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에 미쳐본 사람들은 안다. 찬바람이 뼛속으로 파고드는 한겨울 새벽에 우체국 문 열기 기다리며 언 발을 동동 굴러본 사람들은 안다. 코끝이 땡땡 얼 정도로 기다린 뒤에 손에 든 새 우표 한 장이 그 순간, 우주만큼 크다는 사실을. 평생 한 번 볼까 말까한 뮤지션의 공연을 위해 한 달 용돈을 쏟아 부어 표를 구한 뒤에 점심값이 없어 친구 등에 빈대처럼 찰싹 붙어 갖은 욕을 먹어도 행복하고, 심지어 집에 갈 차비가 없어 1시간을 걸어도 마냥 행복한 경험을 해본 사람들은 안다. 그 희열을. 미쳐서 행복한 그 순간을.
복수, 경이, 미래, 동진, 그리고 우리 이웃들 <네 멋대로 해라>를 성공시킨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캐릭터들이다. 네 멋 세상에는 콩쥐도 없고 왕자도 없다. 네 멋 마니아들은, 우리가 그동안 타고난 악당도 타고난 천사도 없는, 보통 캐릭터들이 자유롭게 살며 사랑하는 드라마에 얼마나 목말라했던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다. 늘 모자라고, 전전긍긍하고, 사랑에 가슴 무너지고, 아프면 아프다고 소리 지르는 그들의 모습에서 마니아들은 공감한다. 정달이는 복수를 유치장에 잡아넣은 나쁜 놈이지만, 절대로 나쁜 놈이 아니다. 형사로서의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그를, 복수가 선물한 장갑을 버려놓고 아까워하는 그를, 진짜 변해버린 복수를 마음속으로 인정하고 그의 행복을 빌어주는 그를, 어찌 미워할 수 있으랴. 그리고 눈 뜨고 사랑을 빼앗기는 불쌍한 두 청춘-미래와 동진, 그들은 또 얼마나 아름답게 자기 사랑을 끝까지 지키고 마감하는가. 정말 한도 끝도 없다. 자식이 소매치기를 하는지, 군대를 다녀왔는지 관심도 없고, 자식에게 나 돈 좀 벌어줘 울면서 이야기하는 윤여정이나, 복수야 죽지 마 절규하다가 끝내 자식이 먼저 죽는 모습을 볼 수 없어 세상을 떠버리는 신구나, 아버지 어머니로서는 빵점짜리들이다. 경이라고 다른가. 돈만 알 것 같지만 속정 깊은 졸부 아버지나, 세상 다 알게 대놓고 딴 마음 품고 사는 어머니나 부모 노릇 못하기는 똑같다. 그렇지만, 복수나 경이나 그런 못나고 뒤틀린 부모를 미워하지 않는다. 세상에 둘도 없는 효자 효녀들이라서? 천만에 말씀 만만에 콩떡이다. 미워할 수 없고, 미워해봤자 소용없고, 불쌍한 인생이라는 걸 안다. 서로 서로간에 애증이 실감나게 교차한다. 연기라기에는 소름 끼치도록 실감 나는 연기자들의 모습 때문에 한 장면도 놓칠 수가 없다. 배우 vs 캐릭터 열전 양동근 VS 고복수 직업 : 배우 겸 힙합 랩퍼 VS 전직 소매치기, 현직 액션배우 나이 : 79년생(양띠) VS 26세 가족 관계 : 3남매 중 막내 VS 이혼한 어머니와 얼마 전 자살한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가 다른 동생. 성격 : 과묵, 진지, 성실, 침착 등 신세대와 상당히 거리 먼 단어들과 가깝다는 소문 VS 진지, 성실, 속정 깊음, 다정다감, 이거다 싶은 사랑에 온 몸 던질 줄 아는 과감성까지. 학력 : 대학교 재학 중 VS 가방 끈 상당히 짧음 좋아하는 음악 : 힙합 VS 미완성 밴드의 음악들. 특히 ‘나비야’라는 노래를 좋아함. 전과 : 현재까지 알려진 바 없음 VS 소매치기 2범(한 번은 미래의 신고, 한 번은 박정달 누명) 인생 경력 : 연기 경력 15년. VS 소매치기 경력 15년. 스턴트맨 경력 3개월 연애 경력 : 긴가민가한 소문들 몇 개 VS 이쁘고 늘씬한 데다, 생활력까지 강한 치어리더 전 애인. 이쁘고 날씬한 데다 돈도 많은 인디밴드 키보디스트 현 애인 있음(복도 많음). 병력 : 알려진 바 없음 VS 뇌종양 3기. 얼마 전에 수술 받았음. 장래 희망 : 배우 겸 랩퍼로 오래오래 사는 것 VS 좋은 애인 경이씨와 함께 예쁘고 행복하게 오래 오래 사는 것. 사는 날까지 후회 없이 사는 것. 이나영 VS 전경 직업 : 배우 겸 모델 VS 인디락 밴드 키보디스트 겸 작곡가 나이 : 79년생(양띠) VS 25세 가족 관계 : 부모님, 3남매 중 막내. VS 남 같은 부모와 정말 남인 오빠, 올케 언니 성격 : 애늙은이, 털털, 엉뚱, 과묵, 뜬금없음, 공상하는 것을 즐김.VS 맹해 보이고 띨빵해 보임. 남의 일에 신경 안 쓰지만 한 번 화나면 무섭다. 학력 : 대학교 재학 중 VS 지방대 음대 피아노과 졸업 좋아하는 음악 : ? VS 어릴 때부터 골수 락 마니아 인생 경력 : 10대 때 초코렛 CF로 데뷔, 영화 드라마 등으로 점차 발을 넓혀가고 있음 VS 음악학원도 안 차리고, 유학도 안 가고 돈 안 되는 밴드 노릇으로 아버지의 속을 뒤집어놓고 있는 중. 연애 경력 : 아직까지 그럴싸한 스캔들 없었음 VS 대학 때 선배 잠깐 좋아했었음. 학력도 없고 못생겼지만 다감한 매력남과 꽃미남 엘리트 기자 사이에서 잠깐 헷갈리다가, 못생긴 매력남에게로 급선회함(역시 복도 많음). 병력 : 알려진 바 없음. VS 수박 두 통을 번쩍 번쩍 들 정도로 힘이 셈. 장래 희망 : 좋은 배우가 되고 즐겁게 사는 것. VS 애인의 병이 얼른 나아서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고, 좋아하는 음악을 계속 하는 것. 공효진 VS 송미래 직업 : 전직 모델. 현직 탤런트 겸 영화배우 VS 치어리더, 중고 자동차 판매사 모델 등 돈 되는 일은 닥치는 대로 함. 현재 간호사 시험공부 중. 나이 : 80년생(원숭이띠) VS 27세 가족관계 : 남매 중 첫째. VS 싸가지 없지만 머리 좋고 착한 여동생을 거느린 처녀 가장. 성격 : 털털해보이지만 여성스러움. 내성적. VS 한 마디로 천방지축 왈가닥. 입에 욕이 떠날 날이 없지만, 거친 겉모습 속에 감춰진 여리고 속 깊은 성격. 학력 : 대학교 재학 중 VS 가방 끈 상당히 짧음. 인생 경력 : 4년 전 모델로 데뷔. 영화, 드라마를 종횡무진 누비며 가장 개성 있는 연기자로 발돋움 중 VS 소녀가장으로 살아와서 겁나는 게 없다. 화장실에서 소매치기도 때려잡았고, 젊은 사업가와 불륜에 빠질 위험도 처하지만, 사랑만큼은 지고지순이다. 연애 경력 : 동갑내기 초등학교 동창 배우랑 연애 중(현실에서는 복 많음). VS 3년 동안 가족처럼 정 들여 보살핀 남자를 뺏김. ? 병력 : 알려진 바 없음. VS 실연으로 가슴에 깊은 멍이 듬. 장래 희망 : 좋은 배우, 좋은 연인으로 오래 기억되기. VS 간호사. 복수와 결혼해 살고 싶은 꿈은 날아갔음. 허탈함. PD와 작가가 밝힌 ‘네 멋대로 해라’의 실체 전작 드라마들에서 감각적이고 빠른 템포의 드라마를 만들기로 정평이 난 박성수 PD는 오래 전부터 ‘네 멋대로 해라’라는 드라마 제목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박 PD의 평상시 모토는 '비굴한 겸손보다 오만한 솔직이 낫다'는 것. “드라마 인물들 일상속의 모든 행동, 사랑 등이 사회가 강요하는 이해와 상식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진정한 솔직함으로 발휘되길 바라는” 마음이 이 컬트 드라마를 탄생시킨 기본 뿌리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주인공 캐릭터들을 통해 그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너 자신을 위한 길이 가족과 사회를 위한 길”이라는 것. 한 마디로, 이것저것 세상 눈치 보지 말고 내 몸과 마음이 원하는 곳으로 따라가면 그게 곧 내 행복이고 더 큰 행복이 된다는 것이다. 인정옥 작가는 이 드라마의 주제에 대해 한 마디로 ‘제대로 사랑하기’라고 말한다. “죽어 가는 사람이 죽음 직전에 가장 가치 있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가 남겨둔 과제와 풀어야 할 숙제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드라마”라는 기획 의도는 얼마나 잘 맞아떨어졌나. 수많은 마니아들은 이 드라마를 통해, 주인공들을 통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사랑하고 죽음을 맞아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네 멋대로 해라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죽음’이다. 네 멋을 다른 드라마와 차별 짓는 지점 역시 바로 이것이다. 네 멋의 죽음은 결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죽음은 모든 기회를 빼앗아 가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출발점이 된다. 배우들의 연기, 그 중에서도 ‘배우’ 양동근을 새로 발견했다는 것을 제작진들은 최고의 성과 중 하나로 꼽는다. 네 멋 열풍의 진원지! 마니아들 세상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의 열풍은 다름 아닌 시청자들로부터 생겨났다. 게시판 홈페이지에서 가장 폭주한 ‘명대사 명장면’ 꼭지를 만들어낸 것도 마니아들이다. 다음, 프리챌 등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는 ‘네 멋’ 동호회가 30개가 넘고 20만 명이 활동 중이다. ‘네멋 30’(네 멋대로 해라를 사랑하는 30대 모임) 등이 가장 유명한 사이트. MBC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2002년 11월28일까지 158,309개의 글이 올라와 있다. MBC는 아예 ‘왕마니아’라는 꼭지를 따로 만들어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네 멋 마니아들을 분가시켰다. 11월18일에 공식 발매를 시작한 DVD 타이틀은 이미 <친구>의 판매 기록을 뛰어넘어, 앞으로 DVD 판매의 신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들은 더 이상 꽃미남 꽃미녀의 사랑 놀음에 울고 웃는 수동적인 시청자가 아니다. 드라마 안과 밖을 넘나들며 함께 호흡하는 능동적인 마니아들이다. 어느 사이트에서 드라마 인기 투표중인데, 지금 네 멋이 뒤지고 있으니 얼른 가서 표 찍자에서부터 시작해, 양동근이 어떤 영화에 출연하려고 한다, 이나영은 뭐 한다더라…출연했던 연기자들에게 관심을 끊지 않고, ‘한 번 네 멋은 영원한 네 멋’이라는 것을 각인시키면서 끊임없이 살아서 움직이도록 만드는 힘이다. 드라마 촬영장을 여행하는 ‘네 멋 투어’ 역시 네 멋의 인기를 실감나게 해주는 요소. 서울시 마포구 마포노인복지회관 앞 버스정류장부터 시작하는 투어에는 아직도 마니아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무슬림에게 메카가 있다면, 네 멋 마니아들의 성지는 바로 이곳, 버스정류장이다. 양동근과 이나영이 처음 만나 눈을 맞추고, 머릿속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듣고, 설레는 마음으로 사랑을 기다리고 떨림을 나누던 장소가 아니던가. 비록 지금은, “여기 있는 쪽지들 떼지 말아주세요.” “네 번째 방문” “사랑, 그 아름다운 이름도 네 멋의 이름으로 함께 하길...” 등등 각기 다른 사랑의 빛깔과 사연들을 볼 수는 없지만, 쓸쓸한 정류장을 들르는 맛도 각별하다고 한다. 혼자서, 또는 여럿이 짝 지어 네 멋의 흔적을 따라가는 이들은 이 순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대한민국 최초의 감독판 DVD 드라마 마니아들은 대한민국 드라마 사상 최초로 감독판 DVD 출시를 결정하도록 만들어낸 무서운 세력이기도 하다. <네 멋대로 해라> DVD 타이틀을 여는 순간 드는 생각. 선명하다. 티 하나 없이 깨끗한 화면에 눈이 시릴 지경이다. 미세한 숨소리, 부릉부릉 버스 소리 하나까지 살아있는 음향은 또 어떤가. 귓가가 간질간질하다. 긴장의 순간에 묘하게 뒤틀리는 복수의 눈매며, 귀엽게 비죽거리는 경이의 입술이며, 미래가 신경질적으로 찌푸리는 미간이며, 동진이의 바람기 다분한 눈빛이며 모든 화면들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다. 한 편 두 편 건너뛰거나 화제의 명장면을 놓쳐서 발을 동동 굴렀던 이들이라면, 20부가 그대로 살아있는 데다가 드라마 시간을 맞추느라 잘라내야 했던 장면과 대사들이 짧게는 2분에서 길게는 6분까지 살려놓은 이 타이틀을 놓칠 수 없을 것이다. 14개 삭제 장면을 추가하고, 총 2백17 장면을 수정한 엄청난 기록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8번째 부록에는 메이킹 필름, 스턴트 장면 등이 실려 있는데, 관심이 가는 장면은 단연코 NG 장면. 하지만 양동근과 이나영이 사랑스럽게 오버하는 모습을 기다린 마니아들로서는 베스트로 뽑아놓은 NG 장면들에 조금은 실망스러웠을 것이다. ‘순풍 산부인과’나 ‘뉴 논스톱’ 같은 왁자한 시트콤들이 가끔 서비스로 보여주는, 본방송보다 더 재미있는 NG 장면에 재미 들린 사람들이라면, 삑사리도 별로 없고 과도한 슬랩 스틱도 거의 없는 네 멋 NG 장면이 심심하게 여겨질지도 모른다. 꽃미남 이동건이 튀겨대는 밥풀도 사랑스럽고, 공효진과 양동근이 마주보며 웃음을 참지 못하는 모습은 귀엽다. NG보다 더 눈여겨봐야 할 장면들은 바로, 양동근과 이나영의 더빙 연습 장면. “미래야 미안해. 나 너 떠나.” 이 한 마디를 위해서 양동근은 쉴 새 없이 연습하고 또 연습한다. 미안함과 아쉬움과 슬픔과 안타까움이 함께 묻어나야 하는 어려운 대사를 틈만 나면 연습하는 양동근, 결국 스스로 눈물 그렁그렁 맺히도록 슬픈 한 마디를 완성하고 만다. ============================================ ▷◁ 대구지하철 희생자를 추모합니다! ![]() |
첫댓글 드뎌 다 올리셨네요^^잘 읽었습니다~ 감사!! 배우vs캐릭터열전 잼나네요^^;
정말 고마워요. 잘 읽었습니다.