬 더 멀리까지 전해졌다. 왜냐하면 바울의 얼굴을 본 적이 없는 그리스도인들에게까지 편지를 썼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폰투스, 아시아, 카파도키아, 바이티니아에서 개종한 유대인들에게 편지했던 베드로의 서신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아마도 복음은 그 곳에 머물렀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유월절까지 와서 오순절 날에 개종한 이들 나라와 많은 다른 나라들에서 전파되었을 것이다. 필립에 의해 개종된 에티오피아 내시도 똑같이 자기 나라로 가지고 갔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 일어났든, 이 나라들 대부분에서, 그리스도가 죽은 지 30년, 혹은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약 10년 전에 복음이 심어져 있었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가 로마인들을 통해 복음의 소리가 온 세상에 퍼져 나갔으며,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이 온 세상에 회자되었다고 말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롬 10: 18). 그리하여 그는 또한 골로새서 1장 23절에서 복음의 진리가 온 세상에 와서 모든 산 자에게 전파되었다고 말했다. 마가 16장 20절에서는 마가가 복음을 기록할 때, 사도들이 나가 사방으로 말씀을 전했다고 하였다. 12명의 문맹 어부들에 의한 전세계의 복음의 전파와 예루살렘 파괴는 있을 수 있다고 지극히 믿기 어려운 사건이었다. 그러므로 그 예언과 성취는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둘 다 개종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이다.이 예언에 그러한 것으로 언급되어 있다." — 맥나이트 |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역사를 조사하는 일이다. 즉 이해하고자 하는 부분에 대한 사실성의 여부를 조사하고 그 바탕 위에서 문맥적 이해를 한 다음 마지막으로 그 내용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신학적으로 해석하는 작업의 순서로 이루어져야 한다. 복음, 곧 좋은 소식이란 무엇인가? 1세기 예수의 제자들에게 좋은 소식이란 승전보이다. 예수께서 죄와 싸워 이겼다는 소식이다. 따라서 그가 죽음을 극복했다는 소식이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는 소식이며 그 중심에 예수께서 계시다는 소식이다. 이 소식이 천하 만민에게 전파되었는가? 그렇다. 그 소식은 적어도 예루살렘 성이 로마군에 의해 함락되는 기원 70년이 오기 전에 당시의 온 유럽에 전파되었다. 이러한 전파에는 사도들이 중심이 되었고 특히 이방인의 사도라 불리웠던 바울의 힘이 컸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좋은 소식은 그 자체가 전파력을 지니고 있다. 사도들이 전혀 가지 않은 곳까지 복음은 발이 달린 것처럼 넓게 전세계적으로 퍼져 나갔던 것이다. 누구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좋은 소식이기 때문에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다. 그래서 결국 예언대로 끝이 왔던 것이다. 그 끝은 예루살렘의 멸망이었다. 그러나 좋은 소식이란 말 자체에서 알 수 있듯이 단지 예루살렘이 멸망되고 이후로 아무런 일이 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 소식이 좋은 소식이 될 수 있겠는가? 이 땅에 예수께서 다시 오셔서 왕으로 즉위하시고 천하를 심판하게 될 때 그 좋은 소식은 온전히 성취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좋은 소식이란 예수께서 죄를 대표하는 사단 마귀와 싸워 이겼다는 소식임과 동시에 왕으로 다시 오신다는 소식임에 틀림없다. 이것이 역사적 측면에서 살펴 본 좋은 소식이다. 여기서부터 이 사실을 약간 패러프레이징해 볼 수 있다. 예수님이 사단마귀로부터 승리했다는 것은 정의가 불의를 이긴다는 뜻이다. 이러한 이김이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그가 왕으로 다시 온다는 것은 정의가 불의를 이김이 일회적인 승리가 아니라 영속성을 가지게 된다는 의미이다. 즉 불의는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또한 그러한 이김이 계속되는 나라가 이루어져 점차적으로 강성해진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반드시 1세기의 예수를 문자적으로 복원시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예수는 자신의 일을 모두 했기 때문이다. 본질적인 문제는 예수가 이김으로써 우리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심어주는 것이다. 즉 우리는 예수를 따라 정의의 나라를 건설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 나라는 점차적으로 강대해져 천하만민의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누가 이런 나라 또는 사회를 만들 것인가. 바로 당신이 주인공이란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당신이 열심히 애써다가 죽을 즈음이면 당신의 그 정의로운 생각과 예수의 사랑을 자녀에게 복사시켜 전달하면 된다. 반드시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굳은 신념이 필요한 것이고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자체가 희망이고 보람이고 행복한 삶이란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심이 되면 된다. 몇년만 있으면 오느니 하는 짧은 생각을 버려야 한다. 자신이 하나님의 나라, 정의로운 사회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것이지 남이 만든 나라에 얹혀 사는 수동적인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런 당신이 두 사람이 되고 다시 네사람이 된다면 그 수는 조만간 몇 세대를 거치지 않아 수천만을 이루게 될 것이다. 우리는 멀리 내다 보아야 한다. 다만 언제 있을지 모르는 재난에 대비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는 명백하므로 현실적인 대비를 해야한다. 먼저는 선한 사람이 되는데 가장 힘을 쏟아야 하고 다음은 노동에 부지런한 사람이 되야 하며, 학문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만드는 가장 튼튼하고 확실한 방법이다. 예언의 성취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야 한다. |
질문:
1. 무엇이 좋은 소식인가?
2. 예언의 성취는 기다리는 것인가, 만들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